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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2022.7.10.일
■코스: 수승대 주차장-우틀-구연서원-이태사랑바위-척수
대-캠핑장-위천교-금계교-동
계(정온)종택-반구헌-수승대 썰매장.전망대.동계종택 갈림
길-좌틀-전망대-모리재.성령
산 갈림길-헬기장-성령산-Bac
k-모리재(고개)/현성산.모리재
.동계종택 갈림길)-우틀-모리
재(재각,병자호란때 정온선생 서원 형태 재실)-우틀-임도-귀
후정-강선대-농산리 석조여래
입상(보물)-Back-북상면 계곡
-우틀-데크길-수승대(너럭바
위)-관수루-산고수장비-수승
대 출렁다리-수승대 주차장
■구간거리/평균속도: 15.3KM/3.6KM
■동반자: 심공님
■차기 산행지:
○7.12(화): 공주 진날산-청벽
산 또는 광주 쓰래산(195.8M)-
내왕산(170.5M)-용진산 석봉- 토봉(351M)-산보래산(176.2
M)
○7.15(금) 거창 서출동류 물
길/산들애힐링산악회
○7.17(일): 장수 토옥동계곡/
자연과동행 산악회
○7.19(화): 곡성 동악산 청계
계곡-동악산
○7.21(목): 진안 덕태산/빛고
을목요산악회
○ 7.22~23(금~토, 무박): 낙
동정맥 15구간/무등마루산악
회
○7.26(화): 논산 천호산(371
m)-두리봉-계룡시 천마산(28
7M)
○ 7.29~30(금~토, 무박): 낙
동정맥 최종 16구간/무등마루
산악회
○8.1(월): 경남 김해 굴암산
(663.1M)
○8.9(화): 공주 계룡산-신원
사 계곡 미답 코스
○8.12(금): 곡성 원효계곡-동
악산(737M)
○8.14(일): 진안 운일암반일
암-명도봉(863M)/흥사단산악
회
○8.16(화): 진안 부귀산(806
M)
○8.19(금)임실 지초봉(570M
)-원통산(603M)-시루봉
○8.22(월):담양 병장산(685M
)-능주봉
○8.25(목): 충남 태안 옹도/반
월산악회
○8.28(일): 담양 용흥사계곡-용구산(726M,병풍산)
○8.??.일: 강원 화천 해산령
(1,194M)-비수구미마을 트레
킹(6.2KM)-평화의 댐+백암산
(1,178M, 군사보호지역 케이
블카로 접근) 연계 산행/KJ산
악회
○8.??(): 충남 금산 금성산 술
래길
○8.??(?)화순 한천 돗재-태악
산-노인봉-성재봉/동가리계곡
○9.20~22(2박3일): 인천광역
시 옹진군 백령도ㆍ대청도/반
월산악회
○2023.4(초): 여수 하화도 꽃
섬
○2023.5(초): 경남 함양 악양
둑방길 꽃양귀비~자양산
(401.6M)
○2023.5(초): 경남 거창 핫들
생태공원 작약꽃~정양늪~대
야성산(267M)
○2023.5(초): 고흥 애도 쑥섬
작약꽃,꽃양귀비 탐방
■후기: 오늘은 산행 신청자가 17명으로 취소할 줄 알았더니, 24인승 미니버스로 차량을 변
경하여 그나마 다소 적게 적자
를 감수하며 산행을 한다기에 따라 나섰다. 미니버스라 그런
지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무던
히도 털털거렸지만, 몇십만원
을 감내하며 산행을 취소하지 않는 집행부의 결정을 생각하
면 아무일도 아니었다. 이날 A
코스는 현성산-필봉-모리산-성령산을 탄다며 현성산 아래 미폭주차장에서 먼저 하차하
고, 나는 심공님과 B코스를 선
택 후 문화유산 여행길이라고 명명된 수승대 트레킹길을 선
택하였기에, 다른 두분과 함께 수승대 주차장으로 향했다. 이윽고 수승대 주차장에 도착 후 심공님과 나는 주차장을 나
선 뒤, 우틀하여 도로가에 설치
된 데크길을 따라 동계종택으
로 향했다. 동계종택은 조선 중
기 문신인 정온 선생의 재실이
었고, 규모가 솔찬히 컸다. 드디어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
되었는데, 솔밭길로 이루어진 등산로는 솔향이 가득해 치유
받는 느낌이라서 기분이 상쾌
했고, 비교적 완만한 오름길이
어서 트레킹 코스로는 안성맞
춤이었다. 이후 1시간 남짓 오
른 뒤 전망대에 도착하여 잠시 쉬며 물을 마신 다음, 모리재 고개에 다다라 우틀하려는데 그 방향에도 모리재라고 표기
되어 있어 의아했다.
하물며, 가는 방향에 마을자치
위원회라며, 위반시 100만원
의 벌금을 물린다는 말도 안되
는 출입금지 현수막이 두개나 붙어 있었다. 잠시 갈까말까 망
설이다가 강행하기로 하고 발
길을 재촉했는데, 500여 M쯤 심하게 묵은 산길을 따라 한참 내려가 보니, 정온 선생 서당격
인 모리재(재실)가 또 있는 게 아닌가! 여기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수승대 계곡길을 따라서 우틀하려는데 표지목은 있었
으나, 칡나무 덩쿨로 쩔어 있어 길을 찾을 수가 없어서 부득이
그늘이 거의 없는 좁은 포장 임
도를 따라 3~4KM 거리를 한참 내려오다 보니, 수승대 계곡으
로 내려오는 데크길을 만나 다
행이었다. 그런데, 지자체에서
데크길을 무척이나 잘 만들어 놓아 이쪽 지방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과감한 투자가 부러웠다. 오늘도 수승대 계곡엔 가족 단
위의 향락객으로 붐볐다. 수승
대를 몇번 갈때마다 느꼈지만, 이상하게도 수승대는 계곡물
이 유난히 미지근했는데, 그럼
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동반하여 물속에
서 튜브 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나는 두어군데 동네를 지나는 동안 마을의 수도를 발견하면 머리를 감아 땀 냄새를 줄였고, 수승대에 이르러서는 미지근
하나마 계곡물에 티셔츠를 빨
아 입고 머리를 감은 뒤, 주차
장 화장실에서 마지막으로 세
족을 하고 머리를 감고나니, 한
결 찜찜함이 덜해졌다. 하물며,
오늘은 오후 2시부터 천둥번개
를 동반한 강력한 소나기가 예
보되었으나, 저녁 8시반경 집
에 돌아올때 까지 비는 오지 않
았다.
아울러 오늘 산행은 해발 700
여 M에 위치한 모리재 고개 까
지 오르느라, 바람이 별로 없어
서 땀은 원없이 흘렸지만 다행
히 습도는 별로 높지않게 느껴
져, 별로 더위에 지치거나 힘들
이지 않고 산행을 마칠 수 있었
다.
아무튼, 이번 산행은 A조원들
이 몇팀으로 분산되어 제대로 수승대 주차장으로 하산한 팀
이 하나도 없이, 엉뚱하게 좌우 방향 동네로 하산 시각인 오후 3시를 넘겨 하산하는 바람에, 여기저기로 태우러 다니느라
오늘 임시 버스기사가 짜증났
을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오후 4시경에 하산을 마치고 근처 위천면 소재 목욕탕으로 사우
나를 하러갔는데, 매주 화요일 정기 휴무라고 써 있었지만 소
규모의 동네목욕탕이라서인지 문이 닫혀 있어, 순창으로 가서 목욕을 한 뒤 뒷풀이를 한다며 이동했다. 사우나를 마치고 나
니 한결 몸이 개운해 졌고, 인
근에 위치한 식당에서 곰탕으
로 시원한 소주와 맥주를 들이
키고 나니, 기분이 무척이나 고
조되었다. 단돈 30,000원에 6,000원 짜리 고급 사우나와, 10,000원 짜리 곰탕을 사주는 것도 모자라, 하산주와 목욕후 술은 물론 뒷풀이 병 소주와 맥
주를 세번이나 주는 횡재를 또 하고 왔다. 흥사단산악회는 이
번 산행이 서너번째 참여이지
만, 동참할 때마다 산행분담금 30,000원으로 어떻게 매번 수
십만원의 적자를 감수해 가며, 운영하는지 이해불가였다. 어
쨌든 오늘 산행은 거창 문화유
산길이라는 수승대 트레킹길
을 맘 먹고 돌았는데, 막바지에 3~4KM의 콘크리트 포장 도로
를 따라 걷느라 그늘이 거의없
어 다소 지겹고 무더웠지만, 거
리가 15.3KM로 짱짱한 코스에 여러 문화 유적을 볼 수 있어서 뜻 깊었고, 적은 비용으로 하루 호사를 누리게 해준 흥사단산
악회에 무한 감사드린다. 아울러 무엇보다도 오늘 긴거
리를 함께해 주신 심공형님께 감사드린다.
■산 소개:
○성령산(城領山,448M)은 경
남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산7
번지에 있는 산으로, 성령산 정
상에 는 임진왜란 때 쌓았다고 알려진 용문 고성인 테뫼식 산
성이 있었다 한다.
현재 성령산 정상부에는 헬기
장이 구축되어 있으며, 남쪽에
는 위천 분지가 넓게 형성되어 있다. 성 내부에서 와편과 토기
편이 다소 발견되고 있다. 임진왜란 때 왜적과 싸웠던 정
유명(鄭惟明)이 쌓은 성으로 알려져 있다. 『화림지(花林誌)』에 "재고현 역동상북상
동계(在古縣嶧洞上北上洞界)[고현의 역동 위쪽이며, 북
상과 경계에 있다]."라고 한 곳
이 바로 거창 황산리 용문 고성
이다.
한편, 임진왜란 때 김면 장군의 휘하에서 의병 활동을 했던 정
유명이 쌓은 성으로 알려져 있
다. 그러나 성 내부에서 발견되
는 어골문의 와편과 토기편으
로 봐서는 더 이른 시기, 삼국 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성령산은 현성산과 필봉
에서 내려오는 산줄기 만나는 요충지로 수승대를 연결하는 길목에 있다.
○거창 수승대(居昌 搜勝臺)
는 경남 거창군 위천면에 있는 명승지로 2008년 12월 26일 제53호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영남 제일의 동천(洞天: 산천
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으
로 알려진 ‘안의삼동(安義三洞
)’ 중 하나인 원학동 계곡 한가
운데 있는 널따란 화강암 암반
으로, 깊은 계곡과 숲이 어우러
져 탁월한 자연경관을 이룬다.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였던 이
곳은 신라로 가는 백제 사신들
을 수심에 차서 송별하는 곳이
라는 뜻으로 '수송대(愁送臺)'
라 불렸다. 그런데 퇴계 이황이 이곳의 풍경을 예찬하는 시를 한 수 읊은 뒤부터 수승대(搜勝臺)로 그 이름이 바뀌었다고 전
한다. 이와 관련하여 이황의 개
명시와 갈천 임훈(林薰)의 화
답시가 전한다. 가까이에 거의 대표적인 정자 요수정(樂水亭)
과, 구연서원의 문루격인 관수
루(觀水樓), 그리고 거북 형상
의 돌출된 바위가 잘 남아 있어 경관이 좋기로 이름나 있고, 거
창군이 관리한다.
○ 동계종택은 정온의 옛집으
로 덕유산 동남쪽에 있던 안음
현(安陰縣)은 지금의 거창과 함양(안의면, 서하면, 서상면) 지방에 있었던 현이지만, 영조 4년(1728) 정희량이 변란을 일
으키자 그 땅을 갈라서 함양과 거창에 편입시켰다. 동계(桐溪
) 정온의 고향으로, 지금의 거
창군 위천면 강천리 강동마을
에 정온 고택이 있고 종부가 그 집을 지키고 있다. 정온은 벼슬
이 이조참판에 이르렀으며, 광
해군 때 영창대군의 처형을 반
대하다가 10여 년간 귀양살이
를 하였다. 병자호란 때 정온은 청나라 군사가 남한산성을 포
위하자 명나라를 배반하고 청
나라에 항복하는 것은 옳지 못
하다 하였는데, 인조가 항복하
려고 성에서 내려가자 스스로 칼로 배를 찔러 죽으려 하였다. 정온의 아들이 창자를 배에 넣
고 꿰맸더니 오랜 후에 깨어났
다고 한다. 정온은 전쟁이 끝나
고 청나라 군사가 돌아가자 곧 시골로 돌아가서 다시는 조정
에 나가지 않았다. 그의 4대 후
손이 바로 정희량이다. 안음에 거주하다 순흥으로 이사를 간 그는 1728년 이인좌, 박필현 등과 함께 공모하였다. 영조가 임금에 오른 뒤 벼슬에서 물러
난 소론 일파의 호응을 받아 이
인좌를 원수로 하여 군사를 일
으킨 뒤 청주를 습격하였는데 한때 안음, 거창, 합천, 삼가 등
의 고을을 제압하였으나 오명
항이 이끄는 관군에 패하였다. 그 뒤 정희량은 거창에서 체포
되어 참수되었다. 이로 인해 안
음현은 폐현되었고, 이 지역 사
람들의 벼슬길도 막히게 되었
다. 『동국여지승람』 「안음
현」조에는 “억세고 사나우며 다투고 싸움하기를 좋아한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그
런지 함양군 사람들이 흔히 ‘안
의 송장 하나가 함양 산 사람 열을 당한다’고 말하는데, 이 말은 그만큼 이곳 사람들의 기
질이 세다는 말이다.
이중환이 “안음 동쪽은 거창이
고 남쪽은 함양이며 안음은 지
리산 북쪽에 있는데, 삼가를 포
함한 네 고을은 모두 땅이 기름
지다. 함양은 더구나 산수굴(山水窟)이라 부르며 거창, 안음
과 함께 이름난 고을이라 일컫
는다. 그러나 안음만은 음침하
여 살 만한 곳이 못 된다”라고 말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당시는 안의현이었다가 현재
는 거창군 위천면 강천리로 행
정구역이 바뀐 강동 마을에 정
온의 고택이 있고 80세가 넘은 종부가 그 집을 지키고 있다. 그곳 종부에게 들은 바에 따르
면, 정희량의 난 이후 정국에서 소외된 그들은 같은 파벌끼리 혼사를 맺어 그 맥을 이어갔는
데, 현재 정온의 종부는 경주에
서 13대 만석꾼으로 이름난 최 부잣집의 큰딸이고, 하회 유성
룡의 종부는 둘째 딸이며, 정온
댁 종부의 시고모는 해남 윤선
도의 집으로 시집을 갔다고 한
다. 그 말을 들으니 요즘 재벌
이나 정관계의 고위 인사들의 얽히고 설킨 혼맥을 보는 듯했
지만 혼맥을 통해 파벌의 끈을 그렇게 이어갔다는 사실이 가
슴을 먹먹하게 하였다.
첫댓글 어제 산행도 덕분에 아주 좋았습니다 뭐라 표현 할 수 없는 만족감을 느꼈습니다
8일 동안 4번의 산행으로 지금까지 비몽사몽 간에 지나고 있습니다 많이 힘이 듭니다 그래도 좋은 산행은 감사드립니다
더운데 15KM가 무리였나 봅니다. 담 부터는 힘드시
면 가자고해도 기꺼이 말씀
하세요.
@황야 아닙니다 어제 산행과 집에 와서도 전혀 똑같이 행동하였으나 아침에
일어나 보니 그랬단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