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보는 우리 성인과 복자들] (8) 배교 후 회개한 성 남경문 베드로와 복자 이현 안토니오
찰나의 잘못 뉘우치고 회개와 속죄의 삶 살며 순교의 길로
하느님을 향한 마음이 한결같이 거룩하면 얼마나 좋을까. 박해 시대, 모진 고문에 하느님을 배반했다가 다시 주님께 돌아온 성인과 복자가 있다. 성 남경문(베드로·1796~1846)과 복자 이현(안토니오·?~1801)은 우리와 다르지 않은, 고통 앞에 번민하고 힘들어하던 한 인간이었다. 어려움과 좌절 끝에 결국 하느님의 이끄심으로 순교에 이른 이들의 삶과 신앙을 살펴본다.
- 성 남경문 베드로.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제공
입교한 뒤 신자 집안과 혼인하다
서울 중인 집안에서 태어난 성 남경문과 경기도 여주의 양반 가문이었던 복자 이현은 입교 계기는 서로 달랐지만, 그 후 자신과 같은 천주교 신자와 결혼하며 신앙을 다졌다.
성 남경문의 아버지는 1801년 신유박해 이전부터 신자였지만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게 돼 성인에게 신앙을 전해주지는 못했다. 그는 20세 때 큰 병이 들어 대세를 받고 천주교에 입교했다. 그 후 병이 나았고 22세 때 신자 허 바르바라와 혼인했다.
복자 이현은 1784년 한국에 교회가 설립된 지 얼마 안 돼 접한 서적을 통해 천주교에 대한 이해를 넓혔다. 삼촌인 이희영(루카)이 김건순(요사팟·1776∼1801)이라는 신자의 집에서 살 때 그 집을 자주 오가며 김건순에게 교리도 배웠다. 신앙이 점차 깊어지자 그는 한양에 올라와 복자 홍필주(필립보·1774∼1801)에게서 교리를 더 배운 후 복자 주문모 신부(야고보·1752~1801)에게서 세례를 받았다. 그는 복자 홍익만(안토니오·?~1802)의 딸과 혼인해 복자 홍필주와 동서 사이가 된다.
박해 때 체포돼 배교하다
박해가 일자 체포된 성인과 복자. 그들은 갖은 고초에 결국 배교를 했다.
성 남경문은 금위영의 병정으로 있다가 조개젓 장사를 했다. 또한 교리를 잘 알지 못하던 때 고리대금업을 하다가 주위로부터 가르침을 듣고 그만둔다. 그 후 열성적으로 신부를 따라 공소 방문을 다니다가 새로 입국한 선교사들로부터 회장으로 임명됐다. 그러나 1839년 기해박해 때 체포된 성인은 배교 후 석방된 뒤 첩까지 거느리며 3년간 방탕한 생활을 한다.
복자 이현은 1801년 신유박해가 시작되자 붙잡혀 포도청에 끌려갔다. 혹독한 문초와 형벌 끝에 복자는 “신앙을 버리고 마음을 고치겠다”고 답변하고 말았다. 그러나 신자들을 밀고하지는 않았다. 그는 배교 후 다시 형조로 이송된다.
- 복자 이현 안토니오.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제공
회개한 뒤 순교에 이르다
약해졌던 마음을 다잡고 자신의 배교를 회개한 성 남경문과 복자 이현은 기쁜 마음으로 순교를 받아들였다.
성 김대건 신부(안드레아·1821~1846)를 만난 성 남경문은 그간의 생활을 진심으로 회개하고 고해성사를 받는다. 그는 속죄를 위해 매일 새벽에 일어나 오랫동안 기도를 했고, 보속의 뜻으로 한겨울에도 불을 때지 않고 지냈다. 또 친구들에게 “지난날 죄를 범했으니 천국에 가려면 순교를 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
1846년 병오박해 때 체포된 성인은 그의 형제가 보내오는 음식과 옷을 “옥 안에서 얻어먹는 음식과 지금 입고 있는 옷도 내게는 과하니 다른 것을 더 가져올 필요는 없다”며 물리쳤다. 하루는 문초를 당하던 성 남경문이 자신의 군사 패를 포장에게 건넸는데, 포장은 “네가 배교만 한다면 살려 줄 뿐만 아니라 네 직업도 잃지 않게 해주마”라고 했으나 성인은 응하지 않았다. 그 후 혹독한 매질에도 죽은 신자 이름 몇 개만 댔던 그는 매서운 고문 끝에 숨을 거둔다.
복자 이현은 형조로 이송된 뒤 포도청에서의 잘못을 깊이 뉘우쳤다. 그 뒤로 그는 어떠한 고문과 문초에도 신앙을 굳게 지키기에 이른다.
“저는 4년 전부터 동료들과 함께 교회 서적을 읽으면서 여기에 깊이 빠졌습니다. … 여러 해 동안 천주교에 빠져 이를 믿어 왔으니, 이제 아무리 형벌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신앙을 믿는 마음을 바꾸지는 않겠습니다.”
믿음 속에서 최후의 진술을 한 복자는 결국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했다.
- 서울대교구 종로성당 <김대건 성인상>.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 서울대교구 종로성당
서울시 종로구 동순라길 8에 있는 종로성당(주임 한호섭 요셉 신부)은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고문을 받고 순교한 좌·우포도청과 의금부, 형조, 전옥서 등 관아들이 있던 지역을 관할한다. 2013년 ‘포도청 순례지 성당’으로 승인됐다.
포도청과 전옥서에서는 성 남경문 등 24명의 성인과 5명의 복자가 순교했다. 종로성당 내에는 순교자 현양관을 설치해 포도청에서 순교하거나 고초를 겪은 신앙의 증거자들에 대한 정보를 전시하고 있다.
포도청이 천주교 문제에 직접 관여하게 된 것은 1795년 북산사건 때부터이다. 이는 북산(북악산) 아래 계동에 숨어 지내던 복자 주문모 신부의 거처가 밀고되면서 시작된 사건이다.
[가톨릭신문, 2024년 8월 18일, 박효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