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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울 둘레길 길동무 원문보기 글쓴이: 수명산
호남정맥 종주 8구간(봉화산)
종주일자 : 2001년 10월 25일
종주구간 : 겸백고개 ~ 봉화산 ~ 봇재
날 씨 : 맑음
도상거리 : 15.25km
겸백고개 - 3.4 - 346봉(△346m) - 0.9 - 380봉(대룡산 분기점) - 1.1 - 338.7봉(△338.7m) - 0.9 - 그럭재(2번국도) - 0.6 - 305봉(×305m) - 1.0 - 417봉(△417m) - 0.8 - 417봉 (×417m) - 1.5 - 봉화산(×475m) - 1.2 - 411.4봉(△411.4m) - 1.4 - 313봉(×313m) - 2.4 - 봇재(18번국도)
정맥의 밤이 깊어간다. 술꾼들이 한차례 잠을 깨우더니, 누군가의 잠꼬대에 다시한번 놀라 눈을 뜬다. 한쪽에선 방귀소리가 심심찮게 들리고, 코고는 소리, 나는 탱크소리라고 하는 데 들어본 적이 없다. 이영주는 내가 지 마누라라도 되는지 달려들고. 이렇게 정맥의 밤은 대원들의 잠버릇으로 한바탕 소란을 피우며 시간이 흘러간다.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운다. 서울에서는 70년대 들어봄직한 새벽시간을 알리는 교회의 종소리가 들린다. 일어날 시간이다. 대원들은 깨우는 것을 질색하지만 대간에서부터 내가 하던 일을 저버릴 수는 없다. 서둘러 야 정맥에 오르지, 떠날 시간에 굼벵이 짓 하는 게 제일 보기 싫다.
07시 안개가 짙게 깔린 오도치에서 겸백면 경계표지판을 뒤로 마루금에 붙는다. 잡목을 헤치다보니 아침이슬이 정맥꾼들의 옷깃을 파고든다. 앞서는 것이 싫은지 뒤에서 주춤거리는 정맥꾼들, 여름 내내 첨병 이었던 이영주도 이제 늙었나 보다. 늘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백두대간을 같이 종주 하던 산중문답의 저자 한상철씨는 아침 이슬을 이렇게 노래했다.
‘한 백년 고작 인생 아옹에 다옹 마라
부귀빈천도 한갓 꼭두놀음 일진대
하물며 풀잎 이슬쯤 혼자 반짝 해본들,
임도를 따라서 가파르게 오른다. 임도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장비가 지나가며 뚫린 숲길이 좁은 산길로 바뀌면서 키 작은 소나무와 참나무 숲 사이로 진달래가 걸리적거리고, 다시 조금 전 헤어졌던 임도를 만나며 마치 왕릉 같은 커다란 광산 김씨와 밀양 손씨의 묘지를 통과한다.
가파르게 오르는 임도에는 억새풀이 발길에 채이고, 산안개는 거칠 줄 모르는데, 오늘은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덕유산악회’ 리본이 자주 눈에 띈다. 좁은 능선에 꽉 들어차 있는 묘지 2기에 올라서면서 임도가 끊어지는 것을 보니 묘지 때문에 생긴 것 같아 씁쓸하다. 좌우로 구름바다가 펼쳐진 정맥은 잡목을 헤치며 가파르게 올랐다가 완만한 내림길이 되면서 아침을 노래하는 조그만 산새들이 숲을 가르고 있다. 작은 언덕을 넘으며 평탄하게 이어진다.
07시 26분 능선분기점에서 오른쪽(북)으로 방향을 틀며 중키에 소나무숲길은 4분 뒤에 다시 능선분기점을 만나면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며 내려선다. 나침반이 서쪽을 가리킨다. 측백나무 조림지가 이어지고, 정맥길은 솔잎이 가득한 오솔길이다.
07시 36분 흙무덤을 통과하며 완만한 오름 길에서 안개가 거치며 왼쪽으로 들녘이 나타난다. 오늘은 얼마나 더울까? 어젠 정말 먼 길을 더위와 물과 한바탕 씨름을 했지!
넓은 잔디밭에 묘 4기를 끼고 돌아서면서 방향을 왼쪽(남)으로 다시 장비가 짓밟은 흔적이 역력한 정맥은 넓은 초원을 지나 십자로 안부를 통과한다.
오름 길에 시야가 트이는 듯하다가 다시 안개가 짙어지고, 연이어 오르고 내리던 정맥에는 산자락을 휘감으며 몰려가는 산안개가 너무나도 아름답다. 한차례 허리 길을 돌아 내려서서 터널숲길을 지나다보니 정맥꾼들을 유혹하는 청미래의 빨간 열매가 너무 탐스럽고, 한 송이 진달래꽃이 애잔하다.
펑퍼짐한 능선 길엔 여름 내내 성가시게 하던 거미들은 간 데 없고, 군데군데 빈집만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정맥꾼들은 개척이 안된 능선길이 엄두가 나지 않았는지 허리길이 너무나 선명하게 나있고, 왼쪽으로 갈림길을 지나친 후 십자로 안부를 가로질러 오르는 길엔 들국화와 구절초가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08시 09분 묘 2기가 있는 공터에서 잠시 다리쉼을 하고, 오른쪽으로 꺾이는 듯하다가 묘 지대를 지나며 노간주나무가 자주 눈에 띄고, 한동안 이어지던 정맥은 삼거리에서 직진하며 중키에 잡목숲에 이어 측백나무 사잇길로 한차례 가파르게 오른다. 안동 김씨와 보성 오씨 합장 묘를 지나면서 연이어 묘지를 통과하다 만나는 대나무밭을 헤쳐나간다.
08시 30분 진달래밭이 걸리적거리는 오름길은 346봉 인 듯한 시야가 가린 봉에서 삼각점을 확인도 못한 채 내려서면서 완만하게 이어지다가 바위지대를 통과하며 한차례 뚝 떨어지고, 이리저리 휘저으며 진행하여야하는 어지러운 길이다. 다시 완만한 오름길에 높게 솟아 시야를 가로막으며 서있는 봉이 대룡산 같다.
08시 55분 코가 닿을 듯한 힘겨운 오르막을 올라 펑퍼짐한 봉을 넘으면서 대룡산으로 갈리는 능선분기점에서 왼쪽(서남)으로 서서히 방향을 틀며 완만하게 오르내림이 이어진다. 몇 년을 비바람과 눈보라에 굴하지 않고 버텨온 백두산 가는 길의 '거인산악회' 리본이 간간이 우리를 반기고, 남쪽으로 방향이 바뀌며 낙엽이 수북히 깔린 내리막길이다.
묘가 지키고 있는 봉우리 직전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며 내려서다가 가파르게 떨어진다. 바위지대와 칡넝쿨지대를 통과하며 내려선 안부에서 다시 바위들이 자치하고있는 봉을 넘으면서 고만고만한 오르내림이 이어진다.
09시 14분 십자로 안부를 통과하고, 오른쪽에 있는 임도를 확인하며 조금 올라선 묘지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다. 숲 속에는 작은 새들이 반갑다고 특이한 소리로 울어대고, 솔잎이 가득한 장송숲길을 지나며 광산 김씨의 3기의 묘지를 만난다. 오늘은 유난히 북나무의 빨간 단풍잎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한동안 널찍하던 정맥길이 다시 잡목숲을 헤치며 봉우리를 우회하며 내려섰다 오르고, 지그재그로 나있는 길을 따라 봉에 올라서니 2번 국도를 통과하는 자동차의 소음이 시끄럽지만, 때마침 경전선을 통과하는 열차의 기적소리가 그런 대로 운치가 있다.
09시 29분 진달래밭을 헤치며 오른 곳이 338.7봉이다. 삼각점(복내 481, 86년 재설) 확인한다. 뒤돌아보니 오르지 못한 대룡산이 어서 가라고 손짓하는 것 같고, 서남쪽으로 이어나가는 호남정맥, 그리고 보성읍내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가파르게 떨어지는 듯하던 내리막길이 갈림길에서 넓은 길을 버리고 왼쪽으로 희미한 길을 따라 안부에 내려섰다가 바위들이 차지한 봉을 넘는다.
09시 35분 임도에 내려서며 이어지는 정맥은 고원지대에 억새밭을 지난다. 좌우로 운해가 너무나 멋지고, 이어 만나는 감나무 과수원에는 고염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있어 옛날 할머니께서 작은 항아리에 보관했다가 조금씩 간식거리로 주시던 생각이 문득 떠오른다.
임도를 버리고 왼쪽으로 참나무와 진달래숲길로 봉에 올랐다가 급경사에 내리막길은 소나무가지를 붙잡고 뚝 떨어지더니 까마득한 절개지 앞에 정맥꾼들을 서게 한다. 다시 절개지를 미끄러지듯이 내려서고 오른쪽으로 소단을 타고 이동하다가 고속도로와 같은 2번 국도인 그럭재에 내려선다.
09시 57분 그럭재에서 오른쪽으로 갓길을 따라 안치마을 표지석이 보이는 오르막차선 끝 지점에서 왼쪽에 보이는 지하도를 따라 국도를 건너 다시 고갯마루에 오르면서 길가에서 판매하는 칡즙 한 잔은 어느 정도 피로를 풀어주는 것 같다. 칡즙은 위장, 간장, 숙취, 감기, 미용, 변비, 피로, 갈증, 당뇨에 좋다고 하네요...
10시 06분 ‘과속은 불행을 안전은 행복을’ 보성군 교통관리공단에서 세운 대형 입간판을 뒤로 길가에 설치한 옹벽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숲길로 들어서며 측백나무군락 사이로 넓게 나있는 오름길은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터널숲길이 길게 이어진다.
10시 22분 송전탑을 통과하며 오른쪽으로 참나무숲길은 3분 뒤 다시 만나는 통신 중계탑과 건물을 지나면서 다시 왼쪽으로 보이는 송전탑을 향하여 완만하게 내려섰다 오른다. 잡목들이 꽉 들어차 있는 오름길이다. 정맥에는 전주가 연이어 나타나고, 가지 말라고 붙잡는 나뭇가지들을 뿌리치며 오른다.
10시 35분 305봉 능선분기점에서 오른쪽으로 임도를 따라 내려선다. 전주가 서있는 임도는 콘크리트포장으로 바뀌고 이어 잔 자갈이 깔린 비포장도로를 만나며 왼쪽으로 조금 올라선 삼거리에는 보성읍, 득량면, 정족리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서있고, 보너스로 거시기 바위(?)를 만나는데 거시기 바위를 끼고 사진 한 장씩 찍는다.
10시 42분 비포장도로를 버리고 오른쪽으로 절개지에 올라 참나무 숲 사이로 진달래밭을 헤쳐나가다가 바위지대를 통과하며 봉에 오르고, 쉼도 없이 시야에 보이는 좌우로 갈라지는 능선을 보며 넓은 안부에 내려선다. 왼쪽 능선으로 이어지는 정맥길을 찾아 억새와 잡목들이 빼곡이 들어서 있는 펑퍼짐한 오름길은 한차례 정맥꾼들을 헤매게 하며 틈을 주지 않는 길이다.
11시 13분 417봉이다. 삼각점(복내 11, 90년 재설)을 확인한다. 힘겹게 찾은 봉우리지만 만남은 잠시 다시 작은 언덕을 넘으면서 긴 내리막길은 구릉지대가 이어지고, 허공을 가르는 바람소리가 을씨년스럽다. 허기에 약한 정맥꾼들은 참나무와 소나무가 어우러진 안부 직전에 용담꽃이 피어있는 넓은 공터에서 허기를 채운다.
11시 50분 20여분의 중식을 끝내고 십자로 안부를 가로질러 잡목들을 헤치며 가파르게 올라선 또 다른 417봉을 넘어서면서 정맥을 지키고 있다고 하던 진짜 거시기 바위는 찾을 길 없고 정맥길은 지루한 오르내림이 이어진다. 사람들의 마음은 간사한 것 같다. 어제와 같이 시원하게 뚫린 정맥길을 원했는데 무심도 하시지 하루종일 팔다리에 온통 핏자국을 남기며 무엇이 나온다고 하루종일 이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잡목숲길이 왼쪽으로 들녘이 내려다보이더니 슬며시 모습을 드러내는 봉화산을 보니 왼지 오를 일이 걱정이 앞선다. 산죽군락이 나타난다. 이어 2m 가 넘는 산죽터널을 뚫고 나간다. 산죽밭이 물러나고 이번엔 잡목과 가시넝쿨이 합세하여 옷깃을 붙잡는다. “붙잡지 좀 말아라 갈 길이 바쁘단 말이야” 혼자 중얼거리며 가시넝쿨을 뿌리치고 올라선 곳이 은빛물결의 억새꽃이 휘날리는 헬기장이다.
12시 37분 헬기장을 뒤로 잡목과 다시 한판 씨름 끝에 군 상징 마크가 새겨진 비석과 새 천년의 햇살 보성에서 빛나리라는 군민의 희망과 염원이 담긴 글이 새겨진 비석이 서있는 높이 475m의 봉화산 정상에 오른다. 넓은 공터에 쉼터가 마련되어 있고 복원된 봉수대가 정맥꾼들을 맞는다.
고려시대 공민왕때 축조되어 군사적 통신수단으로 사용되어온 봉화산 봉수대가 조선조 고종 32년인 1895년 전국의 봉화대 폐지로 1백여년이 넘게 방치된 채 훼손되어 옴에 따라 지난 96년부터 봉화대 복원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복원사업을 적극 추진, 지난 8월 군비 5천만원을 들여 원형대로 복원했다고 한다.
이곳 봉수대는 동으로는 고흥 장기산, 서로는 장흥 천관산, 서남으로는 직봉인 회천 전일산 봉화대와 서로 마주하고 있는 보성군 관아에 직결된 봉수대이다. 또 봉화에 따라 출전명령이 내려져 왜적을 물리칠 수 있었던 호국의 얼이 서린 봉수대로 이제 복원되어 보성군의 새로운 명소가 되고 있다.
12시 55분 봉화산을 내려서면서 멀리 두 개의 통신 중계탑을 향해 이어지는 정맥이 선명하다. 남쪽 방향으로 내림길이 시작된다. 시야가 트여있는 능선에는 회천면의 들녘과 마을들이 한 폭의 그림 같다. 금전산도 보기 좋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다시 지루한 잡목 숲에 오르내림이 이어진다. 허공에 몰려다니는 바람은 허울뿐이지 답답한 숲길이다.
13시 14분 십자로 안부를 가로질러 408봉에 오르고, 통신 중계탑을 보며 내려서는 듯하다 오른쪽으로 틀며 오른다.
13시 25분 삼각점(회천 305, 86년 재설)이 있는 411.4봉이다. 키 작은 억새풀로 울타리를 두른 산불 감시초소와 봉화산에서 보이던 첫 번째 통신 중계탑이 있는 411.4봉을 뒤로 산죽밭을 헤치며 내려서면서 만나는 임도를 따라 두 번째 통신 중계탑이 서있는 SK텔레콤 기지국을 통과하며 콘크리트포장 임도를 따른다.
임도 안부에서 오른쪽으로 차밭을 끼고 언덕을 넘어 숲길에 들어섰다가 안부를 통과하면서 정맥은 1m 이상 넓게 잡목을 베어버린 넓은 길이 나타난다. 십자로 안부를 가로지르며 정맥은 능선 왼쪽으로 산허리길로 이어지다가 313봉에 오른다. 한동안 길이 넓게 나있고 목적지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는지 정맥꾼들은 여유를 보이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쉬엄쉬엄 걷는다. 넓은 길을 버리고 오른쪽으로 잡목숲을 헤치며 올랐다가 다시 봉을 넘는다.
14시 07분 능선분기점에서 오른쪽으로 키 작은 떡갈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시야에는 가을 물감으로 채색을 한 봉긋이 솟은 작은 봉이 연이어 보인다. 여인의 젖가슴을 어루만지듯 작은 봉을 넘어서며 봇재로 오르는 18번 국도가 시야에 들어오고, 힘차게 뻗어나가는 호남정맥이 조망된다. 앞에 보이는 봉에서 왼쪽으로 들어서는 선두에 정맥꾼들이 멋진 그림을 선사한다.
넓은 잔디밭에 묘 1기 가 있는 봉에 오르고 앙상한 가지들이 메마른 고사목지대를 통과하며 작은 오르내림이 이어진다. 바위들이 차지하고 있는 봉에 올랐다가 가시덩굴을 헤치며 펑퍼짐한 묘 1기를 통과하며 십자로 안부에 내려선다.
14시 38분 홈통길로 정맥의 리본들이 줄줄이 달려있다. 정맥의 능선은 조금 더 올라섰다가 오른쪽으로 꺾이며 동쪽으로 내려서는 것 같은데 이곳에 리본들이 줄줄이 매달려있는 것으로 보아 능선길이 없는 것 같다.
홈통길로 2,3분 내려서다 왼쪽으로 사면길을 따르다가 능선에 붙으며 내려선 임도에서 공사중인 콘크리트포장길을 따라 차밭을 끼고 언덕을 넘어서면서 왼쪽에 있는 신정주유소 옆으로 내려선 곳이 18번 국도 봇재다.
15시 회천면과 보성읍 경계에 있는 봇재 고갯마루에 있는 소공원에 도착한다. 오늘도 힘겹게 한 구간을 해낸 내 자신이 대견하게 느껴보는 순간이다.
소공원에서 가쁜 숨을 달래며 내려다보니 넓은 차밭을 조망할 수 있고 또한 할아버지, 할머니(할바시와 할마시) 상도 있어 이채롭다.
보성은 국내 최대 차 재배지로 유명하다. 보성읍에서 남쪽 바다를 향해 가다가 붓재를 넘으면 넓은 들판을 가득 메운 짙푸른 이랑들을 만나게 되는데 이곳이 바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차밭인 보성 차밭이다. 이곳의 차나무들은 대밭이나 떡갈나무, 오리나무 숲 산비탈에서 이슬 맞으며 자라는 야생 차나무들과 달리 대규모로 인공 재배되고 있지만 그 맛은 결코 야생차에 뒤지지 않는다.
차나무가 잘 자라려면 날씨가 따듯하고 연평균 강우량이 1500mm이상은 돼야 하는데 이곳은 강수량이 적어 차를 재배하기에는 부족한 곳이라고 한다. 그러나 대륙성 기후와 해양성 기후가 교차하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아침저녁으로 안개가 끼여 부족한 강수량을 보충해 주는 하늘이 내린 차 재배 적지라고 한다.
보성군은 1985년부터 해마다 봄철 차 수확기인 곡우가 되면 전국에서 유일한 차 문화축제인 보성 다향제를 열고 있고, 다신제를 시작으로 차잎 따기, 차 만들기, 차 아가씨 선발대회, 다례 시범등 여러 가지 행사를 갖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