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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다해 7월2일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청주] 믿고 맡기십시오. -
청주 교구 감곡 매괴 성모 성당 반 영억 라파엘 신부
† 제1독서 :창세 19, 15 - 29
† 복음 : 마태 8, 23 - 27
★ 타락한 성읍 소돔이 파멸되어 갈 때 하느님께서는 롯과
그의 가족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그 성읍에서 벗어나도록
천사들을 보내셨다. 그러나 롯의 아내는 천사의 말을 어기고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어 버린다(제1독서).
★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를 타고 호수 한가운데에 있을 때
큰 풍랑이 일었지만, 예수님께서는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공포에 떨며 그분을 깨우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부족한
믿음을 타이르시며 풍랑을 잠재우신다(복음).
◈ 오늘의 묵상
제주도 북쪽 섬인 추자도의 공소 봉헌식 때문에 제주교구의
주교님을 비롯하여 신부님들과 수녀님들, 교우들이 배를
타고 그곳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추자도에서
제주도로 되돌아올 때 배가 맞바람을 맞으면서 크게
흔들렸습니다. 점점 파도가 거세지자 배는 더욱 심하게
흔들렸고, 몇몇 사람은 구토까지 하였습니다. 그때 저는
문득 이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배에는 주교님, 신부님들, 수녀님들이 계시고, 그 수가
제주교구 성직자와 수도자 전체의 3분의 2나 된다. 또 각
본당에서 기둥 역할을 하는 교우들이 탄 배이다. 만일 이
배가 도중에 사고라도 난다면 앞으로 제주교구는 어떻게
될까?’
이러한 염려 속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기도뿐이었습니다. 주님께 매달리는 것 말고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우리 교회 전체가 이처럼 파란만장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동안 교회는 거센 풍랑을 만나 크게
흔들리기도 했고, 그 안에서 분열과 두려움, 걱정거리도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교회가 수많은 위기를 이겨 내고서
본연의 모습을 지금까지 간직해 오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는 주님께서 몸소 교회의
선장으로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 교회를 보살피신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강한 증표입니다. 풍랑 속에서 겁을 먹고
헤매던 제자들이 예수님을 통하여 평화를 찾은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의 역사를 주관하고 계시는 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우리 가정, 우리가 속한 모든 공동체를
주관하고 계시는 분 또한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주님의 뜻을 이루게 해 주십사고 기도하며 매달리는
것입니다.
- 매일 미사 -
◈ [청주] 믿고 맏기십시오. /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 성모성당
2013년 다해 7월2일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 마태오 8,23-27
믿고 맡기십시오.
믿음은 세상을 충만케 하시는 하느님을 바라보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알기 위해서라도 먼저 믿으면 하느님의 능력을 보게
됩니다. 보게 될 뿐 아니라 그분의 모든 것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굳센 믿음을 간직하십시오. 믿음이 큰 만큼 하느님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믿고 의탁하는 만큼 강하게 만납니다.
풍랑이 이는 바다에서 한 배를 탔는데 어떤 이는 잠을 자고
있고, 어떤 이는 겁에 질려 허둥거립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를 믿고
있었기에 무서울 것이 없으며 절박한 생존의 난국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분께는 위기는 아예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주님, 구해 주십시오.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 하면서 예수님을 깨운 것을 보면 아직 그들의
믿음이 완전하지 못했습니다. 주님 품 안에 있었으면 아무
걱정할 것이 없었을 텐데 말입니다. 믿는다고 하였지만 철저히
맡기지 못했던 제자들입니다. 아마 우리도 같은 위험에
처했더라면 모든 희망을 잃고 절망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어려움에 맞서 주님께 살려달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허둥대던 제자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권위를 가지고 선포한
주님의 가르침에 놀랐고, 풍랑과 파도를 지배하는 주님의
능력을 보면서 놀랐습니다. 이제는 단순한 무서움의 차원을
넘어서 “이분이 어떤 분이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하며 경외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믿음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접하면서 커가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서
따른다기보다 따름으로써 성장합니다.
혹 어려움에 직면할 때 아직도 허둥대고 있다면 믿음의 부족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근심 걱정을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돌보시기 때문입니다(1베드5,7). 주님께서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마태6,25.34)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걱정일랑 주님께 떠맡기고 그 안에서 주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잊지 않으십니다.
시편저자는 말합니다. “네 길을 주님께 맡기고 그분을
신뢰하여라. 그분께서 몸소 해 주시리라”(시편37,5). 성경을
보면 롯의 가문에 주님께서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그런데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 되오” 하는 천사의 말을 듣지
않고 뒤를 돌아보다 소금 기둥이 되어 버렸습니다(창세19,26).
믿지 못한 결과입니다. 민수기에 보면 모세는 주님의 말씀대로
구리뱀을 만들어 그것을 기둥 위에 달아 놓았고 뱀이 사람을
물었을 때, 그 사람이 구리 뱀을 쳐다보면 살아났습니다
(민수21,9).
주님께서는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여인이 제
젖먹이를 어찌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이사49,15) 그러므로 믿으십시오! 어떠한
처지에서든지 주님께서는 우리를 돌보십니다. “믿음은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마치 생명이 하느님의 선물이고 역사가 하느님의
선물인 것처럼 말입니다”(까롤로 까레또). 믿음 안에서 능력의
주님을 만나는 오늘이기를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 청주 교구 감곡 매괴 성모 성당 반 영억 라파엘 신부 -
◈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내 인생은 나의 것?
2013년 다해 7월2일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
복음 : 마태오 8,23-27
< 내 인생은 나의 것? >
어렸을 때, 김현준과 민혜경이 부른 ‘내 인생은 나의 것’이란
노래를 좋아했습니다.
“내 인생은 나의 것, 내 인생은 나의 것, 그냥 나에게 맡겨
주세요. 내 인생은 나의 것, 내 인생은 나의 것, 나는 모든 걸
책임질 수 있어요. ... ”
이렇게 흥얼대면서 저도 모르게 그 노래의 내용까지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부모님의
간섭으로 나이가 들어서도 스스로 자신의 삶을 책임지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어려서부터 나의 인생은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준 이 노래에 감사합니다.
사제가 되어서는 예수님께서 부모, 형제들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당신 제자가 될 자격이 없다는 말씀을 깊이 새겨 특히 어머니의
간섭을 많이 배제하려 노력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처음엔 제가
있는 성당에 와서 제가 성당에서 말썽 안 부리냐고 신자들에게
묻고 다녔다는 이야기까지 들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제가 유학 할 때 아들이 보고 싶을 때는 인천 공항에
전철을 타고 왔다 갔다 하시기까지 하셨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면 저도 마음이 짠해 지지만 또 사제가 어머니의 정에
끌리면 안 되기 때문에 가끔은 매몰차게 대할 때도 있었습니다.
한 번은 성당에 찾아온 어머니를 만나지 않고 그냥 돌려보낸
적도 있었고, 어머니는 내려가시면서 눈물을 흘리셨다고 합니다.
저도 마음이 아팠지만 또 그런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유학을 다 마치고 한 달 간 유럽을
여행하면서 돈을 다 쓰고 무일푼으로 돌아왔을 때, 차가
필요하게 되었는데 저는 차를 살 돈이 없었습니다. 대출을
받아가면서까지 차를 사기는 원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전에
어머니가 차를 원하면 당신이 사주겠다고 한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동안 모아놓은 돈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차가 없이 지내면서도 어머니께 먼저 차를 사 달라는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내 인생에 관여하지 못하게 만들어놓고
이제 와서 큰돈을 요구할 ‘염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차 없이 지내는 제가 안쓰러웠는지 어머니께서 먼저
차가 안 필요하느냐고 물으셨고, 저는 마지못해 받는 것처럼
어머니 귀한 돈을 받아 차를 샀고 지금까지 잘 타고 다니고
있습니다. 간섭하지 말아달라고 해 놓고 무언가를 청할 때,
우리가 ‘염치없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은 우리의 양심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건 그냥 ‘자존심’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아무리 간섭하지 말라고 해도 항상 줄 준비가 되어계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가장 두려웠던 때가 있다면
언제일까요? 예수님께서 돌아가실 때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고
또 큰 지진이 나고 성전 휘장이 찢어지고 무덤에서는 죽은
이들이 살아 나왔다고 성경은 전합니다. 너무나도 두려운
상황입니다. 어쩌면 유다인들은 자신들이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서 그런 일들이 일어났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또
어쩌면 그리스도께 잘못했다고 사죄하고 구해달라고 빌고
싶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도 염치가 있는데
자신들에 못 박아 죽인 하느님께 손을 내밀 수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자신의 손으로 어려움을 헤쳐 나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께 못질을 한 사람들을 위해서도 피를
흘리셨다는 것은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풍랑 속에서도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울 수 없었던 이유는 자신들을 구원해 줄 그 분을 그들
스스로 못 박았기 때문입니다. 배에서만은 자신들이 왕이기
때문에 그분이 자신들을 간섭하지 못하게 못 박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풍랑이 일어 위기상황이 왔다고 어떻게 염치없이
그분께 손을 내밀겠습니까? 정말 매 순간 그분께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이란 그분을 내 삶에 간섭하지 못하게 못 박지
않고 매사에 그분 간섭을 받은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그분
앞에서만은 내 인생은 내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우리 삶을 그분께 봉헌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봉헌했으면서
내 것만 찾다가는 어려운 상황에서 손을 내밀지 못하게 되어
두려움에 벌벌 떨어야 할 때가 자주 오게 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분을 못 박아놓고 혼자만 열심히 살아왔다고
하더라도 주저하지 말고 손을 내미십시오. 그분의 존재뿐만이
아니라 그분이 ‘사랑’이심을 믿는 것이 참 믿음입니다.
불란서 혁명 당시 어떤 어머니가 세 아들과 함께 집에서 쫓겨나
며칠 동안을 산 속과 들판을 헤매었습니다. 부인과 아들들은
나무뿌리와 풀잎을 먹고 연명했습니다. 사흘째 되던 날, 군인들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덩굴 속에 숨었습니다. 군인상사는 덩굴 속에
인기척이 잇는 것 같으니 찾아보라고 병사에게 명령했습니다.
한참 후에 어머니와 아이들이 끌려나왔습니다. 군인상사가
그들을 본 순간 그들이 굶어 죽기 직전에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군인 상사는 너무 측은해서 빵 한 덩어리를
어머니에게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굶주린 이리처럼 그 빵을 얼른 받아 세 조각으로
나누더니 아이들에게만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것을 본 군인
상사가 말했습니다.
“애들에게만 주고 자기는 안 먹는구나!”
그 옆에 있던 사병이 “아마 배가 안 고픈가 보죠”라고 말하자,
다시 상사가 하는 말이 “아니다. 어머니라서 그렇지”라고
말했습니다.
어머니를 믿는 것은 온전히 믿는 것이 아닙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믿어야 온전히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주고 또 주고
싶어 하십니다. 그 자비와 사랑을 믿는다면 자존심과 염치
같은 것은 바다에 내다 버리고 풍랑 속에서도 어렵지 않게
그분께 손을 내밀어야 할 것입니다.
- 수원 교구 오산 성당 전 삼용 요셉 신부 -
◈ [인천]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꽃 한 송이와 밥 한 그릇. 어떤 것이 더 중요할까요? 저는
솔직히 밥 한 그릇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카페에서 커피 마시는 사람들을 이해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카페의 커피 가격이 보통 식사 값보다 더 나가면
나갔지 들 나가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비싼 커피를 마시는
것이 사치로 여겨졌고,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물질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여유 있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난달, 어느 성당에 강의를 갔다가 저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교통상황이 어떻게 될지를 몰라서 일찍 강의하는 성당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길이 잘 뚫려서 너무 일찍
성당에 도착한 것입니다. 강의 시간까지 1시간 넘게 남았기에
성당 옆에 있는 카페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지고
있는 책을 읽다보니 갑자기 떠올려지는 생각들이 있는
것입니다. 얼른 메모하기 시작했지요. 자그마치 A4용지로
5~6장 정도의 글을 썼습니다. 기분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만약 커피 값이 아깝다고 이 카페가 아닌 식당에 들어갔다면
글을 쓸 수 있을까요? 또 만약 커피 값을 아끼겠다고 그 일대를
계속 걷고 있었다면 어떠했을까요?
그때 깨닫게 되었습니다. 꽃 한 송이와 밥 한 그릇이 있다면
둘 다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꽃 사는 사람을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금방 져서 버릴 수밖에 없는 꽃을
왜 사냐는 것이지요. 그러나 먹지 못하는 꽃 한 송이라 할지라도
그 나름대로 중요한 몫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 꽃을 보면서
희망과 꿈을 가질 수 있으며, 이로 인해 밥 한 그릇이 주지
못하는 행복을 얻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각자의 가치는 어떠할까요? 꽃 한 송이도
그렇게 소중하다면, 나의 가치는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가치를 이렇게 높이 생각하십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는 우리의 가치를 그렇게 높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못하는 존재로, 그래서 겁을 내면서 벌벌
떠는 존재로 생각하기만 합니다. 그러한 우리들을 향해서
주님께서는 큰 소리를 말씀하십니다.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렇기에 절대로 겁을 낼
필요가 없습니다. 나의 소중한 가치를 간직하면서 그 어떤
것도 소홀히 하지 않는 주님과 함께 한다는 굳은 믿음만 있다면
세상의 모든 풍파를 거뜬하게 이겨낼 수 있습니다.
많은 것을 탐하는 자는 항상 많은 것을 필요로 한다
(호라티우스).
항상 기뻐하십시오~~
행복한 삶
언젠가 아는 지인들과 남산에 올라간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하세요.
“저렇게 많은 빌딩들이 있는데, 제 빌딩은 하나도 없네요.”
금전적으로 어려움을 많이 겪고 계셔서 이런 소리를 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그런 빌딩을 소유하고 계신 분들을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습니다. 만약 모든 사람이 그런 빌딩을 가지고 있는데
나만 못가지고 있다면 아쉬운 불평불만을 간직하겠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게 많은 부를 소유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데 굳이
아쉬운 소리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들은
내가 가지고 있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늘 간직합니다.
여러분이 지금 가지고 싶은 것을 하나 말해 보세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능력으로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을 말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손에 넣지 못했다고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좌절에 빠진다면 어떨까요? 이것은 단순히 하나의 욕망에
불과하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즉, 자신의 욕망을 참고 자제할 때 행복의 길로 갈 수
있다는 것이지요.
제 마음이 복잡하고 힘들 때를 떠올려 봅니다. 내 안에 헛된
욕심과 쓸데없는 허영으로 가득 차 있을 때였습니다. 반대로 내
마음이 평화로웠을 때에는 욕심 대신에 나눔을, 이기심 대신에
사랑을 실천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욕심과 이기심을 물리치고, 나눔과 사랑을 실천하는 삶. 어쩌면
빌딩 몇 채를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행복한 삶이 아닐까요?
- 인천 교구 성소 국장 조명연 마테오 신부 -
◈ [수도회] 흔들리는 공동체
2013년 다해 7월2일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마태8,23-27
“주님, 구해 주십시오.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
<흔들리는 공동체>
몇 년 전 휴가 때의 일입니다. 홀로 밤낚시를 간적이 있습니다.
그날따라 강가 여기저기에 드믄드믄 앉아있던 ‘꾼’들이 단 한명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달도 뜨지 않은 한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저 홀로 앉아 있었습니다. 때맞춰 안개가 무럭무럭 피어오르니,
으스스한 ‘전설의 고향’ 분위기가 절로 났습니다.
처음에는 아무도 없는 것이 오히려 잘 됐다 싶었습니다. 그러나
밤이 점점 더 깊어가자 슬슬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여우 울음 비슷한 날카로운 소리가 제가 앉아있던
곳 뒤쪽에서 크게 들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소리와 함께 갑자기 잊고 있었던 갖가지 무서운 기억들이
되살아나면서 온몸에 소름이 확 끼쳐왔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콧노래를 부르며 멀쩡히 앉아있던 저는
폭풍처럼 밀려오는 두려움에 순식간에 마음의 평정을 잃고
말았습니다. 저는 대충대충 낚싯대를 정리하고 황급히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왔습니다.
보십시오. 바로 이것이 보편적인 인간의 본 모습입니다. 조금
전까지 멀쩡했었는데, 어제까지만 해도 마음이 태평양 같았었는데,
잠시 전까지 철옹성같이 든든한 사람이었는데, 순식간에 마음의
평정을 잃어버립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평온하던 마음이
두려움으로 가득 찹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제자들의 모습도 한번 바라보십시오.
웃기지도 않습니다. 조금 전 배타기 전까지만 해도 다들
멀쩡했습니다. 스승 예수님을 향한 신뢰심도 대단했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여러 가지 특별 제자 교육을 받은 그들은
세상에 못할 일이 없어 보였습니다. 사기충천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갈릴래아 호수를 건너가던 중, 풍랑을 만나게 되었는데,
조금 전까지의 대단했던 모습, 그럴듯한 모습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다급해진 제자들은 누워계시는 예수님을
흔들어 깨우면서 이렇게 외칩니다.
“주님, 구해 주십시오.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한심한 제자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들은 이미
예수님의 기적을 자신들의 두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지전능하신 분, 못하실 일이 없으신 분,
메시아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잠깐의 풍랑 앞에 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만사를 좌지우지하시는 하느님의 아들, 풍랑정도는
아무 것도 아닌 예수님과 같은 배에 타고 있으면서도 불어
닥친 작은 풍랑 앞에 살려달라고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아직도 갈 길이 먼 제자 공동체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간 존재란 것, 이렇게 나약하고 불완전합니다. 하느님과 함께
있으면서도 안절부절 불안에 떱니다. 아직 확신, 제대로 된
신앙이 결핍된 상태인 것입니다.
교회란 나를 포함해서 부족하고 나약한 존재들로 구성된
공동체이자 하느님 품안에 영원한 안식을 누리기 전까지
근본적으로 휘청거리며 흔들리는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하느님 믿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느껴지면,
그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교회 공동체에 편입되고 나서 실망과
허탈을 느끼면 그것은 자연스런 모습입니다.
교회란 오늘 복음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폭풍을 헤쳐 나가는
조각배와도 같습니다. 그래서 흔들릴 때 마다 서로의 손을 꼭 잡는
일, 그것처럼 중요한 일은 다시 또 없습니다.
인간은 왜 두려워합니까? 사랑하는 대상을 잃어버릴까봐
늘 두려워합니다. 사랑하는 대상이 떠나 버릴까봐 늘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럴 필요가 없겠습니다. 때로
하느님께서 안 계신 것처럼 느껴질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느낌은 순전히 우리 인간 측의 착시현상입니다. 우리의
하느님은 폭풍 속에서도 끝까지 우리와 함께 계시는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내 아비 내 어미가 나를 버릴지라도 주님만은
절대로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 살레시오회 한국 관구 부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신부 -
◈ [기타] 두려워해야 할것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두려워해야 할것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2013년 다해 7월2일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복음묵상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마태오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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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랑으로 배가 뒤집힐 정도의 위기감에 제자들은 두려움을
느낀다. 아랑곳하지 않고 눈을 붙이고 계신 스승 예수님이
야속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한다. 제자들이 믿을 것이라고는
스승밖에는 없는데 그분은 웬일인지 그저 잠을 자고 계신다.
제자들이 누가 먼저 할 것 없이 예수님께 다가가 흔들어 깨운다.
“주님, 구해 주십시오.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
“믿음이 약한 자들아!”라는 꾸중만 되돌아온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믿음이 약해서 우리는 두려워하고 겁을
내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이 세상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겁을 낼 수밖에 없고 두려울 수밖에 없는 일들을 수 없이
만나면서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건강하게 살아있다는 신호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느낀 두려움 자체를 두고 탓하신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함께 있는데 무엇이 그리도 겁나느냐?”
임을 기억해야 한다.
신앙이 깊어진다는 것은 두려움의 대상을 식별하는 지혜가
얻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두려워해야 할 것이 무엇이고
두려워해서는 안될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는 말이다.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하면서 살고 있을까?
우리가 겁내는 것은 무엇일까? 두려워할 것을 두려워하며
겁낼 것을 가지고 겁을 내며 살아가고 있는가?
그분의 가르침은 간단명료하다.
영혼을 파괴하는 것, 영원한 삶을 방해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하며, 삶과 죽음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늘 마음에 담고 살라는
이야기다.
“육신은 죽여도 영혼을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마태오10,28)
무서운 꿈을 꾸다가 깨어나서 겁에 질려 울어대던 아이가
엄마 품에 안기자 이내 울음을 그치고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고
행복한 모습으로 다시 잠이 든다.
우리 모두가 어렸을 적 보이던 모습이다.
하느님을 엄마 품처럼 느끼면서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일까?
그렇다. 항상 엄마 품 같은 하느님을 떠올려야 한다.
그분의 품 안에서 가장 편안한 내가 될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그분께서 계시고 그분의 말씀이 계신데 지금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단 말인가?
- 사이타마 교구 오타(太田)본당 주임
김 대열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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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 [서울] 예수님이 그래서 진화의 목표입니다.
2013년 다해 7월2일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사람들은 사람들 끼리 사람 생각대로 뭐든 정하고 그대로 삽니다.
자연관리 문제도 자연의 소리보다 사람 생각대로 정하려 듭니다.
동물애호라지만 사람생각대로 즉 인격체로 생각하니 문제가
있습니다.
동물이나 식물 광물 전자파나 광 에너지 등을 더 연구해야 됩니다.
그래야 되는 데 자기중심으로 퇴화하는 인간들이 참 많아 걱정입니다.
대자연 에너지와 대화가 가능한 예수님이 그래서 진화의 목표입니다.
“그러자 그분은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하고
말씀하셨다. 그런 다음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마태오 8,26)”
- 이기정 사도 요한 신부 -
◈ [수도회] 생의 바다에서
머나먼 땅끝 나라에서 선교사의 삶을 살고 있는 나에게 요즈음
들려오는 고국의 소식은 심상치가 않다. 북한의 일방적 정전
협정 폐기, 전쟁 준비 완료, 전쟁 선언, 긴장 고조 등. 이런 소식을
접할 때면 오늘 복음에서처럼 “호수에 큰 풍랑이 일어 배가 파도에
뒤덮이게 되었을 때”(8,24) 겁에 질려 주님께 구해 주시길 간청하는
제자들처럼 두려워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게 된다.
또한 얼마 전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께서 교황직을 사임하면서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교회라는 배를 타고 항해하면서, 물결이
들이치고 역풍이 일어 배가 가라앉을 것만 같은 캄캄한 상황
속에서도 주님은 함께 계셨고, 그 배는 나의 것도, 여러분의 것도
아닌 바로 ‘주님의 배’였기에 가라앉게 놔두시지 않으신다.”
주님과 한 배를 타고 생의 바다를 건너는 우리 신앙인들은 그분의
현존에 신앙의 닻을 내리고, 그분을 바라보면서, 오늘 우리를 향해
불어오는 역풍과 풍랑과 파도를 헤쳐나가야 하지 않을까?
‘인생은 고해의 바다’라고 했던 옛말처럼 생의 바다를 건너는 동안,
어찌 잔잔한 바다만 있을 수 있으랴? 폭풍과 풍랑이 일고, 배가
뒤집힐 것 같은 생의 고비를 수없이 겪으며, 저 바다의 항구에
닿기까지 엎어지고 넘어지면서 저어가는 인생의 항해! 나와 한
배를 타고 계시는 생명의 주관자이신 주님께 신앙의 닻을 굳게
내리고, 그분을 신뢰하며 의탁할 때, 우리 안에 이는 온갖 풍랑이
고요해지리니 그렇게 신앙의 해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그분이 함께 인생의 항해를 할 수 있는 은혜로 축복해 주시길
청해 본다. 주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해 주십시오. 온갖 풍랑이
고요해지도록 …. 아멘.
- 성시자 수녀(스승예수의제자수녀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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