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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5년 6월 26일 목요일
[(녹) 연중 제12주간 목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아브람은 아내 사라이의 여종 하가르가 낳은 아들의 이름을 이스마엘이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실행해야 하늘 나라에 들어간다고 하시며, 반석 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의 비유를 드신다(복음).
제1독서
<하가르는 아브람에게 아들을 낳아 주었다. 아브람은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였다.>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16,1-12.15-16
1 아브람의 아내 사라이는 그에게 자식을 낳아 주지 못하였다.
사라이에게는 이집트인 여종이 하나 있었는데, 그 이름은 하가르였다.
2 사라이가 아브람에게 말하였다.
“여보, 주님께서 나에게 자식을 갖지 못하게 하시니, 내 여종과 한자리에 드셔요.
행여 그 아이의 몸을 빌려서라도 내가 아들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잖아요.”
아브람은 사라이의 말을 들었다. 3 그리하여 아브람의 아내 사라이는
자기의 이집트인 여종 하가르를 데려다, 자기 남편 아브람에게 아내로 주었다.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자리 잡은 지 십 년이 지난 뒤의 일이었다.
4 그가 하가르와 한자리에 들자 그 여자가 임신하였다.
그 여자는 자기가 임신한 것을 알고서 제 여주인을 업신여겼다.
5 그래서 사라이가 아브람에게 말하였다.
“내가 이렇게 부당한 일을 겪는 것은 당신 책임이에요.
내가 내 여종을 당신 품 안에 안겨 주었는데,
이 여종은 자기가 임신한 것을 알고서 나를 업신여긴답니다.
아, 주님께서 나와 당신 사이의 시비를 가려 주셨으면!”
6 아브람이 사라이에게 말하였다.
“여보, 당신의 여종이니 당신 손에 달려 있지 않소? 당신 좋을 대로 하구려.”
그리하여 사라이가 하가르를 구박하니, 하가르는 사라이를 피하여 도망쳤다.
7 주님의 천사가 광야에 있는 샘터에서 하가르를 만났다.
그것은 수르로 가는 길가에 있는 샘이었다.
8 그 천사가 “사라이의 여종 하가르야,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길이냐?” 하고 묻자, 그가 대답하였다.
“저의 여주인 사라이를 피하여 도망치는 길입니다.”
9 주님의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
“너의 여주인에게 돌아가서 그에게 복종하여라.”
10 주님의 천사가 다시 그에게 말하였다.
“내가 너의 후손을 셀 수 없을 만큼 번성하게 해 주겠다.”
11 주님의 천사가 또 그에게 말하였다.
“보라, 너는 임신한 몸
이제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여라.
네가 고통 속에서 부르짖는 소리를 주님께서 들으셨다.
12 그는 들나귀 같은 사람이 되리라.
그는 모든 이를 치려고 손을 들고 모든 이는 그를 치려고 손을 들리라.
그는 자기의 모든 형제들에게 맞서 혼자 살아가리라.”
15 하가르는 아브람에게 아들을 낳아 주었다.
아브람은 하가르가 낳은 아들의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였다.
16 하가르가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아 줄 때,
아브람의 나이는 여든여섯 살이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반석 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21-29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1 “나에게 ‘주님, 주님!’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22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주님, 주님! 저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일으키지 않았습니까?’ 하고 말할 것이다.
23 그때에 나는 그들에게,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내게서 물러들 가라, 불법을 일삼는 자들아!’ 하고 선언할 것이다.
24 그러므로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모두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
25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들이쳤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반석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26 그러나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지 않는 자는 모두
자기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27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휘몰아치자 무너져 버렸다.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28 예수님께서 이 말씀들을 마치시자 군중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29 그분께서 자기들의 율법 학자들과는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은 산상 설교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참된 우정은 내가 잘나갈 때보다 실패하거나 곤경에 놓였을 때 더욱 드러나는 경향이 있고, 참된 신앙은 평온함이 아니라 폭풍 속에서 드러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 삶의 반석은 말과 기도가 아니라 당신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데 있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폭풍이 우리 삶을 덮칠 때까지는 누구도 자신을 참신앙인이라 장담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시험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도 고통과 시련을 피할 수 없지만 반석 위에 굳건히 머무는 한, 그의 집은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것입니다. 자기 신심에 도취하지 않도록, 자기 신앙에 대한 확신을 방패 삼지 않도록 깨어 있도록 합시다.
우리는 때때로 진심과 행동이 없는 말들로 주님 앞에 나서지는 않는지요? 하느님과 우정의 친교를, 생명의 관계를 나타내는 길은 그분의 뜻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삶입니다. 하느님에 대하여 아름답게 말하거나 성경을 잘 설명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며 그분의 현존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입니다. 산상 설교의 결론은 ‘듣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루카 11,28). 우리 공동체는 기도와 실천, 찬양과 행동의 균형을 잘 지키고 있나요? 우리 공동체를 지탱하는 ‘반석’은 무엇인가요? 삶에서 시련을 피하게 해 달라고 기도드리기보다 주님의 말씀을 마음 안에 진실하게 받아들여 그 말씀을 뜨겁게 실천하는 사람이 되도록, 그리하여 삶의 폭풍 속에서도 우리의 신앙이 무너지지 않도록 은총을 청합시다.(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민원을 귀찮은 일로 생각하는 경향을 경계해야 합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이재명 대통령께서 국무회의에 배석한 국무위원들에게 하신 말씀이 제게 큰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말씀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수많은 민원들이 각 부처로 올라옵니다. 민원을 귀찮은 일로 생각하는 경향을 경계해야 합니다. 민원들 가운데 정당한 민원은 가급적 뒤로 미루지 말고 즉각 즉각 해결해드릴 수 있도록 노력해주십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민원에 대해서는 책임자들이 직접 당사자들과 직접 만나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불가능한 이유에 대해서 명확하게 설명해 주십시오.”
우리 교회 공동체도 귀담아 듣고 반성하고 성찰해봐야 할 부분입니다. 저도 작은 공동체와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이런저런 민원을 자주 접수합니다. 돌아보니 민원에 대해서 귀찮아 하는 경향이 있었고, 때로 무시하고, 때로 자꾸 뒤로 미루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오늘부터라도 정당한 민원은 미루지 말고 즉각즉각 대처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다보니 하루 온 종일 바빴습니다. 진입로 도로를 보수했습니다. 204호 전구를 교체했습니다. 변색된 변기도 교체하고, 문짝도 수리했습니다.
오늘 주님 권고 말씀이 유난히 제 가슴을 찌릅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해서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
거룩하고 선한 의지가 머리와 가슴에만 머무르지 않고, 발까지 내려오도록 각고의 노력을 다해야겠습니다. 그래서 요즘 저는 조금이라도 실행하는 사람이 되자며 나름 발버둥 쳐야 하겠습니다.
호주머니에 쏙 들어갈 작은 노트 하나와 볼펜을 늘 지니고 다니다가, 그때그때 떠오르는 꼭 처리해야 할 일들, 미리미리 대처해야 할 일들, 읍내 나가면 잊지 말고 사와야 할 물품들을 열심히 적습니다. 실행한 사항은 하나하나 지워 나갑니다.
그러나 좀 더 노력할 측면이 있는 듯 합니다. 결심이나 과제들이 꼭 외적인 것들, 일과 관련된 것들뿐만이 아니라 영적인 측면으로 넘어가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이런 면에서 눈여겨볼 인물이 있습니다. 저희 살레시오회 3대 총장 필립보 리날디 신부님(1856~1931)입니다.
그는 연초가 된다든지 연례 피정 끝에는 반드시 몇 가지 구체적인 실천 사항을 수립하고 자신에게 적용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습니다. 서원이나 서품, 피정 등 영적으로 중요한 순간마다, 한 단계 더 성장하기 위해 결심에 또 결심을 계속했습니다.
1889년 필립보 리날디 신부가 스페인 원장으로 발령나자 이런 다짐을 했습니다. “앞으로 청소년들에게 더 따뜻하게 대하겠습니다. 더 자주 그들과 대화하겠습니다. 가능하면 더 자주 그들 가운데 머물겠습니다.
관구장으로 임명되었을 때는 필립보 리날디 신부는 이렇게 결심했습니다. “앞으로 더 겸손해지고, 더 친절해지고, 더 신중해지고, 더 자애로워지겠습니다. 더 이상 거친 태도를 보이지 않겠습니다. 지치거나 서두르는 모습을 보이지 않겠습니다.” 이런 계속된 결심들이 그를 더 따뜻한 사람, 더 성숙한 사람으로 변모시켰습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며칠 전 병자성사를 다녀왔습니다. 형제님은 의사에게서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병자성사를 받으시면서 형제님은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자기의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홀로 남게 될 아내가 걱정되어서 그렇다고 하셨습니다. 그 아내는 30년 넘게 투석을 받고 계신데, 그동안 형제님이 함께하며 매일 투석을 도와 오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자신이 떠나면, ‘아내를 도와줄 사람이 있을까?’ 그 걱정에 눈물이 나셨다는 겁니다. 저는 형제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예전엔, 이 성사를 ‘종부성사’라고 불렀지만, 지금은 ‘병자성사’라고 부릅니다. 하느님의 자비가 임하는 시간이고, 성령께서 힘과 평화를 주시는 시간입니다.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지만 10년을 더 사신 분도 계셨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결국 우리의 생명은 하느님 손에 달려 있고, 하느님께서 이끌어 주신다고 위로해 드렸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기도하면서 형제님과 그 가정 위에 하느님의 평화가 함께하시길 청했습니다.
지금 우리의 신앙은 마카베오 하권의 신앙과 사상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마카베오 하권은 우리 신앙의 두 가지 교리를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부활 신앙’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느님의 심판’입니다. 오늘은 마카베오 하권에서 드러나는 신학 사상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이 책은 단순한 역사 이야기가 아닙니다. 박해 속에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킨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 신앙이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먼저, 이 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부활에 대한 믿음입니다. 7형제와 그 어머니가 박해 속에서 목숨을 잃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그들은 죽음 앞에서도 “하느님께서 다시 살리실 거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니까 이들은 단지 이 세상 삶만 바라본 게 아니라, 죽음 너머의 삶, 다시 살아날 그날을 믿었습니다. 이건 단순한 희망이 아니라, 신앙이었습니다. 그리고 순교자들의 고통을 보면, 그냥 억울하게 죽는 게 아닙니다. 자신들이 고통을 받음으로써 민족 전체가 정화되고, 하느님께 돌아가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자기 고통이 누군가를 위한 대속이 될 수 있다는 신앙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도 이어지는 개념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건, 죽은 이를 위한 기도입니다. 유다 마카베오가 전쟁터에서 죽은 병사들을 위해 속죄 제물을 바칩니다. “혹시 그들에게 죄가 있었을지 모르니,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자”라고 말합니다. 이 장면은 우리가 지금도 연미사를 드리고, 연도 바치며 죽은 이를 기억하는 이유를 잘 설명해 줍니다. 하느님께서는 살아 있는 이들뿐 아니라, 이미 세상을 떠난 이들도 기억하고 계신다는 믿음이 여기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은 성전과 율법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깁니다. 하느님께서 함께하시는 장소, 바로 성전이 더럽혀졌을 때는 눈물을 흘리고, 그것을 다시 정화했을 때는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성당이 왜 중요한지, 성체가 왜 소중한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또 하나 인상적인 부분은, 하느님의 기적적인 개입입니다. ‘천사가 나타나고, 기적이 일어나고, 하늘에서 불이 내려온다.’라고 합니다. 이런 표현을 보면, 하느님이 우리를 그냥 내버려두시는 분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힘든 시기에도 역사 안에서 함께하신다는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카베오기 하권은 가정과 공동체의 책임을 강조합니다. 우리도 부모로서, 선생으로서, 신앙 선배로서 다음 세대에게 믿음을 전해야 한다는 책임을 느끼게 합니다.
이 책은 성전과 율법, 공동체의 신앙, 하느님의 기적적인 개입을 강조합니다. 천사가 나타나고, 하늘에서 불이 내리는 장면들이 나옵니다. 하느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의 역사 안에 개입하시는 분이십니다. 특히 감동적인 장면은 일곱 형제의 어머니입니다. 자녀들을 끝까지 신앙 안에서 지켜내는 모습. 우리도 부모로서, 선생으로서, 선배로서 다음 세대에게 신앙을 전해야 한다는 책임을 다시금 느끼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다.” 그렇습니다, 듣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실천하는 신앙. 그 신앙이 바로 반석 위에 지은 집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단지 입술에서 머무르지 않고, 실제 삶으로 이어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병자성사를 받으며 눈물 흘리던 형제님처럼, 가족을 생각하고, 이웃을 생각하고, 하느님의 뜻에 귀 기울이는 그 삶. 그 삶이야말로 부활의 신앙이고, 하느님의 심판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는 신앙입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가 믿고 있는 이 신앙의 반석 위에,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도록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닮아갑니다>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
나
당신을
믿으니
닮아갑니다
나
당신을
닮아가니
참으로
믿음입니다
나
당신을
희망하니
닮아갑니다
나
당신을
닮아가니
참으로
희망입니다
나
당신을
사랑하니
닮아갑니다
나
당신을
닮아가니
참으로
사랑입니다
오늘의 성인
성 비질리오 (Vigilius)
활동년도 : +405년
신분 : 주교, 순교자
지역 : 트렌토(Trento)
같은이름 : 비길리오, 비길리우스, 비질리우스
트렌띠노의 주요 수호성인이 성 비질리오이다.
로마귀족인 그는 트랜띠노에서 태어났고, 아테네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후 385년에 트랜띠노의 주교가 되었는데, 밀라노 대주교이던 성 암브로시오에게 보낸 그의 편지가 남아 있다.
이 편지에는 그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당한 여러가지 어려움을 적었고, 또 순례에 관한 의견도 나온다.
또 성 시지니오와 성 마르띠리오 그리고 성 알렉산델의 순교록을 적었다.
그는 렌데나 계곡으로 선교하던중, 사투른 신상을 파괴하여 돌을 맞고 순교하였다.
성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Josemaria Escriva)
신분 : 설립자, 신부
활동연도 : 1902-1975년
같은이름 : 발라게르, 에스끄리바, 요셉마리아
성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는 1902년 1월 9일 에스파냐의 바르바스트로에서 아버지 호세 에스크리바와 어머니 마리아 돌로레스 알바스의 여섯 자녀 중 둘째로 태어나 그 해 1월 13일에 세례성사를 받았다. 그의 부모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굳건한 신앙과 그리스도인다운 덕행, 잦은 고해성사와 영성체, 기도를 향한 굳은 의지, 동정 마리아께 대한 신심에 기초한 삶의 모범을 통해 그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1917-1918년 겨울에 호세마리아는 자신의 미래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어떤 일을 경험했다. 그 해 성탄절에 로그로뇨에는 많은 눈이 내렸는데, 어느 날 그는 눈 위에 얼어붙은 발자국을 보았다. 그것은 맨발의 카르멜회 수도자들이 남긴 것이었는데, 그것을 보고 호세마리아는 자신이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어떻게 희생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일상적이거나 비범한 분야 모두에서 풍부한 은총을 주셨다. 그는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교회와 신자들에 대한 봉사를 통해 많은 열매를 거두었다. 1928년 10월 2일 마드리드에서 피정을 하던 호세마리아 신부는 지난 몇 해 동안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내적인 움직임을 기록했고, 그러면서 어렴풋이 알던 자신의 소명을 보다 분명히 깨닫게 되었다.
그 순간 이후 호세마리아는 자신의 모든 힘을 쏟아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개인적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남녀들이 자신의 사명을 완성하도록 양육하는데 헌신하였다. 그는 자신을 혁신가나 개혁가로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에게 압도되고 교회에 지속적인 활력을 주시는 성령에 의해 쇄신되어 이웃을 사랑하고 일상생활 안에서 거룩함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 오푸스 데이의 존재 이유라고 보았다.
이렇게 오푸스 데이가 그 첫 걸음을 내디디는 동안 1936년에 에스파냐 내전이 발발했다. 마드리드에서도 심각한 종교 박해가 일어났지만 호세마리아는 기도와 인내 그리고 사도적 열정으로 이에 맞서 나갔다. 이 시기는 교회에 고통의 시간이었지만 동시에 영성과 사도직이 성장하고 희망이 빛을 발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1939년 내전이 끝나자 그는 에스파냐 반도 전역에서 사도직 활동에 대한 새로운 활력을 불러일으켰다.
1943년 그는 미사를 집전하면서 오푸스 데이의 정신을 교구사제들의 삶에 육화시키기 위한 성 십자가의 사제회를 오푸스 데이 안에 설립할 필요성을 느꼈다. 1944년 6월 25일 세 명의 기술자가 사제로 서품되었는데, 그들 중 한 명인 알바로 델 포르틸로는 설립자를 계승하여 오푸스 데이의 대표가 되었다. 성 십자가의 사제회는 교구사제와 사제직을 준비하는 이들을 위한 영성적 형성과 활동에 있어서 지역교회의 사목자들과 조화를 이루었고, 교구사제로 머물며 오푸스 데이의 정신을 실천하는 성 십자가의 사제회에 참여하는 교구사제들은 더욱 많아졌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호세마리아는 오푸스 데이의 정신을 보편교회 전역에 전파하기 위해 다른 나라에서의 사도직 활동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1946년 그는 오푸스 데이에 대한 교황청의 승인을 얻기 위해 로마로 본부를 옮겼고, 1947년 2월 24일 교황 비오 12세(Pius XII)로부터 ‘데크레툼 라우디스’(특별법)에 의거해 가승인을 받았으며, 3년 후인 1950년 6월 16일 교회의 최종 승인을 받아 교황청 직속 재속 수도회가 되었다. 이로써 자신의 노동과 자선 그리고 기도로써 오푸스 데이의 사도적 활동에 동참할 마음을 가진 모든 사람들, 비가톨릭 신자와 심지어 비그리스도인까지도 오푸스 데이의 협력자로 참여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는 일상생활을 통해 성성(聖性)을 얻을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었다. 필요한 것은 기도하기 위해서 그리고 더 깊은 내면의 생활을 위해 투쟁하는 것뿐이었다. 우리가 이렇게 살 때 모든 것은 기도가 되고 또한 모든 것은 우리를 하느님께로 이끌기 때문이다. 즉 모든 종류의 일이 기도가 될 수 있고, 또 실제로 기도가 되고 사도직으로 이어진다. 이렇듯 호세마리아가 생각한 사도직의 기초는 세상 한가운데서 얻은 그의 내적인 체험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는 기도와 성사로써 자라나고 성체성사를 위한 강렬한 사랑으로서 표현되었다.
그 당시 오푸스 데이는 이미 모든 대륙에 전파되었고, 80개 나라에서 6만여 명이 넘게 활동하고 있었다. 그의 선종 이후 많은 사람들이 교황에게 그의 시복시성을 청했고, 1981년 심사가 시작되었다. 1992년 5월 17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는 수많은 순례자들 앞에서 그의 시복식을 거행했고, 2002년 10월 6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그를 성인품에 올렸다. 교황은 30만 명이 운집한 시성식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일상생활의 중심이자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 새 성인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성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 데 발라게르 이 알바스로도 불린다.
성 다윗 (David)
활동년도 : +5세기
신분 : 은수자
지역 : 테살로니카(Thessalonica)
같은 이름 : 다비드, 데이비드
그리스의 테살로니카에서 태어난 성 다윗은 작은 은둔처에서 은수자로서 또 영적 지도자로서 70년간을 살며 많은 제자들을 불러 모았다. 그의 유해는 1054년에 이탈리아의 파비아(Pavia)로 이장되었다.
성 안텔모 (Anthelm)
활동년도 : 1107-1178년
신분 : 수도승, 주교
지역 : 벨리(Belley)
같은 이름 : 안뗄모, 안뗄무스, 안텔무스
사부아(Savoie)의 샹베리 근교 시냉 성에서 출생한 성 안텔무스(Anthelmus, 또는 안텔모)는 교구사제가 된 후 1137년에 카르투지오회 수도자가 되었다. 그는 그랑드 샤르트뢰즈(Grande Chartreuse)로 파견되었다가 1139년에 제7대 원장으로 피선되었으며, 그곳을 카르투지오회의 모원으로 성장시켰다. 그는 카르투지오회의 제1차 총회를 소집하였으며, 복자 요한 스파니아드로 하여금 수도회의 회칙에 따라 살려는 여성들을 위하여 회헌을 마련토록 하였다. 1152년까지 총장직에 봉직하다가 은수자로 살았으나, 1154년부터 다시 2년 동안 포르트의 원장을 맡아야만 하였다.
그랑드 샤르트뢰즈로 돌아온 안텔무스는 황제 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의 후원을 받는 대립교황 빅토르 4세(Victor IV)에 대항하여 싸우던 알렉산데르 3세(Alexander III) 교황을 위하여 대대적인 활동을 전개하였다. 안텔무스는 1163년에 벨리의 주교로 임명되자 교구 개혁을 광범위하게 착수하였으며, 성직자의 독신제를 강화하고 잘못한 이들을 징계하였다. 훔베르투스에 의해 투옥된 어느 사제가 살해되자 그는 훔베르투스 3세를 파문하였다. 그는 또 헨리 2세와 성 토마스 베케트(Thomas Becket, 12월 29일) 사이의 분쟁을 조정하도록 교황청의 영국사절로 임명되었으나 불행하게도 가지 못하였다. 그는 만년에 나환자들과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일에 전념하다가 1178년 6월 26일에 운명하였다. 그의 임종 때 훔베르투스가 찾아와 서로 화해하였다고 한다
성 펠라지오 (Pelagius)
활동년도 : +925년
신분 : 소년, 순교자
지역 : 오비에도(Oviedo)
같은 이름 : 뻴라지오, 뻴라지우스, 펠라기오, 펠라기우스, 펠라지우스
성 펠라기우스(또는 펠라지오)는 오마이야드의 대제인 아브드-아르-라만 3세가 코르도바(Curdoba)를 통치하던 시대에 무어인들의 손에 죽었다. 그는 이때 10살의 소년이었다. 관리들은 이 소년의 신앙을 포기시키기 위하여 좋은 옷과 돈을 주고 훌륭한 말을 타게 해주었으나, 펠라기우스는 “모든 것이 다 싫다. 나는 그리스도인이었고, 그리스도인이며, 그리스도인으로 남을 것입니다” 하며 끝까지 버티었다고 한다. 결국 그는 여섯 시간 동안의 모진 고문을 견디다가 숨졌다. 그의 유해는 967년 레온(Leon)으로 모셨다가 985년에 다시 오비에도로 옮겨 안장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