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주의 묘는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 산3번지에 있다. 이곳은 조선 8대명당이라고도 불리는 곳인데, 그 이유를 정확히 설명하는 사람은 없다. 그냥 떠도는 말인 것이다. 영정이 날라가서 정한 곳이라는 둥 물을 퍼다 부었다는 둥 여러 설은 있으나, 그 또한 사실에 입각한 말은 아니다. 처음 정몽주가 이방원으로 부터 죽임을 당하고 묘를 개성 근처에 조성하였다. 그후 이장한 것인데, 영정이 날라가서 이곳을 묘터로 정했다는 말은 명당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고자 만든 구라인것이다. 조상의 묘를 이장하겠다는 생각을 하면 철저하게 준비하지 않고 갑자기 묘를 조성할 수 있겠는가. 우선 땅을 사야 하고 풍수도 봐야 하고, 택일도 해서 후손들이 모인 가운데 이장이 진행되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영정이 날라가서 이곳에 묘소를 정했다는 말은 터무니 없는 것이다. 혹자는 증손녀 가문인 연안이씨가 잘되었으니 이석형의 묘가 더 명당이라는 말을 한다. 그 말도 틀리지 않은 말이지만, 정몽주는 조선왕조내내 충신으로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었고, 그 후손들도 충신집안의 후손이라는 명예를 가지고 살았다. 또한 문묘에 배향되었으며, 유학의 연원을 정몽주로 삼으면서 조선 유학자의 중심에 자리한 인물이다. 정승판서나 대제학에 결코 부족함이 없는 위상을 확보하고 있었다. 그런점을 감안하지 않고 정승 몇명 대제학 몇명 따지고 있는데, 그렇게 세상의 일반적인 기준으로 재단할 수 없는 위상이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