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최첨단 사회를 향한 질문은 다음과 같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하게 될까?' 이어령 교수가 살아있을 때 이런 질문을 받았다. [사람이 말과 경주하면 누가 이기겠습니까?] 이어령 교수는 질문하는 사람을 빤히 바라본 뒤에 이렇게 답을 했다. [사람이 말을 이기려면 같이 달리기 경주를 할 것이 아니라 올라타서 명령을 듣도록 굴복시켜야 한다.] 이기고 지는 것에 대한 기준이 완전히 다른 각도로 생각하게 하는 대답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사람과 인공지능 간의 경쟁(?)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져야 한다. 누가 이기느냐를 따지는 것은 우문(愚問)이다. '어떻게 하면 사람이 인공지능에 올라탈 수 있느냐?'가 보다 적합한 질문이 될 것이다. 인공지능(AI)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많아졌다. SF영화나 소설에서도 AI에 의해 인류가 멸망하거나 위협받는 이야기가 부쩍 늘었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는 초거대(超巨大) AI와 생성 AI, 챗GPT 등이 가져올 패러다임 변화를 생각하면 충분히 들 수 있는 불안감이다. 사람이 계산기보다 계산 속도가 느리다고 해서 계산기에 지배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계산기는 그저 사람이 사용하는 도구일 뿐이다.
다만 검색 패러다임의 변화는 생각을 해봐야 할 문제다. 모바일 시대가 되면서 검색은 큰 변화를 만들어냈다. 휴대폰은 언제 어디서나 꺼지지 않고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다. '검색'은 이미 우리 생활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챗GPT의 등장으로 검색 패러다임이 ‘챗’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챗’은 검색과는 다른 결과를 제공한다. 내용을 요약, 정리하거나 필요하면 계산이나 번역을 해서 문서로 정리해준다. GPT라는 언어생성 모델에 챗봇 기술을 더한 기술이다. 지금까지는 인식율이 몇 %나 되느냐는 질문을 많이 했다면 이제는 내게 맞는 산출물을 얼마나 잘 생성해 주느냐는 경쟁으로 바뀌고 있다. 초거대 AI 모델 가운데서도 특히 눈에 띄는 영역은 언어모델이다. 여기에서 트랜스포머 기술을 활용한 어텐션 모델이 나오고 대형 언어모델(LLM)이 나온다. 바로 버트나 GPT같은 것이다. 여기서 좀 거리가 먼 이야기 같지만 창세기를 생각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바벨탑 사건 이후 [온 땅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다.(창 11:1) 그런데 AI기술이 발전하면서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어느 언어나 즉석 통역이 가능하게 되었다. 하나님이 흩으신 것을 인간이 모으고 있는 셈이다. 이것은 발전인 것 같으며 역행이다. 현대는 초거대 인공지능으로 발전하고 있다. 메타의 '람다', 오픈AI의 'GPT4'와 '챗GPT', 구글의 '바드'같은 모델이 그것들이다. 이들 초거대 AI는 세상의 패러다임을 바꿀 정도로 파급력이 크다.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다양한 위협과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AI안전센터(CAIS)는 샘 알트만 [오픈AI] CEO와 제프리 힌튼 교수 등에 따르면 AI위험에 대한 성명에 서명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AI가 가져올 위험을 팬데믹이나 핵전쟁 같은 위험과 마찬가지로 전 세계가 우선 대응해야 할 과제"라고 경고했다. 이를 위해서는 인공지능에 올라 탈수 있는 노력과 공부가 필요하다. 과거는 검색하고, 현재는 사색하고, 미래는 탐색하라는 말처럼 불안과 공포로 막으려 할 것이 아니라 AI 기술 발전을 견제하면서도 사색하고 탐색해 미래를 열어가야 한다. AI를 인류에 도움을 주는 좋은 도구로 사용할 수 있도록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인공지능의 등에 올라탈 수 있도록 교회는 기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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