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는 끝났다.
가자, 頂上으로
강주희 기자 / 사진 이희훈
특명! 춘계 대회를 잡아라.
작년 2011 정기전에서 럭비는 8-5의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며, 4년 만에 정기전 승리를 되찾았다. 그 해 춘계대회와 서울시장기대회에서 연대에 잇달아 패한 고려대에겐 가뭄의 단비 같은 승리였다. 라이벌 연세대와 벌인 경기에서 고려대의 최근 3년 전적은 암울했다. 10전 2승 1무 7패. 심지어 작년 춘계 대회에서는 경희대에 마저 패하면서 전통의 럭비 강호 고려대엔 먹구름이 드리웠다. 고려대, 연세대, 경희대, 단국대가 접전을 벌이 대학 A부 럭비 판도는 고려대의 추락과 함께 연세대의 독주로 굳혀져 가는 듯 했다.
그러나 작년 정기전에서 손에 땀을 쥐는 치열한 접전 끝에 연세대를 꺾으며, 고려대는 다시 비상을 꿈꾸고 있다. 정기전에서의 승리는 선수들의 자신감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이어진 동계훈련. 예년에 비해 한 달 정도 빨라진 춘계 일정에 맞추기 위해 눈 덥힌 녹지에서도 강도 높은 훈련을 이어갔다. 드디어 기나긴 겨울의 터널을 뚫고 봄이 오고 있다. 고려대가 다시 정상의 자리를 탈환할 수 있을 지 올해 춘계대회를 주목해보자.
고려대 럭비 전술의 핵,
시스템 럭비를 품은 토탈 럭비
고려대 럭비 전술의 핵은 ‘시스템럭비’를 기반으로 한 ‘토탈럭비’다. 먼저 시스템 럭비란 15명의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약속된 플레이를 진행하는 것이다. 럭비는 자칫 무질서해 보일 수 있으나 전략과 전술이 치밀한 운동이다. 인골라인(In-goal line)을 향해 나아갈 땐 순간적으로 대형을 바꾸기도 하고, 라인아웃 대형을 갖출 땐 상대편을 속이는 패스 약속을 하기도 한다. 이렇듯 상황에 따라 전략과 공격 루트를 미리 구상해 계획된 플레이를 하는 것이 시스템럭비의 핵심이다.
시스템럭비와 함께 고려대 럭비 전술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토탈럭비’다. 토탈럭비는 토탈싸커처럼 전원공격, 전원수비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필요에 따라 포지션을 파괴하는 것이다. 포지션은 경기를 시작하거나 재개하는 세트업(set-up) 상태(스크럼, 라인아웃)일 때만 유효하다. 일단 플레이가 시작되면 포워드(forward)냐 백스(backs)냐에 관계없이 공수에 참여하는 것이 토탈럭비다. 토탈럭비를 통해선 백스 뿐 아니라 포워드에서도 신속한 패스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공격 루트는 더욱 다양화 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도 관건은 킥!
승부는 발 끝에서 결정된다.
지난해 연세대와 맞붙은 경기들은 킥 하나 차이로 승부가 결정 났다. 5월에 열린 서울시장기에서 고려대는 33-36, 페널티킥 하나 차이로 연세대에 패했다. 반면, 9월 정기전에서는 8-5, 패널트킥 하나 차이로 승리의 기쁨을 맛 볼 수 있었다. 한 마디로 킥 하나에 울고 웃는 한 해였다. 올해도 관건은 킥! 막상막하의 전력을 보이는 올 시즌도 역시 승부는 발끝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무소의 뿔로 거듭나라
최근 3년의 경기에서 고려대 스크럼은 맥없는 모습을 보여왔다. 작년 서울시장기 대회에서는 연세대에 스크럼 반칙으로 패널티 트라이를 3개나 내주며 자멸했다. 스크럼은 럭비 경기 중 가장 빈번이 일어나는 경기재개 방식으로 경기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핵심적인 요소이다. 누가 공을 차지 하느냐에 따라 공격과 수비가 달라지기에 스크럼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고무적인 것은 가장 최근에 치러진 2011 고연전에서만큼은 파워 넘치는 스크럼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밀리기는커녕 오히려 연세대 진영으로 밀고 나가며, 럭비 전문가들로부터 스크럼에서 앞섰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올 해도 작년 정기전만큼만 스크럼이 버텨준다면 해볼 만 하다. 관건은 스크럼을 형성하던 주전 forward 김명환(prop 체교 08), 최민석(lock 체교 08), 이상효(flanker, 체교 08) 세 선수가 졸업함으로써 생긴 구멍을 빈틈없이 채우는 것이다. 이를 위해 고려대는 이번 겨울 최강 실업팀인 포스코 건설과의 전지훈련을 통해 응집력 향상에 힘썼다. 특히 신입생 양대영(lock 체교 12)은 190cm의 장신과 건장한 체격에서 나오는 파워를 바탕으로 전지훈련 동안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포스트 최민석으로의 성장이 기대된다.
포스코 건설의 김명주 감독은 “고려대와 연세대 모두 Forward 선수들의 기량차이는 나지 않는다”며, “보다 응집력 있는 스크럼을 형성하는 학교가 힘의 우위를 가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공격과 수비의 시작, 묵직한 주춧돌, hooker 김집
김집(hooker, 체교09)은 저학년 때만 해도 크게 눈에 띄는 선수가 아니었다. 그러나 묵묵한 노력파인 그는 작년부터 주전 hooker로서 빛을 발했다. Hooker는 forward 최전방 중심에서 스크럼 시 힘의 균형을 잡고, 라인아웃 시 스로윙을 담당하는 포지션이다. 김집은 특히 스크럼을 짤 때 prop을 이끌고 나가는 응집력이 탁월하다. 또한 라인아웃 스로윙 시에는 점핑하는 선수에게 정확하게 공을 보내는 정교함마저 갖췄다.
백스들이 트라이, 킥 등 화려한 플레이로 주목 받는 동안 김집은 묵묵히 팀의 밥상 같은 역할을 소화한다. 제아무리 화려한 음식이라도 밥상이 없으면 차릴 수 없는 것처럼, 김집이 스크럼에서 버티지 못한다면, 라인아웃에서 정교하지 못하다면, 백스들의 독주나 트라이도 불가능하다. 이런 그의 노력을 가장 잘 알기에 김성남 감독은 김집을 “화려하진 않지만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해내는 선수다. 팀의 주춧돌 같은 선수”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라운드 위의 지휘자, 캡틴 이용승
올 해 주장을 맡은 이용승(NO.8 체교 09)은 자타가 공인하는 팀의 에이스다. 그는 forward를 지휘하는 NO.8으로서 경기 흐름을 읽고, 운영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지난해 정기전에서도 이용승은 남다른 감각으로 forward를 지휘했다. 특히 라인아웃에서의 지능적인 전술이 돋보였다. 이용승은 대부분의 볼을 확보하며 후속 플레이로 연결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연세대 럭비의 핵 제갈빈(C.T.B 스레 08)조차 ‘라인아웃에서 대부분의 볼을 확보한 이용승이 돋보인다’고 2011 정기전을 평했다.
타고난 신체조건과 운동능력으로 지금껏 기복 없는 플레이를 선보여온 이용승은 주장으로서도 흠잡을 데가 없다.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은 모두 입을 모아 “믿음직한 주장”이라 손을 치켜 세운다. 김성남 감독은 “럭비는 단체 운동으로 소통이 중요하다. 이용승이 그걸 해준다. 이용승의 리더십으로 팀에 긍정적인 기류가 돈다”며 무한한 신뢰를 보냈다. ‘결과로 보여주겠다’며 자신감을 내비친 이용승. 그가 지휘하는 그라운드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Backs,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빠른 발로 인골라인을 향해 달리는 질주 본능, 빈 공간을 찾아 디펜스를 속이는 페인팅, 상대의 태클에도 무너지지 않는 강인한 힘. 이 모든 것을 갖춰 트라이를 만들어내는 고려대 백스는 강하다. 유성룡(WING, 체교 09)은 강인한 정신력과 스피드를 바탕으로 돌파에 능하다. 이명준(S.H 체교10)은 빠른 발과 명석한 두뇌로 신속하게 경기 흐름을 읽어낸다. 여기에 11, 12학번의 젊은 피들이 더해지면서 고려대 백스는 화룡정점을 찍었다.
2011년 20세 이하 아시아 청소년 럭비대회에 출전한 백스 10명 중 5명이 고려대 선수들일 정도로 고려대의 젊은 피는 주목할 만 하다. 장성민과 김종현은 2011년 춘계와 서울 시장기 대회에서 이미 대학 정상급의 플레이를 보여준 바 있다. 스카우팅도 성공적이었다. 장성민에 대적할 만한 신예 풀백으로 평가 받는 정연식(F.B 체교12)이 입학했다. 이에 유연성과 빠른 발로 재치 있는 플레이를 선보이는 유재혁(C.T.B 체교12)도 가세하면서 고려대 백스는 이제 더 종잡을 수 없게 됐다. 09학번부터 12학번까지 이어지는 빈틈없는 백스, 한동안 대학리그에서는 웬만해서 그들을 막아 낼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멈출 수 없는 질주 본능, 야생마 장성민
고교시절 이미 탈고교급이라 평가 받던 장성민은 긴 팔다리의 서구적 체형에서 나오는 폭발적인 힘과 스피드가 최대 강점이다. 상대의 태클이 들어올 때도 정면으로 돌파해 힘으로 뚫고 나가는 장성민의 모습은 흡사 초원 위를 질주하는 야생마 같다. 김용회 코치는 “순간적인 스피드로는 장성민이 대학최고”라고 귀띔했다.
타고난 승부사인 장성민의 트라이 결정력은 더욱 빛난다. 100m를 11초에 돌파하는 빠른 발로 그는 입학 이후 춘계대회, 서울시장기, 그리고 정기전까지 출전한 모든 경기에서 트라이를 만들어 냈다. 가장 최근에 출전한 20세 이하 아시아청소년럭비대회에서는 필리핀과 대만을 상대로 한 2경기 동안 무려 트라이 5개를 찍어내면서 ‘트라인 머신’으로서의 면모를 가감 없이 보여줬다.
장성민은 대학무대에서는 정상급의 기량에 올랐다는 것이 대세이다. 그러나 워낙 잘 알려진 전력이기에 장성민은 상대수비의 집중마크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대학선수로서 7인제 국가대표에 출전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의 김현수도 2010년 정기전에서 연세대의 집중 수비로 제 기량을 펼치지 못했던 바 있다. 이를 잘 아는 김성남 감독은 “백스 전체를 폭넓게 활용하는 정교한 패스를 통해 경기를 풀어나갈 것”이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