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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의 신화를 찾아서] (27)
질문 : 꼬박꼬박 미사참례 해도 신앙생활 형식화되는 듯
저는 주일미사도 빠지지 않고, 고해성사도 꼬박꼬박 하고 있는 청년입니다. 예전에는 묵주기도도 매일 바쳤는데요. 바쁘다는 핑계로 묵주기도를 빼먹기 시작했더니 이제는 기도를 시작하는 것조차 너무 힘이 듭니다. 그 때문인지 미사 중에도 ‘멍 때리기’ 일쑤고, 점점 제 신앙생활이 형식화되는 느낌입니다.
답변 : 신앙생활도 리듬 있어… ‘믿음과 회의’ 반복 통해 성장하길
질문자의 상태가 참으로 답답하고 무기력한 상태로, 묵주기도 같은 단순한 염경기도도 힘들고 미사 때도 멍하고 신앙생활의 리듬이 다 깨어져 버린 상태이니까 얼마나 힘들고 답답한지 생생하게 전해지네요. 우리들의 신앙생활에도 리듬이 있는 것 같으니 우선 안심하세요. 왜냐하면, 신앙인들이 모두 다 순교자 같은 열정과 사랑에 불타서 신앙을 위해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상태는 아니니까요.
신앙생활에도 리듬이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우리는 하느님 안에서 내가 받은 많은 것이 모두 은혜로 느껴지고, 모든 것이 하느님의 뜻 안에서 이뤄지며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이 모두 나를 위한 희생으로 느껴져 나도 이웃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칠 수 있을 것 같은 사랑에 활기차게 신앙생활을 해 나가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정말 신앙 때문에 모든 것이 신나고 기쁘며 신앙만이 줄 수 있는 참된 행복을 자신의 삶 안에서 깊이 느끼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지요. 자연적으로 이런 사람들은 내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이웃과 함께 나누기 위해 여러 가지 자선활동이나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면서 기쁘게 살아가지요.
그렇지만 이런 사람들도 때로는 질문자처럼 신앙으로부터 오는 모든 것이 별 의미가 없이 느껴지고, 단순한 기도도 힘들고 모든 것이 형식화된 것 같은 느낌으로 회의와 실의에 빠지는 때도 있습니다.
철학자 버트란트 러셀은 이런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신앙은 바로 믿음과 회의의 반복이다.”
믿음과 회의의 반복적인 체험을 통해서 우리는 올바른 신앙생활을 위해 쓸데없는 가지를 모두 잘라내고, 진정한 생명의 길을 선택할 수 있게 되죠. 고지대의 가문비나무는 천천히 자라면서 아래쪽 가지들을 스스로 떨궈냅니다. 그런 나무가 바로 바이올린의 울림통이 되어 고운 소리를 만들어내죠. 가문비나무는 우리에게 죽은 것을 버리라고 가르칩니다. 사순절의 독서에서도, 우리 앞에 놓인 ‘생명과 죽음’, 그중에서 생명을 선택하는 시기가 바로 사순절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2014년 성탄절에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덕담을 하던 관례를 깨고 교황청 직원들에게 독설 같은 질책을 하면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말로만 신앙인이 아닌 행동하는 진정한 신앙인이 되길 촉구했습니다. 그중에 몇 가지 증상을 소개해보면 ‘자기중심 구세주 망상증’ ‘불안과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주님 곁에서 쉬지 못하는 일 중독증’ ‘돌처럼 굳어버린 정신과 영성’ ‘주님과 만난 기억을 잃어버리고 욕망과 변덕과 강박에 빠진 영적 치매’ 등등. 참으로 무서운 질책이고 독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교황청 직원들에게 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질책은 바로, 우리 모든 신앙인들에게 들려주신 교황님의 훈화입니다.
질문자는 현재 어떤 증상을 앓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면서 자신이 빠져있는 무기력상태에서 벗어나, 활기찬 예전의 신앙인으로 되돌아가실 수 있도록 하시면 좋겠네요. 주일미사에 빠지지 않고 참례하고 고해성사도 꼬박꼬박 보신다니, 희망이 있습니다. 우선 묵주를 들고 저녁 산책을 나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정체된 나의 신앙이 새해에는 더 깊이 있는 영성을 길러낼 수 있는 자비와 은총의 해가 될 수 있도록 지향하면서 묵주기도를 시작하십시오. 그리고 좋은 책을 골라 ‘영적독서’를 시작하십시오. 제가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습니다. “가문비나무의 노래”라는 독일의 바이올린 장인인 마틴 슐레스케가 오랫동안 바이올린을 만드는 과정에서 끌어올린 깊은 영적 체험들을 모아, 우리의 신앙에 대해 깊이 묵상하게 하는 주옥같은 글들로 엮어진 책입니다.
[자아의 신화를 찾아서] (26)
질문) 학력 속이고 결혼한 남편… 자신의 부족함을 권위로 제압
50대 주부입니다. 우리 부부는 대화를 두 마디 이상 하지 못합니다. 대화를 하면 단박에 말다툼으로 끝납니다. 저희 남편은 여러 가지로 부족한 사람입니다. 학력을 속이고 결혼했어요. 최종 학력이 초등학교이고 글이 짧다 보니 관공서 가서 주소를 적는 것도 어려워할 정도입니다. 저는 고졸 학력이고요. 남편은 자기가 부족한 걸 남자라는 권위로, 목소리로 제압하는 못된 버릇이 있습니다. 전 그런 행동이 싫습니다. 차분하게 대화로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고 싶습니다.
답변) 남편의 장점을 칭찬하고 헌신에 감사하는지부터 돌아봐야
우선 남편이 초등학교를 나왔지만 고등학교를 나온 아내를 맞을 때도 별로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라면, 혼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익히신 분인 것 같습니다. 결혼할 때 아마 속인 학력을 보고 결혼하시진 않았을 것이라 봅니다. 학력이 아니라 남편의 인물 됨됨이, 성실함, 체력 등등 다른 장점들을 보고 결혼을 선택하신 것이고 이제 50세가 넘은 나이에도 남편과 함께 사시는 것을 보면 학력에도 불구하고 많은 능력을 남편이 가지고 계셨기 때문이리라 짐작이 됩니다.
실제로 학력은 화려하지만 인성이 제대로 닦이지 않아서 그야말로 추하게 인생을 사는 사람이 있고, 학력은 보잘것없지만 인성이 훌륭해서 주변 사람에게 좋은 귀감이 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특히 경쟁 논리에 사로잡힌 요즘, 지능은 좋지만 인간성이 너무 흉악해서 여러 가지 죄를 짓고도 그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주변 사람을 괴롭히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그러니 학벌이 보잘것없다고 남편이 곧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자신의 전제가 정말 옳은 것인지 한 번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밖에도 돈을 많이 벌어오지 못하는 것, 혹은 시댁이 변변치 않는 것, 외모가 출중하지 못한 것 등등 외적인 조건으로 남편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시는 것도 역시 과연 그런 믿음이 정말 하느님이 가르치고 계시는 것에 부합되는 것인지 한 번쯤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따지자면 가톨릭의 반석이셨던 성 베드로 같으신 분은 그 당시 어마어마한 랍비와 좋은 집안사람들에 비하면 정말 내세울 것 없는 부족한 사람이시겠지요. 또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남들 눈에 화려해 보이고 번듯한 일이 아닌 정말 겸손과 말 없는 성실함이 필요한 어려운 노동일이라서 그 또한 부족함이라고 생각한다면 성 프란치스코 성 돈보스코, 다미안 신부 같은 분들을 우리가 굳이 존경하고 선망하지는 않겠지요. 우리는 위인전이나 성인전에 나오는 인물들은 엄청나게 훌륭한 사람이라고 믿고 있지만, 지금도 그분들처럼 소리 없이 허드렛일을 묵묵히 하고 계시는 숨은 성자가 우리 이웃이자 가족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그분들과 달리 권위와 목소리로 아내를 제압하려 하니 겸손한 사람이 아니라 생각하실 수가 있겠지요. 한데 어쩌면 남편은 바깥세상에선 너무 많은 희생을 하기 때문에 집안에서라도 큰 소리를 치고 싶어 하실 가능성이 많을 것입니다.
물론 그런 언행이 지나치게 폭력적이고 가정을 붕괴시킬 정도라면 치료를 받고 외부의 도움을 받으셔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일단 남편의 손상된 자존심을 회복시켜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의사는 아내라는 것을 한 번쯤 염두에 두셨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살면서 과연 남편의 장점을 내가 얼마나 칭찬해 주었는지. 그리고 남편의 헌신과 봉사에 얼마나 감사를 표현했는지, 또 외부의 어려운 상황 때마다 얼마나 남편의 입장에서 공감을 해 주었는지. 또 아이들에게 아버지가 얼마나 훌륭하신 분이라는 점을 각인시키면서 아버지에게 존경하는 태도와 행동을 배워 주었는지. 또 친정 식구나 시댁 식구들과 만날 때 남편을 혹시라도 무시하고나 깔보는 태도를 보이지는 않았는지, 또 나의 남편에 대한 분노와 실망감 때문에 아이들과 친지들에게까지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한 번쯤 돌아다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남편도 많은 문제가 있으실 겁니다. 하지만, 남편의 심리적인 문제는 남편이 해결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에 부인이 아무리 가르치고 지적해도 남편이 바꾸고 싶을 때만 바꿀 것입니다. 그러나 아내 자신의 문제는 아내가 고칠 수 있는 열쇠를 가지고 있으시니, 먼저 나부터 바꾸면 남편이 나를 보고 배우게 되는 것이 순서입니다.
[자아의 신화를 찾아서] (25)
질문) 교무금 꼭 내야 하나, 십일조가 의무인가
‘교무금’이요. 저희가 부담스럽다면 안 내도 되나요? 그리고 십일조가 의무라 말씀하신 신부님이 계신데 그게 정말인지 궁금합니다.
답변) 교우들 형편에 맞게 스스로 책정, 십일조 강요하진 않아
교회는 하느님의 백성이 모여 이뤄지는 공동체입니다. 성당 관리나 본당의 여러 가지 사업을 위해 재정이 필요하죠. 그래서 본당에서는 신자들에게 교무금을 부과합니다. 제가 알기로 교무금은 교우들의 형편에 맞게 책정이 돼야하기 때문에 많은 본당에서 신자들이 양심적으로 교무금을 스스로 책정해 납부하는 형식을 취합니다. 개신교에서는 십일조가 당연한 의무로 돼있죠. 그러나 성당에서는 십일조를 강요하지 않습니다. 저도 때로는 목사님들이 참 수단이 좋다는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개신교 신자들은 자기 수입의 십일조를 꼬박꼬박 내면서도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부담하는 십일조보다 더 많은 하느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고 굳게 믿는 신자들이 많으니까요. 성당에서는 자신의 처지에 맞게 교무금을 스스로 책정하도록 해도, 의외로 부담스러워하니까 말입니다. 이런 현상을 신앙의 정도라고 비교하거나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교회 운영에 대한 책임감을 지녀야 한다는 태도의 차이를 드러내는 건 아닐까요?
교무금을 내지 않는 것은 신자로서의 의무를 소홀히 하는 것이 되겠죠. 그러면 본당을 어떻게 운영하겠어요? 성당에서는 십일조가 아7니라 삼십일조, 즉 한 달 벌어서 가족들을 돌보고 한 달 수입의 하루치만 교무금으로 내면 된다고 하셨던 신부님을 만났던 기억이 납니다.
질문) 천재지변으로 희생되는 약자들, 하느님 원망하지 않을까
저는 오랜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나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에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류를 사랑하고 보호해 주시리라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천재지변으로 약자들이 희생되고 하느님을 원망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답변) 천재지변은 재앙 아닌 재난… 우리 괴롭히려는 뜻 아냐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 사랑은 하느님으로부터 옵니다. 우리가 먼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죄악과 불신과 경쟁으로 스스로와 서로를 파괴시키는 인간을 너무나도 사랑하신 나머지 당신의 외아들을 인간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를 구원해주셨죠.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셔서 스스로 모든 것을, 심지어 구원에 대해서도 스스로 선택하게 하셨습니다. 아직도 천재지변을 하느님이 인간에게 내리는 벌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천재지변은 하느님이 내린 재앙이 아니라, 기상이나 대기의 부조화 또는 땅 밑의 지각변화에 의해 일어나는 그야말로 자연적인 재난입니다. 결코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괴롭히려는 하느님의 뜻이 아닙니다. 천재지변으로 부자도 죽을 수 있고, 유명 인사들도 불시의 변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가난한 지역에 천재지변이 일어나면, 전 세계의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구호기금을 모금하고 재난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심지어는 가난한 지역의 어린이들까지 저금통을 털어 구호기금을 보내는 사례도 있죠. 그렇기에 질문자의 재난을 바라보는 태도를 조금 바꾸시고 내가 믿고 있는 신앙의 뿌리를 튼튼히 하려는 노력과 더불어, 하느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자신의 삶 안에서 느껴보도록 노력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언젠가는 하느님이 나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계시는지를 깊이 체험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정성과 마음을 다해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는 은총을 기도 안에서 열심히 청하는 일입니다!
[자아의 신화를 찾아서] (21)
질문) 자꾸 다른 사람 판단… 용기도 없고 눈치 많이 봐
평화를 빕니다. 저는 제가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착각에 다른 사람을 자꾸 판단합니다. 봉사해도 기쁜 마음이 적고, 그것마저 안 하면 죄송하다는 생각이 들어, 등 떠밀려 하고 있습니다. 저는 용기도 없고 남의 눈치를 많이 봅니다. 막막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일을 하려 해도 사람 만나는 것이 두렵고 잘하지 못할까 봐 용기가 안 납니다. 나이도 많아 찾기도 어렵습니다. 신부님, 제가 보통 사람처럼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답변) 자신 돌아보는 작업 우선… 피정 통해 자비 체험을
참으로 답답하실 것 같습니다. 나이도 제법 많은 것 같고, 봉사를 하면서도 등 떠밀려 하고 있고, 자신감이 없고 용기도 없으면서 남보다 잘 난 것 같은 착각에 남을 쉽게 판단하고 싫어하고 등등. 이율배반적인 불균형이 가득한 것 같아요.
질문을 들으면서, 우선 첫 번째로 드는 생각은 질문자가 자라면서 진정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성장해 온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방법은 자신에게 부족했던 사랑을 채워나가면서,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인식해야만 하겠지요. 그 방법을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지요.
사람의 인격은 외적인 자기와 내적인 자기 사이에 균형과 조화를 필요로 하지요. 그런데 이 둘 사이에 균형이 심하게 되면, 혼란스러워질 수밖에 없겠지요. 현재 질문자는 자기 자신의 내, 외적 균형을 잃어버린 것 같아요. 자기 자신의 정체감이 확실하고, 자신이 무엇을 위해 살고 싶은지 그 가치관이 뚜렷하면 절대로 다른 사람을 쉽게 판단하고 비판하지 못하지요. 그렇다면, 현재 질문자는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를 정립하지 못해 우왕좌왕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2016년에는 첫 과제로 자신을 들여다보는 작업을 우선적으로 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방법은 조용한 피정집을 찾아가셔서 한 8일 동안 기도하면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시는 작업이 필요할 것 같아요. 여기서 채워지지 않았던, 사랑을 듬뿍 체험할 수도 있겠지요.
며칠 전에, 우리 곁으로 다시 오신 ‘아기 예수’는 성장해서 질문자처럼 자신의 가치를 잃어버리고, 삶의 목적도 모른 채 불만족스런 삶을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 특히 우리 사회의 주변에로 밀려나 힘들게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찾아 그들에게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면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합니다. 그것이 바로 그분이 우리에게 가져다주신 ‘구원’된 삶이지요. 현재 질문자에게는 ‘아기 예수’의 모습으로, 가장 연약한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태어나신 하느님을 만나고 체험하는 일이 꼭 필요할 것 같아요. 그래서 예수님의 사랑을 듬뿍 받게 되면, 현재 질문자가 고민하고 있는 모든 이율배반적인 행동이 고쳐지고, 진정한 치유가 일어나리라고 저는 믿고 있지요.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는 우리의 ‘구원자’이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시지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지난 12월 8일에, ‘자비의 희년’을 전 세계에 선포하셨지요. 교황님이 ‘자비의 희년’을 선포하시면서, 선보인 로고 그림에는 잃어버린 양 한 마리 대신에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성인 한 사람을 양 대신 어깨에 둘러메신 예수님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예수님의 눈 한쪽과 사람의 눈 한쪽이 겹쳐져 하나로 그려져 있습니다. 그 그림은 참으로 깊은 상징성을 띄고 있는 것 같은데요. 달리 말하면, ‘자비의 희년’은 잃어버린 양과 같은 우리 인간을 구원하러 인간이 되어 오시는 예수님의 한없는 자비를 우리 모두가 체험할 수 있도록 초대하면서, 예수님의 자비를 만나 회개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갈 때, 그 사람은 바로 예수님의 눈으로 사람을 보고 창조물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 아닐런지요?
질문자에게 현재 가장 필요한 것은, 당신을 위해 이 세상에 인간의 모습으로 내려오신 예수님의 자비를 깊이 체험하는 일입니다. 우선 피정을 통해서, 하느님의 자비를 깊이 체험해 보도록 하시고, 그것이 용이하지 않으시면 먼저 자신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며 고백성사를 보시고, 가까운 주교좌성당을 찾아가서 ‘성지 순례’를 하시면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을 받으실 수 있지요. 질문자가 예수님의 눈과 하나가 되면, 남을 비판하고 싫어하는 모든 것이 새롭게 바뀌고 새로운 용기를 얻어 기쁘게 사람들을 만나고, 기쁜 마음으로 봉사하며 자신의 삶을 새롭게 꾸려나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리라 믿습니다. 저도 기도로 힘을 보태겠습니다!
[자아의 신화를 찾아서] (20)
질문) 너무나 평범한 나… 직장이나 구할 수 있을지
저는 뭐든 깊게 파고들지 못하는 성격입니다. 심지어 게임이나 운동조차도 일정선 이상은 할 수가 없어요. 그러다 보니 어느 한 방면에서 1등을, 아니 우수한 성적을 거둬본 적이 없어요. 정말 평범하게 살았죠. 남들 눈에 띄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다 보니 그런 제 삶에 별로 불만도 없었습니다. 다만 요즘 들어 내가 과연 쓸모 있는 사람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력서를 내려고 봐도 마땅한 곳이 없고, 자소서를 쓸 때도 나 같은 사람을 뽑을 리가 없다라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답변) 가진 능력을 소중하게 여기고 자신감 키우기를
우선 등수를 매기고 줄을 세우는 한국 학교 시스템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귀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화가 납니다. 세상에는 1등도 필요하지만, 꼴등도, 또 평범하게 중간 성적을 유지하고 있는 이들이 모두 필요합니다. 남들 눈에 띄지 않아도 훌륭한 인생을 살아가는 이들이 더 많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아인슈타인이나 모차르트같이 천재가 아니면 사는 이유가 없다고 믿고 산다면 그런 세상은 참으로 우울한 곳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나라가 뛰어난 천재를 위해 평범한 사람들이 희생하거나, 탁월한 리더를 위해 추종자들이 희생해야 하는 곳이 아니라, 오히려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천재와 리더들이 보다 더 겸손하게 봉사해야 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은 부분이 많지요. 경쟁 지상주의, 뭐든 돈으로 환산되는 물질 지상주의에 살면서 이미 충분히 훌륭한 자기 자신을 비하하는 이들이 많은 사회는 분명 잘못되었다고 봅니다.
이런 잘못된 점을 고치기 위해서는 물론 정부가 바뀌고, 리더들이 바뀌어야 하는 부분도 있지만, 보통 사람들이 각자가 자존감을 좀 더 강하게 만들어 평범한 이가 세상의 주인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력서를 내려고 봐도 마땅한 곳이 없고 자소서를 쓸 것도 없다는 것은 뭐든 부정적으로 비관적으로 보는 습관 때문에 기인하는 부분이 크지 않을까요. 아직까지 세상은 분명 정의롭지 않은 부분이 더 많지만, 바로 그 때문에 귀하와 같은 이들이 할 일이 더 많다고 봅니다.
길이 없다고 주저앉을 것이 아니라, 작은 길이라도 먼저 만들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길은 점점 더 커질 수도 있습니다. 또 내가 만든 조용한 오솔길도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이 즐길 수 있다면 커다란 신작로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가치 있고 아름답다고 봅니다. 히말라야 같은 산도 가치가 있지만, 우리 집 뒷동산의 작은 언덕이 어쩌면 내 인생에는 훨씬 더 중요하고 쓸모가 있지 않는가요.
다시 우리 생활로 돌아와 보죠. 많은 사람들이 그럴듯한 스펙을 쌓으면 좋은 직장이 보장되고, 집안이 좋으면 행복한 생활이 주어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람들 생활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정신과 의사들은 전혀 동감할 수 없는 믿음들입니다. 실제 기업에서는 화려한 스펙만 자랑하고, 성실함과 헌신이 없는 젊은이들을 가려내려 다양한 방식으로 인재를 뽑고 있습니다. 이른바 청담동 며느리나, 금수저들이 돈으로 자녀들을 조종해서 통째로 무력화시키는 부모들 때문에 얼마나 바보같이 인생을 낭비하는지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금세 알 수 있는 인생의 진실들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 자신이 갖고 있는 자원은 소중하고 가치 있게 여기지 않고, 겉으로는 나보다 나아 보이는 사람들과 비교해서 미리부터 자신감을 잃어버리지 않나 하는 점입니다. 특히 무한한 잠재력을 갖고 있는 젊은 시기에 스스로의 능력을 개발시킬 의욕은 꺾어 버리고 자포자기한다면, 건강한 젊은이의 패기만 놓쳐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세상은 여전히 불공평하고, 어쩌면 기회도 정의롭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굳이 부인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젊은이들이 패기를 갖고, 앞으로 해야 할 많은 일들을 헤쳐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자기의 취직이나 결혼 문제가, 어쩌면 기성세대들이 우선 먹고사는데 급급해 지저분하게 만들어 놓은 이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와 닿아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마시고, 더 이를 악물고 한 번 이 세상과 한판 승부를 해 보는 건 어떨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