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나의 자화상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팔년 전이었을까. 조선일보에 소설가 오성찬씨가 기고한 글을 보면 오씨는 1996년에 등단하여 등단 40년에 1년(2007년) 수입이 18만원이라고 하면서 문학이 이렇듯 천대받은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오씨는 40년동안 책을 40권 정도 냈는데 대부분 인세는 책으로 100권 정도 받았다고 한다. 원고료를 책으로 받았다는 얘기다. 대부분의 출판사가 그렇다고 하니 경제대국이라고 하면서 작가를 이렇게 푸대접 하는 나라가 대한민국 말고 또 있는지 모르겠다. 오씨는 10년전 소설가들과 중국여행을 하는 중에 연변에서 우리 동포 작가들과 회동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옆에 앉은 그쪽 잡지의 주간에게 물어봤더니 중국 같으면 군수 정도의 대우는 받는다고 했다는 것이다. 중국 연변 작가들 전체의 대우도 교수 정도는 된다고 했다.
한국 작가들은 오씨만이 이런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작가들의 현실이다. 언제 어디서부터 잘못돼 경제대국이란 대한민국이 이런 상황이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작가라고 말하기가 부끄럽기 짝이 없다. 오씨의 말처럼 우리나라 5천년 역사 어느 시대에 문학이 이렇듯 천대받은 적이 없었다. 특히 한국 문단은 그동안 문학단체장 선거를 하면서 회원수를 늘려 스스로의 위상을 실추시킨 과오를 범하기도 했다. 또한 무분별한 열악한 잡지사의 문학인 배출도 회원수를 증가시키는데 일조를 해왔다. 회원수가 많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제대로 역량을 검증받지 못한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요즘은 개인 작품을 출간하지 못하면 문학을 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문학단체장은 아예 돈이 없으면 출마할 수 없다.
부산의 한 문학단체의 경우 회장에 출마할 때 돈을 수천만원 내겠다고 공약하여 당선되기도 했다. 이렇게 돈으로 하는 문학단체에는 필자가 머물 곳이 아니라는 생각에 전국 10여개 문학단체를 다 버리고 현재는 무소속 상태다. 이제는 자기 돈으로 책을 내야 하니 결국 돈이 없으면 문학을 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신문이나 잡지에 작품을 실어 원고료를 받는 전업작가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고, 아무리 신문, 잡지에 좋은 작품을 많이 발표해도 문학단체에서 주는 문학상과는 거리가 멀다. 내용이야 어찌됐던 자기 돈으로 책만 많이 찍어서 ‘여기 있소!’ 하고 내밀면 문학상 깜(감)이다. 신문연재 소설은 작품이 아니냐고 질문하면 책으로 출간해 오면 문학상에 올려 보겠다는 말도 서슴없이 한다.
소설작법을 공부해 역량을 쌓아 문학상공모에 당선되어 등단하는 사람은 드물지만 당선되기도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좋은 작품을 선정하는 것이 아니라 심사위원 입맛에 맞는 작품을 고르기 때문이다. 작법을 공부하지 않아 소설의 경우 묘사와 설명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는가 하면 표절 시비로 문제가 된 사람이 심사위원으로 나오기도 한다. 객관적인 심사에 문제가 있을 수 있는 대목이다. 경남 합천군은 다라국 문학상을 공모하면서 당선자와 심사위원간에 비리(거래)가 밝혀져 당선이 취소되기도 했다. 더구나 불교를 폄하하는 작품이 당선되어 불교계가 크게 반발하는 소동까지 벌어졌다.
자기 돈으로 책을 내어 등단을 자칭하거나 문예지에 책을 수십권 구매해 주고 ‘신인상’이란 이름으로 추천을 받는 사람이 적지 않다 보니 작가의 역량도 떨어지고 작품 내용보다는 책을 낸 횟수에 따라 문학상을 받기도 한다. 이런 잘못된 행태에 식상한 필자는 문학상공모를 통해 지금까지 20여 기관에서 당선되어 문학상을 받았고, 감사패, 공로패도 여러 차례 받았다.
최근에 필자는 대구의 한 언론사가 공모한 문학상에 가작으로 당선되자 수상을 거부하기도 했다. 작품 소재의 희귀성을 망각했기 때문이다. 돌맹이보다 금덩어리가 왜 가격이 비싼지를 잊은 모양이다. 여러분을 심사위원이라 생각하고 물어 보겠다. 일본제국 시대에서 누구나 핍박과 가난하게 사는 백성들의 보편적인 삶의 이야기를 당선으로 뽑을 것인가? 아니면 조국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만주벌판에서 추위와 굶주림에 속에서 목숨을 걸고 일본군과 싸우는 독립군의 눈물겨운 삶의 이야기를 당선작로 뽑을 것인가?
언젠가 소설가 故 최인호씨가 한 말이 생각난다. "문단의 단은 연줄과 같아 연(鳶)이 줄에 매달려 있는 한 그 연(鳶)은 마음대로 하늘 높이 날 수 없다. 연이 마음대로 하늘 높이 날기 위해서는 줄을 끊어야 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문학단체가 없다고 말했다. 자기 돈으로 책을 내야 문학인이 되는 시대, 밥벌이도 안되는 문학을 무슨 이유로 거머쥐고 있는지를 고민해야 하는 시대,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나의 자화상을 보면서 씁쓰레한 마음만 가을의 낙엽처럼 쌓여가고 있다. 입추가 지나서인지 아침 저녁에는 제법 날씨가 쌀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