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글스가 결국 제이 데이비스(38)를 포기했다. 한화는 5일 메이저리그에서 9년간 활약한 좌투좌타의 외야수 제이콥 크루즈 영입을 발표하며 데이비스와의 재계약을 포기했음을 밝혔다. 연봉협상에서 난항이 있었지만 웬만하면 재계약 쪽으로 가닥이 잡힐 것으로 보였으나 결국 한화는 데이비스와 결별하는 쪽을 택했다. 표면적으로는 연봉협상이 문제지만 한화의 '데이비스 포기'는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한화의 이유있는 '데이비스 포기'를 짚어본다.
우려되는 노쇠화 조짐데이비스는 지난해 117경기 출전해 타율 2할8푼4리, 21홈런, 74타점을 기록했다. 객관적인 성적만 놓고 보면 지난 2002년(타율 0.287, 21홈런, 72타점) 이후 가장 좋지 않은 성적이었다. 그러나 데이비스의 지난해 성적과 2002년 성적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데이비스가 한국무대에 데뷔한 이래 가장 부진했던 해는 지난해가 아니라 바로 2002년이다. 2002년에는 지난해처럼 극단적인 투고타저 시대가 아니었다. 2002년 당시 데이비스는 타격 19위, 홈런 11위, 타점 13위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데이비스는 타격 15위, 홈런 3위, 타점 5위의 정상급 타자였다. 한국시리즈 6경기에서의 타율 1할2푼(25타수 3안타)이라는 극악의 부진을 보였지만 적어도 페넌트레이스 성적은 크게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러나 데이비스의 노쇠화는 단순한 기록에서는 확인할 수 없다. 현장 지도자들은 데이비스의 하향세가 뚜렷하다고 입을 모았다. 배트스피드가 줄어들었고 힘과 정교함도 부쩍 떨어졌다. 아무래도 노장이다보니 혹서기를 견디는 것도 쉽지 않았다. 노장타자가 3할을 치다가 2할대 밑으로 추락하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나이가 들면 배트스피드가 감소하고 파워도 떨어지며 빠른 공에 대한 대처능력도 미흡해지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양준혁(삼성) 등 몇몇 노장타자들이 분전하는 데에는 나이를 거스르는 끝없는 훈련과 축적된 노련미 그리고 과감한 변신에서 찾을 수 있다. 실례로 양준혁은 2005년 극심한 부진을 겪었지만 지난해 3할을 치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이것저것 안 해본 것이 없을 정도로 훈련에 매진했으며 트레이드마크였던 오픈스탠스를 버린 것이 부활의 결정적 요인이었다. 그러나 양준혁은 국내선수이기 때문에 팀에서 기다려 줄 수 있지만 데이비스는 외국인선수다. 한시가 급한 팀 입장에서는 외국인선수를 기다릴 여유가 없다. 데이비스가 눈에 띄는 노쇠화는 아니지만 그 조짐을 보인 것만으로도 한화 입장에서는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보이지 않는 불성실데이비스는 보이지 않게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해 한화 구단으로부터 낙제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데이비스는 술냄새를 풍기며 팀 훈련에 참가한 적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게다가 데이비스는 플레이에도 불성실이 만연해있다. 평범한 땅볼을 치면 아예 1루쪽으로 발걸음도 안 옮기고 덕아웃으로 돌아왔다. 양준혁이 투수앞 땅볼을 치더라도 1루를 향해 100m 전력질주를 하듯 달리는 것과 대조적인 장면. 또한 외야 수비시에도 다소 성의없어 보이는 캐치도 문제시됐다.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 보여준 수비력은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데이비스는 '그라운드에서 무조건 열심히 뛰어야 한다'는 프로선수로서 기본정신에 위배되는 행동이 잦았다.
연봉협상에서도 데이비스는 한화 구단과 마찰을 빚었다. 지난해 데이비스는 계약금 10만 달러-연봉 27만5000달러로 도합 37만5000달러를 받았다. KIA 세스 그레이싱어와 함께 8개 구단 외국인선수 중 최고대우이자 역대 외국인선수 최고대우였다. 하지만 데이비스는 올해 재계약 조건으로 최소 45만 달러를 불렀다. 한화는 난색을 표했다. 지난해 성적도 안 좋았고 향후 노쇠화도 우려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데이비스는 개인훈련을 일찍 시작하겠다는 조건을 내걸며 한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한화는 이 같은 데이비스의 반응을 대비해 몇몇 대체 자원을 물색해 놓았고 크루즈가 레이더망에 걸려들자 더 이상 미련없이 데이비스를 포기했다.
냉엄한 프로, 용병의 운명지난 1999년 한국땅을 밟은 데이비스는 2003년을 제외하고 7년간 한화의 붉은 유니폼을 입고 한결같이 활약했다. 국내 야구팬들에게 데이비스는 매우 친숙한 이름이다. 특히 한화팬들에게 데이비스는 '우리선수'나 다름없었다. 1999년 데뷔 첫해부터 한화의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함께 했고 이후 7년간 별탈 없이 꾸준하게 활약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에 약하다. 그래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한국무대를 떠나게 된 데이비스에게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것은 냉엄한 프로스포츠에서 어쩔 수 없는 '용병'의 운명이다.
프로스포츠에서 외국인선수는 돈을 주고 사는 '용병' 개념이다. 구단으로서는 좋은 외국인선수를 데려와 팀 전력을 강화하기를 원한다. 더욱이 프로야구에서 외국인선수 정원은 팀당 2명씩이다. 정 때문에 아쉬워하는 팬들이 많지만 구단 입장에서는 실력과 성적을 가장 먼저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단 2명밖에 넣을 수 없는 외국인선수 자리를 위해 노쇠화 조짐을 보이는 외국인선수를 프랜차이즈 스타라는 이유로 계속해 기용할 수는 없는 노릇. 애초부터 외국인선수에게 프랜차이즈 스타는 어울리지 않았다. 데이비스가 한화에서 7년간 뛰면서 많은 추억을 공유했지만 어디까지나 그는 용병이었다.
하지만 데이비스는 한국프로야구 최고의 외국인선수 중 하나로 기억에 남을 것이다. 7년이라는 시간은 데이비스에게 최장수 외국인선수라는 포장을 선사했다. 활약상도 훌륭했다. 7년간 통산 타율 3할1푼3리, 979안타, 167홈런, 591타점, 538득점, 108도루를 기록했다. 외국인선수 통산 최다안타, 최다득점, 최다도루, 최다타점 모두 데이비스의 몫이다. 홈런은 타이론 우즈(174개)에 이어 2위. 한 시즌만 더 뛰었으면 우즈의 외국인선수 최다홈런 기록까지 넘었을 것이 확실시된다.
또한 데이비스는 훌륭한 기량 뿐만 아니라 홈런을 치고 3루 베이스를 돌며 거수경례하는 모습이나 컵라면을 즐겨 먹는 모습으로도 팬들에게 적잖은 사랑을 받았다. 동료 및 팬들은 데이비스가 좋아하는 컵라면 상품을 본떠 '신남연'이라는 한국이름을 데이비스에게 선사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한화가 재계약 포기를 선언함에 따라 데이비스는 한국땅을 떠나게 됐다. 하필이면 재계약 포기가 결정된 날, 한화는 프랜차이즈 투수 정민철과 2년간 최대 9억원에 재계약했다. 정민철은 "영원한 한화맨으로 남고 싶다"며 감격어린 소감을 말했다. 비록 외국인선수이지만 데이비스도 정민철처럼 '영원한 한화맨'으로 남고 싶어하지는 않았을까. 냉엄한 프로스포츠에서 '용병'에게 프랜차이즈 스타라는 칭호는 정녕 사치일까.
이래저래 데이비스를 떠나보내는 한화팬들의 마음은 싱숭생숭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