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금융시장이 검은 화요일을 맞았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여파로 미국의 긴축 방향이 오리무중이 되면서 공포가 시장을 강타했기 때문이다.
14일 코스피는 전날보다 2.56% 하락한 2348.97, 코스닥지수는 3.91% 하락한 758.05로 거래를 마쳤다.
올해 들어 가장 큰 폭의 하락폭을 기록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도 공세가 지수를 끌어내렸다. 이날 외국인은 코스피에서 6397억원, 코스닥에서 2457억원을 순매도했다. 외국인은 선물시장에서도 1조 6154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원-달러 환율도 급락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1달러 오른 1311.10원=9.3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아시아 시장도 SVB발 여파를 피하지 못했다. 닛케이평균 2.19% 하락, 홍콩 항셍지수 2.27% 하락, 대만 자취안지수 1.29% 하락, 중국 상하이종합지수 0.72% 하락하는 등 주요 지수가 일제히 하락했다.
'블랙 먼데이'를 회피했던 시장 분위기가 하루 만에 바뀐 것은 SVB발 불확실성에 시장이 뒤늦게 반응한 결과다. SVB에 이어 뉴욕주 시그니처 은행이 파산하고 샌프란시스코 퍼스트 리퍼블릭 은행에 대한 우려까지 대두되면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급격한 금리인상 비용청구서가 뒤늦게 배달되면서 그동안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입만 바라봤던 투자자들의 시선이 경기침체 가능성으로 옮겨간 것이다. 물가와 금융안정 사이에서 FRB의 고민도 깊어지게 됐다. 연준의 비공식 대변인으로 불리는 닉 티밀라오스 월스트리트저널 기자는 13일 SVB와 시그니처 은행 붕괴에 따른 지방은행의 주가 급락은 높은 인플레이션(물가상승)과 싸워온 FRB가 1년간 피하고 싶었던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존 우즈 크레디트스위스 아시아태평양지역 최고투자책임자는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유동성 리스크와 관련된 만큼 연준이 금리 인상을 멈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동안 투자자들은 FRB의 피벗(입장 선회)만 기다려 왔다. 파월 의장이 온건파(통화완화) 입장만 내놓아도 주식시장이 환영한 이유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물가와의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연준의 후퇴가 미국 경제의 급속한 침체 신호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김형렬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연준 피벗이 물가안정 목표를 달성한 뒤라면 시장이 환호했지만 현 상황에서의 태세 전환은 미국의 금융시스템 리스크가 그만큼 높다는 뜻이다. SVB 파탄이 민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알 수 없는 만큼 당분간 변동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세계 금융관련주 시가총액 이틀 만에 4650억 달러 증발
미 국채 2년물 이율은 지난 7일 2007년 6월 이후 처음으로 5%를 넘었지만 13일에는 4.03%로 거래를 마쳤다. 일주일도 안 돼 1% 급락한 것이다. 단기물 이율 급락은 급격한 금리 인하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중앙은행들이 급격한 금리 인하로 통화정책의 키를 돌리는 것은 경제에 문제가 생겼을 때 뿐이다. 다이앤 스완크 KPMG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FRB의 긴축 움직임을 탈선시킬 수 있는 하나는 금융위기. 우리가 위기를 피할 수 있을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고 말했다.
미국 정부가 SVB 파탄 조기 진화에 나섰지만 시장은 미국 지방은행의 리스크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자칫 SVB와 비슷한 규모의 미국 중소 지방은행들이 연쇄 도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뉴욕증시에서는 중소은행주들의 급락세가 이어졌다. '제2의 SVB' 가능성이 나온 퍼스트리퍼블릭은행 주가는 하루 만에 61.8% 하락했고 웨스턴얼라이언스뱅코프 47%, 팩웨스트뱅코프 21%, 자이언스뱅코퍼레이션 25.7% 등 지방은행 주가가 일제히 하락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무디스는 퍼스트리퍼블릭을 비롯해 웨스턴얼라이언스방코프, 코메리카, UMB파이낸셜 등 6개 지방은행에 대해 신용등급 강등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여파는 대형 은행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블룸버그는 이날 SVB에 대한 우려로 세계 금융관련주 시가총액이 이틀 만에 4650억 달러(약 62조엔) 감소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이 예상보다 빨리 경기침체나 금융위기에 빠지는 것은 세계 금융시장이 우려하는 시나리오다. 소시에테제네럴의 아시아 주식전략책임자 프랭크 벤지무라는 "미국 경기침체가 예상보다 빨리 발생할 위험이 커지면서 아시아 증시도 반응하고 있다. 한일처럼 경기 사이클에 많은 영향을 받는 나라나 소형주 등이 더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