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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모데전서 2장 4절 진리를 주신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은 왜 진리를 주셨을까요? 진리가 없으면 사람은 살 수 없을까요? 진리의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아프리카나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도 진리가 필요할까요? 이것에 대하여 죄와 사탄의 지배를 받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진리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진리는 복음으로 여러분들에게 다가섰고,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믿고 영접할 때 여러분들 안에 들어갔습니다. 바로 예수님이 진리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 시작은 마치 겨자씨 한 알의 크기에서 시작되었고, 지금도 역시 여러분 안에서 점점 많은 영향을 미치면서 역사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베드로 사도는 베드로전서 1장 23절을 통해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인데 그 진리의 말씀으로 여러분들이 거듭났기 때문에 여러분들 안에 이런 진리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안에서 역사하는 진리는 점점 다른 사람들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렇게 진리의 복음으로 역사하는 하나님 나라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확장되어 가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삭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둘 다 쌍둥이였지만 에서가 형이었고 야곱은 동생이었습니다. 아버지인 이삭은 형인 에서를 좋아했고, 아들인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가 좋아했습니다.
어느 날 이삭은 자신이 얼마 살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에서를 불러 “내가 너를 축복해주려고 하는데 네가 잡아다가 요리해주는 고기를 먹고 너를 축복해주고 싶구나”하고 말했습니다. 이것을 이삭의 아내인 리브가가 들었습니다.
그래서 에서가 나간 사이에 야곱을 시켜 자기가 요리해주는 고기를 가지고 가서 아버지에게 드시게 하고 그 축복을 네가 받으라고 말했습니다. 야곱은 걱정했지만 엄마가 그 모든 책임은 자기가 지겠다고 해서 에서로 변장하고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축복을 받았습니다. 남편의 마음과 아내의 마음이 서로 다른 아들에게 있지만 결국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은 똑같습니다. 그들 모두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진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식에게 무엇을 줄 때 그것을 주는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무엇인가를 해줍니다. 물론 자녀들이 부모에게 무엇인가를 줄때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부모에게 유익한 것을 주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주실 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여러분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아들까지도 아낌없이 주실 정도로 크십니다. 아들의 생명에 영생이 있었기 때문에 아들을 주심으로 여러분들과 영원히 함께 살고 싶으신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진리의 복음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시기 전에 온 우주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지구를 만드시고 그 안에 가장 아름답다고 할 수 있는 에덴 동산을 만드셨습니다. 그 에덴 동산에 인간을 살게 하시면서 하나님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하시면서 복을 주셨습니다.
이 복을 주시기 전에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시는 이유를 설명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 26절을 보면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은 이 세상의 것을 다스릴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만드신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해 인간을 만드시면서 하나님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만들자”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을 만드신 이유는 인간이 하나님의 성품을 가지고 이 세상을 다스리며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대리자요 청지기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만드신 인간이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최상의 복을 다 주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그런 마음과는 상관없이 그냥 자기 마음의 욕심을 따라 자기가 하나님같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고 하나님과 같아지는 것을 시도했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그 마음을 부추긴 것은 사탄이었습니다. 사탄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교만한 마음을 사람도 갖게 해서 하나님의 미움을 받도록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싫어하시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을 파괴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중점을 두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만드신 인간의 영혼을 하나님으로부터 단절시키고자 시도했습니다. 하나님과 단절된 인간은 진리를 찾지만 진리를 알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사탄의 말이 진짜인 것처럼 믿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귀의 그 교묘한 시도는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인류의 인간을 사이에 둔 모략이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으로부터 뛰쳐나간 인간이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약속하셨습니다. 그 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마귀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계속적으로 영적인 훼방을 놓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진리를 알게 되어 진실의 눈을 뜨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마귀의 모략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진리의 눈을 뜨게 되면 자신의 삶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거부하고 살아왔던 모든 죄를 회개하게 됩니다. 복음을 듣게 된 사람이 제일먼저 회개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빛이 자신의 죄악된 실체를 보여주면 회개하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어둠 속에 있을 때는 죄가 죄인지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빛이 자기 안에 들어오니까 온갖 더러운 것들이 다 보입니다. 그래서 그 죄에 대하여 혐오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 혐오스러운 죄들을 회개합니다. 그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달리셔서 흘리신 그 피가 자신의 죄를 다 씻어주시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거기서 구원의 기쁨이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다고 약속하신 후 수많은 선지자들을 세우셔서 예수님을 어떻게 보내주실지를 예언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구약에서의 복된 소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온 인류의 진정한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구원의 복음이 바로 하나님이 보여주신 구원에 대한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구원에만 한정된 것은 아닙니다. 진리이신 하나님이 만드신 영적인 세계와 온 우주 속에서 행하시고 말씀하신 진리는 무한하다고 보아야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께서 자신이 약속하신 구원의 진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사람을 보면 이 사람이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인지 아닌지를 성경으로 확인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구원의 진리를 먼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만나주셨을 때 아브라함을 복 주시면서 그 복은 곧 온 인류가 함께 받게 될 복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아브라함의 후손인 모세를 통하여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그 진리를 이방땅에 전하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민족적인 이기심에 사로잡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참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오늘날도 여러분들이 아시다시피 집단 이기심에 빠지게 되면 진리를 잃어버려서 자기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고 하나님을 위해 일한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우매함에 빠지게 됩니다. 이것이 사탄이 파놓은 함정입니다.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애국이라는 이름하에 그런 상태에 빠져버렸습니다.
이런 영적인 원리를 모르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자기들만 소유하기를 원했습니다. 그것은 곧 선민의식으로 바뀌었고, 이기적인 민족정신으로 바뀌었습니다. 사람이 진리를 자기 욕심을 채우는 도구로 사용할 때 그 자신은 물론 수많은 사람들을 엄청난 파멸로 몰고가게 됩니다. 마치 하나님의 이름을 악이용하는 악한 이단들처럼 말입니다.
사탄은 계속적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하는 사악한 집단을 만들어 냅니다. 사탄이 잘 사용하는 방법중 하나가 앞서 말씀드린 집단이기주의입니다. 우리 나라의 경우에는 민족의식을 이용한 집단이기주의에 사람들이 잘 반응하기 때문에 사탄이 그러한 것들을 사용해서 분쟁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같은 애국에 대한 다른 방법을 제시해서 분열시키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누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으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있습니까? 기도를 해도 자기가 속한 단체의 목표와 꿈을 이루어달라고 구할 뿐입니다. 그러면서 진리를 악이용하기도 합니다. 사탄이 기도하는 그들에게 은밀히 자기 생각을 넣어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라도 믿고 사람들을 미혹하는 것입니다.
한때 우리나라 역시 하나님의 복을 받은 민족으로써의 우월감을 강하게 심어준 때가 있었습니다. 성경에 동방에서 오는 나라가 바로 우리 나라라고 해석을 했습니다. 물론 오늘날 역시 그런 설교를 하는 목회자들이 간혹 있기는 합니다. 이것이 모두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일을 하실 때 요셉이나 다니엘이나 다윗처럼 어떤 특정한 사람들을 높이 세우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도 하시고 어떤 특정한 나라를 들어쓰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시기 때문입니다.
또 어느 경우는 이스라엘 나라를 강하게 하셔서 주변 나라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능력을 알게 하신 때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우리 나라 만의 복으로 생각하고 강조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 가르침은 용기를 주기도 하지만 용기를 넘어서게 되면 심각한 교만이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민족적인 이기주의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진리의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개인의 복이나 개 교회의 복이나 한 민족의 복으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나를 선택하시지만 그 하나가 천을 이루고 만을 이루면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온 세상에 확장시켜 나가기를 원하십니다. 그 하나가 한 개인이기도 하고, 한 교회이기도 하고, 한 나라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겨자씨 같이 지극히 작은 것부터 시작하셔서 큰 것을 새롭게 하십니다.
진리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겨자씨 한 알의 중요성을 가르치셨습니다. 그 겨자씨 한 알이 커서 나무가 되는 것처럼 한 사람이 진리의 말씀으로 인해 새롭게 되었을 때 그 사람을 통해 점점 더 넓은 영역의 사람들이 진리를 알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을 가르치시기 위해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죽으셨습니다. 그 한알의 밀알로 인해 온 세계에 하나님 나라의 진리가 선포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오늘 본문인 디모데전서 2장 4절을 보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하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에는 모든 사람이 다 소중하십니다. 비록 모든 사람들이 다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한 영혼을 구원하시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은 최선을 다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리의 말씀으로 거듭난 여러분들의 영적인 유전자에도 역시 모든 사람이 구원받으며 모든 사람이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는 사랑의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진리의 계시를 받았어도 그런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또 알기를 원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그들은 진리를 알지 못했습니다. 마치 예수님의 쉬운 설교를 사람들이 재미있고 편하게는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한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법적으로만 이해하려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 하나 하나를 보면 그들의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말씀으로 표현하셨기 때문에 무엇을 하라는 것이지, 또 무엇을 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인지는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도대체 무엇을 마음에 염두해 주시고 그 일을 하게 하시는 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숨겨진 의도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 숨겨진 의도는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가르쳐주셨고 사도들이 전한 복음을 성령이 깨닫게 하셨습니다. 성령께서 진리의 말씀 속에 담아놓으신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 전역을 다니시면서 전하신 말씀들 역시 구원의 진리였으나 그것을 듣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의도가 무엇인지를 알 수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시는 말씀이나 개와 돼지에게는 진주나 보석을 던지지 말라는 말씀이나 모래 위에 집을 세운다는 의미나 아니면 반석 위에 집을 세운다는 의미나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배우라는 비유나 하나님 나라를 소개하는 많은 비유들 역시 그 속에 담겨진 뜻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심지어 제자들조차도 그 당시에는 무슨 말씀을 하시는 지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 뜻을 해석해주시고 제자들로 하여금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6장 13절을 보면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하고 말씀하십니다.
진리의 성령이 가르치시는 이 진리는 제자들에게 우월감을 심어주기 위해서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온 세상 사람들, 모든 민족들에게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진리의 말씀의 의미들을 가르쳐 알게 하심으로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나오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이 진리의 복음을 듣고 하나님께 나왔을 때 자신들을 극진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해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제자들은 자기들이 이전에 소중히 여기던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 도전을 받았습니다.
만약 그들이 전적으로 자기 삶을 예수님께 드리지 않았다면 진리의 복음이 전 세계로 전파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열 두명의 제자들뿐 아니라 박해를 피하여 여기저기로 도망쳤던 유대인들은 가는 곳마다 진리의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 복음은 세계를 정복하고 다스리던 로마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로마 주변의 도시들과 나라들로 들어갔습니다.
로마에서 기독교가 국교로 공인되자 로마 카톨릭은 급격히 타락했습니다. 그들은 진리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성경대로 사는 사람들이 보이면 그들은 이단으로 정죄하면서 잡아 들였고 씨를 말리기 위해 고문했으며 공개재판을 하면서 죽였습니다. 진리를 접한 개인이나 교회나 단체가 한 생명보다 그 조직과 단체의 유지를 더 소중히 여길 때 나타나는 현상은 진리로부터 탈선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집단이기주의입니다. 그렇게 될 때 그들은 하나님을 자기들의 영역에서 밀어내는 일이 발생합니다.
그러니까 진리보다 교회가 계속적으로 유지되는 것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소중히 여기면 교회를 유지하기 위한 설교를 하게 되고 그 설교를 듣는 교인들은 분별이 없음으로 인해 목회자가 가르치는 대로만 따라가게 되는 데 하나님의 뜻이 아닌지 알지 못한채 열심만으로 따라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교회만을 위한 말씀을 찾게 되어 말씀은 있지만 하나님의 뜻과는 관계없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그런 교회는 교회를 위한 교회가 됩니다. 세상 구원은 뒷전으로 밀리게 되는 것입니다. 설사 그들이 열정적으로 전도를 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자기 교회를 더 키우기 위해서지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는 큰 관심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교회와 교인들은 큰 교회의 큰 직분을 받은 직분자로써의 우월감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병든 교회의 병든 성도가 되게 만듭니다.
물론 진리에 완벽한 교회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못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개인과 교회와 가정과 온 세계를 향하신 하나님의 진리를 알게 되면 작은 것들까지도 어느 위치에 있어야 하는 지를 알게 됩니다. 그래서 잘못된 것을 시인하고 계속해서 바로잡아 나가는 영적인 갱신이 이루어집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께서 그리시는 큰 그림뿐 아니라 작은 그림과 세세한 그림들까지도 알게 하셔서 온 성도와 온 교회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머리이신 예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 나라 일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18절을 보면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하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진리의 말씀으로 나으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첫 열매는 아닙니다. 첫 열매는 사도 시대의 모든 성도들이 첫 열매입니다. 야고보서 1장 18절을 보면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하고 있는데 여기서 야고보는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 중에 우리 곧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로 하여금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경우는 부활의 첫 열매이십니다. 그리고 한 교회가 세워질 때 처음 믿는 사람을 그교회의 첫 열매라고 합니다. 이처럼 기독교의 역사를 보면 초대교회는 첫 열매고 지금의 우리는 거의 끝 열매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은 인류 역사의 거의 끝을 행해 가는 과정에서 예수님을 믿음으로 열매가 된 여러분들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변함없이 모든 사람들이 진리를 알고 진리의 말씀으로 인해 구원의 열매를 맺고 계십니다.
오늘날 교회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단순히 성경에 써있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그 말씀을 기록하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오늘날의 교회들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순종해야 합니다. 오늘이라고 하는 날에 한 사람에게라도 진리이신 예수님의 복음을 전해줘야 합니다.
그래야 그들이 성령과 진리로 거듭나서 새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로써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복의 확산이며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우리 제석교회가 하나님의 진리로의 부르심에 온전히 응답하고 온 세상 모든 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그런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