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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9일(월)
청년설교
/ 화종부 목사
목회로 부름받아 30년간 지내왔다. 한국교회의 설교는 복음설교가 너무 약하다. 예수사건에 능수능란한 설교자가 너무 적다. 복음설교에 있어서 4영리 수준이 아닌 본문강해 설교가 중요하다.
군부독재의 시절, ‘불의한 시대를 어떻게 거룩하게 살아갈까. 예수 믿는 사람의 정체성을 가지고 불의한 시대를 어떻게 살아갈까’가 그 당시 대학생의 고민들. 불의한 시대를 책임있게 살아갈 수 있을까 고민하며 사역 시작했다. 정치외교학과 졸업후 내수동 교회 대학부 전도사로 헌신하였다.
당시 오정현 목사, 5분 멘트하고 사람들을 뒤집어 놓았다. 나 역시 자신감이 있었다. 나는 대학부 전도사 때 1시간씩 강해설교를 했다. 그런데, 아무일도 안일어났다. 아이들이 들것에 실려서 병원에 입원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불의한 시대에 ‘왜 나만 이렇게(의롭게) 살아야 해요’ 질문함. 7개월의 시간. 고전2장. “내가 너희가운데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알지 못하노라” 이 말씀을 읽고 지난 7개월 동안 설교한 가운데 예수와 십자가에 대한 메시지가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내 메시지 안에 예수와 십자가가 없구나!
신대원을 마치고 논문을 쓰려고 하는데, 백금산 목사님과 함께 한국교회 대표 설교를 비교해서 분석해보라고 제안. 한경직, 김창일, 조용기 세 어른의 설교를 비교분석했다. 당시 조국교회의 기둥을 쌓았다고 여겨지는 세분의 설교자 였는데 예수님 이야기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조용기 목사님은 “예수의 이름으로” 명제만 나오고 내용, 설명은 안나온다. 그 어른들 설교의 특징은 윤리적 설교이다. 유교적인 윤리의 베이스. 나는 윤리 설교가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복음을 제대로 설교해야 복음적인 윤리가 나온다. 예수님을 설명하지 않고 이야기하는 윤리는 일반 윤리를 넘어설 수 없다.
조국교회를 바라보며 안타까운 것은 예수님 설교의 대가를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부분 성도들의 최상급은 예수 잘믿어서 성공하는 일반 윤리의 수준인 것이다. 예수의 흔적과 표시가 묻어있는 진짜 윤리가 나오기 어렵다.
예수님 자신과 예수님에 대해 설교 잘하는 설교자를 뽑기 어렵다.
옥한흠, 김남준 목사 정도.
예수님. 나의 살을 먹고 나의 피를 마셔야 너희에게 영생이 있다.
예수의 피를 마시고, 예수의 살을 먹어야 산다. 예수 사건을 설교하지 않으니, 그 살과 피를 먹고 마실수가 없다.
청년사역을 하며 열등감 있었다. 나의 설교가 어렵다는 피드백이 많았다. 그러다, 평택에 작은 교회 설교하러 갔는데, 젊은이 어른 반반씩 섰는데, 복음에 관한 설교는 지역, 연령, 지적수준의 구애를 받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청년사역자로 청년과 장년이 다르지 않다. 복음에 능수능란한 설교자가 되어야 한다.
조국교회의 문제는 윤리적 문제가 있는 목사, 변화 없는 장로 때문이 아니다. 강단이 예수의 사건을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강단의 문제이다. 예수님 설교에 몸부림치기 시작하자 아이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교회에 피가 돌고 힘이 난다.
영국유학을 마치고 2000년에 한국에 돌아왔다. 2003년에 총신대 신대원 개강수련회를 인도했다. 엡1:7 “그리스도께서 구속 곧 죄사함을 주셨다.” 설교를 마치고 20명이 찾아왔다. “복음을 선포되는 것이 무엇인지 생생하게 느껴졌습니다.” 공부하던 80년대. 지금. 문제의식의 핵심은 예수의 능수능란한 설교자를 찾기가 어렵다. 그렇기에 조국교회는 심장을 떼놓고 싸우는 것과 같다. 우리는 이길 수 없는 싸움을 싸우고 있다.
교회의 제일 핵심적인 메시지 자체를 잊어버렸다. 강단이 복음을 상실해가고 있다.
두 번째, 복음을 잘 설명하는 방법은 강해설교를 하는 것이다. 한국교회에서는 어렵다는 반대. 설교 1시간, 광고 20분, 예배 2시간 드렸다. 목회로 부름 받은 나에게 무슨 성공이 또 있나. 나는 예수 믿었기 때문에. 강해설교 시작. 교육전도사 때 보던 설교를 보면 허접하기 짝이 없다. 한편의 설교를 위해 20시간을 준비했다. 조국교회를 보면 오늘날은 강해설교의 시대이다.
지나보니 세상 사람들이 맞다는 것 맞은적이 별로 없었다. 영국에서 교회사 석사만 하고 돌아올 때 주변에서 다 말렸다. 하나님이 옳다고 하신 것이 옳은 것이지, 세상에서 빠르고 옳은 것이 좋은 것이 아니다. 조국교회의 성도의 마음밭이 좋다. 영국교회의 성도와 다르다. 느끼는 것은 말씀이 정말 그렇다고 느껴지면, 말씀대로 살고 싶은.
말씀대로 설교할 수 있는 설교자가 모자르다. 지각을 써서 말씀이 과연 그런지를 분별하도록. 본문이 말하는 것이 아닌데도 권위를 엉뚱한데 세우려고 하는 사람들. 본문에 근거한 설교. 본문을 열어내는 설교. 본문이 성도에게 말하는 설교를 해야 한다.
강해설교의 장점은 월요일부터 준비할 수 있다. 제목설교를 하면 많은 날을 제목과 본문 잡는데 시간을 쓴다. 강해설교는 월요일부터 본문을 묵상할 수 있다. 강해를 하면, 다를수 없는 주제를 다뤄야 한다. 강해설교는 자신이 실리지 않은 주제를 다뤄야 한다. 그것이 신학과 안목을 넓혀준다.
성경은 열때마다 다르다. 로마서는 8년을 했다. 4번에 걸쳐서 2년 연구하고, 6년 설교를 했다. 들어갈 때 마다 다르다. 설교를 하면 할수록 쌓인다. 20년을 꾸준히 하니까 어느 순간부터 한 주 앞의 설교를 준비하게 된다. 20년 동안 한 편의 설교를 20시간 쓰고 준비하다보니까 구약과 신약이 약간 넘나들어진다. 설교를 준비하는 시간도 줄어들고, 안목들이 넓어진다. 설교가 얼마나 행복하고, 설교가 쉬워지니 목회 전체가 행복하다. 목회한지 20년은 많이 울었다. 김남준 목사는 신대원 동기 형이다. 제자들교회 김서택 목사 대구동부교회. 좋은 교회 후임으로 가는 것은 무덤을 파는 것이다. 환갑인데 신구약을 다 강해설교 했다. 옆에 친구 김난준 목사. 새벽기도, 부흥회, 수요예배, 특별집회 다 자기가 한다. 나는 일주일에 한편 두편 준비하면 일주일이 다 간다. 김서택 목사는 교회학교부터 어른까지 설교하고 다님. 김남준, 김서택은 열면 다 설교가 나오는데. 하도 우니까 하나님이 너도 김남준, 김서택처럼 설교 잘할래?
너는 징징대며 하나님 옆에 붙어있을래, 아니면 설교잘할래? 둘다 줘요. 하나만 된다. 그럼 주님 곁에 늘 있으면서 징징대면서 주님 곁에 있는 목사하고 싶어요.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탁월한 설교자가 되어야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설교자가 되고, 충실하게 성경을 연구해서, 성경이 전하는 것을 전하는. 목회에 왕도는 없다. 아이 하나 잉태해서 낳는데 10개월 걸린다. 낳으면 그 때부터 10년을 양육을 해야 한다. 한 생명이 10달의 잉태기간과 10년의 양육기간을 거쳐야 하는데, 목회의 생명과 양육을 감당하는데 왕도가 있겠는가. 충실하게 말씀을 연구하고, 말씀이 가르치는 바를 전하는 것 외에 왕도는 없다.
어릴 때부터 본문에 생명을 걸기를 당부한다. 신학교 시절 다 옥한흠 목사의 제자훈련 할 때, 우리는 소그룹, 제자훈련, 예배의 심장인 설교가 회복되는 것이 중요하다 몸부림쳤다. 남서울교회는 제자훈련, 소그룹 활발하게 하는 교회가 아니다. 예배하나 생명걸고 달려왔다. 제자들교회 장년 200명, 십수년 목회하고 떠날 때 700명이었다. 교회가 한꺼번에 수백명 늘은 적은 없지만, 한번도 늘지않는 해는 없었다. 청년들이 그렇게 즐거워했다.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길고, 지루한 설교를 좋아해줬다.
설교를 단거리경주처럼 하지 말라. 목회는 그렇게 평가받을 수 없다. 영혼들을 섬기는 것은 5년 10년 결판을 거는 것이 아니다. 우리 인생의 전부를 걸고 달려가는 것이다. 그 일을 평생을 해서 달려가는 것이다. 강해설교를 하고 제일 행복한 것은, 20-30년 목회를 하면 지치는 동료들도 있다. 그러나 강해설교를 하면 지루한 적이 없다. 애먹이는 성도들. 남서울교회 온지 4년. 어렵게 하는 성도가 없어서 목회가 행복한 것이 아니다. 본문이 열리니까 남이 모르는 비밀을 가지고 목회를 하는 것이다. 바뀌는 것 같았는데 뒤돌아서면 아니다. 간증했는데 뒤돌아가면 다르다. 그럼에도 안지치는 것은 말씀이 열리니까.
강해자로 헌신하고, 말씀이 열려야 성도들에게 말씀에 순종할 것을 요구할 수 있다. 목회자가 말씀을 안보면서 성도들에게 삶을 강요해야 되겠나. 성도들에게 삶을 살도록 가르쳤나. 본문을 죽자살자 연구하면서 가르쳤나. 그러면서 말씀대로 안산다고 그런다.
# 설교 어떻게 준비를 할까
강해설교를 준비할 때
정해진 본문을 여러번 읽으면서 연결고리를 찾는다. 본문을 주석하면서 풀어내는것만이 아니다. 본문이 연결고리를 가지면서 강화시키기도 하고, 넓혀가기도 하고, 그 본문이 하나의 완전한 설교, 기승전결을 갖고 있는 것이 강해설교의 장점이다. 석의를 잘하고 주석하는게 아니라, 본문의 전후문맥을 잘 보면서 확장시키며, 강화시키며, 한 편의 완전한 설교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본문이 정해지면, 본문을 부지런히 읽어나가면서, 전문적인 성경연구자료를 보면서 참고한다. 본문의 객관성이 있는 주석. 나의 느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본문이 객관적으로 문장의 흐름들을 잘 해석해낸다. 목회적이고 목양적인 적절한 책들을 같이 읽으면서 묵상한다. 나는 주로 마틴 로이드 존스. 대학부때 로이드존스의 책을 요약해서 들려줬다. 신학교때 교수님들이 도둑질이라 해서 부끄러웠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선생님들의 사상을 깊이 마시지 않고 내 것이 나오기 힘들다. 좋은 설교자의 영향을 깊이 받는 것은 중요하다.
제임스 패커는 리차드 백스터의 좋은 연구자이다. 좋은 설교자가 되는 중요한 길은 좋은 설교자를 만나는 것이다. 본문을 읽을 때 본문을 주석적인 관점 뿐만 아니라, 목양적인 책을 같이 참고해야 한다.
마틴 로이드존스,
존스토트, 존파이퍼, 팀켈러, - 이 분들의 아쉬움은 한 장씩 통으로 설교를 한다.
여러분의 스타일에 맞는 선생님이 있을 것이다.
캠벨 모건 – 책을 권한다. 목양적인 인사이트.
그 본문을 시작할 때 보통 5-6권 정도의 책을 끝까지 같이 준비해나간다.
본문을 강해할 때 날을 정해서 본문을 정리하지 않을 것. 매일같이 일정한 시간을 정해서 본문을 묵상할 것. 월요일부터 하루 두세시간. 자료를 토대로 매일같이 본문을 연구할 것. 그렇게 본문을 쭉 연구하고 나면, 주로 금요일, 목요일 저녁부터 본문을 묵상하고 연구했던 것들을 이렇게 흐름을 살려서 본문을 구성해야겠다는 얼개가 생긴다. 그것을 정리한다. 3-4개의 대지에 적절한 내용을 요약하고 정리한다. 주로 토요일에 주일날 할 설교를 완전한 한 편의 설교로 타이핑한다. 중요한 것은 설교를 완성된 원고로 작성을 할 것.
교육전도사가 설교로 혼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혼날때는 설교문과 설교가 다르면 혼난다. Full 원고를 들고 올라가야 한다. 실제로 해보면, 읽을 때, 묵상할 때, 정리할 때, 전체를 한편의 설교로 작성할 때 깨닫는게 또 다르다. 1-4부 설교할 때, 1부 때도 설교의 내용이 달라진다. 계속 다듬어진다. 요약된 쪽지만 가지고 올라가면, 설교를 망치는 것이 틀림없다.
완성된 설교를 쓰는 훈련을 해야 한다. Full 원고. 20년만 꾸준히 해보면 설교가 쉬워진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실습
골로새서 1장 9-12절 설교
하나님 뜻 알도록 기도.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도록,
영어 성경에는 분사구분으로 연결시켰다. ->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도록
->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 아버지께 감사하도록
강해설교를 할 때 연결고리를 잘 살려내면.
골 1:20-24
20 – 화목.
21-23 – 화목을 풀어내는 내용 / 악한 행실, 멀리 떠남, -> 화목, 거룩케하심, 흠없게
23-믿음에 거함, 복음의 소망, 흔들리지 아니하면,
골 1:11 모든 능력 = 모든 견딤(환경), 오래 참음(사람)
# 설교를 할 때 본문선택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본문을 설교자가 선택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이 절묘하게 교회와 여러분의 은사를 조화시켜 본문을 선택하게 하신다. 오전에는 PBS 신약 다했다. 연구를 다 마치니, 옥스퍼드 한인 목회에 청빙이 되었다. PBS 못섰다. 회중이 생기니 본문해석이 달라진다. 본문의 객관적인 해석이 달리지는 것은 아니지만, 회중, 구체적인 대상이 생기니, 해석전달이 달라진다. 하나님이 선택하게 하신다는 점에서 강해설교는 영광스럽다.
굳이 강해설교 순서를 정하고 싶다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로마서나 갈라디아서와 같은 복음의 보고와 같은 책에 능수능란하기를 바란다. 복음적인 개념은 알고 있지만, 풀어내지 못한다. 어떻게 복음을 풀어내는지.
시편을 하며, 시인의 정서, 노래, 기도, 경험, 풀어내기 어렵다.
에베소서, 교회. 목회의 두 가지 지탱은 복음과 교회이다. 성경을 연구할수록 교회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더 알아가게 된다. 교회를 다루고 있는 에베소서는 젊을 때 많이 다루라.
요한계시록. 성도와 고난. 신약성경의 핵심적인 주제 중 하나는 고난인데, 한국교회는 풀어내지를 못한다. 구주 세상에 계실 때 가난한 사람들이 교회에 왔다. 조국교회는 중산층 이상만 오도록 계층적 한계를 지닌다.
사도행전. 신학의 틀을 갖추기 전에, 지평을 넓히는.
사복음서. 주님의 생애.
창세기. 시작을 다룸
소선지서. 한번하면 구약에 대한 부담이 사라진다.
신학적 지평을 넓혀주는 본문들을 최대한 젊을 때 시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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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의응답
1) 로마서. 잘받아들이거나 못받아들이는 회중. 갈등. 더 쉬운 본문을 해야 하나.
-> 남서울교회. 3대가 모이는 교회. 초점은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가에 맞춘다. 3천명이 되는 회중이 성령의 도우심으로 동시다발적으로 듣는다. 소그룹운동이 일어날 때, 요동하지 않고, 설교에 목숨을 걸었던 이유이다. 예배라는 미련해보이는 한 번의 시간에, 동시다발적으로 문제가 다루어지고, 그 외에 특수한 상황을 목양하며. 설교의 영광스러움은 한 편의 설교를 다양한 회중이 듣는데, 동시다발적으로 다양한 회중이 다양한 깨달음을 받는다는 것이다.
회중의 영적, 문화적, 사회적, 상황적 차이가 있음에도 어떤 사람은 권계를 듣고, 어떤 사람은 위로를 받는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다고 본다. 미국의 내러티브식 설교를 할 때 문제점은 듣는 청중들을 소비자로 바꾼다. 소비자의 니즈를 설교한다는 문제. 나는 생각이 다르다. 하나님이 주시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우리의 양이 아니라, 하나님의 양이다. 주님이 주신 메시지를 대언하는 것이다.
적용을 할때는 목양적으로 고민이 생기지만, 그것조차도 도움을 누리면서 할 수 있다. 목회적 어려움이 생길 때, 주님을 향해서 주인님하고 기도하는 것이다. 많이 몰리고 힘들때는 주인님 하고 기도를 하면, 무거운 짐이 떨어진다. 내가 책임지는 것이 아니다. 그분이 시키는 것을 잘 수발들면 된다.
2) 강해설교, 교회력. 두 가지가 공존 가능한지. 미국설교의 장점은 탁월한 본문설교. 절기와 제목을 가지고 설교하는데 나는 약하다. 제자들교회 있을때는 절기와 상관없이 본문강해. 남서울교회는 호흡이 짧다. 짧은 본문으로 설교를 하는 편이고, 교회력을 쓰는 편이다. 그것은 융통성을 발휘하는 영역이 아닐지. 강해설교를 하면서 느낀 것은 절기를 맞춰주시는 것을 경험했다. 담임목사로써 제일 괴로웠던 것은 부활절 설교였다. 부활을 안믿는것도 아닌데, 부활을 선포하려고 하니까 너무 고통스러웠다. 절기도 적절하게 쓰면 신학적 영역을 높여준다.
3) 말씀중심의 목회를 하다보면, 자칫하면 목회자 중심, 주일중심의 목회가 되지 않을까.
소그룹, 제자훈련은 평신도 중심의 목회관. 자칫하면 목회자 중심으로 갈수있는데, 어떻게 평신도중심으로 갈수 있을까?
오정현 목사 세대인데, 제자훈련에 생명을 안 건 이유는? 목회만 생각하고, 부흥 생각했다면 제자훈련을 했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성도들을 길러서 삶의 자리로 보내는 것이다. 가정으로 일터로 보내서 삶을 살아내는 것이 꿈이다. 내 자신이 제자훈련을 하고, 받아보니까, 기본적으로 교회에 많이 오도록 시간적으로 만든다. 날짜의 기준이 맞지 않는다.
예배에 중심맞춘 이유는 삶의 자리로 돌려보내기 위한 것이다. 삶으로 돌려보낸 것이다. 사실은 다른 문제의식이다. 오히려 평신도들이 삶을 사는 일꾼들로 현장으로 파송하고 싶어서 제자훈련을 안하는 것이다. 너무자주 교회에 사람들을 부른다. 교회는 활성화되지만, 가정과 일터가 건강하게 세워질 수 없다.
다른 관점에서 목회자의 마인드이다. 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목회자는 하나님과 성도 사이에 있으면 안된다. 하나님과 성도가 직접적으로 만날 수 있도록 촉매처럼 있는 것이 목회자이다. 목회자 중심의 예배나 평신도 중심의 목회도 말할 것도 없고, 그리스도 중심적인 목회가 되어야 한다.
남서울교회는 홍정길 목사부터 평신도운동 했던 교회이다. 2대 이철목사, 3대 목사가 나다. 교회가 20년 만에 처음으로 목회자에게 어텐션을 하기 시작하니까, 장로들이 말했다. 우리교회는 목회자 중심의 교회가 아니고, 평신도 중심의 교회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받는다. 장로님 그건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 그런 이야기는 이제 시대에 뒤진 이야기입니다. 교회의 중심은 목회자나 평신도도 아니고, 구주 예수님이 중심이시고, 평신도와 목회자가 함께 목회하는 새로운 시대가 왔습니다. 평신도가 깨어나니까 자주 싸운다. 주님이 중심에 계시면서, 주님이 중심되심을 함께 섬겨가는 3번째 시대가 온 것이다.
설교와 예배 중심이냐, 제자훈련이나 소그룹이냐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목회자가 보고 있는 목회관이 좌우하는 것이다. 나를 평가하는 것으로 교회나 성도가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들이 핵심이다. 사람들을 가장 잘 세우는 것이 설교와 예배이다. 예배에 60의 에너지를 쏟는다면 소그룹은 40이다. 그래서 성도들에게 예배에 생명걸기를 요구한다.
설교본문 절 나눔 어떤 기준으로
본문해석과 실천적인 부분. 적용적인 부분
4) 예배중심이라 하셨는데, 오히려 조국교회는 예배가 너무 많은데..
새벽예배는 30분만 준비한다. 소그룹 양육은 30분 인도에 조금
완급조절을 할 수 있다. 대예배, 금요예배, 새벽설교, 주중성경공부
모든 설교를 똑같은 에너지를 쏟을 수 없다.
주일과 금요예배를 에너지를 많이 쓴다면, 새벽이나 주중은 간단하게 에너지를 쓴다.
모든 에너지를 다 쓰면 번아웃된다. 새벽기도는 본문강해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본문의 포인트 하나만 살리면 된다.
(결론) 조국교회의 위기는 본질과 내용을 회복하라는 데 있다.
복음과 생명에 충실한. 메시지가 살아있어야 설교자이다.
말하고 싶은 메시지가 없는 목회를 한다면, 그것만큼 비참한 일이 어디 있는가.
* 필기를 정리하는데 한가람 목사님께서 도움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