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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 스크랩 머리 없는 절충장군(折衝將軍) 최정걸 장군묘 - 영화 남한산성을 떠올리며
호박조 추천 0 조회 10 17.10.31 14:3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영화 ‘남한산성’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영화 속에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남한산성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최정걸 장군의 묘소를 찾아갔습니다. 장군의 묘소는 본오동 벌을 내려보는 안산시 사동 산우물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1636년 인조 14년에 병자호란이 일어났습니다. 청태종은 13만 대군을 이끌고 12월 1일 압록강을 건너 한양으로 진격합니다. 강화도로 피난하려던 인조는 청군에 의해 길이 차단되자 급히 남한산성으로 피신합니다. 인조와 조정 대신들은 남한산성으로 피신합니다. 




하지만, 남한산성에는 전쟁을 대비한 어떠한 대비책도 갖추고 있지 않았습니다. 청나라군에 의해 완전히 포위되어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 순간에 청나라에 항복을 해야 한다는 주화파와 끝까지 맞서 싸워야 한다는 주전파가 첨예하게 대립합니다. 적은 병력, 음식, 전쟁 물자가 절대로 부족했습니다. 청나라는 대포를 쏘아대며 남한산성을 공격합니다. 




고립무원의 남한산성에서 충신을 기다리는 인조의 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했을까요? 국치의 위기에 처한 인조에게 주저하지 않고 달려간 이가 있었습니다. 바로 52세의 노장 최정걸 장군이었습니다. 절충장군까지 지낸 후 안산시 사동 감자골로 귀향하여 효를 다하고 있던 장군은 홀로 남한산성을 향해 떠났습니다. 


 


전국의 근왕병이 고립된 인조를 구하기 위해 달려왔습니다. 하지만, 모두 청나라군에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유일하게 청나라군을 뚫고 인조에게 달려간 이가 바로 최정걸 장군입니다. 장군은 적군의 머리 7급을 베어 인조에게 바칩니다. 크게 기뻐한 인조는 손수 어주(御酒)를 내렸습니다.




하지만, 주화파의 주장에 힘이 더해지는 난국에서 이튿날 다시 청나라군을 대적합니다. 장군은 인조 14년 12월 29일 장렬하게 전사합니다. 극산(克山)이 시신을 수습하였습니다.




인조 15년에 인조는 가선대부병조참판(嘉善大夫兵曹參判)을 추증하고, 충장공의 시호를 내렸습니다. 향리에 예관(禮官)을 보내어 후히 장사를 지내게 하였습니다. 또한, 정문(旌門)을 내리며 사패(賜牌), 봉록(俸錄)하였습니다. 하지만 사패지가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아서 확인할 길이 없다고 합니다.

* 충장공(忠壯公) - ‘일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임금을 받드는 것-충(忠)

                         - ‘적을 이겨 전란을 평정함[勝敵克亂]- ‘장(壯)’)

* 시호 : 죽은 뒤 왕으로부터 받은 이름




장군의 묘소는 봉분의 크기가 155×520㎝, 비석의 크기는 198×53×24㎝입니다. 현재 양주최씨 문중에서 소유, 관리하고 있으며, 묘역 입구에 최정걸 장군 기념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홍살문을 지나면 ‘증 가선대부 병조참판 충장공 최정걸 장군 묘역’입니다. 입구 쪽에 ‘충장공최정걸장군기적비’가 있습니다. 묘소 원비석은 확인가능하지만 좌대석은 멀리 있어 볼 수가 없습니다. 좌대석 윗부분에 양련이 새겨져 있고 정면에도 무늬가 있다고 합니다. 묘소 비석은 후대에 세운 것인 듯 깨끗합니다. 망주석에는 세호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고 하는데, 역시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출처? 디지털안산문화대전 「머리 없는 장군의 묘」

최정걸 장군은 나이 52세에 나라를 구하기 위해 인조가 피천한 남한산성으로 홀로 떠나기로 합니다. 떠나기 전 날 밤, 부인에게 속적삼을 달라고 합니다. 수없이 많은 전투를 치룬 장군은 수급이 없으면 전사한 후에 시체를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인의 속적삼을 안에 입고, 전장에 나가 장렬하게 전사합니다. 노비가 남한산성을 헤매며 장군의 시체를 찾았으나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부인의 속적삼을 입고 전장에 나간 장군을 떠올리고 죽은 이들의 옷을 벗겨보았습니다. 여자 속적삼을 입은 시체는 단 한 구가 있었습니다. 바로 최장군이었습니다. 장군의 수급은 청나라군이 베어가 버렸습니다. 


최정걸 장군은 양주 최씨 시조 억의 12세손입니다. 진사 최정(崔淨)의 차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재능이 뛰어나 궁술을 익혔고, 지략이 뛰어났다고 합니다. 무과에 급제 종 4품을 지냈습니다. 효심이 깊었으며 형제들과 우애가 깊었다고 합니다. 



오늘도 반가운 소식을 전하는 까치가 최장군의 묘소를 찾아 깡충깡충 뛰어다닙니다. 언제나 존재하는 듯 ~ 우리가 당연한 듯 여기는 것들이 있습니다. 바로 자유와 평화가 아닐까합니다. 북한의 끊임없는 위협에도 우리가 평화로운 일상을 누릴 수 있는 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있는 국군장병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험난한 역사 속에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충장공 최정걸 장군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이유입니다.




최정걸 장군 묘 : 안산시 향토유적 제8호

향토유적 지정일 : 1991.11.02

소재지 :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동 산92

찾아가는 길 : 안산버스터미널 - 최정걸 장군 묘소 

                    * 101번(안산시외버스터미널 건너편 승차) - 이호초등학교 정류장 하차 

                    * 511번(안산시외버스터미널 건너편 승차) - 주영교회 정류장 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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