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한 재판관은 누구에게서 재판받을까?>
[1] 빅토르 위고(Victor-Marie Hugo)가 쓴 유명한 작품 『레 미제라블』(Les Misérables)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어느 날 장발장이 곧 판결이 내려질 한 형사소송 사건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어떤 가련한 남자가 한 여자와의 사이에 낳은 아이를 위해 위조지폐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 당시 돈을 위조한 자는 사형에 처해졌었다. 여자가 남편이 만든 위조지폐를 처음 사용하는 순간 현장에서 체포돼 구속되었는데, 그때 한 번뿐 다른 증거는 아무것도 없었다.
[2] 결국 위조지폐 범인을 신고할 수 있는 사람은 그 남자의 정부인 이 여자뿐이었다. 여자는 끈질긴 신문에도 완강히 부인했다. 범인이 자기 남편이니 그럴 수밖에. 범인이 남편임을 직감한 검사는 마침내 한 가지 묘안을 짜냈다. 그는 위조 편지를 만들어 남편에게 숨겨놓은 다른 여자가 있으며, 그녀가 이제까지 남편한테 완전히 속았다는 사실을 믿게 만들어 버렸다. 그러자 여자는 질투심에 불타올라 그 남자를 고발하고 모든 것을 자백하며 증거를 낱낱이 다 폭로하기에 이른다.
[3] 결국 공범인 여자는 주범인 남자와 함께 판결을 받게 된다. 사람들은 검사의 능수능란한 수완에 모두들 찬사를 보냈다. 질투심에 불을 댕겨 격분한 상태에서 사실을 고백하게 만들고, 복수심에서 정의를 끌어내게 했기 때문이다. 그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신부가 물었다.
“그들이 어디서 재판을 받죠?”
“중죄재판소에서요.”
[4] 신부가 또 물었다.
“그럼 그 검사는 어디서 재판을 받게 되나요?”
아주 충격적인 질문이다.
요즘 세상 법정에서의 불의한 일들을 많이 본다.
[5] 천인공노할 범죄자들을 자기와 색깔이 맞는 사람이라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보호해주고 무죄석방 시켜주는 모습을 본다. ‘인간의 탈을 쓰고 어쩜 저럴 수 있을까?’ 죄를 범한 인간도 뻔뻔스럽고 무죄판결을 내린 판사들도 악하기 그지없다. ‘내로남불’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요즘처럼 확실하게 보여준 때는 없었다. 그런 이들의 모습에 양식 있는 국민들의 속은 한없이 뒤집어진다. 하지만 『레 미제라블』에 나오는 신부의 질문에서 많은 위로를 얻게 되었다.
[6] “그럼 그 검사는 어디서 재판을 받게 되나요?”
이를 우리의 현실에 맞춰서 적용시켜보자.
“그럼 그 변호사는 어디서 재판을 받게 되나요?”
“그럼 그 판사는 어디서 재판을 받게 되나요?”
어디서일까? 지옥이다. 그것도 그냥 지옥이 아니라 영원한 지옥이다.
[9] 최근 뉴스에 자주 언급되는 조 아무개와 그의 부인 정 아무개 교수, 그리고 윤 아무개 국회의원 당선자들과 그들을 비호하고 있는 정치계와 법조세력들의 행태를 보면 정말 이 나라에 정의와 진실이 사라진지 오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엄청나게 큰 거짓과 악하기 이를 데 없는 범죄를 저질러도 비호해주고 지지하는 세력들이 존재한다. 언제부터 우리나라에 그런 세력들이 판을 치게 된 건지, 요즘은 정말 나라를 뜨고 싶은 생각밖에 없다.
[10] 그뿐 아니라 스스로 억울한 일을 당해 피눈물을 삼키며 속 쓰려하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게다. 부정과 부패와 거짓과 조작이 판을 치고 있는 이 참담한 현실에서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하수같이 흘릴 지도자가 어느 때보다 간절한 현실이다.
하지만 눈 닦고 찾아봐도 주위에 그런 인물은 도무지 보이질 않는다. 그래서 지각 있고 양심 있는 국민들의 마음은 황폐하고 내 마음도 그러하다.
[11]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비록 소설이라고는 하나 『레 미제라블』에 나오는 신부의 질문은 정말 큰 위로를 준다. 문제 있는 판사, 변호사는 어디서 재판을 받게 되는 것일까?
롬 14:10절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 말한다.
[12] 그럼 그 심판대 앞에서 심판하시는 재판장은 누구신가?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어떤 분이신가? 의로운 판결을 뒤집고 거짓으로 변호하는 불의한 세상 판사나 변호사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딤후 4:8절은 이렇게 답한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13] 여호와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라고 한다. 그렇다. 여기에 우리의 소망이 있다. 이 땅에선 비록 억울한 일을 목격하거나 직접 경험하더라도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말자. 최후의 심판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날엔 의롭고 공의로우신 하나님 앞에서 시시비비가 다 가려지고 그 행위대로 심판을 받을 것이다.
모든 심판은 그분께 맡기고 오직 나 자신은 그 앞에서 의롭다 인정받고 칭찬받는 일에만 전력을 다하며 살아야겠다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