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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두고 온(?) 가방
윤 경 희
여행을 다녀온 당일, 짐은 대충 정리를 했으나 가방은 비를 맞아서 습기가 있는 듯하여
말리려고 하루를 실내에 그냥 두었다가 보관해 두는 장소에 넣으면서 마음이 아직도 짜--안하다. 출발할 때의 가방과 지금의 가방이 다르기 때문이다.
1월 4일, 재직 시 만들었던 “土山회” 모임에서 7박 8일의 터키행 여행을 떠났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토산회는 “토요일에 가까운 산행을 하자”고 만들어진 모임이었다.
벌써 15년 째 되는 모임인데, 그 당시는 토요 휴일제가 시행되기 전이라, 가볍게 점심을 해결한 후 인근의 가까운 산을 오른 후 저녁식사를 하며 이야기들을 나누는 모임이었다.
그런데 젊은 남교사들이 아예 이름을 “토먹회” 로 바꾸어 부르며 킬킬대고 웃기에 “왜 우리 모임이 토먹회냐?” 고 물었더니, “산행은 조금하고 먹는 것은 토하도록 많이 먹는다” 고 그렇게 부른다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토요 휴일제가 되어 조금씩 먼 곳을 다녔고 이번에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시도했다.
터키는 다녀온 사람들이 추천을 많이 하고 우리 나라와도 소위 “형제의 나라” 라고 일컬어지는 곳이라 회원들이 찬성을 하여 그리스와 연계하지 않고 터키 한 곳만을 여행지로 정했다. 여행짐을 꾸리고자 가방을 꺼내며 약간의 망설임이 생겼지만 그대로 짐을 꾸려 넣었다. 망설였던 이유는 캐리어의 손잡이--돌출시켜 가방을 끌 수 있는 부분--이 오래되어 원활하게 작동을 하지 않아 짐을 끌 때에 불편하기 때문이었다. ‘안되면 가방 속에 있는 끈을 연결시켜 끌면 되겠지’ 라고 스스로를 달래며 마저 정리를 했다.
이 가방은 구입한 지가 꽤 오래 되었지만 원단도 튼튼하고 디자인과 색깔이 독특하며, 다른 곳은 아무 문제가 없고 또 특별한 애정을 가질만한 이유가 있다.
20 여년전 꽤 규모가 큰 학교에서 근무를 하며, 글짓기반 지도를 하였는데, 학교의 예선을 거쳐 출전한 8명의 아동이, 시 대회에서 전원 입상을 하고, 도 대회에 출전하여 우수상을 수상하는 큰 성과를 거두는 결과를 가져왔다. 교육청에서 우수교사로 선정이 되어 포상으로 동남아 여행경비를 지원받아, 일본, 싱가포르, 말레이시아로 가게 되어 기쁨에 들떠 거액을 지불하고 구입한 가방이 바로 이 가방이다.
새벽 5시 48분에 출발하는 KTX 를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 일행이 28명이라 가이드가 동행을 하지 않아 수속을 밟으며 헤매기도 했지만 어쨌든 비행기에 탑승준비를 하며 화물을 수탁하는데, 담당직원이 손잡이 부분의 문제를 발견하고 “이송여부에 문제가 발발할 수도 있으니 동의서에 싸인을 하라” 는 얘기를 듣고 싸인을 했다. 장장 12시간의 비행시간을 거쳐 도착한 터키 땅--이스탄불 공항에 도착을 했으나, 여행일정을 시계 반대방향으로 도는 방향으로 설정하여 이스탄불은 마지막에 보기로 하고 지중해의 휴양도시인 이즈밀의 쿠사다시로 다시 비행기를 타고 이동을 했다. 화물은 이즈밀에서 찾게 되어 있었는데, 항공 수송시 화물취급을 우리 나라보다 훨씬 거칠게 하고 있었다. 가방을 찾아 확인을 해 보니, 출발 시에는 분명 괜찮았던 손잡이 부분의 끝을 감싸고 있던 부분이 돌출되어, 끈을 연결해 가방을 끄니 그 부분이 바닥에 닿아 찍찍 소리를 내어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 원래 가방에 문제가 있었고 또 “이의제기를 않겠다” 는 싸인까지 한 형편이라 할 말은 없지만, 끌지 않고 가방을 손에 들고 움직이자니 무겁고 비스듬히 눕혀서 끌자니 소리가 나고....‘에고 미련퉁이, 며칠 고생을 해야 되겠구나‘ 생각을 하니 머리가 아프다. 옆에서 동행하던 남자들이 들어주기도 하고 현지의 가이드들이 도와주기도 했지만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었다.
성서에 나오는 카톨릭의 도시 에페소로 이동을 하여 헬레니즘 시대에 건축된 여러 유적들을 돌아보고 오는 길, 가방을 옮길 때마다 신경이 쓰였는데, 심지어 현지의 버스기사조차 어눌한 영어로 손짓을 해가며 “첸지, 첸지” 를 외친다. 방법이 없어 고심을 하는데. 가이드가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상가로 우리 일행을 데려간다. 물론 나 한 사람때문만은 아니고 어차피 옵션이었지만, 뜻밖에도 그 곳에서 여행용 가방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대충 가방들을 둘러보고 있는데, 문제는 돈, 해외여행을 여러 차례 다니며 그 동안 쓸데없는 물건들을 군중심리에 이끌려 사 와서 버리기도 많이 한 까닭에 이번에는 아예 환전을 꼭 필요한 경비 외에는 해 오지를 않았다. 난색을 표하는 내게 가이드가 카드결제를 해도 된다기에 혹시나? 해서 넣어 온 카드를 내미니, 아뿔싸!!! “비자나 마스터 카드가 아니어서 결재가 안 된단다”. 그 숱하게 많은 카드 중에서 하필이면 내가 평상시 국내에서 쓰던 농협카드를 덜렁 들고 온 것이었다. 창피하기도 하고 난감하기도 한 나를 보던 한국가이드가 현지인 가이드의 카드를 빌려 결재를 한 후 자기가 입금을 해 주고 나는 귀국 후에 송금을 해 달란다. “빈 가방 처리는 어떻게 하면 되느냐” 는 내 질문에 “그냥 숙소에 버려두면 된다” 는 말을 듣고, 덕분에 마음에 드는 가방을 골라 숙소로 돌아와서 짐을 옮겨 담아 놓은 후 씻고 잠자리에 누웠는데, 내일 아침이면 머나 먼 외국 땅에서 버려질 운명에 처해진 줄도 모르고 텅빈 가슴으로 발치에 놓여진 가방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 저 가방으로 30 여개국에 가까운 나라를 여행을 다녔고 애환을 같이 나눈 20여년을 생각하니, 잠이 쉽게 오지를 않는다. ‘사람과의 인연만 소중한 것이 아니라 사물과의 인연도 이렇게 소중하구나’ 라는 생각에 오랜 시간을 뒤척였다.
다음 날 아침, 새 가방을 끌고 나오면서 계속 뒤돌아 봐지는 고개를 바로 하며 카운터에 KEY를 반납하는데 가이드가 “ 버린 가방을 어디에 두셨느냐?“는 질문에 “숙소에 그냥 두고 나왔다” 고 했더니 열쇠를 다시 받아 내 방으로 다시 올라간다.
무슨 이유인지? 를 몰라 기다리고 있는데 야멸차게 버리고 온 내 가방을 들고 와서 “현지 버스기사가 달라”고 해서 “수리를 해서 다시 사용하라”고 버스 기사에게 주기로 했단다.
‘후--유!! 다행이다. 쓰레기로 버려지지 않고 새 생명을 얻어서 다른 나라에서라도 자기 역할을 다 하게 되어서’... 정말 그 버스기사가 고마웠지만, 인사를 하면 자존심을 다칠까? 염려되어 따로 인사는 하지 않았다.
비록 생명을 가진 존재는 아니지만 그래도 버려지지 않고 해야 할 역할을 더 할 수 있게 된, 두고 온 가방--버려 진 가방--건네 진 가방을 생각하며 현지에서 가방을 구입할 수 있게 편의를 봐준 가이드에게 송금을 하고 카톡으로 인사를 전한 후, 새 가방과 앞으로 이어질 인연을 다시 기대하며 가방을 보관 장소에 넣어둔다.
2015. 1.13
첫댓글 다행히 방문국 사람에의해 다시 사용될 수 있어서 그 나마 위안이 되었겠습니다. 어차피 버려랴 할 물건에 대해서는 미련이나 아쉬움을 가지지 않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알기는 하는데 그게 잘 안되더라구요. 미련퉁이라서.....
해외여행 수필을 빨리쓰라고 독촉하였는데 결과물이 나와 잘 읽었습니다. 역시 대단합니다. 가방이 주인공이네요 여독 풀리면 2탄 기대합니다.
소위 말하는 여독 때문에, 그리고 밀린 일들 땀시.....진짜 여행기는 정리해서 올릴게요
정이든 가방이라지만 미련을 못 버리면 여행갈 때마다 생각이 날 텐데. 다정도 병이 되지 않을지 걱정이 딥니다. 잘 읽었습니다.
그러게 말예요. 미련과 집착이라는 괴물땀시....새 가방에 새 추억을 담아야겠지요 고맙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