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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동화작가인 “앤서니 브라운”의 “엄청나게 커다란 소원”이라는 동화를 보면, “램버트, 힐다, 로스”라는 세 아이가 tv를 보는 가운데, 완전 따분하고 지루함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tv를 끄고 밖에 나가서 놀려고 할 때, TV화면에 파란 요정이 나타나서는, “나는 너희의 소원 세 가지를 들어줄 거야. 뭐든 말만 하면 돼. 하지만 소원은 아주 신중하게 골라야 해”라고는 사라졌습니다. 이를 본 아이들은 너무 좋아했습니다. 그리고는 무엇을 말해야 할지 생각하는 가운데, 램버트가가 냉장고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냉장고 안이 텅 비어서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커다란 바나나 하나 먹으면서 고민하면 좋겠는데”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속으로 말했는데도 커다란 바나나가 눈 앞에 확하고 나타났습니다. 그것을 보고 “이 멍청이!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야?”라며, 힐다가 화를 냈습니다. 힐다는, “오빠 코 끝에 저 바나나나 붙어 버려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바나나가 그 아이의 코에 콱하고 달라붙었습니다. 램버트는 순간, “내 코!”라며, 코에 붙은 바나나를 잡아당기며 울었습니다. 로스와 힐다가 힘을 합쳐 바나나를 떼어내고자 잡아 당겼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힐다는 “우리 오빠 코에서 엄청나게 커다란 바나나가 떨어지게 해 주세요”라며, 마지막 하나 남은 소원을 사용했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이런 기회가 있다면, 무엇을 소원으로 말하겠습니까? 본문은 새로운 왕으로 즉위한 솔로몬이 일천번제를 드린 후 하나님을 만나 지혜를 구하자, 지혜뿐 아니라 부귀와 영광도 약속 받았는다는 내용입니다. 일천 번제를 드린 후 하나님이 꿈에 나타나 소원을 물으시자, 솔로몬은 백성들의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합니다. 솔로몬의 대답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것은, 그가 다른 어떤 것보다도 백성들을 잘 통치하기 위해, 선악을 분별하는 지혜를 구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솔로몬의 기도를 들으시고, 솔로몬에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십니다. 여러분, 솔로몬의 기도가 왜?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했을까요? 무엇이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했을까요? 그것은, 솔로몬의 기도는, 자신을 위한 이기적인 기도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한 기도였기 때문입니다. 또, 자신의 사명을 이루기 위한 기도였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즉, 무엇을 하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명이 있다는 겁니다. 솔로몬은 이러한 사명을 이루기 위해 기도했던 겁니다. 그의 기도는,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기도였습니다. 성도된 우리도 하나님께 많은 기도를 합니다. 그 기도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기도가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우리의 소망이 주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3절을 보시면,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아버지 다윗의 법도를 행하였으나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더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만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본문의 시작을 보시면,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하고”라고 합니다.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왕이 되자마자 하나님께 제사드리기 위해 기브온으로 갔습니다. 그는 기브온의 산당에서 일천번제를 드렸습니다. 횟수로 천 번을 드린 제사였는지, 천 마리의 제물을 한꺼번에 드린 제사였는지 학자들 간에 분분하지만, 그 규모는 이스라엘 역사상 전무후무한 규모의 제사였습니다. 본문에서 솔로몬은, “여호와를 사랑하였다”라고 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한 믿음의 사람이었기에, “다윗의 법도를 행하였다”라고 합니다. 그의 부친인 다윗이 말한 법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었습니다. 솔로몬은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고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산당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분향했던 겁니다. 솔로몬은 예루살렘에서 기브온이 멀지 않기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잘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밤을 지새우며 기도했습니다. 그가 이렇게, 기도한 것은 하나님을 향한 간절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솔로몬의 간절함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나타나셔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솔로몬은 일천 번제를 드리는 동안 자신의 온 마음과 정성과 힘을 모두 하나님께 기울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솔로몬은 왕이요, 열강과 견줄 수 있는 위치에 있지만 그는 하나님을 찾고 번제로 제사하면서 기도합니다.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의 법도를 따릅니다. 이는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알고 있다는 겁니다. 우리는 여기서 솔로몬이 하나님을 사랑했다는 내용을 생각하기에 앞서 솔로몬의 별명인 “여디디야”라는 말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여호와께서 그를 사랑하신다”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바로 솔로몬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그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사랑은, 추상적인 개념이나 말로 그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솔로몬의 삶 속에서 경험된 생생한 은혜였습니다. 여러분, 솔로몬이 경험한 이와 같은 사랑은 우리에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상기시켜 줍니다. 우리는 아담 이후로 “죄”와 “저주의 자녀”였습니다. 그러나,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십자가의 은총은, 우리에게 “의인”이라는 칭호를 붙여주었으며, 더 나아가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이처럼 놀라운 사랑을 알고 경험하는 모든 사람은 사도 요한과 같이 이렇게 고백하게 됩니다. 요일 4: 10을 보시면,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고 합니다. 성도된 우리도 솔로몬과 같이, 언제 어디서나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하나님과 함께 하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늘 우리와 함께 하시는 가운데, 매일의 삶 속에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고백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9절을 보시면,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라고 합니다. 성도된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우리의 미래를 소망해야 합니다.
본문은, 솔로몬이 꿈속에서 하나님의 물음에 응답하는 내용입니다. 이 내용을 통해, 우리는 솔로몬이 꿈 속에서도 백성들을 바르게 통치하기를 소망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솔로몬의 꿈에 나타난 하나님은,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고 합니다. 이때 하나님을 향한 솔로몬의 태도가 어떠했습니까? 본문에서 그 태도를 찾아보면, “듣는 마음”이라는 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듣는 마음”이란 어떤 마음입니까? 말 그대로 주의 말씀에 늘 귀를 기울이고 받아드리는 마음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의 자세로, 백성들을 통치함에 있어서, 그들의 말에 귀를 귀울이고, 그 말 속에 있는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본문 앞의 7 - 8절을 보시면,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주께서 택하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그들은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라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한계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절대 의존하며, 갈급함으로 기도했던 겁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왕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데, 자기 자신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기에 더 갈급함으로 간절히 기도했던 겁니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공정한 재판을 할 수 있도록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합니다. 자신의 무능함을 깨달을 때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부족하다는 것을 느낀 자에게 비어 있는 그릇을 채워주십니다. 갈급함이 없을 때 형식에 치우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주의 도움을 겸손히 늘 구할 때 필요한 은사를 주시며,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눅 11: 9을 보시면,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합니다. 또, 엡 6: 18 - 19을 보면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라고 합니다. 여러분, 솔로몬이 하나님의 지혜와 은혜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솔로몬의 기도는 자기 사명을 감당키 위한 헌신의 기도였고, 백성들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잘 통치하기 원하는 봉사의 기도였습니다. 그랬기에, 솔로몬의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에 흡족한 기도였습니다. 그는 왕으로 등극한 솔로몬은 자신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그리고 왕의 자리에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을 찾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자신이 원하는 것을 구하기 전에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했습니다. 헬렌 켈러는, 맹인으로 태어난 것보다 더 불행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주저하지 않고, “시력은 있으되 비전이 없는 사람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어디에 있습니까? 본문의 솔로몬의 소망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소망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삶과 생각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소망을 품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소망이 본문의 솔로몬과 같이 하나님 안에 있습니까?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소망에 따라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 나갑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소망을 하나님 안에서 세우고, 하나님 안에서 그 소망을 이루어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14절을 보시면,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이 내 길로 행하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또 네 날을 길게 하리라”고 합니다. 축복은 받는 것만큼이나 지켜나가는 것도 중요합니다.
본문은 솔로몬이 지금까지 받은 은혜, 그리고 앞으로 받을 더 놀라운 축복들을 어떻게 지켜나가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그러기에, 본문은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허락하신 풍요와 번영에 대한 보증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솔로몬이 하나님과의 약속을 파기했을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솔로몬에게 징계하실 지에 대한 경고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본문의 끝부분을 보시면,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이라는 조건 하에, “네 날을 길게 하리라”는 결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께 커다란 복, 자신이 원하는 소원성취만을 생각할 뿐,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날 경우,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징계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지 않습니다. 하지만, 본문을 비롯하여, 성경전체에서는, 하나님께 순종할 때와 하나님을 거역했을 때에 대한 축복과 징계가 언급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거할 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에 있어서 나태하거나 게을러서는 안 됩니다. 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망각해서도 안 됩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 왕이나 본문의 솔로몬 왕의 공통점은 제위 초기에는 하나님께 순종했으나 제위 중간부터는 서서히 하나님에게서 멀어졌다는 겁니다. 사울왕은 하나님의 명령을 백성들을 핑계삼아 거역했고, 솔로몬 왕은 주변의 이방국과 정략적 결혼으로 인해, 이방국의 공주와 함께, 그가 섬기던 우상을 섬기는 제단을 예루살렘 성 안에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에, 사도 바울은 고전 10: 12에서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합니다. 여러분, 본문의 이스라엘과 솔로몬 왕 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모든 왕들과 인류의 모든 역사 그리고, 오늘날의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법 앞에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법은 본문의 이스라엘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인생의 마지막 날과 세상 종말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지엄하신 심판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 때에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꿇어 엎드려 자신의 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은, 타 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타 종교에서 “하나님”이라고 했다해서,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 종말의 심판자는 그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가 믿고, 우리가 의지하며,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고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가운데, 지혜자로 살았던 것과 같이,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거함으로, 하나님의 뜻 안에서 형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이 응답하심으로 이루지는 것을 경험하는 것처럼 기쁜 일도 없습니다. 이 기쁨을 경험할 때, 비로소, 신앙생활의 재미도 느낄 수 있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기도 응답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이루어주셨지만, 그는 그것을 우연으로 치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신앙의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곤경에 조금만 부딪혀도 흔들리고 맙니다. 신앙생활을 포기하고 맙니다. 우리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 언제나 신앙생활의 재미도 느끼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느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본문의 솔로몬과 같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 기도는, 자신의 욕심을 따라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 중심적으로 구하는 겁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구한 기도는 백성을 통치하기 위한 지혜였습니다. 이것의 근본에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이스라엘을 잘 통치하겠다는 하나님 중심이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 각 개인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목회자만 선교사만 사명이 아니라, 사업가로서, 군인으로서, 직장인으로서 여러 모양으로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 사명의 중심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드러내는 겁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 각 개인에게 주신 이러한 사명완수를 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며,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의 모든 기도가 응답되심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넘치는 은혜의 축복 가운데 거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