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적관을 나와 '지금 공수교육이 진행중이다.'라는 담당관님의 말씀을 듣고, 한걸음에 교육장으로 달려갔다. 나와 오해병은 백령도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공수교육은 커녕 낙하산도 구경할 수 없었다. 말로만 듣던 해병공수. 백령해병에게는 더 특별하게 다가오는 교육훈련이다. 그리고 공수훈련은 장비, 항공기 지원 등의 특성상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교육훈련이 아니다. 공정대대에 배속받거나 운이 정말 좋아야 받을 수 있는 그야말로 선망의 대상이었던 교육훈련이다. 나와 오해병은 한참 기대감에 부풀었다.
우리는 공수교육대에 도착해서 먼저 교육대 담당관님들께 인사를 드리러 사무실로 갔다.
"반갑습니다. 공수교육대장입니다.^^"
아버지 연배이신 담당관님들께서 존댓말을 써주시면서까지 우리를 반겨주셨다. 말씀을 낮춰달라는 우리의 부탁을 들어주신 공수교육대장님은 '커피 한잔 하겠나?ㅎ'고 하시며 손수 커피를 타 주셨다. 담당관님들은 교육대에 온 그 어떤 손님들보다도 우리를 반겨주시는 것 같았다. 나중에 말씀을 듣고 보니, 전역해서 다시 이렇게 부대를 찾는 해병들을 보면 마음이 엄청 뿌듯해진다고 하셨다. 그것은 아마도 해병대가 인간개조의 용광로로써, 이 곳을 거쳐 나간 해병들이 멋진 젊은이가 되어 다시 찾아온 걸 보면 스승의 보람을 느끼는 것과 같으리라.. 아닌가? 요즘 후임들이 기합이 빠져서 우리 같은 예비역을 보면 옛날이 그리워져서 그러신건가?ㅋㅋ 창밖을 보니, 그럴리 없다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우리보다 훨씬 늠름한 후배들이 열심히 공수훈련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친절하게 휘장에 대해 설명해주신 공수교육대 담당관님.
나는 커피를 마시면서 아까부터 눈을 뗄 수 없었던 담당관님들의 공수휘장에 대해 여쭈어 보았다. 황금색 날개의 공수휘장은 그냥 날개만 있어도 짜세나는데, (해병들은 멋지다는 말을 짜세난다고 표현합니다.ㅎㅎ) 담당관님들의 휘장에는 월계관, 금별, 은별 등의 화려한 장식이 더 수놓아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담당관님은 모든 해병공수휘장이 들어 있는 박스를 꺼내서 보여주시며, 하나하나 친절하게 설명해주셨다.
밀리터리 매니아인 내게 보물창고와 같은 공수휘장 박스
공수교육을 이수하면 처음 받는 휘장
강하횟수가 늘어날수록 생기는 별
영광의 월계관
무려 200회 이상의 강하를 하신 담당관님의 휘장
공수교육대장님의 휘장
담당관님의 명쾌한 설명을 들으니 각 공수휘장의 차이를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한가지 궁금한 것이 남아 있었다. 공수교육대장님은 분명히 공수 강하를 제일 많이 하신 분일텐데, 휘장에 은색 별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공수교육대장님께서는 육군 특전사와 교류훈련할 때의 사진, 휘장 등도 함께 보여주시며, 엄청 많은 강하를 거치고 나면 다시 이 휘장을 단다고 하셨다. 나는 문득 현역으로 근무할 때 만났던 운전병 선임이 한 말이 생각났다. 그 선임은 자동차 매니아였는데, 나중에 전역하면 자동차 튜닝을 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 선임이 늘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있었다. '튜닝의 끝은 순정이야..' 아무리 튜닝을 하고 개조를 해도 결국 순정 부품이 최고라는 뜻이었다. 위의 사진처럼 전투복 위의 색이 바랜 순정 공수휘장을 보니, 공수교육대장님의 오랜 근무경력이 느껴지는 듯 했다.
담당관님들께는 별 것 아닌 그 휘장에 대해 선망의 눈길로 계속 질문을 하는 내가 기특하셨는지 정복에 패용하는 금속공수휘장을 3개나 선물로 주셨다. 아싸~!!! 이게 왠 횡재~~!!ㅋㅋㅋ 현역으로 근무할 때도 항상 호기심을 가지고 계속 배우려들면 선임들이 굉장히 좋아했었는데, 이곳에서도 호기심 덕분에 떡 하나 더 받게 되어 기분이 엄청 좋았다.ㅎㅎ
우리는 이제 담당관님께 인사를 드리고 사무실에서 나와 훈련장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훈련병들이 아닌 현역 실무병들이 정기차수 공수교육을 받고 있었는데, 그 중에는 연예계에서도 가장 씩씩한 우리의 자랑스러운 해병, 이정 상병도 있었다. 난생 처음으로 이렇게 가까이서 연예인을 보는게 신기했던 나는 다가가서 말을 걸고 싶었지만, 엄숙하고 진지한 자세로 훈련에 임하는 이정 해병을 보니 방해할 수 없었다.
공수교육훈련장의 전경
'윌리를 찾아서'가 아닌 '이정을 찾아서' 모두가 늠름해서 누가 이정해병인지 분간이 안간다.
훈련장을 둘러보다가 우리를 안내해 줄 공수교육 조교를 만났다. 전역이 40일 남았다는 변해병은 공수교육대의 자부심으로 끝까지 교육훈련에 매진한다고 했다. 오~~ 진짜?ㅋㅋ 그래도 고참인데 쉬고 싶지 않냐는 나의 집요한 질문에 베시시 웃어보이긴 했지만, 변해병은 앞으로 다시 오지 못할 곳이므로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후배의 얼굴에서 진심이 느껴져 뿌듯했다.
나는 얼굴도 잘생긴 변해병에게 공수교육을 몇 번이나 받았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그는 8번 받았다고 했다.. 완전 부럽다...ㅎ 나는 변해병이 멋지게 달고 있을 공수휘장이 부러워서 고어텍스를 벋고 한번 보여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는 잠시 다른 곳으로 이동해서 보여드려도 되는지 되묻는 것이었다. 아놔...ㅋㅋ 부럽긴 하다만 여기서 보여주지도 못할 정도냐??ㅎㅎ 왜 여기서 안되냐고 변해병에게 묻자, 그는 교육생들 앞이라 진지한 모습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햇다. 그 말을 듣고 변해병이 더더욱 멋져 보였다. 역시 해병공수의 조교다웠다.
멋진 공수조교 변해병
공수교육에 관한 변해병의 설명을 들었다.
그 와중에도 열심히 훈련받던 공수교육생들
늠름한 변해병과 함께. 변해병이 입고 있는 상의는 공수조교들의 단체복.
변해병의 휘장
변해병의 공수 휘장에 별이 있는 이유는 공수 조교들만 특별 허락에 의해 8번 이상 강하하면 별을 달 수 있다고 했다. 후배 해병들을 카리스마 있게 교육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조치 같았다. 그리고 닳고 헤진 휘장을 보자, 그간 훈련에 매진하며 고생했을 변해병의 모습이 떠올라 격려의 말을 건네주었다.
그토록 받고 싶었던 공수교육을 전역해서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나는 비록 인연이 닿지 않아 공수휘장을 달 수 없었지만, 이제 정기 강하를 마치고 멋지게 금빛 날개 휘장을 달고 다닐 저 후배들을 떠올리니 그들의 남은 군생활마저도 부러워졌다. 그런 부러움과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음 목적지인 유격 교육장으로 향했다.
친절하게 곳곳을 소개해주신 담당관님. 함께 유격장으로 진입하는 중.
유격장은 부대 밖에 있어서 담당관님의 차를 타고 이동했다. 차를 타고 도로를 달리니 해병혼 고지도 보이고, 훈련병 때 행군했던 눈에 익은 길도 나왔다. 나는 행군하던 때를 떠올리며 '조금 걸리겠지.'라는 생각에 모자를 벗고 경치를 감상하던 것도 잠시, 차는 금방 유격장에 도착했다. 아니, 이렇게 거리가 짧았었나? 이렇게 짧은 거리를 걸으면서 내가 그렇게 헥헥거렸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동차가 유격장 정문을 통과하자 멋진 암벽이 나타났다. 훈련병 시절 처음 이곳에 왔을 때처럼, 암벽은 여전히 멋진 자태로 우리를 반겨주었다.
여전히 멋진 유격장
역시 첫번째 덕목은 도전!!
유격대 막사로 가는 길
주차장 안쪽으로 가면서 옛 추억들을 새록새록 떠오르게 만드는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유격PT로 지친 몸에 없던 힘이 불쑥 솟아나게 만들어주던 '누구나 해병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결코 해병대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문구의 간판. 동기들과 허겁지겁 점심을 먹던 교육장. 그리고 주차장 가는 길 끝에 있는 유격대 막사. 야간 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유격장에서의 첫날 밤, 우리는 서치라이트 불빛 아래서 교관님의 마무리 말씀을 듣고 있었다. 그러던 중, 보급품을 싣고 온 선임병이 편지를 한아름 들고 왔고, 교관님은 호명하는 사람은 나와서 편지를 받고 들어가라고 하셨다. 이 유격장까지 편지를 가져와 주었던 그 실무병 선임이 눈물나도록 고마웠다. 힘든 야간 과업을 끝마치고 돌아와 희미한 주황빛 서치라이트 아래에 서 있으면, 왠지 집 앞 주황색 가로등 아래에 서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래서 바깥 생각이 더 많이 나던 그날 밤, 가족으로부터, 애인으로부터 온 편지를 몇 번씩이나 읽다가 전투복 속에 품고 잤던 기억이 났다.
그런 회상도 잠시, 곧 호랑이 유격교육대장님께서 나오셨다. 필!!!씅!!!! 나는 현역같은 목소리로 힘차게 경례했다. 유격교육대장님도 공수교육대의 담당관님들처럼 우리를 정말 반갑게 맞아주셨다.
유격대장님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윤해병
유격교육대장님께서는 해병대 블로그 일 때문에 우리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엄청나게 많은 준비를 해 두신 것 같았다. 유격장의 각 시설물 점검은 물론, 각 훈련장마다 조교들이 보여줄 시범까지 준비해 놓으셨다. 아마 해외 외신 기자들이 모두 와서 취재해도 무리없이 진행되었을 것이다. 나는 해병대 여행기를 쓰는 것이므로 이야기를 나눌 한 명의 조교만 있으면 된다고 말씀드리자, 두 명의 조교를 붙여주시며 '120% 지원해드려!!'라고 말씀하셨다. 외모도 호탕하신데 성격도 역시 해병답게 화끈하셨다.ㅎㅎ
유격PT로 지친 몸에 없던 힘도 불어넣게 하는 문구
든든한 후배 조교들과 함께 유격장으로
유격교육대장님으로부터 120% 지원을 명 받은 후배 조교들은 당장이라도 막타워로 뛰어올라가 헬기레펠을 시범보일 기세였다.ㅎ 어떤 시범을 어떻게 보여주어야 할지 몰라 긴장해하던 후배들에게 여행기를 쓰는 거니까 편하게 나랑 얘기하자고 하니, 그제서야 조금 긴장을 풀었다. 후배 조교들의 탄탄한 체격과 번뜩이는 눈빛을 보니, 훈련병 시절에 만났던 유격조교 선임들이 생각났다.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도하를 지시하던 선임들은 비속어 하나 사용하지 않고도 훈련병들을 바짝 얼게 만드는 카리스마가 있었다. 이 날 만난 지해병, 김해병을 보니 예전의 그 멋진 조교 선임들의 모습이 비쳐 보였다.
새로 생긴 거대한 막타워
유격장 시설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는 윤해병
나는 왠지 낯설게 느껴지던 저 커다란 막타워에 대해 물어보았다. "저거 원래 있던거야?" 그랬더니 지해병은 내가 실무로 가고 얼마 안되서 새로 생긴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훌륭한 막타워에서 훈련받을 후배들을 생각하니 조금 부러워졌다. 사실 이런 훈련을 부러워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가질 분들도 많이 계시겠지만, 해병 가족분들은 모두 공감할 것이다. 건빵 받는 것보다 훈련받는 걸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 해병대라는 것을..ㅎ
유격장 전경을 쭉 둘러보니, 한군데 더 바뀐 것을 알 수 있었다. 유격훈련 중 가장 힘들다는 외줄 도하를 하기 위해 비교적 짧은 외줄의 연습용 훈련장이 있었는데, 그것이 지금은 보이지 않았다. 지해병은 그 연습용 외줄이 앞산으로 옮겨갔다고 했다. 나는 후배 조교들과 외줄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백령도에서 받던 유격훈련이 생각났다. 해병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백령도 해안 유격장. 경치도 끝내주지만, 외줄의 길이 또한 끝내주게 길었다. 무려 98미터..ㅎ 그 외줄 훈련을 하던 것이 생각나 오기어린 마음으로 지해병에게 농담을 걸었다.
"이봐 지해병~ 백령도 외줄 알아?ㅎ" "예! 알고 있습니다." "나 그거 하루에 두번도 당겼다니까~하하하... 나 대단하지?ㅋㅋ" "예! 대단합니다."
그러고 나서 잠시후 앞산 외줄 훈련장에 다 와갈 무렵 지해병이 이렇게 말했다.
"윤동빈 해병님, 백령도 선임의 외줄 시범 한번 보여주십시오.ㅎ"
응..???? 나는 순간 식은땀이 등줄기에 흐르며, 아까 농담을 잘못 꺼냈다는 걸 느꼈다.;;ㅎㅎ 괜히 유격 조교 앞에서 똥폼을 잡았나보다..ㅎ 아까 한 말도 있고, 똘망똘망하게 나를 쳐다보는 후임들의 눈빛을 외면할 수 없었다. 긴 외줄로 제대로 시범을 보여달라는 지해병의 권유를 무시하고, 짧은 시범용 외줄로 타협을 보긴 했지만, 지금은 왠지 이것도 만만치 않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ㅎ
짧은 시범용 외줄. 유격장의 연병장에 있던 것이 앞산으로 옮겨져 와 있었다.
해병 유격 훈련은 하나를 해도 제대로 해야 한다면서 줄을 흔들 준비를 하는 지해병.ㅎㅎ
결국 1m도 전진하지 못하고 통닭.ㅎㅎㅎ
긴 외줄에서 시범을 보이는 지해병. 역시 멋진 우리 후배.
그렇게 조교 후배들과 농담도 하고 장난도 걸며 친해졌지만, 이제 곧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다. 서울에서 급히 내려오느라 후배들을 위해 작은 쵸코바 하나 사오지 못한 것이 계속 아쉬웠다. 전투체육하고 씻을 시간인데도 시간을 내서 견학을 도와준 후배들이 고맙다. 우리는 떠나기 전 아쉬운 마음에 셋이서 기념사진 촬영을 했다. 후배들과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이제 유격장을 떠나 길등재,오어사, 그리고 1사단 해병의 명소인 스틸야드 축구경기장까지 둘러보려면 시간이 넉넉하지 않았다.
구름 한점 없이 푸른 하늘 아래 유격장.
이곳까지 둘러보니, 앞으로 해병대 전사적지를 탐방 할 만한 해병정신이 되살아나는 듯 했다.
출처:날아라 마린보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