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方[5736]지포(止浦)김구(金坵)시-落梨花(락이화)
落梨花(락이화)
止浦 金坵(김구) - 고려 후기문신. 坵= 언덕 구. 丘의 俗字.
飛舞翩翩去却回 (비무편편거각회)
倒吹還欲上枝開 (도취환욕상지개)
無端一片黏絲網 (무단일편점사망)
時見蜘蛛捕蝶來 (시견지주포접래)
떨어지는 배꽃
펄펄 날던 춤사위 갔다간 돌아오고
거꾸로 불려가선 위 가지에 피려하네
어쩌다 한 조각이 거미줄에 걸리자
거미가 나비인줄 알고 잡으러 오더라
黏=차질 점, 붙다. 들러붙음. [본음] 차질 념① 차지다 ② 풀 ③ 떡 ④ 죽
유의자=粘 붙을 점, [본음] 붙을 념
원문=東文選卷之二十 / 七言絶句
落梨花
飛舞翩翩去却回。倒吹還欲上枝開。
無端一片黏絲網。時見蜘蛛捕蝶來。
낙이화(落梨花)-김구(金坵)
펄펄 날아 춤추며 가다가 다시 돌아오나니 / 飛舞翩翩去却回
거꾸로 불려 도로 가지에 올라가 피려 하는구나 / 倒吹還欲上枝開
무단히 한 조각이 실 그물에 걸리면 / 無端一片黏絲網
때로는 거미가 나비를 잡으러 오는 것을 보겠네 / 時見蜘蛛捕蝶來
ⓒ 한국고전번역원 | 김달진 (역) | 1968
김구金坵차산(次山), 지포(止浦), 문정(文貞), 김백일(金百鎰)
고려 후기에, 참지정사, 중서시랑평장사, 판판도사사 등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부령(扶寧). 첫 이름은 김백일(金百鎰), 자는 차산(次山), 호는 지포(止浦).
생애 및 활동사항
성품이 성실하여 말이 적었으나 국사를 논함에는 강직하여 어려움을 피하지 않았다.
과거에서는 모두 장원을 믿었으나 제2등으로 급제하였다.
제주판관(濟州判官)으로 있을 때, 서울에서 과장(科場)의 부제(賦題)가 전달되었는데
매우 어려운 제목이었다.
이 때 당대의 이름난 문장가였던 부사 최자(崔滋)는 김구에게 이 제목으로 글짓기를 청하였다.
이에 담소자약하면서 즉석에서 글을 지어 바치니, 최자는 문장에 더 가필할 것이 없으므로
탄복하고, 아들에게 “이는 시부(詩賦)의 준승(準繩)이니 잘 간직하라.”고 하였다 한다.
서장관으로 원나라에 다녀온 뒤 8년 동안 한원(翰院)에 재직하였고,
각문지후(閣門祗候)를 거쳐 국학직강(國學直講)이 되었다.
이 때, 최항(崔沆)의 명으로 지은 『원각경(圓覺經)』 발문에 쓴 시가
최항의 뜻을 거슬러 좌천되었다.
김구는 할아버지가 중이었기 때문에 대간이 될 수 없었으나
재주를 인정받아 1263년(원종 4) 우간의대부(右諫議大夫)가 되었다.
이어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 · 추밀원부사 · 정당문학(政堂文學) · 이부상서를 역임하였다.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올라서는 문신들의 저술을 시험해
유능한 자에게 상을 주어 권장할 것을 건의하였다.
1273년 참지정사(叅知政事)로서 지공거(知貢擧)가 되어 진사를 선발하였다.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郎平章事)를 거쳐 1274년 충렬왕 즉위 뒤에는
지첨의부사(知僉議府事) · 참문학사(參文學事) · 판판도사사(判版圖司事)를 역임하였다.
당시 역관들이 간계를 부려 통역을 사실대로 하지 않고, 사리를 꾀하였다.
이에 헌의하여 통문관(通文館)을 설치하고, 궁중의 학관(學館) 가운데
젊은 참외(參外)들로 하여금 한어(漢語)를 습득하게 하였다.
신종 · 희종 · 강종 · 고종의 실록 편찬에도 참여했고,
당시 원나라의 간섭이 심하던 때에 일을 잘 처리하였다.
저술활동
원나라에 갔을 때 『북정록(北征錄)』을 남겼고,
충렬왕의 『용루집(龍樓集)』에도 김구의 시가 들어 있으며,
특히 변려문에 뛰어났다고 한다. 저서로는 『지포집(止浦集)』이 있다.
상훈과 추모
묘는 부안군 산내면 운산리에 있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