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나들길 17코스인 고인돌탐방길을 걷고 있지만
아직도 구조와 수색활동이 이어지고 있고
연일 터져 나오는 비리소식에 분통이 자꾸만 터져 나온다.
돈이 먼저라고 생각하는 참 딱한 사람들이 저지른 일이 어디 세월호 뿐이랴.
정말 한심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들으며 들을수록 화가 치밀고 보면 볼수록 더 미칠 지경이다.
숱한 방법이 난무하고 질타가 쏟아지는데 내 탓은 어디에도 없다.
모두가 남의 탓하기에 열을 올리기 바쁘고
자기 잘못을 반성하는 이는 너무 드물어서 안타깝다.
다들 자기는 제 몫을 제대로 했다고 뻔뻔한 얼굴을 내밀면서 한마디씩 내뱉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잘난 얼굴들은
대단한 해결책을 알고나 있기나 하듯이 정말 웃기는 연출을 하고 있다.
어찌 하여 남의 잘못을 탓하기 전에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일까?
기회다 싶어 날뛰는 이가 있는가 하며
덩달아 한몫 잡자고 엉뚱한 일을 벌이는 이가 한둘 아니다.
한마디 말보다 진정한 실천이 중요한 때다.
그래도 딱한 백성은 자원봉사자로 스스로를 몰아 부치며
현장으로 달려가서 땀을 흘리며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은가?
말없이 숨어서 묵묵히 자기 몫을 제대로 하는 이가 한겨레의 본래 모습이다.
제발 냄비 근성이라는 손가락질을
이번만은 그 손가락이 부끄럽게 제대로 챙기는 기회로 삼자.
모두가 자기의 위치에서 스스로를 추스르며 반성할 때다.
지금은 죽일 놈 살릴 놈을 결정하는 재판관이 아니라
진정으로 스스로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돌아보며 반성할 때다.
너무도 바쁘게 서두르며 달려온 민족!
본래의 모습은 은근과 끈기로 버텨온 5천년 역사가 아니던가?
이제는 제대로 한번 챙겨보자!
더 이상의 되풀이가 일어나지 않게
정부조직이 없어서 못한 것도 아닌데
핑계 삼아 조직을 더 만들고 자리를 마련하려는 어리석은 핑계를 제발 그만두자.
수천의 지침서를 만들며 무엇 하나?
지키지도 않고 무용지물로 뒹굴고 있지 않은가?
법타령도 그만두자.
법이 없어서 못한 것도 아니지 않는가?
바쁘게 달려오느라
상식을 무시하고 기본을 팽개치고 원칙과 도덕이 무너져 가고 있지 않은가?
아이들을 입시전쟁으로 내몰다 싶이 몰아붙인 게 과연 누구이던가?
오직 나만을 생각하는 오늘의 현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웃을 사랑했던 우리의 공동체의식은 사라지고
층간 소음에 칼부림이 일어나고
따끔한 충고하기가 두려워진 세상이 아닌가?
정부의 주먹구구 대처도 문제지만
취재경쟁으로 언론매체는 책임 없는 뉴스를 쉴 틈 없이 되풀이 하며 지겹게 한 몫을 하고
한 가닥 한다는 내로라는 전문가는 대단한 해결책이라도 제시하듯
실효성도 애매한 대책을 난발하고 있다.
세상의 눈이 모두 뱅골수로에 쏠리면서
모든 축제는 취소되고 여행마저 자제하는 분위기인데도
위약금 타령을 하며
현지시찰과 견학을 핑계 삼아 공직자의 일부가 아직도 정신줄을 놓고 있다.
바로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주소가 아닐까?
모두가 무릎을 꿇고 반성하며 진심으로 스스로를 되돌아보자.
고려 장수왕 4년(416년)에
인도승려에 의해 창건되었다는 적석사(積石寺)를 향해 가파른 임도를 치고 오른다.
낙조대에서 바다를 바라보노라며 응어리진 속내가 다소나마 풀릴까 하여---
강화도에서 마니산(469m), 혈구산(466m), 진강산(441m) 다음으로 높은 산인
고려산(436m) 정상부에서 연지(蓮池)를 발견하고
다섯 가지 연꽃을 공중으로 날려 그 연꽃이 떨어지는 곳마다 사찰을 지었는데
이 절터에는 적련(赤蓮)이 떨어졌으므로 적련사(赤蓮寺)라 하였다는데
왜 적석사(積石寺)로 이름이 바뀌었는지는 뚜렷한 설명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짐작컨대
오련산(五蓮山)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고려산과 필경 연관이 있으리라 가늠만 할 뿐이다.
<고려산 원경>
<적석사 부부목>
<넉조대보타전 & 낙조봉-343m>
<낙조대에서 바라본 혈구산>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 지배자들의 무덤으로
세계 각처에 분포하고 있지만 동북아 지역에 많이 몰려 있고
특히 우리나라는 고인돌 왕국이라 할 정도로 많은 고인돌들이 전국 곳곳에 널려 있으며
현재까지 발견된 것만 4만여 기로 이는 세계 고인돌의 40%나 되니
우리나라를 고인돌 왕국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겠다.
더구나 2000년에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지는
보존 상태가 좋고 형태가 다른 고인돌들이 한군데 옹기종기 모여 있어
고인돌의 형성과 발전과정을 살피는 데 적당한 곳으로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 할 수 있다니
멀리 남쪽에 있는 고창과 화순은 다음 기회로 미루더라도
우선 가까이 있는 강화고인돌을 제대로 한번 둘러보기로 한 것이다.
<강화고천리고인돌군>
듬성듬성 마주치던 등산객들이 고려산이 가까워지자
진달래가 진지도 오래인데 쉼터 곳곳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고려산 정상부는 이미 군부대가 자리를 잡아
인도승려 천축조사가 보았다는 연지는 눈을 씻고 보아도 찾을 수 없고
백련사(白蓮寺)와 청련사(淸漣寺)를 가리키는 이정표만이 길손을 아쉽게 맞이한다.
<고려산 진달래군락지>
<삼거리고인돌군-#46>
<삼거리고인돌군>
<삼거리고인돌군-#41>
고인돌탐방길을 가노라니
선교 전면에 달라붙어 있던
安全第一(Safety First)이라는 큼지막한 네 글자가 문득 생각난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은 안전은 꼴찌고 자살률은 부끄럽게도 세계 일등이란다.
이른바 어린이집 아이들은 손을 들고 길을 건너고
약사 빠른 어른과 오토바이는 잽싸게 그 사이사이를 신통하게 빠져나가며 자랑스러워한다.
이대로 박수를 쳐야만 하는 것일까? 머리가 더 띵해져 온다.
고인돌군은 청동기 시대 사람들이 기원전 5~6세기경에 만든 공동묘지다.
고려산로를 따라 발길을 옮기니 제대로 모양을 갖춘 지석묘가 나타난다.
어디에선가 본 듯한 강화 부근리 점골 지석묘고 강화지석묘다.
<부근리 점골지석묘>
<탁자식 강화지석묘>
<강화지석묘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