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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의 여파로 한산해진 극장가. 개봉을 미룬 대형 영화들의 자리를 다양성 영화들이 메우고 있다. 호평 자자한 로튼토마토 신선도 92% 기록 작 <울프 콜>, 누벨바그 거장 장 뤽 고다르 감독의 전기 영화 <네 멋대로 해라: 장 뤽 고다르> 등 프랑스 영화들이 돋보이는 바. 최근 개봉작에서 얼굴을 비춘 이들을 중심으로, 압도적인 분위기, 연기력, 매력으로 전 세계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는 1980년대생 프랑스 배우들을 한자리에 모아봤다.
런던에서 연기를 공부한 에바 그린은 연극 무대 위에서 연기를 시작했다. 관객과 직접 호흡하며 탄탄한 내공을 쌓은 에바 그린의 스크린 데뷔작은 <몽상가들>. 독보적인 아우라와 연기력으로 관객은 물론, 평단까지 휘어잡은 그녀는 곧바로 프랑스 영화계 중심에 안착하고 할리우드의 러브콜을 받았다. <007 카지노 로얄>의 베스퍼 린드는 에바 그린의 스펙트럼을 한 폭 넓힌 캐릭터. 제임스 본드의 조력자 위치에 그쳤던 기존의 본드걸과 달리, 베스퍼 린드를 능동적이며 스마트하고 여운 넘치는 입체적인 매력을 지닌 캐릭터로 탄생시켜 호평을 받았다. 이후 그녀는 <퍼펙트 센스> <300: 제국의 부활> <다크 섀도우> <웨스턴 리벤지>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덤보>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에서 매번 색다른 모습을 선보였다.
최근작 | <프록시마>
에바 그린은 할리우드 중심에서 활동하다가도, 틈틈이 자국 영화에 출연하며 인상 깊은 모습을 보여왔다. 최근 출연작은 프랑스 영화 <프록시마>다. 1년 기간의 우주 탐사 프로젝트 ‘프록시마’의 일원으로 발탁된 여성 우주 비행사 사라가 딸을 두고 떠나는 것에 대한 죄책감과 불안함을 느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로 에바 그린이 사라를 연기한다. 에바 그린은 이 영화로 올해 세자르 영화제의 여우주연상 후보로 노미네이트됐다.
누벨바그의 거장 필립 가렐과 프랑스 배우 겸 감독 브리짓 시의 아들로 태어난 루이 가렐은 어린 시절부터 영화와 뗄 수 없는 삶을 살았다. 에바 그린과 함께 출연한 <몽상가들>에서 쌍둥이 남매를 사랑하는 테오 역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그는 이후 <내 어머니> <평범한 연인들> 등의 작품을 통해 종잡을 수 없는 사랑에 빠진 프랑스 청춘의 얼굴을 여럿 남겨왔다. <생 로랑> <이스마엘의 유령> <원 네이션> 등 프랑스의 대형 배우들이 출연하는 작품에 빠짐없이 얼굴을 비췄고, 동시에 <페이스풀 맨> 등을 통해 연출자로서의 능력까지 선보인 그는 현재 프랑스를 대표하는 영화인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최근작 | <네 멋대로 해라: 장 뤽 고다르>
2월 개봉작 <작은 아씨들>에서 조(시얼샤 로넌)를 마음에 둔 프리드리히를 연기하며 색다른 매력을 선보인 그. 3월엔 180도 다른 매력으로 관객을 놀래킬 예정이다. 1967년 <중국 여인>을 촬영하고 있을 당시 장 뤽 고다르의 삶을 조명한 영화 <네 멋대로 해라: 장 뤽 고다르>에선 장 뤽 고다르로 완벽 변신한 루이 가렐을 만날 수 있다. 누벨바그의 아이콘이자 혁명을 외치는 예술가, 사랑에 빠진 로맨티시스트로서의 장 뤽 고다르의 모습을 만날 수 있는 작품이다.
6살 때 도베르만에게 물려 생긴 볼의 흉터가 매력적인 훈장으로 남은 배우. 스타일리스트인 아버지와 패션쇼 프로듀서인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가스파르 울리엘은 아역 배우 매니지먼트를 운영하는 어머니 친구의 눈에 띄어 12살부터 배우 활동을 시작했다. 어린 시절엔 영화감독을 꿈꿨으나, 대학에서 본격적으로 영화 공부를 하며 배우로 전향하게 되었다고. 1차 세계대전에 징집된 순수한 소년을 연기한 <인게이지먼트>로 프랑스의 아카데미라 불리는 세자르 영화제의 신인상을 수상한 그는 이후 엄청난 경쟁력을 뚫고 <한니발 라이징>의 젊은 한니발 역에 캐스팅되며 전 세계에 얼굴을 알렸다. 이후 이브 생 로랑을 연기한 <생 로랑>, 죽음을 앞두고 가족을 찾은 한 남자의 복잡한 심경을 담은 <단지 세상의 끝> 등에 출연하며 세자르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비롯해 다양한 연기상을 품에 안았다.
최근작 | <시빌>
가스파르 울리엘은 지난해 11월 개봉한 <시빌>로 국내 극장가를 찾았다. 심리 치료사 시빌(버지니아 에피라)이 자신의 환자이자 유망한 배우인 마고(아델 에그자르코풀로스)의 사연에 과하게 이입하고, 그녀의 이야기를 자신의 소설로 옮기며 벌어지는 일을 담는다. 가스파르 울리엘은 마고의 연인이자 이후 이들을 둘러싼 막장 드라마의 중심에 서게 되는 유명 배우 이고르를 연기했다. 허세 가득한 말로 얄미움을 소환하는 그의 코믹한 연기를 만날 수 있다.
프랑스 배우를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 바로 레아 세이두다. 그녀의 집안이 프랑스 대표 영화사 ‘고몽’, 프랑스 거대 미디어 기업 ‘파테’, 유명 드론 업체 ‘패럿’의 운영을 책임지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유명하다. 모델로 연예계에 입성해 수많은 매거진, 브랜드의 얼굴로 활동한 레아 세이두는 2008년, 루이 가렐과 함께 출연한 <아름다운 연인들>을 통해 세자르 영화제의 신인여우상 등 많은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며 배우로서 존재감을 알렸다.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의 킬러 모로, <미드나잇 인 파리> 속 빈티지 상점의 주인 가브리엘을 지나, 연기로 정점에 오른 건 2013년. <가장 따뜻한 색, 블루>를 통해 그해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이로써 그녀는 공동 주연이었던 아델 에그자르코풀로스와 함께 황금 종려상을 수상한 최초의 배우가 됐다.
최근작 | <007 노 타임 투 다이>
레아 세이두는 <007 스펙터>에서 제임스 본드(다니엘 크레이그)와 산전수전을 겪는 매들린을 연기하며 역대 본드걸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악역 미스터 화이트(제스퍼 크리스텐센)의 딸로 감성적이면서 적대적인 매력을 지닌 복합적인 인물로 등장했다. 올해 개봉 예정인 <007 노 타임 투 다이>에서도 같은 역으로 출연할 예정이다. 올해 4월 개봉 예정이었던 <007 노 타임 투 다이>는 코로나19로 인해 올해 11월로 개봉을 연기했다.
노에미 메를랑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통해 전 세계에 눈도장을 찍은 프랑스의 촉망받는 배우. 모델로 경력을 시작한 노에미 메를랑은 2011년부터 단편 영화, 드라마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이제 막 전 세계 관객에게 눈도장을 찍었지만, 출연작 개수만 따지면 32편에 다다를 정도로 탄탄한 내공이 돋보이는 배우. 2017년 <하늘이 기다려>를 통해 세자르 영화제 신인여우상 후보에 이름을 올리며 배우로서 인정을 받았고,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통해 3년 만에 여우주연상 후보로 이름을 올리는 데 성공했다. 알고 보면 감독이기도. 2017년엔 2분 분량의 단편 <Je suis une biche>을 연출했고, 2019년엔 27분 분량의 단편 <샤키라>(Shakira)를 연출했다.
최근작 |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2019년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의 유력한 후보로 손꼽혔던 작품 중 하나다. 1770년, 화가 마리안느(노에미 메를랑)가 결혼을 앞둔 엘로이즈(아델 에넬)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두 사람 사이의 감정이 서서히 타오르는 과정을 섬세한 시선으로 포착한 작품이다. 캔버스 안이 아니라, 제 눈 안에 엘로이즈를 담는듯한 마리안느. 그를 연기한 노에미 메를랑의 또렷한 눈동자는 스크린 너머 관객에게까지 관찰 받는 듯한 느낌을 전하는 힘을 지녔다.
프랑수아 시빌
이 리스트에서 국내 관객에게 가장 인지도가 낮을 배우. 그러나 프랑스 영화를 즐겨 보는 이들이라면 그의 얼굴이 반갑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주로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프랑스 영화, 드라마로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프랑수아 시빌은 2005년 아역 배우로 커리어를 시작한 15년 차 배우다. 데뷔 3년 차에 만난 영화 <Soit je meurs, soit je vais mieux>에서 쌍둥이 남매에게 사랑에 빠진 소년 마르샬을 연기했고, 이 작품을 통해 세자르 영화제 신인 남우상 후보로 지명되며 주목을 받았다. 이후 <엘르> <프랭크>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 등에 출연하며 배우로서 인지도를 쌓았다. 최근엔 <트루 시크릿>에서 대선배 줄리엣 비노쉬와 호흡을 맞추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최근작 | <울프 콜>
3월 5일 개봉한 <울프 콜>은 프랑수아 시빌이 주연을 맡은 잠수함 액션 영화다. 프랑수아 시빌은 잠수함의 눈 역할을 하는 ‘황금 귀’ 음향탐지사 샹트레드를 연기했다. 그가 미확인 잠수함의 정체를 확인하지 못하며 동료들이 위험에 빠지고, 핵미사일이 오갈 위기에 처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는다. 로튼토마토 신선도 92%를 기록한 수작. 러닝타임 내내 날 선 긴장을 유지하는 건 물론, ‘핵미사일 발사를 막기 위해 자신은 물론 동료들을 희생시킬 수 있는가’란 질문을 던지는 묵직한 메시지까지 놓치지 않았다는 평을 받았다.
아델 에넬
아델 에넬은 프랑스의 아카데미라 불리는 세자르 영화제에 여섯 번 노미네이트되었고, 두 번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서른 한 살의 어린 나이가 놀라워지는 성적이다. 2002년 데뷔작인 영화 <악마들>을 통해 남다른 떡잎을 선보인 아델 에넬은 5년 동안의 공백을 보낸 후 2007년 셀린 시아마 감독의 <워터 릴리스>를 통해 연기자로 복귀하며 화려한 필모그래피를 쌓기 시작했다. 국내를 비롯해 전 세계에 인지도를 쌓기 시작한 건 코엔 형제 감독의 <언노운 걸>에 출연하고서부터. 이후 <120 BPM> <원 네이션> <디어스킨> 등 각종 영화제에서 인정받은 명작에서 줄줄이 인상 깊은 연기를 선보이며 프랑스의 대표 배우 반열에 올랐다.
최근작 |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서 아델 에넬은 초상화의 주인공, 엘로이즈를 연기했다. 화가만이 모델을 관찰하는 게 아니라, 모델 역시 화가를 관찰하고 있음을 알린 엘로이즈는 대사 하나, 눈빛 하나로 마리안느와의 거리를 단번에 좁혀낸다. 순간적으로 분위기를 압도하는 아델 에넬만의 에너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연기다. 치맛단에 불을 붙인 채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만들어낸, 환상적이면서도 기이한 장면만으로도 아델 에넬의 대체불가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