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칠백예순한 번째
보릿고개의 지혜와 responsibility
“아야 우지마라 배 꺼질라 가슴 시린 보릿고개길” 애잔한 유행가가 흘러나오자 어린 손자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보릿고개가 뭐예요?” 가을걷이로 비축해 두었던 곡식이 떨어져 굶기를 밥 먹듯 하던 춘궁기를 겪어본 세대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듯합니다. 조선시대에는 보릿고개에 양식이 떨어지면 동네 아낙네들이 무리 지어 산나물을 뜯으러 다녔답니다. 산나물로 죽이라도 끓여 먹으려는 계산도 있었지만, 곡식을 구할 방편으로 산나물을 뜯었답니다. 아낙들은 뜯은 나물을 이고 좀 사는 집을 찾아가 뒤란에 멍석을 펴고 산나물을 쌓아놓으면 그 집 마님이 한 솥에 밥을 지어 먹이고 돌아갈 때 곡식 한 됫박씩을 퍼주는 게 관행이었답니다. 이 관행이 오랜 세월 우리네 농촌을 지켜주었던 산채 정가름이었답니다. 아무도 자존심 상하지 않고 서로 고마워하며 주고받는 정가름 문화가 우리에게 있어 힘든 세월을 불행하지 않게 보낼 수 있었던 겁니다. 2008년 리먼 브러더스 금융위기 무렵, ‘피크오일’ 이론을 바탕으로 석유에 기반한 문명은 한계에 부딪혀 엄청난 사회적 파국이 발생할 것이라며 실리콘밸리의 초부유층이 미사일 격납고를 개조한 지하 요새를 사들이고, 뉴질랜드에 벙커를 짓고 있다는 뉴스가 떠돌았었습니다. 대혼란이 오면 굶주린 사람들이 공격해 올 것에 대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책임’이라는 영어 단어 responsibility의 어원을 더듬어 보면 자기 자신과 타인, 환경에 대하여 response, 응답하는 행위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은 모든 관계에 대하여 책임질 줄 아는 존재라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주위 사람들의 아픈 부름에 응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관심이라고 합니다. 상대에게 공감할 수 있는 사회가 행복한 사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