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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내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있다면 어떤 느낌일까?
우리는 알게 모르게 모든 것을 노출하면서 일상을 보낸다. 병력, 경제력, 학력 등. 심지어는 심리상태와 감정까지 알아낸다니, 투명인간(?)이 될 날도 멀지 않았다. 이런 사소한 정보를 선택된 소수자를 위해서 이용한다면 그것보다 더 기가 찰 노릇이 있겠는가.
현대의 문제뿐만 아니라 인간의 욕망을 극대화해서 자신이 선지자라 칭하는 이들, 종족 등을 날카로운 필체로 비판하는 작품이 있어 여기에 소개해본다. 12편의 단편소설이 한권으로 묶인 책이다.
1. 「동화적인 독백」
작가는 프로이센의 사회주의를 프리드리히 빌헬름1세에서부터 찾고 있다. 절대 군주의 선구자였던 프리드리히 빌헬름1세. 그가 혼외정사로 아이젠한스와 니켈페터를 낳으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이들은 쌍둥이이며 철의 인간이다. 빌헬름이 철의 성격을 소유하고 있었기에 유전학적인 촉매 작용의 변종이 태어난 것이다.
악마의 자식이라 하여 늪에 살고 있던 니켈페터를 유전학자가 연구실로 옮긴다. 좀 더 강한 인종을 만들기 위해 그의 '씨앗'이 필요했던 것이다. 9개월 후, 20명의 여자에 의해, 20명의 아이가 태어난다. 니켈페터는 고철로 팔려가는 운명을 맞이한다.
이렇듯 역사적 인물의 등장, 전쟁, 우생학, 수단으로써 탄생, 선지자가 되려는 욕망 등을 동화적 상상력으로 유쾌하게 풍자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작가가 앞으로 말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이 전부 드러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덧붙여, 호모사피엔스를 물베르거 박사가 평한 대목이 흥미로워 인용해 본다.
‘눈물이 흔하고 영원히 굶주리며 영원히 불만족스러워하고 좌충우돌하는 감정에 따라 움직이는 피조물.’
그래서 뭐 어떠하단 말인가. 완벽한 인간이란 과연 있을까? 만약에 인간이 완벽했다면 신이라는 존재는 필요치 않았을 지도 모른다.
2. 「때아닌 안드로메다 성좌」
마이클 베어의 『아일랜드』가 생각난다. 돈 있는 소수의 건강을 위해서 사육되는 지하 속의 복제 인간들. 이들의 죽음을 알리지 않기 위해 파라다이스를 제시하지 않았던가.
이 작품에서도 환경파괴와 식량 결핍을 해결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우주로 떠난다. 매일 밤 자정, 이들이 이륙하는 모습을 화면에서 볼 수 있다. 녹색카드를 받은 사람만 그 행운을 거머쥐는데 그들 대부분이 노인들이다. TV를 시청하는 사람들은 왠지 불편하다. 화면 속에는 때아닌 안드로메다 성좌가 보인다. 현재는 4월인데, 11월의 하늘에서나 볼 수 있는 안드로메다 성좌. 조작일까, 라는 짧은 의문.
우주로 향하는 것은 에덴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고려장의 한 형태가 아닐까. 의심은 금물이다. 나는 아직 녹색카드를 받지 않았다. 더군다나 젊다.
3. 「병 통신」
병에 담긴 편지. 이 편지는 조난자가 구조를 위해서 띄우는 편지다.
작품 속 전파 천문학 연구소장은 거의 방치된 녹음 테이프를 발견한다. 그 내용은 다른 먼 혹성의 조난자 이야기처럼 들린다.
파동 변조기에서 일하는 남자. 그 남자는 어떤 여인과 사랑을 나눈다. 이들 세계에서는 ‘공공의 안녕’이라는 측면에서 '조기 박멸'을 신청하는 사람들이 있다.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일주일에 한 번 목욕을 하고 토요일마다 육류를 먹을 수 있는 특권을 가진다.
남자하고 사랑을 나누는 여자의 몸은 깨끗하다. 몸이 깨끗한 사람은 특권을 누리는 사람이다. 그녀는 20세에 조기박멸을 신청했던 것이다. 그녀가 죽자 남자는 이런 사실을 파동 변조기를 통해 우주 어딘가로 띄워 보낸다. 그것이 연구소장에게 온 것이다.
진실은 다르다. 같은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당사자만 모를 뿐이다. 인간이 인간을 통제하는 세계. 그 세계는 무분별한 자원 낭비로 다수가 다 같이 쾌적하게 누리고 살 수 없기에 어떤 장치가 필요했으리라.
『아일랜드』의 지하의 사람들이 소수의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듯이 말이다. 이렇듯 귄터가 보는 인간의 미래는 어둡다.
4. 「아담과 이브」
인간복제가 실현가능할 수 있다는 데에 비중을 두는 현시점에서 「아담과 이브」는 의미가 깊다.
지구 종말 후, 시리우스라는 별을 찾아가는 두 우주인의 임무에 대한 이야기다. 시리우스까지는 수십 년이 걸리기 때문에 인간을 재생산해야한다. 둘 다 남자이기에 E라는 남자가 성전환수술을 받는다. E는 본래의 피부와 합생된 탄력 플라스틱 자궁을 가진 이브로 다시 태어난다.
하지만 '나'는 ‘재생산’의 작업에 집중할 수가 없다. 창조주가 되는 달콤함을 만끽하기도 하지만(E를 여자로 탄생(수술)시키는 과정에서) 근본적으로 창조적인 행위에 결함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옛날의 위선적이고 예언적인 책과 달리 이브를 나와 정반대의 존재로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만 두 사람에게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막연히 느낀다.
아마도 그 시도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인간성 상실. 탄생을 사랑의 결실이 아닌, 하나의 부속품처럼 만들어내려는 시도. 그런 의미에서 인간복제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창조주가 되고자 하는 욕심이 지구의 종말을 불러오지는 않았을까. 그 문제부터 다시 생각해보아야할 거 같다. 그 모든 것이 욕망의 문제 같지만.
5. 「바라던 아이」
사랑의 결실은 '아이'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 젊은 부부는 흥분에 들뜬다. 자신들을 닮을 또 다른 생명체. 그런 아이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면 어떨까.
작품 속 부부는 아이의 장애로 인해 ‘명랑성’을 잃는다. 그는 끊임없이 자신과 아이를 합리화시킨다. 자연은 그 어떤 빈자리도 허용치 않으며 모든 결함을 보상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가 정확한 말을 구사할 수 없는 것은 혼자만의 비밀, 즉 예언의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외적인 운동성의 마이너스가 내적인 플러스를 만들어낸다, 는 등.
부부는 서로 의견 차이가 없다. 소설 말미에, 그는 자신이 지금까지 어떤 착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자신의 숙명과 다투기만 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떻게 보면 장애 아이를 둔 것이 그의 개인적인 행운일 수 있겠다, 라는 생각까지 한다.
이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옮긴이의 해설 부분을 참고해보았으나 그와 의견이 다르다. 결국, 부부는 자신의 아이를 위한 노력(착각)을 기울이면서 '존재의 특이성'을 인정한 것이다. 귄터가 풍자적 성격의 소설을 써 온 것에 비추어 보면 자신의 '골상학상의 유사성 이상의 것을 내포하는 동질적 분자 구조를 지닌' 아이가 장애아일 수 없다는 위험한 믿음이다.
이는 바로 '우생학'을 탄생시켰으며 유태인의 학살까지 이어지지 않았는가. 착각. 자신의 종족이 우수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어떤 이론이라도 발췌할 준비가 되어 있는 그들. 그들은 무수히 존재한다.
6. 「잘못 들어선 길에서」
슐츠와 알렉스와 그 부인들은 산책길에서 길을 잃는다. 폐허를 발견한다. 폐허 안에서 슐츠와 알렉스가 나누는 대화가 이 단편의 핵심이다.
그들은 어두웠기 때문에 시각보다는 후각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알렉스는 그곳에서 오줌을 눈다. 똥과 오줌을 거리낌 없이 눌 수 있는 장소. 은밀하면서 친숙한 장소. 자제력이 필요 없는 장소. 고무 타는 냄새. 냄새는 과거를 끌어낸다. 전쟁, 죽음 등. 알렉스는 어렸을 적 자주 갔던 박제품 상점에 대해서 말한다. 그는 포르말린과 에테르 썩어가는 고깃덩어리가 죽음의 냄새라고 생각했다. 결국은 냄새라는 것은 영원함을 되돌려주고 실재와 연결시킨다고 말한다. 알렉스와 두 부인은 다시 길을 떠나지만 슐츠만은 다시 폐허로 되돌아간다. ‘고향’이라고 외치면서.
이 작품에서 폐허의 상징성을 찾을 필요가 있겠다. 길을 가다가, 삶을 살다가 문득, 컴컴한 동굴로 들어간다는 것. 그것은 죽음일 수도 있고 탄생의 의미일 수도 있다. 결국은 재탄생이며 재생이다. 영원성과 죽음 그리고 과거. 이 모든 것을 포용하는 것은 자궁이 아닌가.
슐츠는 그곳에서 재탄생되기를 원했을 수도. 아니면 근원을 찾고 싶었을 수도.
7. 「가정배달」
어느 날 당신 앞으로 시체가 든 관이 배달된다면? 살인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는 당신에게.
이야기는 마을 사람들에게 관이 배달되면서 시작된다. 한 구의 관을 받은 사람도 있고 마흔 구의 관을 받은 사람도 있다. 이들 중, 과거에 전쟁에 참여했던 사람도 있고 교통사고를 낸 사람도 있다. 하지만 화자인 슈말은 정확히 죄를 얼마만큼 지어야 관이 배달되는지 모른다. 배달되는 관을 함부로 처분해서도 안 된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묘지가 꽉 차서 배달되는 거라고. 관공서에서 처리하는 방식과 똑같은 효력이 발생한다고. 슈말은 애인에게 작은 관이 배달되자 그녀와 헤어진다. 그 다음 날 자신에게도 관이 배달된다. 아무런 죄도 없는 슈말. 관 속에는 여인인 펠리치아가 있다.
개인적 살인이든, 사회적 살인이든 시간이 경과하고 죄 값을 치른 뒤에 배달되는 시체. 그것은 왜 일까. '죄의식'이라는 것. 인간을 옭아매는 철창과 같은 것이 아닐까. 인간 내면의 욕망에서 보기 보다는 사회가 개개인을 구속하는 한 방식으로 죄의식을 이용한다는 것. 정의라는 것은 항상 오류를 수반한다는 슈말의 생각이 그래서 의미가 깊다.
과연 당신 앞으로 몇 구의 관이 배달될까. 한 구도 없을 거라고 자신할 수 있는가.
8. 「G. 라는 남자와의 만남에 대한 검열관의 보고」
전체주의. 국가라는 거대한 기계에 개개인은 부속품에 불과하다면 어떨까.
낭만적인 시인을 이성과 지식을 인정하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화자인 ‘나’가 설득하는 과정을 소설화 했다. 화자는 인간을 길들이기 위한 한 방법으로 심리학을 이용한다. 기다림. 기다리게 함으로써 체념과 불안을 유발시킨다. 양심을 스스로 저울질하게 만든다. 개인주의 정점에 도달한 시인을 기술적인 혁명에 합류시키려는 화자의 노력이 결실을 맺는 것도 같다. 하지만 G.는 나와 협상을 유도한다. 자신을 ‘레몬 꽃이 피는 나라(괴테의「미뇽」에서 나오는 구절.)’ 로 보내달라고 한다. 레몬 꽃이 피는 나라는 ‘이탈리아’를 말한다. 북극에 위치한 독일이 이성적인 나라라면 남극인 이탈리아는 낭만적이고 열정적인 나라를 상징한다. 즉, 이상적인 곳이다. 시인은 그곳으로 도주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결국은 화자의 설득이 실패로 끝난 것이다.
그렇다면 시인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아무도 예측할 수가 없다. 죽음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을 사회(국가)라는 거대한 조직에 부속품화 시키는 작업. 그 작업이 조직적으로 면밀하게 이루어지면 어떤 이가 당하지 않겠는가. 죽음을 택하지 않은 이상 말이다.
현재, 그것조차 인식하지 못한 이들에게 경종을 울릴만한 작품이다.
9. 「러브 스토리-메이드 인 DDR」
DDR은 독일인문공화국의 약자다. 그럼 DDR에서 '생산되는' 러브스토리는 어떨까.
국장은 여비서와 정사를 나눈다. 그녀의 유쾌함이 좋아 그녀의 초대에 응한다. 그 다음날 그녀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고 사랑을 나누려 하지만 그의 몸은 모조품으로 대체되는 것만 같다. 그녀는 일찍 그의 집을 나선다.
이들이 만나고 헤어지기까지의 과정 중에서 수입품인 ‘승리 브래지어’가 나온다. 동독에서는 100년이 걸려도 만들 수 없는 제품. 여자는 그 브래지어를 입은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하지만 그는 다르다. 브래지어의 생산을 사회 질서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가진다. 여자가 ‘올바로 살기 위해서 무엇을 원하고 필요로 하는지 누군가가 당신에게 질문’, 을 한다면 어떻게 답변할 것인가, 라는 답변을 회피한다. 이런 것들이 그의 몸을 사늘히 식게 한다.
이념이나 주장뿐인 공산주의의 구호. 그 안에서의 사랑 또한 구호로만 그치는 것은 아닌지. 구호 아래 자본주의의 생활품들은 속속히 수입되는데 말이다. 빈껍데기 사랑처럼 그 구호 또한 실체없이 허공을 맴도는 것은 아닌가.
10. 「올림피아 2」
외로운 당신에게 어느 날, TV 속의 멋진 아나운서가 말을 걸어온다면?
중년의 츠바르트는 아나운서가 자신을 본다고 생각하자 모든 일에 신중을 기한다. 맥주를 마시면서 편하게 소파에 앉아서 TV를 시청하던 그가 면도를 하고 정장을 입는다. 혹시 그녀가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방송국까지 찾아간다. 그곳에서 발견한 그녀의 실체는 놀랍다. 사람이 아닌, 기계였던 것이다. 기계가 TV를 켤 때마다 자신을 감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지 오웰『1984년』의 ‘빅 브라더스’가 떠오른다.
사생활? 침범당하라고 있는 게 아닌가(문장 그대로 믿지 마시길). 지금, 심각한 문제 중 하나가 아닌가.
11. 「장례식은 조용히 치러진다」
제목처럼 장례식이 조용히 치러지는 이유가 있다. 홀아비가 된 쇤가르가 아내를 끔찍이 사랑해서 조용히 보내고 싶어서가 아니다. 그가 아내를 죽였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다른 여인을 위해서. 아내가 죽고 그 다음날 출근하고 퇴근 뒤, 여인을 만나 정사를 하기까지 사무실의 정경이 펼쳐진다.
이 중 재미있는 대목은 순간순간 넘어야할 장애물들이다. 수위, 비서, 전화 교환여자 등. 자신의 사생활이 노출될 위험이 너무나 많다. 자칫 잘못하면 자신의 정부와 범죄가 탄로날 수도 있다.
사고의 진위 여부는 밝혀지지 않지만 순간순간 우리들를 누군가 엿보고 있다는 의심을 갖게 한다.
누군가가 나의 허점을 ‘빈약한 가슴 속에 묻어두었다가 적당한 기회에 비난하기 위해 써먹는다’면 어떻겠는가. 허점을 보이지 않기 위해 나는 더욱 더 위장하고 가식적으로 변할 것이다. 이런 인간들이 진실한 사랑을 할 수나 있을까.
사랑이라는 문제를 떠나 범죄 예방을 위한다는 목적아래 설치되는 CCTV. CCTV 설치의 정당성을 부여할 수도 있겠다. 끔찍한 일이다.
12. 「대리인」
연금생활자인 양로원의 노인들. 그들 중 한 명인, 다윈이라는 애칭을 가진 에발트 린데베르크가 사건을 일으킨다. 다윈의 열렬한 추종자인 그는 『종의 기원』이라는 주장처럼 종족번식과 성선택론을 실천하기 위해서 15살 더벅머리 소녀를 따라다닌다. 얼마 안 되는 돈으로 허풍을 떤 덕에 곧 잔금이 바닥난다. 그 일을 그만 두려고 하자 그를 지켜보는 같은 처지의 노인들이 십시일반 돈을 걷어서 준다. ‘관능의 연대감’을 위해서란다.
다윈은 이때부터 ‘관능’이 아니라 대리인으로서 ‘보고’를 철저히 해야하는 임무를 띤다. 결국 그는 소녀의 방에서 심장마비로 죽는다. 뭐랄까, 과거의 사랑의 감정은 살아있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는 현실을 탓할까. 아니면 관능의 연대감을 느껴야하는 그들에게서 벗어나고자 자신의 생을 일찍 마감했을까. 모를 일이다.
다윈의 ‘설’을 유쾌하게 풍자했다. 이곳에서 그랬다면 아마 쇠고랑을 찼겠지, 싶다.
숨가쁘게 12편의 소설 단평을 써봤다. 읽고 쓰는 동안 귄테 쿠네르트가 꾸준히 문제시하는 것들은 생각해본다. 간단하게 말하면 이런 것들이 아닐까 싶다.
인간의 욕망. 욕망의 극대화로 인한 자연파괴 식량고갈. 지구 종말. 새로운 에덴을 찾기 위한 여행 혹은 지구에 생존한 자들끼리의 경쟁. 선택된 소수자가 다수의 인간들을 감시 통제하는 방법 등.
개인적으로 소설 발상이 신선했고 풍자가 유쾌했다. 풍부한 과학적 지식, 상상력이 좋았다.
하지만 이런 장점들을 충분히 번역이 살려내지 못한 거 같다. 좀 더 매끄러운 문장이었으면 읽기가 편했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간결하면서 시대 정신을 꿰뚫는 예리한 문체'라고 옮긴이가 평을 했으나 결코 간결하지 않았다. 비문도 많고. 오리무중 의미가 되돌아가는 경우가 빈번했다. 다시 한번 번역의 중요성을 실감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저자 : 귄터 쿠네르트
1929년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1979년 서독으로 망명하기 전까지 동베를린에서 시인과 소설로 폭넓은 활동을 한 그는 독일 현대 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하인리히 만 상(1962), 요하네스 R. 베허 상(1973), 하인리히 하이네 상(1985) 등을 수상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단편집 『장례식은 고요함 속에서 치러진다』『잘못 들어선 길과 또 다른 방황들』『지나간 미래로부터』, 장편소설 『모자의 이름으로』, 시집『초대받지 않은 손님』『사멸의 과정』『베를린 옆에서』『고향에서의 낯섦』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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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

서평을 쓴 뒤 기지개를 한 번 펴봅니다. 요즘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을 여실히 느낍니다. 서평이라도 써놓지 않으면 메모리가 금방 날아가버립니다. 만약, 끝까지 읽는 분이라면 고맙게 생각하겠습니다. 어쩌다 보니 길어졌습니다. 
누님... 누님 연세쯤되면 그리되나요?.... ㅎ
치매현상이 어디 나이를 가립니까
불시에 찾아왔다가 사람 놀래키고 
아나는 놈을 어디 잡겠습니까
똑똑한 놈으로다 복제를 해야지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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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한권을 내가 다 읽은 느낌입니다
참 중원에는 고수도 많다는 생각에 새
작아드는 느낌이지만 잘 읽었습니다
하
다 읽으셨어요
대단

까페가 있으니 올리는 재미도 있고 다시 정리하니 본인에게도 좋고 잊어먹었다 싶으면 다시 클릭해서 생각해내는 편리도 있고. 무엇보다도 댓글을 
아주니, 또 써야지 하는 자신감도 있고
맞죠
이거 이거, 엄청 오래된 책인데..^^ 씁쓸한 기분을 주었던 SF 판타지 풍자소설로 기억이 됩니다..이 독일작가, 그나라에선 엄청 중요한 위치와 무게를 가지고 있던데 우리나라에선 아는 사람이 별로 없더라구요...
역시

싱글레어님은 



제 생각에는 '민음사' 고전 목록에 조만간 올라갈 거 같아요. 그때는 매끄러운 문장으로 작품이 탄생했으면 해요. 다시 사 볼 의향이 있으니


아따 이런 복잡하고 어려운 책 좀 그만 읽으세요... ㅎㅎ.. 그래서 결론이 뭔가요? 문학에선 결과를 책임지지않나요? 사회과학이 아니니까? 세상을 바꾸자? 어떻게요? 이미 과거와 현재의 견고하고 태산처럼 누적된 결정적요인들로 자기흐름을 갖고 미래로 질주하는데 가능한가요? ....... 한가지 방법은 있네요...선택된 소수자가 되는것... ㅎ
지금도 선택된 소수자는 존재하잖아요. 하늘&바다님은 그 주류에 합류하셨나요
늘 비주류가 아우성입니다. 당연히 저는 비주류이기에 야

호, 메아리 없는 고함 한번 질러보고. 호랑이에게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듯. 깨어있는 의식,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면 살라는 메시지가 아닐까요. 
혹시 그 방안을 알면 하나만 알려주세요... 참 그리고 부탁하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부탁합니다... 요즈음 두분 덕분에 눈과 가슴과 머리가 호사를 누리고 있어요.. 언제 한턱 쏠게요...ㅎ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앞선 번호에 나르님이 책서평 올려놓았어요. 저도 읽었구요. 영화로도 나왔잖아요. 저는 광고에 비해 내용 면에서 생각보다 실망한 책인데. 서평을 원하시나요?
아 그래요?... 책은 안읽고 영화만 봤는데 도무지 .. 다만 냉혈한 주인공 살륙자만 깊이 인상에 남을 뿐... 일단 나르님글 한번 읽어볼게요
노인의 나라는 없다, 책서평 다시 한번 읽었는데, 열띤 댓글이네요. 나쁜녀석이 이쁜마녀를 가장했네요.

저는 아직도 그 책에 좋은 점수를 줄 수 없지만 하늘&바다님은 긍정적인 결론 내리길 바래요.
읽었는데도 여전히... 님도 한축 참여하셧네요...ㅎ.. 이 영화가 칸영화제 그랑프리수상작이지요? 무얼얘기하는지,,, 주제가 뭔지,,, 제목의 의미는 뭔지,,, 영화감상토론시간에 선정할까 했는데 내가 이해가 안되어 보류중이예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