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순례 - 구원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 임금이 없던 시절의 혼란상(판관기 19-21장)
판관기 19-21장은 “이스라엘에 임금이 없던 그 시대에”라는 말로 시작해서 “그 시대에는 이스라엘에 임금이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 제 눈에 옳게 보이는 대로 하였다.”는 말로 끝납니다. 수미상관법을 활용함으로써 여기에 언급될 이야기가 임금이 없던 시절의 혼란상에 관한 것임을 알려줍니다. 이야기의 도입부에 등장하는 인물은 에프라임 산악 지방에 나그네살이 하는 한 레위인과 베들레헴 출신의 소실입니다. 그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지만 소실은 화가 나서 친정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넉 달이 지나자 남편은 여자를 데려오기 위해 그 여자의 집으로 갔고, 그곳에서 장인의 극진한 환대를 받습니다. 계속해서 더 머물기를 권하는 장인의 권유로 레위인은 닷새째 되는 날 해 질 녘이 되어서야 길을 떠납니다.
그들이 여부스에 이르자 그의 종은 그곳에서 묵자고 제안합니다. 이방인들의 성읍에 머물기 싫었던 그는 기브아까지 갑니다. 기브아에 이르렀을 때 해가 졌고, 성읍 광장에서 그들을 환대해 줄 이를 기다렸으나 그곳의 주민인 벤야민 사람들은 아무도 그의 일행을 맞아주지 않았습니다. 다행히도 그곳에서 나그네살이 하는 한 노인이 그들을 맞아 주었습니다. 그들이 노인의 집에서 함께 먹고 마시고 있을 때 성읍의 불량한 남자들이 집 주인에게 손님을 내어 놓으라고 말합니다. 그자와 재미를 보겠다는 것입니다. ‘재미를 본다’는 말은 소돔 사람들이 롯의 집에 든 손님들에게 한 말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환대와는 정반대되는 표현으로 그들을 찾아온 낯선 이를 집단 강간하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집주인은 그런 추잡한 짓을 하지 말라고 말하며, 대신 자신의 처녀 딸과 손님의 소실을 내보낼 터이니 그들을 욕보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처사입니다만, 환대의 의무를 다 하기 위한 방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손님을 맞이한 집주인은 손님의 안위까지 지켜주어야 합니다. 기브아 사람들은 그의 손님을 해하고자 하며, 집주인은 대신 그의 딸과 손님의 소실을 내어줌으로써 손님을 지키고자 한 것입니다. 딸과 소실을 집단 강간하는 것이 레위인을 집단 강간하는 것보다 덜 악한 것으로 여긴 까닭입니다. 하지만 기브아 사람들이 노인의 제안을 거절하자 레위인은 자기 소실을 내어보냈습니다. 그들은 레위인의 소실을 밤새도록 능욕함으로써 레위인에 대한 그들의 적대감을 최대한 드러냅니다. 결국 아침이 되어서야 풀려난 여인은 노인의 집 문간에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다음 날 길을 떠나려던 레위인은 문간에 쓰러진 소실을 발견하고 그 여인을 나귀에 싣고 자기 고장으로 돌아갔습니다. 집에 돌아가자마자 그는 같은 동료 이스라엘을 이토록 적대시한 기브아 사람들을 응징해야 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여인의 시신을 열두 조각내어 이스라엘 온 영토에 보냅니다.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에서 보병 사십만 명이 미츠파의 성소에 모였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에서 악을 치워버리기 위해 벤야민 지파에게 기브아의 불량한 자들을 넘기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벤야민 지파는 이를 거절하였고, 그 결과 벤야민 지파와 나머지 열한 지파들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결국 이 전쟁에서 벤야민 지파에 속한 사람들은 모두 죽고, 림몬 바위로 달아난 육백 명만 살아남았습니다. 이스라엘의 한 지파가 영원히 사라지는 것을 염려한 나머지 열한 지파는 미츠파 집회에 참석하지 않은 야베스 길앗에서 어린 처녀 사백 명을 잡아와 살아남은 벤야민 사람들에게 주었고, 나머지 이백 명에게는 실로의 축제 때 춤추러 나온 처녀들을 보쌈해 가라는 허락을 주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올바른 지도자가 없을 때 그 사회의 약자들이 얼마나 큰 고통을 겪게 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올바른 지도자는 그 사회의 약자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처럼 판관기 전체는 올바른 지도력이 무엇인지를 설파함으로써 사무엘기에서 도입될 왕정을 준비합니다.
[2023년 6월 25일(가해)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가톨릭마산 8면, 김영선 루시아 수녀(광주가톨릭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