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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발굽형 내연산 산줄기에서 한 발 비켜선 천령산의 옛이름은 신구산(神龜山)이였다.
일제 강점기에 한문으로 등재되면서 ‘하늘재’를 그대로 천령산(天嶺山)으로 바꿨다.
아무렇게나 생긴 자연석 정상석엔 ‘우척봉(牛脊峯)'이라 적혀 있고, 뒷면에 천령산 한글체.
우척봉은 '소 우(牛)자'에 '등뼈 척(脊)자'로 소 잔등처럼 생겼다는 의미이다.
문수봉~삼지봉~향로봉~매봉~삿갓봉~천령산으로 이어지는 말발굽형 산줄기 한가운데 청하(淸河)골,12폭포골,내연골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보경사계곡이 있다.
설악산의 천불동,오대산의 소금강,청옥 두타의 무릉계곡과 함께 '동해안 명승 4대계곡'으로 불리며, 바위협곡과 폭포, 소와 담 등 계곡이 지닐 수 있는 것을
모두 갖추어 경북의 금강으로도 불린다.
관음폭포(觀音瀑布) 위 출렁다리를 건너 바위 모퉁이를 돌아서면 연산폭포가 자태를 뽐낸다.
비하대(飛下臺)와 학소대(鶴巢臺) 사이의 이끼 낀 바위골을 타고 물보라를 흩날리는 연산폭포는 보경사계곡 12폭포를 대표하는 폭포다.
이 폭포를 경계로 아래구간은 시설물이 있어 편리하지만 자연미가 반감되고,상류쪽은 수더분하고 자연미가 넘친다.
따라서 은폭 상류쪽은 비가 많이 온 날을 제외하면 계곡을 따라 걷는 게 훨씬 운치가 있고 재미도 있다.
우리는 세 개 파트로 나누어서 산행을 하였는데,B팀에서 문제가 발생하였다.
향로봉을 오르는 특A팀에게 '삼거리'갈림길 안내를 부탁하였는데,그만 에러가 나고 말았다.
알 수 없는 '삼거리'가 시도때도 없이 이정표에 등장을 하니 경북수목원을 뱅뱅돌며 15km를 넘게 걸으며 7시간이 넘게 걸리고 말았단다.
내가 그 갈림길을 콕 찍어서 내려보내고 난 후에 내 갈길을 재촉했어야 했는데,미안키가 말이 아니다.
나머지 차에 남은 사람들도 경북수목원을 한바퀴돌기로 하였다.
※ 특정 지명(고유명사)을 이정표에 적어야지 보통명사 '삼거리' 는 탐방객들을 헷갈리게 한다.
그래서 경북수목원의 세부적인 모습을 자세히 표기하여 올린다.
우리는 경북수목원에서 굵은 녹색선의 임도가 아니고,녹색선 좌측의 노란 실선으로 진행하려고 하였다.
그 길이 임도보다 걷기도 수월할 뿐 아니라 거리도 훨씬 가깝기 때문.
네비엔 '경북수목원'을 입력하였다.
경북수목원은 우리나라 유일의 해발 650m고산지대에 위치해 있다.
주로 자생식물들이 자라고 있으며 식물유전자원 연구는 물론 도시민의 휴식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경북수목원은 입장료와 주차료가 모두 무료이다.
안내소를 통과하자마자 우측으로 화장실이 보이고,좌측에 첫 주차장(3주차장)이 있다. 화장실에서 화장을 마친 우리는 더 진행하다...
두 번째 주차장(2주차장) 입구에서 A팀은 우측 계단을 올라서거,향로봉팀과 B팀은 아스팔트를 따라 그대로 직진을 한다.
그 길이 전망대로 올라가는 길.
잘 놓여진 나무계단을 올라...
정자 두 개가 있는 갈림길 임도에 올라선다. 우측 정면의 정자 뒤로 데크계단이 전망대 가는 길.
계단을 올라...
잘 만들어진 2층 누각의 전망대를 만나지만 흐린 날씨로 인하여 전망은 제로.
삿갓봉으로 향하는 중에 임도 산책길을 따라 올라오는 '수목원 한바퀴팀'들.
이 갈림길에서도 '삼거리 6.1km'표시가 나오는데, 어디 삼거리를 지칭하는지 모호하기만하다.
산방기간(11월15일~익년 5월15일)에는 입산이 통제된다고 한다.
삿갓봉 가는 길은 편안한 숲길.
산사면을 에두르는 편안한 숲길이 있지만 우리는 능선을 고집하며 걷는다.
삿갓봉을 올랐다.
"죽장에 삿갓쓰고 방랑 삼천리 ♬" 노래가 이곳에서 만들어졌남? 이 지역이 포항시 죽장면이 아닌감?
기념촬영을 하고 이정표가 가리는 방향으로...
줄을 지어 숲길을 걷는다.
잘 닦인 오솔길과 능선을 몇 차례 반복하다 '외솔배기'에 닿았다.
외솔배기에서도 다시 능선을 고집하지만 후미팀에겐 능선을 따라오지 말고 그대로 오솔길을 따라 오라고 교신을 한다.
'외솔배기'는 옛날 주민들이 넘나들던 고갯길 쉼터가 있던 곳.
마치 둘레길 수준의 오솔길을 외면하고 다시 능선을 고집하니...
돌탑이 있는 638봉을 올라선다.
'서래야'님은 '은태봉'이라 명명을 하였다.
몇 차례 오솔길과 능선을 반복하다 이제 본격적으로 천령산(우척봉)을 오르는 갈림길.
이 지점의 이정표에 또 '삼거리 1.0km'가 나오는데,이 삼거리는 어디를 지칭하는 걸까?
첫 전망바위에 오르자 안개가 걷히면서 드러나는 맞은 편 향로봉 마루금. 저 능선 어디쯤에 우리 특A팀이 걷고 있을 것이고...
깊은 골짜기를 이루고 있는 계곡 상류지점(삼거리, B팀이 내려올 길)으로 우리 B팀이 내려섰을 것이다. B팀과는 교신이 두절되어 소식이 깜깜이다.
내려보니 우리가 올라온 능선길이 일목요연하게 보인다.
정상에 올랐다. 아직 선두팀이 식사 중이다.
정상석 뒤로 돌아서니 맞은 편 산줄기가 안개에 묻혔다.
세 번째 오른 천령산.
뒤에서 본 모습
정상주도 곁들인 점심을 느긋하게 즐기고 다시 갈 길을 재촉한다.
미리 밥자리를 폈다는 후미팀에게 '보경사 주차장'방향으로 인도하고 표식기에다 B팀이라고 기재하여 놓고,우리는 삼거리(시명리) 2.3km방향.
이 삼거리는 확실히 B팀이 경유했을 보경사계곡 상류의 삼거리임이 분명하다.
시명리 갈림길이다. 직진은 삼거리 방향이고,우리는 우측 옆으로 난 산사면을 에돌아 내려선다.
이 지점의 이정표.
등로는 시종일관 산사면을 비스듬히 에돌아 내려간다.
너덜겅을 지나 머루랑 다래랑 버섯도 눈요기하고,궁궁을을(弓弓乙乙) 갈 지(之)자로 휘돌며 급경사를 내려섰더니...
물소리가 청아한 계곡인 시명리로 내려선다.시명리는 지금은 사람이 살지않고 옛날 화전민들의 터.
안골이라고도 불리던 시명리(時明里)는 조선 말 권문세가의 유배지로서 1960년대 말까지도 숯을 만들어 내다 팔던 이들이 살던 곳이다.
시명리에서 고메이등이라 불리는 된비알 능선길을 따라 1시간쯤 오르면 운동장처럼 널찍한 향로봉 정상에 올라설 수 있다.
이후 주능선을 타고 삼지봉(710m)과 문수봉(622m)을 거쳐 보경사까지 가는 데에는 세 시간 정도 걸릴 것.
계곡 상류에 이처럼 넓은 계류가 있어 맑은 물이 흐른다.
처음엔 계곡 좌측으로 난 등로를 걷다가...
아예 계곡을 내려서서 소위 '계곡치기'를 하기로 하였다.
계곡치기 산행은 비가 내릴 때에는 암반이 미끄럽고 물이 불었을 때는 위험하므로 삼가는 것이 좋지만 오늘 같은 날은 계곡치기가 딱 제격이다.
별로 미끄럽지 않고 위험하지도 않아...
수려한 청하골 상류를 거슬러 내려선다.
뒤돌아보니 일행들이 꼬리를 물지 않았고...
'산그림'과 나만 탄성을 지르며 내려서다가...
시명폭포를 만난다. 시명폭포는 두 갈래로 갈래져 쌍폭을 이루고 있다.
'산그림'은 따라오지 않는 일행들을 고개를 빼고 기다리고 있다.
아름다운 산엔...
아름다운 계곡이 숨어 있는 법.
그제서야 머루 다래에 정신이 팔렸던 일행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난이도가 평이한...
아름다운 계곡을 따라 호랑이가 엎드렸다는 복호폭포를 살피는데...
사람이 머물던 흔적을 지나자 급한 계곡을 만나고 우측 산비탈에 나풀거리는 시그널을 만나면서,오라~복호폭포이니 우회를 하는 모양이라고 짐작하여 올랐더니...
이 무슨 시추에이션.
팔자에 없는 암벽타기를 한 후에...
상류로 폭포를 확인하러 올라봤지만 복호폭포는 아니었고 계곡길도 걸어 내려올 수 있었다.
처음엔 물길을 요리조리 피하느라 애써다가 이게 아니다 싶어 아예 첨벙첨벙 풍덩풍덩 계곡수에 신발을 담궜다.
그제서야 계곡산행의 묘미가 온몸으로 느껴진다. 걸음도 빨라지면서 그칠 것이 없다.
캐녀닝(Canyoning)은 협곡이나 계곡을 따라 이동하며 탐험을 즐기는 레포츠로 북미나 유럽 등지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인기를 끌어온 종목이란다.
물길을 따라가며 만나는 모든 상황을 몸으로 헤쳐 나가는 모험적 성향이 강한 스포츠.
산길 트레킹은 기본이고 암벽등반과 깊은 소를 헤엄치기도 하며 폭포에서 하강하거나 뛰어내리기도 한다.
협곡을 에두르며...
조심조심 걷다가...
다시 계곡으로 내려서서...
완만한 계곡을 따라 숨은 복호를 찾아가는데...
암벽에서 식겁을 한 일행들은 그만 기존 등로로 올라가 버리고...
복호폭포를 만난다. 1폭인가? 2폭인가?
계곡은 계속 수려한 모습으로 이어지지만 하산시간이 급한 나는 이제 등로로 올라섰다.
등로에 올라섰더니 만나는 복호1폭포 안내판.
거대한 돌무더기들이 쓸려내린 너덜겅을 지나고...
바위 틈새에서 배암도 사진에 담고...
계곡을 가로 질러...
음지골 쉼터를 지난다.
(15:17) 아직 갈길이 많이 남았고,탐방할 곳도 많이 남았다.
그 새에도 아름다운 계곡으로 자꾸만 눈길이 간다.
출렁다리에선...
출렁출렁 기념사진을 찍고...
은폭포안내판을 만난다.
은폭포 위의 바위에 올라 고개를 빼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폭포가 보인다.
그들은 턱진 바위에 올라앉았고...
나는 아래로 내려서 은폭포를 카메라에 담는다.
은폭(隱瀑)은 높이 약 10m, 폭 7~8m의 항아리형 오버행 절벽에서 물을 쏟고 있는 폭포.
원래는 여성의 음부(陰部)를 닮았다고 해서 ‘음폭포’였으나 상스럽다고 해서 은폭으로 고쳐 부른다.
계곡을 횡단하고...
이정표도 만나고...
좌측으로 바위덤을 만나 올라섰더니...
WOW~~절경이 펼쳐진다.
고개를 쭈욱 빼서 아래를 내려다 보니 관음폭포와 무풍폭포가 숨었다.
옆엔 두 기의 추모비가 나란히 서 있고...
아래론 병풍같은 산수화가 펼쳐진다.
다시 관음폭포에 내려서서...
출렁다리를 한 번 올려다 보고 계단을 오른다.
관음폭포의 이정표
연산폭포 안내판
계단으로 올라 출렁다리를 건너니 숨어있던 연산폭포가 자태를 드러낸다.
내연산에서 '내'자를 뺀 이름 연산으로 폭포이름을 지었으니 내연산 12폭포 중 제일 규모가 크다.
민재씨의 본명은 김춘경(金春經). 팔꿈치와 무릎이 좀 나아진 듯...
이곳에도 어김없이 여러 이름들이 각자 되어있다. 연산폭포 옆에 군수 이종국과 우측 위엔 김영진. 분명한 건 그들은 모두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니란 사실.
이종국(李鍾國 1875~1927)은 대한제국과 일제 강점기에 관료를 지낸 사람으로 경북 대구부 동상면 출신. 친일 반민족 704인 명단에 올라진 인물이다.
비하대(飛下臺)각자를 확인하려고 눈을 닦고 살폈지만 포기하고 관음폭포로 다시 내려와...
쌍줄기 물줄기인 관음(觀音)을 살핀다. 청각(音)과 시각(觀)이 같은 감각기관에서 서로 소통이라도 하는 걸까?
또 각자 '무자 중추(무자년 가을)에 아무개아무개 이름이 빼곡하다.
순사(巡使)는 조선
각자는 주로 삼용추인 이 일대에 95%가 몰려 있다하였는데,잘 찾아지지도 않을 뿐더러 찾아봐야 내용을 파악하기도 쉽지 않다.
조선후기의 화가요, 청하현감이였던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의 각자도 있다고 하였는데...
내려서서...
어지러이 새긴 각자들을 한 자 한 자 살핀다.
좌측에 있는 '광정(李光正)' 경상감영(경주부) 관찰사로서 관기(官妓)를 데리고 탐승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광정 왼쪽에 조그마하게 씌어진 '경기달섬(慶妓達蟾)'이라는 희미한 각자는 관기의 이름으로 관찰사가 올려준 것으로 보인다.
바로 아래엔 무풍폭포가 숨어 있지만 패스.
아래로 눈길만 주고,잠룡폭포(潛龍瀑布)는 영화 남부군에서 목욕하는 장면을 찍은 곳이란다.
안내문
보현암과 갓부처도 바삐 지나고...
깊숙히 숨어 있을 보현폭포도 지난다.
안내문
상생폭포는 아주 잘 생겼다. 상류에서 본 시명폭포와 여러모로 많이 닮았으나 더 걸출하다.
상생폭포의 안내판
문수봉 갈림길을 지나고...
등로 옆으로 흐르는 수로는 보경사 경내로 들어가는 물줄기.
종각 옆으로 오층석탑이 보이고...
오층석탑 뒤에는 적광전이 있다.
포항 보경사 오층석탑(浦項 寶鏡寺 五層石塔)은 경상북도의 유형문화재 제203호로 1층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의 네 면과 탑신부의 각 층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조각하였다. 지붕돌은 밑면에 3단의 받침을 두었고, 네 귀퉁이는 약간 들려있다.
꼭대기에는 노반(露盤:머리장식 받침)과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이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높고 날렵한 느낌을 준다. 통일신라의 석탑 양식을 따르고 있지만, 지붕돌받침이 3단으로 줄어드는 등 고려시대 석탑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일명 ‘금당탑(金堂塔)’이라고도 부르는데,『보경사금당탑기(寶鏡寺金堂塔記)』에는, 도인(道人), 각인(覺人), 문원(文遠)이 고려 현종 14년(1023) 3월에 이 탑을 세웠다고 적고 있다.
안내문
보경사는 신라 진평왕 25년(603)에 지명법사가 세웠다고 전하는 절이다.
그 중 비로자나삼존불을 모신 적광전(보물 1868호)은 조선 숙종 3년(1677)에 고쳐 지은 것으로 그 뒤로도 몇 차례 수리를 한 건물이다.
앞면 3칸·옆면 2칸으로 지붕의 옆모습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되어있다.
기둥 위에서 지붕을 받치는 공포가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계 양식의 건물이며 천장은 뼈대가 훤히 보이는 연등천장으로 꾸몄다.
천장형식을 다포양식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연등천장으로 만든 점과 몇몇 건축수법이 지은 시기의 특징을 갖추고 있어 옛 건축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는 건물이다.
주존인 비로자마불과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상의 삼존불을 모셨다.
적광전 안내문
적광전 기둥 옆에는 목조 사자상이 조각되어 있다. 천왕문 입구 양 옆에도 역시 목조 사자를 새겨두었고,주춧돌형이 청옥으로 만들어져 있다
목조 사자상이 마치 집에서 기르는 애완용 강아지처럼 앙중스럽다.
오층석탑의 기단에 조각된 자물쇠의 모습.
포항 보경사 대웅전(浦項 寶鏡寺 大雄殿경상북도의 유형문화재 제461호).
보경사는 신라 진평왕 25년(602)에 진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대덕 지명법사가 세운 절이다.
이 건물은 조선후기 목조불전으로 정면 3칸·측면 2칸의 다포계 팔작지붕이며, 마루바닥에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꾸며 천장 속을 가리고 있는 형태이다.
법당 안엔 불단을 마련하여 삼존불상을 모셔 놓았다.
뒷뜰을 살피다 이 거대한 구시를 발견. 행사때 손님들의 밥을 퍼넣는 용도로 쓰였다니 놀랍기만하다.
비사리구시의 안내문
대웅전 뒷뜰엔 좌로부터 팔상전,산령각,원진각,영산각,명부전이 차레로 배열되어 있고,그 우측 돌출부위에 원진국사비가 있다.
팔상전
산령각
원진각
영산전
명부전이 차례로 있고...
앞으로 돌출되어 보경사 원진국사비(浦項 寶鏡寺 圓眞國師碑 보물 242호)가 세워져 있다.
보경사에 있는 고려 중기의 승려 원진국사의 탑비이다.
원진국사(1171∼1221)는 13세에 승려가 되어 명산을 두루 돌아다니며 수도를 하기도 하였고, 왕의 부름으로 보경사의 주지가 되었다.
51세로 입적하자 고종은 그를 국사(國師)로 예우하고, 시호를 ‘원진’이라 내리었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운 간결한 모습으로, 비몸 윗부분의 양 끝을 접듯이 잘라 놓았는데, 이러한 모습은 당시에 유행하던 양식이다.
등에는 6각형의 무늬마다 ‘왕(王)’자를 질서정연하게 새겨놓았으며, 등 중앙에는 연꽃을 둘러 새긴 네모난 받침대를 조각하여 비몸을 끼워두게 하였다.
비몸의 둘레에는 덩굴무늬가 장식되어 있는데 이 역시 고려 중기의 특색이라 할 수 있다.
비문에는 원진국사의 생애와 행적이 기록되어 있으며, 글은 당시의 문신이었던 이공로가 지었고, 김효인이 글씨를 썼다. 비문에 의하면, 비가 완성된 것은 고종 11년(1224)으로 원진이 입적한 지 3년 후의 일이다.<위키백과>
안내문
넓다란 바닥돌과 하나의 돌로 이루어진 거북받침돌은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머리를 하고 있고,등에는 육각형의 무늬가 새겨져 있다.
한창 제철을 만난 배롱나무가 아름답게 꽃을 피운 보경사의 뒷뜰.
장독대가 가지런한 한 켠에 유명한 탱자나무 한 그루.
보경사의 탱자나무는 보경사 경내 천왕문 우측 동편 종무소를 사이에 두고 두 그루가 마주보고 있었지만 동쪽 탱자나무는 태풍 '나비'로 고사하고
서쪽 탱자나무의 종자로서 후계목을 이어가고 있다.
이 나무는 지상 40㎝ 위치에서 두 갈래로 나뉘어 자라고 있으며 탱자나무로는 보기 드물게 오래된 것으로 기념물(제11호)로 지정되어 보호하고 있다.
안내문
설산당장욱선사공덕비를 지나 바쁜 걸음으로...
나무아미타불과 '남무대자대비관세음보살 육자대명주 옴만니반메훔' 비석을 흘리며...
'당신이 부처님'이라고 하였는데,아무러면 내 자신이 그럴라꼬??
해탈(解脫) 해(解)자도 모르는데...
정문에서 만난 12폭포와 등산로.
매표소의 입장료(문화재 관람료)는 어른이 2,500원
내연산 보경사 일주문을 벗어나며 산행을 마감한다.
우리 버스가 대있는 주차장은 여기에서 10여 분 더 내려가야만 한다.
+ 지조론
견딜 때까지 견디게나.
최후의 악이 부드럽게 녹아
인격이 될 때까지.
고통?
견디게나.
편안한 시간이란 쉬 오지 않는 법.
상처가 깊으면 어때.
깊을수록 정신은 빳빳한 법.
생각 끝의 끝에서라도
견디게나.
그 어떤 비난이 떼를 지어 할퀸다 할지라도
벼랑 끝에 선 채로 최후를 맞을지라도.
아무렴! 끝끝내 견디다가
산맥의 지리쯤은 미리 익혀놓은 후
영영 죽을 목숨일 때
바위, 뻐꾸기, 청정한 나무,
뭐 그쯤으로 환생하게.
(박주택·시인, 19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