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離散別曲
박 해 준
바다는 온통 검붉게 출렁이고 있었다. 마스트에 메달린 천촉짜리 전등과 띄엄띄엄 뱃전에 매단 십 여 군데의 오맥 촉 집어등(集魚燈)이 출렁대는 바다에 내리비치어 캄캄한 밤의 해면을 무섭도록 검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더우기 휘황한 집어등을 따라 부나비처럼 겹겹이 떼지어 몰려드는 수많은 오징어떼의 불그무레한 빛깔에 그 전등빛이 반사되어 어부들의 벌겋게 충혈된 눈망울처럼 시야는 온통 검붉은 색깔로 채색되어 있었다.
줄잡아 삼십 여 척의 오징어잡이 통통배에서 뿜어내는 휘황한 전등빛과 열기로 인하여 바다는 바야흐로 흥분과 환성으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눈어림으로 북동쪽 네댓 해리 떨어진 곳에서도, 그리고 남동쪽 서너 해리쯤의 해상에서도 불야성(不夜城)처럼 휘황한 전등을 밝힌 오징어잡이 선단이 진을 치고 있었다. 아마 북동쪽의 것은 북한의 선단일 테고 남동쪽의 것은 일본 선단일 게다. 이곳 대화퇴에는 해마다 오징어 성어기인 여름철만 되면 주로 한국과 일본 선단이 출어를 하고 있지만 때때로 북한 선단도 나타나서 그네들끼리 떼를 지어 어로작업을 하곤 했다.
대부분이 속초에서 붙어한 한국 영세 어선단의 금강호에서 오징어잡이를 하고 있는 영구는 오늘도 여느날과 다름없이 그의 좌석인 후미의 3 번석에서 물레처럼 생긴 원형의 오징어낚시를 해면에 드리우고 오징어를 낚아올릴 차비를 서둘렀다. 그의 아들인 태민이도 역시 바로 옆 4 번석에서 물레형 낚시의 버팀대를 뱃전에 단단하게 잡아매고 그것을 물레처럼 돌려서 오징어를 낚아올릴 태세를 갖추었다. 다른 좌석 에서는 이미 준비를 다 갖춘 어부들이 오징어를 낚아올리기 시작한 곳도 여러 군데 있었다. 마치 물레처럼 더럭더럭거리는 금속성 소리를 내며 낚시가 박힌 원형의 축이 바퀴처럼 회전할 때마다 해면을 뒤덮고 있는 원통형 오징어가 낚시에 걸려 올라와서는 갑판에 떨어져 쌓이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낚시가 회전하는 금속성에 어우러져 고함소리와 아우성과 그리고 발전기소리와 뱃전에 부딪치는 파도소리가 코러스를 이루어 바다의 거창한 교향곡으로 울려퍼졌다.
영구와 태민이도 드디어 물레형 낚시의 축을 돌리기 시작했다. 드물게 보는 수많은 오징어떼인지라 여남은 개의 원형에 박힌 낚시에 빠짐없이 오징어가 걸려 올라와서는 갑판으로 주르르 떨어졌다. 개중에는 놀란 나머지 난데없는 갑판 나무바닥에다 시꺼먼 먹물을 뿜어대는 놈도 더러 있었다.
영구는 그 중에서 가장 팔팔한 놈을 골라서 세모꼴의 꼬리에 그가 항상 준비해 갖고 있는 비닐로 봉한 꼬리포를 매달아 검붉은 바다로 놓아주었다. 다시 낚시에 걸리지 않고 멀리 달아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되도록 북한 선단이 있는 북동쪽으로 가기를 비는 마음으로 곱게 놓아주었다. 태민이도 그의 아버지의 안타까운 마음을 이심전심으로 헤아리는 듯 영구와 똑같은 꼬리표를 달아서 놓아주었다. 간절한 소망을 기원하면서.
대화퇴에 출어하는 거의 모든 오징어잡이 어부들에겐 맨처음 낚아올리는 오징어에 꼬리표를 매달아 다시 놓아주는 일이 일반적으로 관습화되어 있었다. 언제부터 누구에게서 비롯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어도 용왕께 풍어를 비는 마음에서, 혹은 바다에 대한 외경의 마음에서 시작되었음직한 일이다. 말하자면 일종의 고수레의식에 해당하는 관습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바닷물이 스며들지 못하도록 비닐주머니 속에 봉한 그 꼬리표에는 혼히들 자기의 생년월일과 성명 세 자를 써넣는 것이 통례이지만, 특이하게 한 맺힌 소망이라든가 별난 기원을 써넣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만선(滿船)이 되어 포구로 돌아갔다가 재차 출어했을 때 그 꼬리표가 매달린 오징어가 다시 낚시에 걸려오는 경우도 드물게 있는 일이지만, 성어기가 지나 해가 바뀌어 출어했을 때도 다시 붙잡히는 경우가 있었다. 어느 경우나 아주 드문 일이지만 꼬리표를 단 오징어가 다시 낚시에 걸렸을 때는 당자는 물론 다른 어부가 또 잡는다손치더라도 .것은 재앙을 자초하는 금기로 되어 있어서 반드시 다시 놓아주어야만 했다. 어부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언제 닥칠지 모를 해난에 대하여 외경의 마음을 가지고 있으므로 꼬리표에 매단 간절한 기구로써 스스로의 마음을 달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영구 부자는 좀 달랐다. 물론 처음 한두 번은 다른 어부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안전을 비는 마음으로 생년월일과 성명 세 자를 쓴 꼬리표를 매달았지만 그들은 그들의 안전보다 더 간절한 소망이 있었기에 꼬리표의 사연이 바뀌게 되었다.
마흔 해가 넘도록 평생을 고기잡이에 종사해온 영구는 이제 환갑을 지낸 늙은이다. 언제 어디서 죽더라도 여한이야 있을까마는 어촌에서 태어나서 어촌에서 잔뼈가 굵은 탓으로 그는 바다를 떠나서는 살 수가 없었다. 바다가 한없이 험난하긴 해도 그러길래 역설적이지만 거기에서 단련되어온 그의 몸과 마음은 땅에서 찾을 수 없었던 무한한 애착을 바다에서 찾을 수가 있었다. 그것은 끝없는 수평선과도 같은 바다의 무한한 포용력이요, 고향을 상실당한 아픔을 자장가처럼 들려주는 바다의 물결이기도 했다. 지금이라도 그의 아픈 마음은 사나운 물결이든 잔잔한 물결이든 그 파도를 타고 고향 포구로 밀려가고만 싶었다. 서른 해가 넘도록 그는 한결같이 망향일넘으로 바다에 나왔었다. 육지에 돌아가면 그 망향에 대한 장벽이 너무 거대하게 느껴져서 스스로를 감당해내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그것을 이기기 위해서라도 그는 바다에 나오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그의 고향은 함경남도 함주군에 있는 어촌 여호다. 거기서 났고 일찌기 거기서부터 고기잡이배를 탔다. 그리고 거기에서 동해 바다에 대한 동경과 꿈을 키워왔다. 그에겐 육지의 휴전선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커다란 장벽이지만 바다는, 동해는 마음속의 장벽을 이겨낼 수 있는 흐름의 연속이었으므로 바다에만 나오면 망향의 아픔을 한껏 달랠 수가 있었다. 더우기 꼬리표의 소망을 띄워보내면서부터는 서른 해가 넘도록 한결같이 고향 어촌에 살아 있을 아내와 아들 태준의 숨결이 꼭 와닿을 것만 같은 기대를 저버릴 수가 없었다.
1950년 12월 21일, 그는 몹쓸 추위가 밀어닥치는 혹한속에서 세 살짜리 태준이를 등에 업은 아내 민숙이와 함께 피난길을 떠났었다. 여호에서 삼십 리 남짓한 흥남에만 가면 철수하는 군용배를 탈 수 있다는 소문만 믿고 허겁지겁 달려와서 천신만고 끝에 배를 타긴 탔는데 막상 아내가 보이지 않았다. 물론 그녀의 등에 업힌 태준이의 모습도 찾을 길이 없었다. 무수하게 아우성치는 인파를 헤치고 샅샅이 뒤져봐도 끝내 찾을 길이 없었다. 배는 이미 부두를 떠난 뒤라 다시 내릴 수도 없었다. 인파에 밀려서 서로 떨어졌지마는 어느 구석에 타고 있겠지하는 자위로 초조한 마음을 달래면서 부산까지 왔으나 종내 민숙이와 태준이를 찾을 수가 없었다. 다만 부산 부두에서 고향사람을 만나, 두 모자가 철수선을 타지 못하고 발버둥치는 광경을 보았다는 절망적인 소식을 전해들었을 뿐이다.
영구는 하늘이 꺼지는 듯한 절망과 비탄으로 스스로를 저주하다가 그 절망과 비탄이 차츰차츰 언제고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모진 마음으로 변색되면서 악착스렵게 살기 시작했다.
부산 국제시장과 역전을 방황하며 지게벌이를 하다가 휴전이 되어 환도한 후에는 서울역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세상이 다소나마 안정된 후엔 이내 속초로 옮겨와서 고기잡이 배를 타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고향땅에 가까운 곳에서 살고 싶었을 뿐만 아니라 바다로 나가면 민숙이와 태준이에게 한 치라도 더 가까와지는 듯한 느낌을 주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십년을 하루같이 그렇게 그리움과 통한을 달래면서 살았건만 그에겐 휴전선이라는 육지의 장벽이 점점 거대하게 커질 뿐이었다.
흐르는 세월이 약이랄까. 그는 십년이 넘도록 혼자 버티다가 결국 주위의 권유로 재혼하고 말았다.
지금의 태민이가 바로 그 소생이다. 고향에 두고온 영혼은 말짱한데 육신이 고달프고 외로와서 재혼을 하고 말았지마는 민숙이와 태준이를 언제고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는 일편단심만은 한결같았다.
지금 흔들거리는 뱃전에서 처음으로 낚아올린 팔팔한 오징어의 꼬리표에 영구와 꼭같이,
〈함경 남도 함주군
여호 어촌 趙永求〉
라는 글자를 새겨서 놓아준 태민이 역시 영구의 마음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그러길래 그는 영구가 청하지도 않았는데 영구의 고향 어촌과 성명 삼 자를 적은 꼬리표를 스스로 매달아 보내지 않았는가. 만약 영구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면 자기의 안전을 기원하기 위해서라도 자기 성명 세 자를 적어 보냈을 것이다.
영구는 여느때와 같은 그러한 태민이의 거동을 알면서도 짐짓 내색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태준이에 못지않은 육친의 정을 한층 더 강렬하게 느끼고 있었다.
묵묵히 물레형 낚시의 축을 돌리면서도 눈길은 북한 어선단일 것만 같은 북동쪽 불야성에 머물고 있었다.
불가피한 상황에서의 생이별 후 서른다섯 해의 세월이 흘렀다. 살아 있다면 민숙이도 환갑을 지났을 테고 태준이는 서른여덟의 장년이 되어 있을 것이다. 어쩌면 애비처럼 어부가 되어 지금쯤 저 북한 어선단의 어느 배에서 오징어잡이를 하면서 애비를 생각하고 있을는지도 모른다.
그때 흥남부두에서 철수선을 타지 못한 건 틀림없으니까 그곳에서 울부짖고 몸부림치다가 하는 수 없이 고향집으로 돌아갔을 테고, 지금까지 고향 어촌에서 어려운 삶을 이어가고 있을 것이다. 친가나 외가가 모두 여호이니까 별도리 없이 여태 그곳에 눌러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영구는 오징어낚시를 돌리는둥 마는둥 얼빠진 사람 모양으로 멍하게 북한 어선단을 바라보면서 지난날의 갖가지 상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서른 해가 넘도록 그가 띄워보낸 이산(離散)의 한이 맺힌 꼬러표는 한 달 통산 열 번으로 잡더라도 삼천육백 회가 넘었다. 보통의 경우 대부분의 어부들이 첫 출어때 첫 어획의 한 마리에게 자선의 안전과 풍성한 어획을 위해 꼬리표를 매달아 놓아보내지만, 영구의 경우 그 의미가 다르기 때문에 즉 고향 어촌에 살아 있을 민숙이와 태준이에게 어떻게 해서든지 그가 살아 있다는 안부를 전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기에 첫 출어의 첫 어획에만 한하지 않고 짬짬이 되도록 많은 꼬리표를 달아서 놓아보내곤 했으므로, 그리고 태민이가 거든 것까지 합치면 실제의 꼬리표 회수는 그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게다가 오징어에 한하지 않고 명태철이면 명태에, 또다른 잠어(雜魚)에 이르기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꼬리표를 띄워 보냈건만 회신을 받아볼 길이 없었다.
하늘이 무심해서인가? 아니면 그와 대민이가 띄워 보낸 꼬리표를 단 오징어나 명태나 잡어들을 태준이나 고향의 어부들이 단 한번도 잡지를 못했단 말인
가? 잡아보고도 회신할 길이 없어서 가슴만 태우고 있단 말인가? 아니면 자기처럼 꼬리표를 매단 고기를 놓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뭏든 그렇게
만 되었다면 그의 노력과 정성과 소원은 헛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또 앞으로도 헛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서자 영구에겐 새로운 힘이 용솟음쳤다.
그는 북한 어선단일 듯한 불야성에서 눈길을 돌려 다시 힘차게 오징어 낚시를 돌리기 시작했다. 불그스레한 오징어들이 원형의 물레를 따라 잇따라 갑판으로 쏟아졌다. 출렁이는 뱃전을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마련되어 있는 낚시좌석 둘레에는 제법 수북하게 오징어가 쌓이고 있었다.
사무장을 겸한 선장이 주방장을 데리고 1 번 좌석에서부터 일일이 오징어 마리수를 세고 노트에 기록하고선 얼음을 채워넣은 선창으로 밀어넣었다. 2 번 3 번 좌석으로 차례로 돌아가면서 마리수를 확인하고 선창으로 밀어넣지만 갑판엔 잇따라 우징어가 쌓이고 있었다. 잠시도 쉴 틈 없이 일손을 놀리고 있는 짬짬이 음담패설이 섞인 농지거리를 더벌리는 놈이 있는가 하면, 유행가 가락이나 육자배기를 읊조리는 놈도 있다.
밤이 깊어갈수록 휘황한 전등은 더욱 밝게 빛을 내는 듯했고, 바람이 불면서 물결이 조금씩 거세어졌다. 그러나 해상도시처럼 환하게 타오르는 듯한 동남쪽의 어선단이나 그보다 밝기는 덜하지만 북동쪽의 불야성은 한 폭의 그림처럼 움직일 줄을 몰랐다.
“왓따! 이거 심가놈 마누라 × ×보다 몇갑절 크구나!”
8 번 좌석의 이가(李哥)가 작은 문어만한 커다란 오징어를 낚아올리면서 큰소리로 떠벌리자 갑판 위엔 한바탕 까르르 웃음이 뒹굴다가 물결처럼 번져나갔다. 원통형 오징어의 다섯 쌍의 발이 있는 입둘레를 보고 하는 말일 게다. 오칭어의 덩치가 크면 그것도 크게 마련이다.
“저노무 주둥아릴…….”
5 번 좌석에서 열심히 물레를 돌리고 있던 심가가 그 소리를 듣고 발끈했으나 이내 너털웃음을 날리면서 앙갚음이라도 하는 듯이 내뱉았다.
“너 이놈, 이가놈아! 그속에 들어가서 헤엄이나 치거라!”
또 한바탕 웃음이 물결쳤다.
영구는 옆에 앉은 태민이에게 민망했으나 짐짓 모르는 척했다. 이따위 걸찍한 농지거리가 벌써 한두 차례가 아니다. 고기잡이배를 함께 타면서 뱃놈들의 생리가 그런 것이려니 하고 스스로 터득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밤참시간이 되자 모두 자리를 펴고 일어나 선실로 들어가서 밥을 퍼먹는가 하면, 식초에 고추장을 풀어 싱싱한 오징어를 썩둑썩둑 잘라서 소주 안주로 삼키기도 했다. 저마다 제멋대로 담배를 피워물고 왁자지껄하게 떠들면서 휴식시간을 즐겼다.
이윽고 다시 조업이 시작되자 갑판 위는 부산스럽고 떠들썩해졌다.
막소주를 과하게 퍼마신 놈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건들거리다가 선실로 들어가서 코를 골기도 했지만 누구 하나 탓하거나 나무라지도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징어잡이 배는 선주(船主)가 모든 기본경비를 부담하는 대신 어획고의 6 할을 차지하게 되고 어부는 각자가 잡은 어획량위 4 할을 가지게 되어 있으므로, 많이 잡든 적게 잡든 각자가 알아서 할 일이지 누가 이래라 저래라 할 필요가 없었다· 선장과 주박장은 월급제라서 선주에게 월급만 받으면 그만이지만, 선주와 선장이 동일인인 경우에는 월급을 따질 것도 없었다.
새벽녘이 가까와지자 흔들리는 배 위에서 밤새 시달린 어부들은 선창으로부터 어획량에 ˙대한 검수를 확인받고는 하나 둘 선실로 들어가서 나동그라졌다.
영구는 태민이를 먼저 자게 하고는 그의 3 번 좌석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별로 지치지도 않았거니와 졸리지도 않았다. 모두 선실로 들어가버린 갑판 주위는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았지만 마스트의 전등과 뱃전의 집어등마저 꺼졌다. 동녘 하늘이 불그스레하게 밝아올 때면 집어등을 켜놓는다 하더라도 오징어들이 모여들지 않기 때문에 발전기를 꺼야 하는 것이다.
동남쪽의 불야성도 꺼지고 북동쪽의 휘황한 불빛도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마치 파시가 파한 것처럼 히전하고 공허했다. 그 공허한 가슴속으로 쌀쌀한 새벽 바람이 스며들었다. 여름철 이긴 해도 바다의 새벽바람은 쌀쌀했다.
흥남철수대 월남한 후로 세 해를 빼고는 여호 어촌에서 일곱 해, 속초에서 서른다섯 해, 모두 마흔두 해의 일생을 바다에서 고기잡이로 보냈다. 고향에 살아 있을 민숙이와 택준이를 빼고는 후회될 것도 없었고, 거리낄 것도 없었다. 비록 고기잡이 어부일망정 조금도 부끄러움 없이 살아왔다.
마흔두 해 동안 바다에서 밤을 지새울 때면 그는 언제나 일출(日出)의 장관을 보고 천지창조의 신비를 느끼며 하늘과 땅의 이치를 그 나름대로 깨달았다.
그러길래 오늘도 어김없이 일출의 장관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불그스레하게 밝아오던 수평선의 붉은 기운이 아까보다 더욱 진하게 물들고 있었다. 하늘로 뻗쳐오르던 붉은 빛이 수평선에 반사되면서 차츰차츰 확대되어 갔다. 조금 거세게 출렁이는 물결을 따라 부챗살처럼 퍼지고 있던 진홍색 기운이 마침내 동녘 하늘과 바다를 온통 시뻘겋게 물들일 무렵에 이글거리면서 타오르는 불덩이가 수평선에 머리를 내밀었다.
춤추듯이 너울거리던 머리가 위로 솟구친다. 드디어 살아서 움직이는 듯한 둥근 테양이 수평선상에 그 얼굴을 드러내자 하늘과 바다는 엄숙하고 경건했다. 천지창조의 장엄한 순간이요, 자연을 초월한 듯한 황홀한 경지였다.
영구에게 있어선 이 순간만은 가장 값진 것이었다. 고향에 두고 온 민숙이와 태준이와의 생이별의 통한도 초월할 수 있었고, 남과 북의 육지에서 벌어지는 온갖 추악하고 잔혹한 일도 모두 초월할 수 있었다. 그에겐 이 순간이 바로 종교에 귀의하는 거룩한 경지이기도 했다.
어느덧 태양이 수평선 위로 의연하게 우뚝 솟아오르자 그는 선실로 들어가서 깊은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영구는 정오 무렵에 눈을 떴다. 갑판으로 나가서 바닷물을 퍼올려 세수를 했다. 따가운 햇볕이 쨍쨍 내리쬐고 있었다. 갑판이 나무바닥인데도 열기가 훅 끼쳤다. 시원한 해풍이 아니라면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어느 틈엔지 갈매기들이 어선단 주위를 선회하고 있었다.
북동쪽에서 조업하던 어선단도 보이지 않았고 남동쪽의 선단도 보이지 않았다. 벌써 만선이 되어 돌아갔을 리는 없을 텐데 웬일인가 싶었다. 아마도 조류에 밀려서 위치가 바뀌었겠거니 지레짐작하면서도 북한 어선단일 듯한 북동쪽 선단의 행방에 애가 쓰였다. 혹시 고향사람이라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
대에서다.
연전에 북한 무장선의 위협 발포로 납북되었던 어부들이 속초로 돌아왔을 때만 해도 이러한 막연한 기대로 한 사람 한 사람 붙들고 고향소식을 물어보았지만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으면서도 그 기대를 결코 지워버릴 수가 없었다. 지우기는커녕 그 기대가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도리어 점점 커지는 것을 그로서도 어쩔 수가 없었다.
영구에겐 그 기대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잘 느껴지면서도 또 그에 상반되는 기적도 이루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 그로 하여금 끈질긴 희망과 용기를 가지게 하는 것이다:
그의 이런 착잡하고˙ 모순된 생각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한식경이나 지나서 북동쪽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북한 어선단이 동쪽으로부터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줄잡아 여남은 척밖에 안되는 소규모 선단이지만 어구를 손질하거나 화투놀이를 하고 있던 많은 어부들이 갑판으로 나와서 호기심어린 눈길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영구의 눈길엔 호기심 이상의 기대가 번득이고 있었다. 서른 해가 넘도록 애틋하게 간직해온 꿈이 이루어질는지도 모른다는 회망이 솟아났다. 어쩌면 저속에 태준이가 끼어 있을 것이라는 엉뚱한 환상이 떠오르기도 했다. 세 살때의 얼굴 모습밖에 기억하지 못하면서도 육감으로 그를 금방 알아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생겼다.
“아˙바이! 우징어 마이 (많이) 잡았음메?”
밧줄을 던지면 잡힐 듯한 지호지간에 이르러서 선도어선의 갑판에 서 있던 예닐곱 사람 중의 하나가 말을 건넸다.
“그러오! 아바이들은 어디메서 왔음메?”
두 눈에 블을 켠 영구가 그들을 번갈아 살펴보면서 두 손으로 입나팔을 만들어 힘껏 소리쳤다.
“우리는 신포에서 왔수다. 아바이는 어디에서 왔음메?”
“속초요! 여호에서 온 아바이는 없음메?”
영구는 애가 탔다.
“없수다. 오징어 마이 (많이) 잡기오.”
“잠깐 멈추기요!”
영구가 발을 동동 구르면서 고함쳤으나 그들은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버렸다. 손을 흔들면서.
영구를 비롯한 이쪽 어부들도 마주 손을 흔들어댔다.
영구는 꼼짝하지 않고 서서 뒤따르는 배들의 어부들과 대화를 시도해보았으나 그들은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만큼 멀찍이 떨어져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손을 흔들기˙조차 하지 않았다. 그 배들은 모두 만선기를 달고 있었다.
영구는 갑판 위에 렇썩 주저앉고 말았다. 꿈같은 일이다. 꿈같은 일이길래 그들과 실컷 얘기를 나누어보고 싶었는데 잠시나마 멈추지도 않고 가버린 그들이 한없이 밉고 야속했다.
그러나 신포에서 왔다니, 신포라면 여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마음속으로만 간직하고 있던 꿈이 실현 가능한 현실에 한 발 성큼 다가선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곧 고향소식을 알게 될 것만 같은 예감이 가슴 뿌듯하게 채
워졌다.
출렁이는 물결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던 석양빛이 가시고 해면에 어둠이 깔리자 발전기소리와 함께 일시에 전등이 켜졌다. 주위에 떠 있는 서른 척 가량의 배들도 앞을 다투어 불을 밝히고 있었다.
드넓은 해면이 오통 전기불로 불그스레하게 채색되어 어부들의 마음을 들뜨게 했다. 어부들 뿐만 아니라 오징어떼까지 들뜨게 했다.
부나비처럼 집어등을 향해 몰려드는 오징어떼가 금시에 뱃전을 벌겋게 에워싸고 있었다.
신바람이 난 어부들은 저마다 야단스럽게 원형낚시의 축을 돌리며 오징어를 낚아올렸다.
영구도 신이 났다. 그러나 영구의 신바람은 그 의미와 강도가 여느때보다 훨씬 달랐다. 오징어를 많이 잡아서 수입을 올린다는 공리적인 타산은 뒷전이고 고향소식을 알게 될 것만 같은 예감이 자꾸만 커지기 때문이었다.
여태 그런 예감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현실로 나타나기 어려운 상상으로서의 기대가 앞서는 예감이었다. 그러기에 누구에게라도 섣불리 표면화할 수 없는 허황스러움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으므로 태민이에게조차 내색 하지 않았다.
“아버지! 다른 사람들은 생년월일과 성명을 적어서 보내는데 아버지는 왜 고향 이름을 적어보내요?”
처음 오징어잡이 출어를 했을 떼 꼬리표를 매달아 보내는 것을 본 태민이가 옆에서 의아스럽게 묻는 말이었다.
“응? 그저 고향이 그리워서.”
덤덤하게 말했지만 시원스러운 대답이 못된다는 것을 자신이 먼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버진 그럼 용왕님께 축원하는 게 아니구먼요?”
“그런 게 아니라·…….”
어떻게 설명해줘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데 태민이가 먼저 눈치를 채고 엉뚱한 말을 불쑥 꺼냈다.
“아버지 고향에 있는 큰어머니와 형님 생각 때문에 그러지요?”
“아니! 그런 얘기는 어디서 들었느냐?”
“그저 그렇게 생각했어요. ”
태민이는 어머니가 말씀하시더라고 대담할 뻔했으나 이내 말머리를 돌렸다.
아버지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다. 스물두 살이라는 나이에 비해 그는 꽤 숙성했다.
영구는 입을 다물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일을 굳이 숨기거나 변명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겉으로 내색 하지 않을수록 그에 반비례해서 속으로 속으로만 응어리지던 민숙이와 태준이에 대한 그리움과 생사의 소식을 알고 싶은 간절한 소망이 상상속에서 자꾸만 커지는 것을 주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 신포에서 왔다는 북한 어선을 만나고부터는 천리만리 떨어져 있는 것 같던 여호 어촌이 바로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속으로만 응어리지던 꿈결 같은 소망이 일시에 눈앞의 현실로 나타나는 듯했다.
영구는 오징어를 낚아올릴 때마다 모두 꼬리표를 달아서 놓아보냈다. 태민이
도 영구를 따라 잇따라 꼬리표를 매달았다.
2 번과 5 번 좌석에서 물레형 낚시를 돌리고 있던 이가(李哥)와 심가가 연민의 눈으로 그들 부자의 하는 양을 이따금 돌아보았으나 그들은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낚시에 걸려 올라오는 오징어에 꼬리표를 달아서 다시 바다로 놓보냈다. 스무남은 장이나 되는 꼬리표를 모두 매달아 보내고 나서야 그들은 한숨을 돌렸다. 그리곤 영구는 오징어를 낚아올릴 생각을 잊고 망연자실하여 북녘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쉼없이 돌아가던 낚시소리도 그치고 반찬시간이 되어 어부들은 저마다 소주
한잔씩 걸치고 흔쾌하게 떠들어 댔다.
북동쪽의 북한 어선단은 만선기를 달고 가버렸지만 동남쪽의 일본 어선단은 간밤처럼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바람은 낮보다 고개를 숙여서 물결은 잔잔했다. 갈매기는 잠을 자러 갔는지 보이지 않았지만 이따금 날치란 놈이 해면을 가르는지 흰 물결이 번쩍거렸다. 하늘엔 상현달이 활처럼 휘어져서 외롭게 서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이윽고 다시 조업이 시작되었다. 피로하고 졸린 탓인지 밤참 전보다 말수가 훨씬 적어졌다. 하늘과 달과 별들이 내려다보는 바다 위에는 낚시 돌리는 소리만이 자장가처럼 잔잔하게 출렁이는 물결소리를 거슬러 불협화음을 이루고 있었다.
“와! 여기 신주가 한 마리 올라왔다.”
5 번석의 심가가 갑자기 소리쳤다. 모든 어부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으나 자리를 뜨지는 않았다. 그러나 영구는 귀가 번쩍 뜨여서 일손을 놓고 한달음에 심가에게로 내달았다.
“어디!”
그는 불문곡직하고 심가의 손에 있는 신주를 나꿔챘다. 그리고 그 오징어에 매달린 꼬리포의 글귀를 보았다.
〈1949년 6 월 4 일생
부산 김 성관〉
영구는 맥이 빠져서 그것을 다시 심가에게 돌려주었고, 심가는 그 오징어를 그야말로 신주 모시듯이 곱게 바다로 돌려보냈다.
혹시나 했던 기대가 허물어지는 바람에 그는 맥없이 제자리로 돌아와 밤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꼭 행운이 맞아떨어질 것만 같은 예감 때문에 그 신주가 고향 어촌의 소식을 가져다줄 것만 같았는데 예상이 빗나가고 보니 허탈하기 이루 헤아릴 수가 없었다.
반드시 민숙이나 태준이의 소식이 아니라도 좋았다. 고향 어촌의 누구라도 좋다. 친구라도 좋고 친지라도 좋다. 그러나 예감이 맞지 않는 걸 어쩌랴! 한참만에 영구는 다시 원형낚시를 돌리기 시작했다. 허탈감이 가시고 생기가 되살아났다.
끝내 절망할 수가 없었다. 포기할 수도 없었다. 서른 해가 넘도록 오직 일편
단심으로 되풀이해온 정성을 이제 와서 어찌 포기한단 말인가!
더우기 요 몇해 사이에 없었던 일들이 오늘 두 차례나 일어난 것을 보면 그것도 틀림ᅟᅥᆹ이 무슨 행운이 닥칠 것만 같은 조짐으로만 생각되었다. 고향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항구인 신포의 어부들과 얘기를 나눴고, 신주까지 올라오지 않았는가! 또다시 신주가 올라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리고 그 신주가 꼭 태준이의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고향사람들의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영구의 한 가닥 소원이 이번 출어에도 이루어질 가망이 보이지 않았다.
이틀째 밤도 지나고 사흘째 밤도 지났지만 신주는 다시 올라오지 않았고 북한의 새로운 어선단도 나타나지 않았다. 남쪽의 일본 어선단˙마저 사라지고 없었다. 이제 나흘째 밤의 조업이 끝나는 대로 만선이 될 예정이어서 만선기를 달고 귀항할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니 마음속이 텅텅 비어버리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요다음 출어땐 기필코 소원이 이루어지겠지 하는 기대를 떨쳐버리지 못하면서 영구는 이번에 귀항하면 자기 몫의 오징어를 어시장의 경매에 붙여서 받는 돈으로 태민이 에미에게 꼭 금반지를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벌써 해주려고 했지만 태민이 장가들일 일이 급하다고 우겨서 여태 차일피일하고 말았던 것이다.
마지막 밤의 조업이라서 그런지 어부들은 한층더 신바람이 났다. 이제 밤이 지나고 새벽이 오면 만선의 기쁨을 안고 마누라 곁으로 돌아갈 일만 남아 있는 그들의 마음은 한껏 부풀어 있었다. 낚시를 돌리는 손도 한층 잽싸고 가벼웠다. 작은곰자리의 외로운 북극성조차 망망대해에서 이들의 돌아갈 길을 비치고 있는 듯했고, 큰곰자리의 북두칠성 까지 이들의 귀항을 축복하는 것 같았다.
영구는 부지런히 물레질을 하고 있었다. 그동안 줄곧 고향을 그리워하며 갖가지 상념에 잠겼던 탓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뒤진 어획량을 벌충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선장이 다섯 차례나 검수를 하고 갔건만 그는 쉬지 않고 물레 낚시와 축을 돌렸다. 막소주로 거나하게 취한 어부들의 콧노래를 흥얼거리거나 타령조의 노래가락으로 흥을 돋우기도 했다.
밤참시간도 지난 지 오래고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동이 틀 무렵이었다. 상당한 어획량을 올린 닿은 어부들이 만족스럽게 선실로 들어가버려서 갑판 위가 한산해졌을 때였다.
“아버지! 신주가 올라왔어요!”
영구의 바로 옆 4 번석에서 물레낚시질을 하고 있던 태민이가 소리쳤다.
“그래!"
엊그제 심가의 신주에 크게 실망한 터라 별로 큰 감동을 느끼지 못하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버지 이름이 있어요! 고향하고요…….”
“쯧쯧? 놓아주어라. 그건 우리가 보낸 신주가 아니던가.”
영구의 실망은 심가의 신주때보다 더 컸다. 자기가 자기 이름과 고향 지명을
적어서 꼬리표를 매달아준 놈이 다시 붙잡힌 것으로 단정하고 도로 제자리에 앉으려고 했다.
“아니어요, 아버지? 이거 보세요? 그 밑에 또 사람 이름이 적혀 있어요?”
태민이의 목소리는 감격에 떨고 있었다.
“어디 보자!”
영구의 목소리도 떨리고 있었다. 한달음에 내달아 그 신주를 채듯이 받아쥐고 있는 온몸을 무당의 대가지처럼 덜덜 떨기 시작했다.
〈함경 남도 함주군
여호 어촌 趙永求
李民淑 趙泰俊〉
기적이다! 정말 기적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던가!
“분명히 살아 있구나! 살아 있구나!”
영구는 무당의 댁가지처럼 덜덜 떨리는 몸을 가누지 못하면서 헛소리처럼 거듭 외치고 있었다.
이러한 기적을 소원하면서 수천 장의 꼬리표를 매달아 보냈지만 그것이 정작 현실로 이루어지고 보니 그 현실이 현실 같지가 않았다.
갑판 위의 어부들이며 선실의 어부들이 모두 나와서 현실 같지 않은 현실에 몸을 떨고 있는 그들 부자를 에워쌌다.
동녘 하늘엔 훤하게 먼동이 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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