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감동하시는 하나님
열왕기상 3:3-14
하나님은 감동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지정의의 인격을 가지신 분이시기 때문에 감동의 조건이 있으시면 기꺼이 감동하시면서 감성을 풍부하게 나타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는데 만물을 하나 하나 창조하신 이후에 마지막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인간을 창조하시고 모든 창조물을 보실 때에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이 말씀은 하나님은 좋아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감동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감정이 없으시고 좋은 것을 보시고도 아무런 느낌이 없으신 분이 아니라 좋을 때는 ‘참 좋다’ 기쁠 때는 ‘참 기쁘다’ 행복할 때는 ‘참 행복하다’ 슬플 때는 ‘참 슬프다’고 느끼시고 표현하시는 감정의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요즘 시대를 가리켜서 감동의 시대라고 합니다. 감동을 주는 자가 사업도 잘 할 수 있고 감동을 주는 자가 장사도 잘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감동을 줄 수 있는가를 연구합니다. 어떻게 하면 감동을 주어서 굳게 닫힌 지갑을 열어 물건을 살 수 있게 하는가를 연구합니다. 어떻게 하면 감동을 주어 내 사람으로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됩니다. 그러다보니까 각종 감동 이벤트가 벌어지고 감동이라는 말을 자주 쓰게 됩니다.
제가 주일 저녁에 KBS 제2텔레비존에서 방영하는 개콘을 보는 때가 있는데요, 거기에 보면 ‘내비둬’ 하는 제가 아주 좋아하는 코너가 있습니다.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거기에는 요즘 젊은 사람들의 모습과 그것을 꼴불견으로 바라보는 구세대의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구세대의 사람들이 볼 때는 신세대의 모습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신세대의 모습이 사랑스러운 것이 아니라 꼴불견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그런 모습을 보여야 감동을 줄 수 있고 사랑한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너 예쁘다 그러면 예뿐 줄 알았습니다. 그게 최고의 사랑고백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 그렇게 말하면 안 예쁘다는 말로 들립니다. 요즘에는 이렇게 말해야 감동이 됩니다. ‘수민아 너 내 친구 우주알지. 그가 안면도 꽃 박람회 공짜 티켓이 있다고 구경 가자는 거야. 그런데 나는 안 간다고 했지.’ ‘왜 안 간다고 했어 가지 공짜인데.’ 그러면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 꽃이 옆에 있는데 그 꽃들이 얼마나 시시하게 보이겠어. 실망할까봐 안 갔어’ 이 정도는 말해야 조금 감동이 되는 거예요.
사람들은 감동을 좋아합니다. 감동적인 장면을 보면 눈물이 핑 돕니다.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찡합니다. 마음이 움직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감동을 주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수고를 하고 노력을 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자로서 하나님을 감동시기기 위해서는 어떤 모습을 보였는지 어떤 수고를 하였는지 한 번 생각을 해 보아야 합니다. 사람을 감동시키기 위해서는 그렇게 많은 노력과 수고를 아끼지 않았는데 정작 가장 감동을 주어야 할 하나님께는 솔직히 어떤 모습을 보였습니까?
얼마 전 세미나에서 연동교회 이성희 목사님이 그런 말씀을 하더라고요. 자기 교인들한테 그렇게 말한다는 거예요. 외출할 때는 너무 밉게 보이지 않을 정도로만 화장하고 집에 있을 때 가장 예쁘게 화장하고 남편을 맞이하라고.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정반대로 행한다는 거예요. 외출할 때는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그러는지는 몰라도 가장 예쁘게 화장을 하고 집에 있을 때는 가장 추잡한 모습을 남편한테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누구한테 잘 보여야 합니까? 누구한테 감동을 주어야 합니까? 오늘 예수 믿는 사람들도 이런 잘못을 범할 때가 참 많습니다. 사람을 감동시키기 위해서는 온갖 수고를 하고 노력을 하는데 정작 가장 잘 보여야 하고 가장 큰 감동을 주어야 할 하나님께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것을 아주 당연한 것으로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감동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고 하면 하나님을 잘 믿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얼마나 감동시키고 하나님을 얼마나 기쁘시게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얼마나 자주 감동시켰습니까?
오늘 본문은 성경에서 하나님이 크게 감동하시는 장면 중에 하나입니다. 솔로몬이 다윗의 뒤를 이어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을 때 기브온 산당에 가서 일천 번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꿈에 솔로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무엇을 네게 해주겠느냐 너는 말하라고 하십니다. 솔로몬이 백성을 잘 다스릴 수 있도록 듣는 마음을 달라고 간구했을 때 이 간구가 하나님의 마음에 맞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감동을 하시는데 얼마나 감동을 하셨는지 12절 13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내가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며” 정말 하나님이 감동하셨습니다. 그래서 구한 것 뿐 아니라 거기에 덤 보너스까지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감동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무엇이 이렇게 하나님을 감동하게 했을까요? 솔로몬의 무엇이 하나님에 마음에 합하여 하나님을 감동시켰습니까?
먼저는, 예배입니다.
3절을 보면,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아버지 다윗의 법도를 행하였으니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더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산당에서 제사를 드렸다는 말을 이상하게 오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때는 성전이 지어지기 이전이기 때문에 산당을 지어놓고 그곳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여호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제사하며 분향하는 생활을 계속하였습니다. 성경을 잘 보면 ‘제사하며 분향하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전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예배하는 생활을 계속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솔로몬이 드린 예배에 감동하셨다는 사실이 밤에 여호와께서 나타나셨다는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배가 하나님을 감동시키시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고 예배하는 일이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예배는 우리가 하나님께 구원받은 목표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이 가장 힘쓰고 애써야 할 부분이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이스라엘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원하시면서 구원하시는 이유를 말씀하시는데요, 8장 20절을 보면,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내 백성을 보내라 내 백성을 보내고 출애굽 시키시는 이유가 ‘나를 섬길 것이니라’ ‘나를 예배할 것이니라’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후에 모세와 바로가 계속 싸우면서 실랑이를 벌이는 것이 누구를 보낼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바로는 남자만 보내려고 하고 나중에는 어른만 보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한결같이 처음부터 끝까지 남자와 여자와 어른과 아이들과 심지어 가축까지도 다 내 보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예배가 구원의 목적이었습니다. 그 예배에는 어른만이 아니라 아이들까지 포함되어야 하고 심지어 가축들까지도 포함되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예배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예배에 온 정성을 다 기울이는 사람들을 기뻐하시고 그들의 예배에 감동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말씀하시기를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는 말씀은 예배가 얼마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그들이 드리는 예배를 기쁘게 받으시고 감동을 받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이 감동하시는 예배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형식적이고 습관적이고 마지못해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이 감동하시는 예배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배의 성공자가 신앙의 성공자입니다. 예배를 드리지 않고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절대, 절대 말할 수 없습니다. 예배를 소중히 여기시고 예배에 최선을 다하여 모든 성도들이 예배의 성공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가 헌신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솔로몬이 일천 번제를 드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브온 산당에서 일천 번제를 드렸을 때 꿈에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일천 번제라는 말은 일 천 마리의 짐승을 잡아 불에 태워서 드리는 제사를 말합니다. 많은 성서학자들은 당시의 산당의 규모로 볼 때 일천 번제를 드리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면서 어떤 학자들은 충분히 많은 번제를 드렸다고 해석하기도 하고 지금까지 드린 번제의 합이 일천 번제가 되었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성경의 기록대로 일천번제를 드렸다고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사실 여러 학자들의 지적대로 일천 번제를 드리는 것은 쉽지 않았으리라고 봅니다. 그러나 그렇게 쉽지 않았기에 그 번제가 소중한 번제였고 그 번제를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며 감동을 받지 않았는가 생각합니다. 쉽지 않은 번제, 쉽지 않은 예물, 쉽지 않은 헌신을 주님을 기뻐하시고 감동하시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보면 예수님이 칭찬하시는 헌물을 드린 한 가난한 과부를 볼 수 있습니다. 그녀는 두 렙돈을 헌금함에 넣었습니다. 오늘날로 이야기하면 200원정도 되는 돈입니다. 그 돈을 헌금하는 것을 보시고 주님은 그 여자가 부자들보다 더 많은 헌금을 드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자들의 많은 헌금보다도 더 귀하다고 칭찬하시면서 감동을 먹으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양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최고로 많은 돈을 드렸기 때문이 아닙니다. 헌금할 수 없는 구차한 생활 중에서 자기의 생활비 전부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할 수 없다고 아무것도 안하는 것은 보통 사람들의 모습이고 그런 모습에는 전혀 감동이 없습니다.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조금 하면 조금 감동이 됩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온전히 헌신하면 하나님이 감동하십니다. 돈이 많고 적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을 주님은 절대 상관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많은 돈을 넣었어도 최선을 다하지 않는 헌금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습니다.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하는 것,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헌금과 헌신이 하나님을 감동시키시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이 정성껏 그리고 솔직하게 그리고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께 헌금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저는 헌금에 대한 설교를 그렇게 많이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헌금하는 일이 많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헌금을 안 하시는 분들도 많고요, 잘 하시던 분들도 조금씩 양을 줄이는 경우도 있는 것 같고요, 헌금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성도들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강조를 하지 않는다고 헌금을 안 해도 된다는 그런 뜻은 아닙니다. 헌금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만유의 주님에 대한 신앙고백이고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주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는 신앙의 중요한 행위입니다. 돈을 의지하지 않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겠다는 신앙의 표현이 헌금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최선을 다하여 헌금을 드려야 하고 헌신을 해야 하고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헌금에 최선을 다한 사람들이 받은 축복의 예를 든다. 그리고 솔로몬이 받은 축복을 결론으로 말한다.)
세 번째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간구입니다.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무엇을 구하는지 내게 말하라고 했을 때 솔로몬은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중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했습니다.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자 그 간구가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구한 것은 물론이고 구하지 않은 것 까지도 다 주었습니다. 하나님을 감동시킨 것은 다름 아닌 솔로몬의 올바른 간구였습니다.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나타나서 내가 무엇을 네게 줄꼬 너는 구하라고 했을 때 솔로몬이 구하고 싶은 것이 어디 한 두 가지였겠습니까? 왕의 위치가 중요한 만큼 필요한 것도 많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이르신 대로 장수도 구하고 싶었을 것이고 부도 구하고 싶었을 것이고 자기 원수의 생명도 구하고 싶은 마음이 왜 솔로몬에게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솔로몬은 자기의 책임을 다하겠다는 마음으로 백성들을 재판할 때 듣는 마음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보실 때 얼마나 기특하였겠습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이 감동을 먹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구한 것은 물론이고 구하지 않은 것도 다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역사상 가장 화려하고 가장 지혜로운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한 소년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예수님께 드린 사건이 나옵니다. 일명 오병이어의 기적이라고 부르는 말씀인데요, 여러분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그것을 드린 소년을 보고 감동을 해서 남자만 5천명이나 되는 그 수많은 사람들을 먹였겠습니까? 사실 금액으로 따져 볼 때나 가치로 따져 볼 때나 그것은 한 소년의 도시락에 불과하고 별 것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감동하신 것은 먼저 자기를 생각하지 않고 예수님을 생각하고 수많은 사람들의 배고픔을 생각하였다는 것입니다. 어린 소년이 어떻게 그런 기특한 생각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 기특한 생각이 예수님을 감동시키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기특한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얼마나 하나님이 보실 때 기특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까?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까? 사렙다 과부는 마지막 남은 밀가루 그것은 사실 자기와 아들의 생명과 같았습니다. 그것을 먼저 하나님의 종 엘리야에게 주었습니다. 그 기특한 생각이 하나님을 감동시켰던 것입니다. 그 과부가 그것을 먹지 못해서 죽었습니까? 다른 사람은 죽었을지언정 그 과부는 3년 6개월의 가뭄을 거뜬히 이길 수 있었습니다. 자기의 도시락을 바친 소년이 그것 때문에 배를 쫄쫄 굶었습니까? 아닙니다. 푸짐하게 먹고 자기 생애 최고로 보람 있는 하루를 지낼 수 있었습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을 감동시켰을 때 하나님은 솔로몬을 또한 감동시켰습니다.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서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내가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솔로몬이 이 말을 듣고 얼마나 감동했겠습니까? 너무 감동을 먹어서 15절에 보면 예루살렘에 이르러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 서서 번제와 감사의 제물을 드리고 모든 신하들을 위하여 잔치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감동시키면 하나님이 우리를 더 크게 감동시키시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을 감동시키시는 여러분들의 삶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배의 성공자로 하나님을 감동시키시기 바랍니다. 헌물과 헌신의 삶으로 하나님을 감동시키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기특한 삶으로 하나님을 감동시키시는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도 여러분들을 더 크게 감동시키실 것입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