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아시아나 직원들이 박삼구 회장을 두고 하는 말이다. 어머니처럼 자애롭기도 하고, 엄한 시어머니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는 것이다. ‘시어머니’라는 단어는 주로 간부사원들 사이에서 나온다. 간부사원들이 빈틈을 보이면 가차 없이 혼을 낸다. 더구나 박회장은 완벽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모르는 데도 아는 척 적당히 넘어가는 적당주의를 싫어한다. 지난해에는 부장 이상 전 계열사 간부들을 그룹 연수원에 소집, 회계 중심의 수치경영 기법을 가르치는 합숙훈련을 실시한 적도 있다. 이처럼 직원들에게는 다정다감하면서도 간부사원들에게는 엄하기만 한 박회장이지만 이번만은 달랐다. 대우건설 우선협상대상자자로 선정된 날 박회장은 M&A(인수·합병)에 나섰던 간부사원들을 불러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박회장은 2003년 ‘5대 그룹 진입’이라는 그룹 비전을 내놓았다. 재계에서는 ‘그게 가능할까’라며 콧방귀를 끼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유동성 위기로 그룹의 존립마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우건설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서 보는 눈이 달라졌다. 금호아시아나는 재계 자산순위 11위(공기업 및 민영화된 공기업 제외)에서 단숨에 8위로 뛰어올랐다. ‘영원한 맞수’ 한진그룹을 코밑까지 추격했다. 이뿐만 아니다. 오래전부터 관심을 보인 대한통운마저 삼키면 자산규모로는 한진그룹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올해 한진의 자산규모는 20조7,000억원(7위)이다. 금호아시아나(13조)는 대우건설을 인수함으로써 18조9,000억원으로 늘어났다. 만약에 내년에 대한통운마저 인수한다면 몸집은 20조2,000억원으로 불어난다. 게다가 중국, 베트남 등 해외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불가능으로만 여겨졌던 박회장의 야심찬 비전이 서서히 무르익고 있는 셈이다.
박회장은 추진력이 강한 사람을 선호한다. 계열사 CEO들에게 “옳다고 믿고 결정한 사항은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밀고 나가는 추진력이 필요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박회장의 추진력은 1991년 1월부터 2000년 12월까지 10년간의 아시아나항공 사장 시절에 이미 검증됐다. 그가 아시아나항공 사장으로 취임했을 때만 해도 아시아나항공은 선발기업인 대한항공에 밀려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하지만 박회장은 특유의 강한 돌파력으로 아시아나항공을 세계 중위권 항공사로 키워냈다. 이번 대우건설 인수전에서도 박회장의 과감한 판단력과 추진력이 돋보였다는 평가다. 6조6,000억원(추정치)이라는 거액을 베팅한 것도 박회장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다는 게 그룹 안팎의 평가다.
그러나 판단은 이르다.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 대우건설 인수건만 하더라도 문제가 산적해 있다. 자금도 마련해야 하고, 대우건설 노조의 반대도 넘어서야 한다. 인수 후에도 이질적인 두 기업의 문화를 별 탈 없이 조율해야 한다. 더구나 대우건설 인수는 그의 비전의 절반을 이룬 것에 지나지 않는다. 대한통운 인수건도 남았고, 여기저기에 벌여놓은 해외사업에서도 성과를 내야 한다.
그럼 박회장의 숙제를 하나씩 짚어보자.
당장에는 대우건설 인수자금을 무리 없이 조달해야 한다. 아직도 시장에서는 고가인수 논란이 여전하다. 인수자금을 제대로 동원할 수 있을지 우려하는 시각도 적잖다. 과도한 금융부담으로 인해 자칫 그룹 차원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위기론도 솔솔 피어나오고 있다.
그룹 홍보실에서는 묵묵부답이다. ‘노 코멘트’로 일관한다. 이런 가운데 대우건설 M&A를 이끈 오남수 금호아시아나그룹 전략경영본부 사장이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그룹 자체적으로 충분한 현금을 확보해 놓았고 나머지 자금은 재무적 투자가로부터 조달하면 된다”고 밝혀 주목을 끌었다. 금호아시아나는 충분한 자금을 마련해 놓았을까.
시장에서는 인수가액 6조6,000억원 중 2조6,000억원을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자체적으로 마련하고, 나머지 4조원은 재무적 투자가가 부담하는 것으로 교통정리가 끝났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증권사 관계자들은 재무적 투자가에게 연 8% 금리가 보장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룹 안팎의 소식통에 따르면 금호아시아나가 마련하는 2조6,000억원 가운데 금호산업이 2조원, 금호석유화학이 3,000억~4,000억원, 나머지 2,000억~3,000억원은 금호타이어와 아시아나항공이 부담할 것으로 보인다. 금호산업은 2조원을 거의 마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룹 관계자는 지난 3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1조5,000억원은 지금 당장이라도 (조달이) 가능하다”면서 “현재 8,000억원의 현금을 갖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8,000억원은 현금으로 동원하고 나머지 7,000억원은 유가증권, 주식 등을 팔면 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올 들어 자금 확보를 위해 신대구부산고속도로(주)를 매각했다. 신대구부산고속도로의 매각대금은 1,958억원이다. 인천공항에너지 주식(317만8,920주)과 아시아나항공개발 주식(168만9,878주)도 처분했다. 이 밖에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강남터미널, 광주터미널 등의 매각 가능성도 남아 있다. 따라서 증권시장 전문가들은 금호가 올해 자산매각으로 확보한 자금이 1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금호아시아나가 89년 아시아나항공을 설립한 이후 대규모 M&A에 한 번도 뛰어든 적이 없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계열사들의 경영실적이 점차 나아지고 있는 것도 긍정적이다. 지난해 주요 계열사 실적을 보면 금호산업이 1조5,297억원의 매출에 900억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금호석유화학은 1조7,093억원 매출에 1,214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금호타이어도 매출 1조7,772원, 순이익 982억원 등 우량한 실적을 자랑한다.
하지만 자금동원에 성공하더라도 높은 인수가액으로 인해 금호산업과 대우건설의 동반부실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이에 대해 금호아시아나측은 “대우건설은 자산규모와 매출액이 각 5조원이 넘는 우량회사”라는 반론을 펴고 있다. 대우건설이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연간 14%의 높은 매출성장률을 달성한데다 영업이익률도 8.5%(2005년 기준)로 업계 최고라는 것. 게다가 지난해 말 기준으로 17조9,000억원의 높은 수주잔고를 보유하고 있고, 올 들어서만 12억7,000만달러의 해외 건설물량을 수주하는 등 영업력이 뛰어나다고 강조했다. 적어도 대우건설 인수로 손해 보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대우건설 인수를 깔끔하게 마무리한다면 다음 과제는 대한통운 인수건이다. 공개적으로는 “아직까지 아무것도 결정된 게 없다”며 꼬리를 내리지만 금호산업과 금호석유화학은 이미 대한통운 인수전에 대비하고 있다. 증권업계에서는 금호아시아나가 대한통운 인수전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이른바 ‘제2의 두산’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두산이 지난 2001년 두산중공업(옛 한국중공업)을 사들인 뒤 이를 발판으로 2004년에는 두산인프라코어(옛 대우종합기계)까지 인수했듯이 금호아시아나도 대우건설의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대한통운 M&A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다. 금호아시아나는 이미 대한통운 지분 14.1%를 보유하고 있다.
금호아시아나가 한국경제의 간판기업 중 하나로 뛰어오른 만큼 그룹 내 지역색을 타파하는 것도 박회장의 또 다른 과제다.
금호아시아나는 전라도 대표기업이다. 광주상공회의소가 출범한 이래 1954년부터 박인천 회장이 24년간, 이어 박회장이 지지한 신태호 회장이 15년간, 그리고 박정구 회장이 9년간 회장을 맡아 사실상 광주상의를 이끌어 왔다. 주요 계열사의 핵심임원들도 전라도 출신이 가장 많다. 금호산업은 부사장급 이상의 상근임원 10명 중 5명이 호남인맥이다(2006년 1분기 보고서). 신훈 건설사업부 부회장이 전남 강진 태생으로 광주고를 나왔다. 고속사업부의 이원태 사장은 전남 영광에서 태어나 광주 서중을 졸업했다. 이사급 이상 상근임원 46명 중에서 12명이 전남대, 조선대, 호남대 등 전라도에 있는 대학을 나왔다. 금호타이어도 마찬가지다. 오세철 사장은 전남 나주가 고향으로 광주제일고를 나와 전남대에서 고분자공학을 공부했다. 오사장을 비롯해 31명의 상근임원 중에서 19명이 전남대, 전북대 등 호남 출신 인사들이다. 이에 따라 금호아시아나의 대우건설 인수는 지역색을 타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금호산업의 건설사업부와 대우건설은 모두 전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지만, 그동안 사업영역이나 인맥에서 지역색이 강했던 것이 사실이다. ‘2006 건설인명감’(2005년 12월 기준)에 따르면 대우건설은 전체 임원 52명 가운데 호남 출신은 2명에 불과하다. 이에 반해 금호건설은 임원 23명 중 호남 출신은 10명이지만 영남은 고작 1명이다. 따라서 잘하면 그룹 내 지역색이 타파되는 좋은 계기가 되겠지만, 잘못하면 지역색에 발목을 잡힐 수도 있는 셈이다.
후계구도를 안정적으로 가져가는 것은 박회장의 마지막 과제다. 금호아시아나는 두산과 마찬가지로 형제가 돌아가면서 경영권을 승계했다. 두산을 비롯한 주요 그룹들이 형제간 법정다툼을 벌이는 등 ‘형제경영’의 간판을 내렸지만, 금호아시아나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즉 ‘박성용-박정구-박삼구-박찬구’ 형제 일가가 그룹 지배구조의 핵심기업인 금호석유화학과 금호산업 지분을 각각 12.76%와 1.87%의 비율로 동일하게 소유하고 있다. 5남인 박종구 국무총리실 정책차장은 지분도 전혀 없고 경영에도 관여하지 않고 있다. 고인이 된 박성용 전 명예회장과 박정구 전 회장의 지분은 아들인 재영씨와 철완씨에게 각각 상속됐고, 박삼구 회장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부회장도 지분의 일부를 아들에게 넘겼다.
금호아시아나는 형제간에 만 65세가 되면 경영권을 이양하는 전통이 있다. 전통을 따른다면 올해 61세인 박회장은 오는 2010년까지 그룹 회장직을 수행한다. 이후 박찬구 부회장이 바통을 이어받게 된다. 문제는 그 이후다. 박부회장으로서는 ‘3세 경영’으로의 순조로운 전환을 위한 디딤돌을 놓아야 한다.
박회장은 대우건설 인수에 나서면서 ‘인재를 얻고 싶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그의 뜻대로 건설업계 최고의 인재들을 얻었다. 그러나 적재적소에 배치되지 않은 인재는 의미가 없다. 불어난 몸집만큼 더 체계적이고 민첩한 시스템경영도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이 앞만 보고 달려서는 곤란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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