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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9일 토요일 [(녹) 연중 제14주간 토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성 아우구스티노 자오룽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 이사야 예언자는 우찌야 임금이 죽던 해에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 하고 아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안다고 증언하고 복음을 선포하라고 하신다(복음).
<나는 입술이 더러운 사람인데, 임금이신 만군의 주님을 내 눈으로 뵙다니!>
<육신을 죽이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 되면,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얻고 어떤 위험에서도 피할 수 있는 확실한 피난처를 얻게 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신앙 안에서 개인의 마음의 평화만을 구하거나 세상의 갈등을 회피하려고만 하지 말고,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
가장 큰 사랑으로 사소한 일상생활을
강가를 걷다보니 한 며칠 내린 집중호우로 산책로 곳곳에 큰 물웅덩이며 진흙탕길이 생겼습니다. 신발이며 바지에 흙탕물이 튀지 않게 조심조심 걷다가 아주 특별한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세상에 그렇게 작고, 하얗고, 귀공자다우면서도 귀여운 강아지는 처음 봤습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다들 걸음을 멈춰 서서 귀엽다, 예쁘다, 난리였습니다. 그런데 녀석이 걸어다가가 큰 물웅덩이 앞에 섰습니다. 아마도 태어나서 처음 보는 큰 장해물이었던 가봅니다. 녀석이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몰라 했습니다. 그런 녀석을 애정 가득한 눈길로 바라보던 주인아저씨가 이렇게 말하며 녀석을 당신 품에 꼭 안았습니다. “우리 애기, 무서웠쪄? 이제 괜찮아. 아빠가 있잖아!” 세상에 그 어떤 사랑 많은 아빠 저리 가라였습니다. 아저씨 품에 꼭 안긴 녀석의 표정도 더 이상 행복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습니다. 따지고 보니 지상에서의 천국 체험,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 역시 오래전 아주 어린 시절, 그 누군가에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귀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 부모님 품에 꼭 안겨 지내던 그 시절, 충분히 천국체험을 만끽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마음만 먹는다면 우리 역시 그 누군가에게 그런 천국 체험을 맛보게 해줄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지나온 나날을 돌아보며 ‘그 누구로부터도 사랑다운 사랑 한번 받지 못한 나 같은 인생이 또 다시 있을까?’ 하며 실망하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말씀은 큰 위로로 다가옵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너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마태오 복음 10장 29~31절) 함께 걸어가는 우리 이웃들을 좀 더 귀히 여기면 좋겠습니다. 아무리 미운 사람일지라도 그 역시 하느님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는 존재임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참으로 비참하고 한심한 ‘나’라 할지라도 하느님 앞에는 너무나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최근 시성시복되는 성인들의 생애를 묵상하면서 그분들이 지상생활을 영위해나가시는 동안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었던 한 가지 특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만물, 만사를 귀히 여겼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하루를 영원처럼, 영원을 하루처럼 살아가셨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그분들은 가장 큰 사랑으로 사소한 일상생활을 지극정성으로 살아가셨습니다. 하찮은 물건 하나를 바라 볼 때도, 날아가는 새 한 마리를 바라볼 때도 아주 사랑스런 눈으로 정중하게 바라보셨습니다. 피조물 중의 가장 으뜸인 인간을 대할 때는 더할 나위가 없었습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 특히 가장 가까이 몸 붙여 살아가는 가족들과 이웃들을 얼마나 큰 애정의 눈길로 바라봤는지 모릅니다. 더불어 더없이 나약한 허물투성이인 자신의 인생도 너그럽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봤습니다.
또한 그분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짧은 생애를 더 없는 기쁨의 삶으로 엮어갔는데, 그 기쁨이 그 누군가 타인에 의해 주어진 기쁨이 아니었습니다. 그분들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한 든든한 주님 그분의 현존하심에 의한 흔들리지 않는 기쁨이었습니다. 그 결과 모진 박해와 끊임없는 고통 속에서도 성인들의 얼굴은 언제나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던 것입니다.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 “서로 죄를 고백하십시오" (야고5,16) >
초등학교 4-5학년 때쯤으로 기억합니다. 어머니와 평택 시장에 갔습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에 비집고 들어갔더니 마침 아저씨가 아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아저씨는 저의 얼굴을 들여다보자마자 약을 한 알 주셨습니다. 저는 그것을 먹고 어디 가지도 못하고 아저씨가 하는 요란스러운 말소리를 들으며 앉아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저를 앞으로 나아오라고 하였습니다. 아저씨는 저에게 바지를 내려 보라고 했습니다. 수백 명은 돼 보이는 사람들 앞에서 바지를 내리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어정쩡한 자세로 팬티까지 벗겨진 저는 창피해서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제 엉덩이에서 희고 긴 회충들이 몇 마리 밖으로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아저씨는 그 회충을 발로 밟으셨고 저의 다리 길이만한 그 회충들 안에는 어미와 똑 같이 생긴 새끼 회충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아마도 형들과 뱀을 잡아 먹은 일이 있었는데 그 때 생긴 것 같습니다.
희한한 것은 처음엔 정말 창피하고 부끄러워 숨어버리고 싶었었는데 내 안에 있던 부끄러운 것들을 내 눈으로 직접 보게 되니 부끄럽기 보다는 그 아저씨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두려워하지 마라’라고 하시며,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이유 중 하나가, ‘모든 감추어진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니 숨기지 말고 어두운 곳에서 들은 것을 밝은 곳에서 말하고, 귓속말로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선포하라 하십니다. 즉 두려워하지 않으려면 숨기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숨기고 있으면 그 부끄러운 것이 드러나게 될까봐 두려워지지만,내가 내 부끄러운 것을 보고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보게 되었다면 더 이상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이런 의미에서 고해성사 볼 때 자신의 치부를 무릎 꿇고 타인 앞에서 토해내는 것 자체가 이미 커다란 치유의 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며칠 전에 전과도 없었던 10대 심모(19)군이 상상하기도 힘든 시신훼손을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평소 알고 지내던 김모(17)양을 성폭행하려다 반항하자 목 졸라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한 것입니다. 이 청년은 정신 병력도 없고, 당시 술도 마시지 않은 상태였지만 성폭행하려 했다는 부끄러움을 덮기 위해 살인을 하고, 또 그 살인을 덮기 위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위로 시신을 훼손하여 없애려 했습니다. 작은 부끄러움이 있을 때 바로 사람들 앞에서 그 부끄러움을 털어버릴 수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큰 범행을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잘못하면 그것을 인정하려하기 보다는 피하고 보지 않으려는 마음이 강하게 일어납니다. 저도 군대 있을 때 사고를 냈고 그 때 그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은 생각이 몰려왔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작은 잘못이 있을 때 덮으려는 습관을 들이지 말고, 아주 작은 것이라도 사람들 앞에서 털어놓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두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주일에 입원하여 퇴원하고 오늘 처음 화장실에서 큰일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 축적되고 굳어버린 그것은 문 앞에서 계속 주저하며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나갈까, 말까 약을 올리는 것 같았습니다. 짜증나서 그냥 포기할까 생각도 했지만 지금 해결하지 않으면 걱정만 커질 것 같았습니다. 끝내 비교해서는 안 되는 ‘아기 낳는 아픔이 이럴까?’ 하는 마음으로 근심을 쏟아내었습니다.
제가 제 안에 있는 회충의 실체를 제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그 창피함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단 그 실체를 내 눈으로 보았다면 그것을 다시 넣고 싶은 생각은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내 안의 치부는 마치 대변처럼 내 안에 있을 때는 안에 넣어두어도 될 만한 것이란 생각이 들지만 내가 직접 객관화하여 그것을 대면하여 그 실체를 보게 될 때는 다시 집어넣고 싶은 생각은 절대 갖지 못하게 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내 안의 작은 죄들이나 부끄러운 것들은 감추어두어도 될 것 같지만, 실제로 꺼내놓고 보면 다시는 다시 감추고 싶지 않은 비밀들인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그래서 서로 죄를 고백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해 주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저도 그래서 최대한 고해성사를 자주 보려고 합니다. 모든 것은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드러나게 마련인 것을 가지고 있으려니 얼마나 힘이 들까요? 숨기는 것이 많은 사람들은 항상 두려움에 쌓여 자유롭지 못하고 경직되고 남들만 비판합니다. 이젠 서로 겸손하게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해 줍시다. 이것이 우리 교만과 두려움의 죄를 치료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죄를 고백하고 서로 남을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병이 낫게 될 것입니다. 의인의 간절한 기도는 큰 힘을 냅니다.”(야고 5,16)
Courage under persec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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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9일(토) 음6/6 고통받는 예수 성심의 聖女 바울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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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받는 예수 성심의 성녀 바울리나(Paulina do Coracao Agonizante de Je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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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받는 예수 성심의 성녀 바울리나(Paulina do Coracao Agonizante de Jesus)는 1865년 12월 16일 이탈리아 북부 트렌토(Trento) 지방의 비골로 바타로(Vigolo Vattaro)에서 아버지 안토니오 나폴레오네 비신타이네르(Antonio Napoleone Visintainer)와 어머니 안나 피아네체르(Anna Pianezzer)의 딸로 태어나 아마빌레 루치아 비신타이네르(Amabile Lucia Visintainer)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 지역의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그녀의 부모 역시 가톨릭 신자로서 열심히 살았지만 가난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1875년 9월에 그녀의 가족은 다른 많은 사람들과 함께 트렌토에서 브라질의 산타 카타리나(Santa Catarina) 주(洲)로 이주하여 오늘날의 노바 트렌토(Nova Trento) 지역에 속한 곳에 비골로(Vigolo) 마을을 건설하였다. 12살 무렵에 첫 영성체를 한 아마빌레는 어린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병자를 방문하며 비골로 성당을 청소하는 등 다양한 본당 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암으로 고통 받는 한 여성을 돌보기 시작했는데, 이로써 쿠리티바(Curitiba)의 주교인 호세 데 카마르고 바로스(Jose de Camargo Barros) 주교의 승인을 받은 원죄 없으신 잉태의 작은 자매회가 시작되었다. 그 해 12월 아마빌레는 그녀의 첫 동료인 비르지니아 로사 니콜로디와 테레사 안나 마울레(Teresa Anna Maule)와 함께 서원을 발하고, 고통 받는 예수 성심의 바울리나(Pauline of the Agonizing Heart of Jesus)라는 수도명을 선택했다. 원장이 된 성녀 바울리나와 동료 자매들의 거룩한 생활과 사도적 열정은 가난하고 불편한 생활 여건에도 불구하고 많은 성소자들을 이끌어 들였다. 1903년 종신 총원장으로 선출된 그녀는 상파울로(Sao Paulo)의 이피랑가(Ipiranga)에 사는 고아들과 노예 출신 아이들 그리고 늙고 소외된 노예들을 돌보기 위해 노바 트렌토를 떠났다. 1909년 성녀 바울리나는 상파울로의 대주교 두아르테 레오폴도 에 실바(Duarte Leopoldo e Silva)에 의해 총원장직에서 물러나 더 이상 수녀회의 어떠한 주요 직책을 맡는 일 없이 산타 카사(Santa Casa)의 병자들과 브라간사 파울리스타(Braganca Paulista)에 있는 성 빈첸시오 드 폴 병원에서 노인들을 돌보도록 파견되었다. 이는 다년간의 기도와 노동과 고통을 수반하는 것이었으나 그녀는 이 모든 것을 수녀회를 위해 받아들이고 인내했다. 1918년 두아르테 대주교의 승인을 받고 빈첸시아 테오도라(Vincencia Teodora) 총원장 수녀는 그녀를 이피랑가의 본원으로 모셔왔고, 그녀는 그곳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머물며 기도와 병약한 수녀들을 사랑으로 돌보면서 조용한 삶을 살았다. 겸손하게 살며 어떠한 역경 중에도 용기를 잃지 말고 하느님께 충실할 것을 당부하는 영적 담화를 남겼다. 1938년 이후 당뇨로 인해 두 번의 수술을 받는 등 그녀는 심각한 건강 문제를 안고 있었고, 생애의 마지막 몇 달 간은 거의 앞을 보지 못할 정도였다. 1942년 7월 9일 그녀는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소서.”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선종하였다. 브라질의 첫 번째 성인인 그녀는 1991년 10월 18일 브라질의 산타 카타리나 주의 플로리아노폴리스(Florianopolis)에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2년 5월 19일 같은 교황에 의해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성인품에 올랐다. 그녀는 파울리나 도 코라카오 아고니잔테 데 헤수스 (Paulina do Coracao Agonizante de Jesus)로도 불린다.
* 자료집에서 발췌 |
가난한 가정에 태어나 전 가족이 브라질로 이민하여 그곳 본당에서 청소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다가 암 환자를 돌보는 일에서 시작하여 수녀회 설립에까지 이른 브라질의 첫 번째 성인, 고통받는 예수 성심의 성녀 바울리나 님이시여
겸손하게 살며 어떠한 역경 중에도 용기를 잃지 말고 하느님께 충실하라고 당부하신 님을 기억하는 오늘 저희도 본당의 곳곳에서 예수님의 기쁨이 될 수 있도록 천상 기도의 축복을 보내 주옵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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