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들의 성모 신심, 유아기적 신앙에 머물게 해
가톨릭교회의 마리아론은 '동정녀 성모 마리아'론이다. 교회는 줄곧 사제들에게 자신을 숫처녀에게 봉헌된 숫총각으로 여기라고 권고해 왔다. 여기엔 교회의 전통적인 여성혐오주의 혐의가 풍겨 나온다. 예수를 낳았지만 여전히 동정녀인 '이상화된 어머니'는 독신자인 사제들이 안전하게 안길 수 있는 피난처이자, 마리아보다 못한 여성들 대신에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되었다.
사제들은 평생 마리아의 '자녀'가 된다고 여김으로써 심리적으로 발육부진에 시달린다고 어떤 심리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사제들은 마리아의 자녀로 살아가면서 유아기적 신심을 유지하며, 결국 강론조차 단순해지고 연중 내내 마리아 축일과 신심에 몰두하느라 지적 모험심은 안중에 없게 된다. 하루하루 '착한 자녀'로 살면서 어머니 생일이나 기념일을 잘 챙겨 드리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다.
이런 유아기적 태도는 신학생들에게 더욱 강력한데, 최근 서울대교구에서 동성고등학교가 자립형 사립고가 되는데, 소신학교 과정을 도입한 것은 이런 태도를 강화할 위험이 크다. 충분히 세상 속에서 어른으로 성장할 기회가 자칫 온실 같은 신학과정 안에서 유실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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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saccio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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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권 역시 유사신앙 선동
교회의 위계질서가 위태로워질수록 교회적 차원에서는 성모 신심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인천교구에서는 교구설정 50주년을 준비하면서 '바다의 별' 마리아상을 특별 제작해 교구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하며, 본당마다 순회시키고 있고, 묵주기도 1억 5천만 단 봉헌하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게다가 기념묵주도 제작해 신자들에게 1만 원에 팔고 있다. 수익사업을 겸한 이 성모 신심 운동은 50주년이 되는 2011년까지 교구 신자를 50만 명으로 늘리자는 지향을 담고 있다.
최근 나주 성모 문제로 광주대교구와 수원교구, 인천교구 등 교구마다 신자들 단속에 나서는 상황에서, 오는 추계 주교회의에서는 가계치유 등 유사신앙 또는 이단에 대한 문서가 나올 예정이지만, 성모 신심과 관련한 교회의 흐름 역시 전통적인 가톨릭신앙에 들어맞는지 의심스러운 경우가 많다. 신자들을 우매한 어린이로 취급하거나 단순반복적인 개인영성으로 몰아가는 예는 단죄의 대상이 되는 신심 형태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1억 5천만 단'이라는 목표가 그렇듯이, 신자 '50만 명' 목표라는 설정이 그러하듯이 단순한 양적 크기가 신앙의 척도가 되고, 교구 성장의 잣대가 되는 현실은 '복음 없는 복음화' 현상과 맞물려 있다고 여겨진다.
한편, 현대에 들어와서 선포된 교황청의 마리아 교리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아서, 이런 신앙유형을 강화시키고 있다. 비오 9세 교황은 '성모의 원죄 없으신 잉태'를 선포했고, 비오 12세 교황은 '성모승천'을 선포했으며, 교회 전례력은 성모 관련 축일로 채워지고 있다. 지역교회와 본당이 앞다투어 성모 마리아를 자신들의 주보로 선언하는 상황에서, 이런 대중적 인기를 얻는 마리아 신심을 신학자들도 어쩌지 못하고 있다.
마리아는 교회의 보호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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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2년 5월 12일, 요한 바오로 2세는 파티마를 순례하여 성모 발현 65주년을 기념했다. 이때 교황은 동정 마리아의 중재 하심에 감사드리고, 만백성을 마리아의 티없이 깨끗하신 성심께 새롭게 봉헌했다. |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파티마의 성모께서 자신을 암살자의 손에서 구해주셨다는 확신을 지니고 있었다. 그 사건이 일어난 날이 곧 파티마의 성모발현을 기념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사건 직후에 교황은 파티마를 순례했으며, 암살자 메메트 알리 아그카의 총구에서 나온 총탄은 파티마 성지에 있는 동정 성모상의 왕관 위에 안치되어 있다.
지나친 성모 신심에 대해 도미니코회의 신학자인 이브 콩가르는 "교회가 성령의 자리에 마리아를 올려놓았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마리아에게 올려진 수많은 영광된 칭호와 축일은 현대사회에서 교황권이 무너져 가던 시대의 산물이다. 즉, 세속권력까지 장악해 왔던 교황이 바티칸시국 안의 범위에서만 종교적 영적 지위를 보장받을 수 있었던 시대에 등장한 것이다.
서구에서 5세기 전까지는 성모 마리아를 경축하는 교회의식이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는 마리아를 교회의 보호자로 숭상하고 있지만, 아우구스티누스조차 설교에서 "예수가 십자가 상에서 돌아가시고 마리아는 요한의 손에 맡겨졌다"고 표현한다. 예수께서 당신 제자들에게 홀몸이 된 여자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음을 일깨워주고 있다는 것이다. 즉, 마리아가 교회/제자를 보호하는 게 아니라 교회/제자들이 마리아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리아는 이렇게 새로운 가족인 교회 안으로 영입된다.
마리아는 은총의 중재자이며 신적인 황후
그러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에서 '카나의 혼인 잔치'를 예로 들며 성모 마리아를 '모든 은총의 중재자'라고 말한다. 예수는 아직 자기 때가 오지 않았음에도 마리아의 전구로 예수가 뜻을 굽히고 기적을 이루었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예수가 혈육지정으로 하느님이 정하신 때를 바꾸었다는 것은 "제 뜻대로 마시고 당신 뜻대로" 하시라고 탄원했던 예수의 모습을 뒤집는 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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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25년~1274년 3월 7일) | 물론 동방교회에서는 궁중예식과 존칭을 받아들여 마리아를 '황후'로 만들었고, 성화상(이콘)을 통해 마리아를 떠받들었다. 서방에서는 봉건주의에 영향을 받아 마리아를 대군주에게 대신 청원하는 옹호자가 되었다. 영주의 저택에 접근할 수 없었던 농노들처럼 보잘것없는 사람들을 위해 마리아가 영주/성부 또는 성자에게 심부름하러 다니도록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마리아의 처녀막을 손상하지 않고 출산되었다는 '처녀출산' 이야기가 퍼져 나갔다.
한편, 13세기에 대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설을 강력히 반대했다. 만일 마리아에게 원죄가 없었다면, 마리아는 다른 사람들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필요치 않았을 것이고, 그러면 그리스도가 모든 사람의 구세주라는 교리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또한 마리아가 원죄로 말미암은 인간조건을 면제받았다면, 원죄의 결과인 고통과 노쇠, 죽음을 어떻게 경험할 수 있었겠느냐는 반문이 이어진다. 결국 예수가 고통을 받은 것이 참하느님이며 동시에 참'사람'이었기 때문이라면, 마리아 역시 예수와 마찬가지로 인성 위에 신성(神性)이 얹혀져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된다.
성모 대발현의 시대 돌입.. 정치적으로 이용돼
이 연장선에서 19세기에는 '성모 대발현의 시대'가 열렸다. 비오 9세는 즉위 직후 라 살레트에 성모가 발현하자, 1854년에 원죄 없으신 잉태 교리를 확정하고, 1858년 루르드의 성모가 "나는 원죄 없이 잉태된 성모다."라고 말했다 해서 자신의 결정이 옳음을 주장했다. 비오 9세는 그 후 중요한 행사나 문서발표 시 원죄 없으신 잉태 성모 축일인 12월 9일에 맞추려고 노력했고, 현대세계의 흐름을 경고한 <오류목록>(1864년)을 선포할 때도, '교황무류성'을 선언하게 될 제1차 바티칸공의회(1869년)를 개막한 날도 12월 8일이었다. 공의회 당시 국무원장이 '교황무류성'을 우려하자, "내 곁에 복되신 동정녀가 계신다"라는 말로 대신함으로써, 성모 교리를 교황권 강화에 이용했다.
한편, 러시아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라는 '푸른 군대'뿐 아니라 파티마의 성모(1917년) 역시 공산주의와 싸우고자 마리아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사례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파티마의 성모 신심이 강했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조국 폴란드에서 공산주의와 싸우던 자신의 체험을 성모 신심과 연결지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97년에 마리아를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인류의 공동구세주'로 격상시키기 위해 23명의 학자로 구성된 특별위원회를 설치한 적도 있다.
그러나 복음서에서는 마리아가 예수를 낳은 육체적 어머니라는 남다른 존재라는 이유로 칭송받지 않는다. 마리아는 "당신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소서"라는 응답으로 신자들의 몸인 교회에 통합되었다. 예수가 설파했던 새로운 가족인 교회공동체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 여인이 예수께 "당신을 배신 태와 당신에게 젖 먹인 가슴은 복됩니다."하고 소리치자, 예수는 "오히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들은 복됩니다."라고 대답하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마리아는 신자들 위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그들 가운데 존재하시는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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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드로 보티첼리의 '성모의 대관식', Oil painting:Coronation of the Virgin with the Saints John the Evangelist, Augustine, Jerome and Eligi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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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성령 안에서 맺은 우리의 자매
루카복음서의 마니피캇(마리아의 노래)에서 마리아는 왕비나 황후가 아니라 성령 안에서 맺은 우리의 자매이며, 하느님의 권능을 휘두르는 자가 아니라 비천한 여인으로 소개된다. 그녀는 교황청과 억지스런 유사 신심 단체에서 내뱉는 입에 발린 아부를 거부한다. 그런 허황된 칭호에 거리를 둔 고결한 인격을 지녔다. 마리아의 노래는 권좌에 앉은 권세가들을 내치고, 부유한 자를 빈손으로 보내며, 오히려 비천한 이를 끌어올리고 먹을 것을 나누어 주는 하느님의 손길을 찬양하고 있다. 이게 바로 예수의 어머니로서 신자들을 지배하는 대신에, 그들 가운데서 일치하는 마리아의 진정한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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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황의 삼층관(Tiara). 바오로 6세는 1965년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폐회한 후부터는 일절 교황관을 착용하지 않았으며, 스스로 자신의 교황관을 경매에 내놓아 그 값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기부하였다. 교황 요한 바오로 1세(1978) 역시 권위적인 것을 싫어해 대관 미사를 즉위 미사로 바꾸고, 교황관도 세속적 권력을 상징한다고 사용하지 않았다. |
그러나 보티첼리의 그림인 <성모의 대관식>은 교황의 삼층관을 쓴 하느님이 천상에서 마리아의 머리에 왕관을 씌워주고 있다. 지상에서 교황이 마리아를 들어 높이는 현실을 보여주는 동시에 교황을 하느님에다 비유하는 광경이다. 따라서 전통적으로 마리아 신앙은 민간의 소망을 반영하면서, 동시에 교황권의 강화에 이용됐다.
또한, 오르카나의 작품인 <성령강림>은 성령이 혀 모양으로 불꽃으로 나타나는데, 사도들은 성령을 바라보지 않고 그들 한가운데 자리 잡은 동정녀 마리아에게 무릎을 꿇고 예를 올린다. 심지어 천사들도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에게서 등을 돌리고 마리아를 경배한다. 이처럼 성령 대신에 마리아가 신격화되고 있는 것은, 세례받은 모든 그리스도인을 이끄는 성령의 자리에 성모 마리아가 자리 잡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교회 안에 여성의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성부와 성자는 아버지와 아들로 남성화되어 있다. 그래서 일부 여성신학자들은 성부와 성자를 '아버지와 딸'로 대체하자는 움직임도 있었으나, 오히려 세 번째 위격인 성령을 여성화하자는 논의가 나오고 있다. 불교에서 관세음보살이 여성으로 나타나듯이 말이다. 그래서 신자들이 남성적 상징의 성부와 성자에게 기도할 뿐 아니라, '그녀'(She)인 성령에게도 기도를 드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편, 마리아를 본래 자리로 되돌려 드리자는 이야기도 신학자들 가운데 나오고 있다. 마리아를 황후의 자리에서 소박한 나자렛 처녀의 자리로, 파란만장의 우리 어머니의 자리로, 늙고 기운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삶이 준 지혜로 교회 안에 머무는 할머니인 마리아를 다시 발견하자는 것이다.
그분의 발치에서 경배가 아닌 자잘한 일상을 나누자는 것이다.
그분의 손을 편안히 잡아끌고 사탕도 건네주며 지혜를 나눠달라고 조르는 아이처럼 말이다. 그분과 더불어 아드님 예수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뜻을 새겨보자는 것이다. 그분과 그분의 아드님은 평생 권력에 오르신 적이 없건만, 후대의 그리스도인들이 제 필요에 따라서 왕관과 홍포를 걸쳐주고 손가락을 빠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마리아는 주님의 어머니이면서, 섬기러 오셨다는 예수처럼 우리 위에 계시지 않고 우리 곁에 머무시길 원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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