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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7장 7-13절. 율법을 주신 목적
1. 앞에서는 성결의 생활에 있어서, 율법 생활과 그리스도 안에서 생활을 주종관계와 혼인 관계를 통해서 설명했습니다.
이제는 율법을 통해서는 성결의 생활이 불가능하다는 것과 오직 성령님을 따라갈 때 성결 생활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7장 7절부터 마지막까지는 율법을 따르는 성결 생활의 파괴적인 결과를 말씀하고, 8장 1절부터 17절까지는 성령님 따라 사는 생활이 참된 성결 생활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7장에서 7-13절은 율법이 성결 생활을 하는데 무능력함을 가리키고, 14-25절은 율법을 따라 살면 곤고한 절망 상태가 된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2. 오늘은 율법을 주신 목적에 대한 말씀입니다.
결론적인 말씀을 먼저 드리면, 율법을 주신 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거룩한 생활, 복된 생활을 하기 위함입니다.
한편, 율법의 소극적인 목적은, 율법을 통해서 자신이 죄인임을 깊이 깨닫고,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런 율법의 소극적인 목적이 기록되었습니다.
3. 오늘 말씀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질 수 있습니다.
7절. 율법으로 말미암아 죄를 깨닫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8-11절. 죄가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 탐심을 불러일으키고 나를 죽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12-13절. 결론적으로, 율법은 죄를 죄로 드러나게 하기 위해서 주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3. <율법을 주신 목적>이란 제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7절. 율법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를 깨닫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7절.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English Standard Version: What then shall we say? That the law is sin? By no means! Yet if it had not been for the law, I would not have known sin. For I would not have known what it is to covet if the law had not said, “You shall not covet.”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Τί οὖν ἐροῦμεν; ὁ νόμος ἁμαρτία;
What then shall we say? the law sin?
‘말하리요’란 동사(ἐροῦμεν)는 미래형으로서(shall we say) 장차 말할 것을 가리킵니다.
그럴 수 없느니라.
μὴ γένοιτο·
never may it be!
여기 동사(γένοιτο)는 부정과거 기원격(aorist optative) 동사로서(may it be) 그렇게 되지 말기를 기원하는 말입니다.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ἀλλὰ τὴν ἁμαρτίαν οὐκ ἔγνων, εἰ μὴ διὰ νόμου·
But the sin not I did know, if not by law
‘알지’라는 동사(ἔγνων)는 부정과거 동사(did not know)로서 부정어(οὐκ:not)와 함께 확실히 알지 못한 과거의 상태를 가리킵니다.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τήν τε γὰρ ἐπιθυμίαν, οὐκ ᾔδειν,
the for covetousness, not I had been conscious of,
직역하면 ‘왜냐하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란 뜻입니다.
여기서 ‘알지’란 동사(ᾔδειν)는 대과거 동사(pluperfect)로서(I had been conscious of), 이전에 탐심을 알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에, 죄도 알지 못했으리라는 것을 뜻하고 있습니다.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εἰ μὴ ὁ νόμος ἔλεγεν, Οὐκ ἐπιθυμήσεις·
if not the law were saying, not you shall covet
이 문장은 대부분 ‘탐내지 말라’(You shall not covet)라고 번역하고 있지만, ‘만일 율법이 말하지 않고 있었다면, 네가 탐내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즉 율법이 탐내지 말라고 말했기 때문에, 네 속에서 탐심이 생겼다는 뜻입니다.
‘말하지’란 동사(ἔλεγεν)는 미완료과거로서(were saying), ‘율법이 과거에 계속해서 말해왔다’는 뜻입니다.
뒤의 동사(ἐπιθυμήσεις)는 미래형 동사로서(you shall covet) 부정어(Οὐκ:not)와 함께, ‘네가 탐내지 않을 것이다’란 뜻이고, ‘탐내지 말라’라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1.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 하였으리라’는 것은 율법의 임무가 죄를 알게 하는 것이란 말씀입니다.
즉 율법이 아니면 어떤 범죄행위도 그것이 범죄행위인 줄 몰랐을 것이란 말씀입니다.
마치 운전하는 사람이 표지판에 그곳으로 가면 낭떨어지이고, 바다로 빠지게 된다고 표시해놓은 것과 같습니다.
2. 율법이 탐내지 말라고 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탐심을 몰랐으리라고 한 것은 십계명 중 열 번째 계명을 말하는데, 특히 열 번 째 계명을 지적한 것은 다른 계명들은 외적인 행동을 규제한 것이지만, 열 번째 계명은 내면적 죄를 지적한 것이기 때문에, 특히 율법 규정이 아니라면 탐심이 죄인 줄 알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3. 오늘 말씀은 <율법이 죄냐?>고 묻는 물음에서 시작됩니다.
7절상.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1) 로마서 7장은 율법주의자들을 염두에 두고, 율법을 주신 목적과 기능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7장 5절에서,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 율법으로 말미암아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사망의 열매를 맺었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율법은 사람의 죄를 정죄하고, 사망에 이르게 하는 역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2) 그러니, 율법이란 말만 들어도, 율법은 나쁜 것이라는 선입 관념, 고정관념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러면, 율법이 죄냐?>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4. 에덴동산에서의 사건을 생각해봅시다.
(1)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2장 16절에서, <동산 각종 실과는 다 먹되, 선악과는 먹지 말라>는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사탄이 하나님의 계명을 구실 삼아서 하와를 유혹했습니다.
바꾸어 말씀드리면, 하나님의 금단의 계명이 없었더라면, 사탄은 하와를 유혹할 근거를 찾지 못했을 것입니다.
(2) 하나님의 계명 자체는 결코 나쁜 것이 아니고, 죄도 아닙니다.
다만, 우리 인간이 연약해서, 사탄이 금단의 계명을 무기 삼아 유혹한 것을 이기지 못했을 뿐입니다.
5.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율법 앞에 연약함을 모르고 율법을 주셨을까요?
아닙니다. 아시고 주셨습니다.
그러면, 율법을 주신 목적은 어디에 있을까요?
(1) 죄악을 억제하기 위해서 율법을 주셨습니다.
죄악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주셨습니다.
로마서 3:20.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본문 7절. 율법으로 아니하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2) 율법은 몽학선생(초등교사)으로서,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간접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말씀드립니다.
닭을 닭장으로 몰아넣으려면, 밖에 돌아다니는 닭을 대빗자루로 후려갈겨서 쫓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닭이 밖에서 자면, 살쾡이가 물어 가버립니다.
(3) 얼굴에 더러운 것이 묻은 것을 안 사람이 물과 비누를 찾듯이,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은 사람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하고, 구세주를 찾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3) 사탄은 율법의 권능을 수단으로 사람을 정죄하고, 사망의 겁을 주면서, 회심의 미소를 지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사탄과 율법의 정죄와 사망의 두려움 때문에, 구원자 예수님을 간절히 찾게 됩니다.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내랴?>
그래서, 율법이 먼저 주어져서, 사람이 자신의 죄와 사망의 위협을 실감하게 되고, 예수님의 복음을 목마르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6. 왜, 사람들이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습니까?
그 답은 오직 자신이 지옥 갈 죄인임을 절감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1) 불신자의 가장 큰 비극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 죄인인 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2) 또한, 교회 안의 교인들도 율법의 정죄를 실감하고, 항상 예수님을 절대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죄를 모르면, 은혜도 모릅니다.
죄를 조금 밖에 모르면, 은혜도 조금 밖에 모릅니다.
율법에게 심각하게 상처를 입어본 사람만이 예수님의 은혜와 복음 진리에 깊이 감격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율법의 기능을 깊이 체득하시고,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에 깊이 감격하는 성도님들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께 대한 절대적인 믿음으로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7. 성도 여러분, 마음과 생각으로 범하는 죄 때문에, 괴로워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이제는, 이 문제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8. 고린도전서 2-3장에는, 세 부류의 사람이 나옵니다.
2:14. 육에 속한 사람 (불신자)
3:1. 신령한 사람
3:3. 육신에 속한 사람(그리스도 안의 어린아이)
9. 마음과 생각으로 짓는 죄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은 세 사람 중에 어디에 속한 사람일까요?
(1) 아마 세 번째- 육신에 속한 사람(그리스도 안의 어린아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과 생각의 죄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은 사실상 <신령한 사람>에 가깝습니다.
실제로 오늘날 성도들 가운데는, 마음의 죄 때문에 괴로워하고 회개하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2) 전통적 신앙인들은 마음의 죄 때문에라도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를 간구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그저 재미있게 웃겨서 마음의 스트레스를 푸는 것을 좋아할지언정, 마음 속으로 죄 때문에 마음 아파 회개하고, 성령님의 은혜를 간구하는 분위기가 아닙니다.
10. 사도 바울은 어떻게 마음의 죄를 알게 되었을까요?
제 1계명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네 지켰습니다.
제 2계명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 네 지켰습니다.
제 3계명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네 지켰습니다.
제 4계명 <안식일을 거룩히 지켜라.> 네 지켰습니다.
제 5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지켰습니다.
제 6계명 <살인하지 말라.> 네 지켰습니다.
제 7계명 <간음하지 말라.> 네 지켰습니다.
제 8계명 <도적질 하지 말라.> 네 지켰습니다.
제 9계명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지켰습니다.
제 10계명 <네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 글쎄요...
11. 예수님을 찾아온 부자 청년(막 10:30)이나 바리새인(눅 18장)은 이것들을 어려서부터 잘 지켰다고 자랑했습니다.
(1) 바울 자신도 빌립보서 3장 6절에서, 바리새인 때의 삶을 회고하면서,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다>고 자부했습니다.
그러던 바울에게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가장 시시하게 여겼던 열 번째 계명인 <탐내지 말라>는 말씀이 새롭게 조명되어 온 것입니다.
<탐내지 말라, 탐내지 말라....탐심, 탐심....> 아, 이런 것이 있었구나....
(2) 그렇다면, 이것은 외적인 행동으로 범한 죄가 아니라, 마음속으로 범하는 죄가 아닌가?
결국 마음의 문제로구나!
12. 그렇다면, 나는 어떠합니까?
(1) 간음은 안 했으나, 음심을 품은 적이 있고, 살인하지 않았으나, 마음으로 죽일 것 같은 분을 품었고, 도적질은 안 했으나, 여러 가지 탐심을 품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나는 살인자요, 간음자요, 도적질 한 자입니다.
뿐만 아니라, 겉으로만 거룩하게 외식한 바리새인이요, 남을 판단하는 못된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다름이 없지 않습니까?
(2) 여기에 생각이 다다르자, 바울은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바울은 무릎을 꿇고 머리를 감싸 안은 채,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울부짖었던 것입니다.
13. 바울 사도는 이런 경험을 언제 했을까요?
(1) 바울은 원래 바리새인으로서, 마음의 죄를 몰랐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바리새인을 책망하셨습니다.
<화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과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마태복음 23장)
(2)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마음의 죄를 깨닫지 못합니다.
고린도후서 4:4. 이 세상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라.
(3) 그런데,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 사도가 된 즉시, 성령님의 비취임을 받고, <마음의 죄악>을 깊이 절감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고린도후서 4:6.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1) 옳지 못한 생각과 마음의 죄책감 때문에, 괴로워하다가, 낙심하고 절망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이때가 오히려 소망이 있는 때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바로 성령님이 강하게 역사하므로, 그만큼 강한 죄책감과 근심을 하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의 근심케 하심으로 애통하는 마음, 상한 감정, 가난한 마음을 귀하게 보시고, 그런 제사를 받으시며 축복하십니다.
시편 51:17.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여호와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 하시리이다.
마태복음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4절.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요.
6절.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날마다 성령님의 감동과 말씀의 조명 앞에서,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깊이 통감하시고, 예수님의 은혜를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속죄의 은혜와 말씀의 위로가 넘치는 복된 신앙 생활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찬송가 190장> 성령이여 강림하사 나를 감화 하시고 애통하며 회개한 맘 충만하게 하소서. 예수여 비오니 나의 기도 들으사 애통하며 회개한 맘 충만하게 하소서.
힘이 없고 연약하나 엎드려서 비오니 성령 강림하옵소서. 충만하게 하소서. 예수여 비오니 나의 기도 들으사 애통하며 회개한 맘 충만하게 하소서,
8-11절. 두 번째로,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 각양 탐심을 일으키고 나를 죽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8절.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sin, taking opportunity through the commandment, produced in me coveting of every kind; for apart from the Law sin is dead.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ἀφορμὴν δὲ λαβοῦσα ἡ ἁμαρτία διὰ τῆς ἐντολῆς,
occasion but having taken the sin through the commandment
‘타서’란 동사(λαβοῦσα)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taken) 죄가 단호하게 싹 기회를 타서 들어오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
κατειργάσατο ἐν ἐμοὶ πᾶσαν ἐπιθυμίαν·
it produced in me all covetousness
‘이루었나니’란 동사(κατειργάσατο)도 부정과거로서(it produced) 과거에 죄가 강하게 탐심을 이룬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주고 있습니다.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
χωρὶς γὰρ νόμου, ἁμαρτία νεκρά.
apart from for Law, sin dead
직역하면 ‘왜냐하면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이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1. 죄가 계명이란 도구를 사용해서 탐심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명이란 율법이 없으면, 죄는 죽은 것처럼 활동을 못 한다는 것입니다.
8절. 죄가 기회를 타서
죄를 의인화한 것은 사탄의 세력을 가리킵니다.
2.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율법=계명을 주시자, 사탄이 <옳다 됐다. 이 때다> 하고 기회가 왔다고 하면서, 율법을 가지고, 사람의 눈에 자꾸 보이게 해서, 금단의 열매를 따 먹고 싶은 충동(탐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3.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 각양 탐심을 이루었나니
8절에서, <죄> <계명> <나> 중에서 무엇이 문제일까요?
문제는 유혹에 탐심의 충동을 받는 <내>가 문제입니다.
(예화) 마음의 구정물 통에 가라앉은 탐심이 문제입니다.
사탄이 계명의 막대기로 휘저으면서 충동질하니까, 마음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탐심>이 수면 위로 올라와버렸습니다.
4.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이니라.
사탄이 살아있더라도, 율법=계명이 없으면, 내 마음속에 가라앉아 있는 <탐심>이 솟아오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9절.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I was once alive apart from the Law; but when the commandment came, sin became alive and I died;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ἐγὼ δὲ ἔζων χωρὶς νόμου ποτέ·
I but was being alive apart from Law once
직역하면 ‘그러나 한 때 율법이 없을 때는 내가 살아 있었더니’라는 뜻입니다.
‘깨닫지’란 동사가 원문에는 없고, 단지 ‘한 때 율법이 없을 때는’(apart from Law once)으로 되어 있습니다.
‘살았더니’란 동사(ἔζων)은 미완료과거로서(was being alive), 율법이 없을 때는 내가 계속 살아있었다는 뜻입니다.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ἐλθούσης δὲ τῆς ἐντολῆς, ἡ ἁμαρτία ἀνέζησεν,
having come but the commandment, the sin revived
직역하면 ‘그러나 계명이 이르매, 죄가 살아났다’는 뜻입니다.
‘이르매’란 동사(ἐλθούση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come) 계명이 결정적으로 확 다가온 과거의 사실을 가리킵니다.
‘살아나고’란 동사(ἀνέζησεν)도 부정과거로서(revived) 결정적으로 확 다시 살아난 모습을 가리킵니다.
즉, 계명이 싹 이르니까, 내 속에서 죄가 탁 살아나는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주고 있습니다.
나는 죽었도다.
ἐγὼ δὲ ἀπέθανον
I then I died
‘죽었도다’(ἀπέθανον)는 부정과거로서(died), 계명으로 인해 내 속에 죄가 싹 살아나고, 그때 나는 결정적으로 탁 죽어버린 모습을 그려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내가’(ἐγὼ:I)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1.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는 내가 살았더니
이것은 바울이 율법 공부를 하지 않던, 천진난만하고, 순진한 어린이와 같았던 어린 시절을 가리킵니다.
바울은 유대인의 교육 방법을 따라, 6세에 율법 공부를 시작하여, 12세부터는 율법을 혼에 새기는 바리새인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율법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는 죄의식이나 죄책감을 갖지 않고, 천진무구한 생활을 했으나 율법 공부를 시작한 후부터는 자신이 율법을 통해서 죄를 확실히 깨닫게 되고, 자신의 삶이 죽을 맛 같은 고통스러운 생활이 되었던 것을 회상하여 말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모세의 율법 외에, 바리새인들 조상들이 제정한 구전 율법을 613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248은 하라는 계명, 365는 하지 말라는 계명)
(1) 율법이 없으면, 탐심이 솟아오르지 않습니다.
율법이 없으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는 탄식도 나오지 않습니다.
율법이 없으면, 나는 행복감을 가지고 살 수 있습니다.
탐심으로 인한 죄책감과 분노가 생기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율법을 통해서 자신의 죄인임을 깨달아야 구원자 예수님을 찾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죄책감이 없이 살다가 지옥에 가고 맙니다.
(2) 그렇다면, 탐심을 밑바닥에 간직한 채, 행복감을 가지고 살아가면, 정말 행복한 존재가 될까요?
아닙니다.
인간은 전도서 3장 11절에 말씀한 대로, 마음 중심에 하나님을 모셔야 참된 행복감을 갖습니다.
2.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1) 인간의 본성은 죄성으로 물들어 있기 때문에, <...하지 말라>는 계명을 들으면, 금방 계명을 어기고자 하는 충동이 생깁니다.
사탄이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계명을 가지고, 하와를 유혹할 때, 하와의 평온하던 마음은 금방 금단의 열매를 먹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습니다.
(예화) TV 수사반장은, 범죄를 근절하려는 목적으로 방영합니다.
그런데, 본 의도와는 달리, 모방범죄의 충동이 생깁니다.
(2) 이처럼, 율법으로는 인간의 탐심의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부각시킬 뿐, 해결의 길을 주지 못합니다.
예레미야 13:23. 구스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있느뇨?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10절.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this commandment, which was to result in life, proved to result in death for me;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καὶ εὑρέθη μοι ἡ ἐντολὴ, ἡ εἰς ζωὴν, αὕτη εἰς θάνατον·
and was proved to me the commandment, that to life, this to death
원문에는 ‘이르게’란 동사나 ‘도리어’란 단어가 없으나 적정한 번역입니다.
직역하면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나에게 사망에 이르게 한 것임이 입증되었다’는 뜻입니다.
‘입증되었다’는 동사(εὑρέθη)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was proved) 결정적으로 확실히 입증된 사실을 가리킵니다.
1. 생명에 이르게 할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1) 율법을 주신 본래의 목적은 원래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주신 것이었습니다.
레위기 18:5. 너희는 내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누가복음 10: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로마서 10:5.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그러나 생명에 이르게 할 계명이 도리어 나에게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계명을 지킬 능력이 본질적으로 본성적으로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인간의 ‘전적 무능력’(total disability)이라고 합니다.
(2) 이처럼, 옛사람은 구제 불능입니다.
율법으로는 개선이 안 됩니다.
오직 예수님이 죄로부터 구원해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님 모시고 살면,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 드릴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율법과 계명을 통해서, 우리 자신의 죄성을 더욱 밝히 깨달아 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은혜를 간구하여, 성령님과 동행하므로,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드리는 사랑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11절.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sin, taking an opportunity through the commandment, deceived me and through it killed me.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ἡ γὰρ ἁμαρτία, ἀφορμὴν λαβοῦσα διὰ τῆς ἐντολῆς, ἐξηπάτησέν με,
the for sin, occasion having taken through the commandment, deceived me
직역하면 ‘왜냐하면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였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타서’란 동사(λαβοῦσα)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taken) 결정적으로 확 기회를 탄 모습을 가리킵니다.
‘속이고’란 동사(ἐξηπάτησέν)도 부정과거로서(deceived) 결정적으로 확실히 속인 사실을 가리킵니다.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καὶ δι’ αὐτῆς ἀπέκτεινεν.
and by it put [me] to death
‘죽였다’(ἀπέκτεινεν)는 부정과거로서(put to death) 결정적으로 확실히 죽인 사실을 가리킵니다.
1.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죄’는 의인화 되어서 사탄을 가리키고, 죄가 나를 속였다는 것은 사탄이 뱀의 형상으로 하와에게 다가가서, ‘선악과를 먹어도 죽지 않는다’고 속여서, 하와와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고 죽게 된 창세기 사건을 말하면서, 나에게 적용한 말씀입니다.
이처럼 아담이나 바울이나 오늘날 우리도 사탄이 거짓말로 나를 속여서 죄를 지어도 죽지 않는다고 거짓말하고, 내 속에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이게 해서 내 속에 죄의 정욕이 일어나게 하고, 내가 범죄해서 죽게 만든다는 말씀입니다.
(1) <죄가 기회를 타서>란 말씀은 마치 표범이 웅크리고 먹이를 낚아채려는 것처럼, 사탄이 성도를 속이고 죽이려고 웅크리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베드로전서 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2) 마귀에게 한 번도 걸려들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담, 하와, 아브라함, 다윗, 베드로도 걸려 넘어졌습니다.
2. 나를 속이고
(1) 사탄은 속이는 명수입니다.
창세기 3장 4-5절에서, 하와에게 <네가 결코 죽지 아니 하리라>고 속였습니다.
<하나님 같이 되리라>고 속였습니다.
(2) 바울도 디도서 3장 3절에서, <우리도 어리석은 자요, 속은 자라>고 말씀합니다.
즉, 자신이 죄인인 줄 모르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다>고 착각했던 것입니다.
스데반을 죽이고, 교회를 핍박한 것이 하나님의 일을 한 줄로 착각했습니다.
얼마나 엄청나게 속고 있었습니까?
(3) 바울은 마귀에게 속는 문제에 있어서,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에베소서 6:11.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에베소서 4: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 (이유는 마귀로 틈을 타지 못 하게 하려는 것)
(4) 교회 안에서, 분 내는 일들을 혹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귀에게 속아서 교회에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린도후서 2:5이하. 간음죄(서모 구합) 지은 성도를 성도들이 지나치게 왕따시키자, 절망하지 않도록 그만 용서하라고 하면서, 계속 왕따시키는 것은 마귀의 궤계에 속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1: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그런데, 뱀이 하와를 유혹한 것 같이, 지금도 사탄은 성도들을(예수님의 신부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5) 고린도후서 11:4.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잘 용납하는구나 = 잘도 속아 넘어가는구나
고린도후서 11:20. 누가 너희로 종을 삼거나, 잡아먹거나, 사로잡거나, 자고하다 하거나, 빰을 칠지라도, 너희가 잘 용납하는도다.
고린도 교인들은 사탄에게 속지 않을 영적 분별력이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잘도 용납하는구나> 였습니다.
교회를 사분오열시켰고(고전 1장), 불신 세계에도 없는 근친상간을 했고(고전 5장), 성도들 간에 재판했고(고전 6장), 가장 위대한 사도 바울을 거짓 사도라고 배척했습니다(고후 3장).
(6) 사탄은 자기를 가장하는 데 명수입니다.
고린도후서 11:14.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느니라.
3. 나를 속이고, 나를 죽였는지라.
(1) 사탄에게 속는 결과는 죽음으로 끝납니다.
로마서 5:12.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요한복음 10: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2) 마귀의 일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기회를 엿보고> <속이고> <가장하여> <결국 죽이는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늘 깨어 기도하고, 늘 성경 말씀 순종함으로, 사탄에게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말씀과 기도로 전신갑주를 입어, 늘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12-13절. 지금까지 말씀의 요약으로서, 율법을 주신 목적입니다.
12절. 이로 보건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So then, the Law is holy, and the commandment is holy and righteous and good.
이로 보건대 율법은 거룩하고
ὥστε ὁ μὲν νόμος ἅγιος,
So then Law (is) holy,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
καὶ ἡ ἐντολὴ ἁγία, καὶ δικαία καὶ ἀγαθή.
and the commandment holy, and righteous and good.
1. 율법은 죄를 죄로 드러나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율법 자체는 거룩하고 선하고, 의롭습니다.
12절.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거룩하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율법이 거룩한 계명들이라는 것입니다.
‘의롭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인간들 사이에서도 율법과 계명은 의롭고 옳고 정의롭다는 것입니다.
‘선하다’는 것은 인간 본성에 비추어보아도 율법이나 계명들은 선하고, 좋은 것이란 뜻입니다.
2. 그러면, 왜 거룩하고, 선하고, 의로운 율법이 나를 죽게 만들었습니까?
그것은 <죄가 죄로 드러나게 하기 위함>입니다.
즉, 법이 없으면, 죄를 드러나게 할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죄의 정체를 드러내기 위해서 법이 필요합니다.
11절: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라고 한 것처럼, 죄란 놈이 뽀족한 눈을 가지고, 엿보고 있다가, 계명을 이용해서, 나를 속이고, 죽게 만들었습니다.
3.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율법이 이렇게 악용(?)될 줄 모르고 주셨단 말입니까?
아닙니다.
율법을 주신 목적이 분명히 있습니다.
율법을 주신 목적은 13절.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니라.
13절.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erefore did that which is good become a cause of death for me? May it never be! Rather it was sin, in order that it might be shown to be sin by effecting my death through that which is good, so that through the commandment sin would become utterly sinful.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냐
Τὸ οὖν ἀγαθὸν, ἐμοὶ ἐγένετο θάνατος;
That which then good, to me became death?
‘되었느냐’란 동사(ἐγένετο)는 부정과거로서(became) 결정적으로 확실히 된 사실을 가리킵니다.
그럴 수 없느니라.
μὴ γένοιτο·
never may it be!
동사(γένοιτο)는 부정과거 기원격(aorist optative) 동사로서(may it be) 그렇게 되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는 것을 가리킵니다.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ἀλλὰ ἡ ἁμαρτία, ἵνα φανῇ ἁμαρτία,
but the sin, in order that it might be shown to be sin,
직역하면 ‘죄가 죄로 드러나지기 위해서’란 뜻입니다.
즉 ‘드러나지기’란 동사(φανῇ)는 부정과거 가정법 수동태로서(it might be shown to be) 결정적으로 확실히 드러나지는 것을 가리킵니다.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διὰ τοῦ ἀγαθοῦ μοι, κατεργαζομένη θάνατον,
through that which [is] good to me, working out death
직역하면 ‘나에게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든다’는 뜻입니다.
‘만들었으니’란 동사(κατεργαζομένη)는 현재분사로서(working out) 언제나 죽게 만드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라.
ἵνα γένηται καθ’ ὑπερβολὴν ἁμαρτωλὸς, ἡ ἁμαρτία διὰ τῆς ἐντολῆς.
so that might become beyond excess sinful, the sin through the commandment
직역하면,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가 심히 죄가 되게 하려는 것이다‘는 뜻입니다.
‘되게’란 동사(γένηται)는 부정과거 가정법 동사로서(might become) 결정적으로 심히 죄 되게 만드는 확실한 모습을 가리킵니다.
1. 율법을 주신 목적은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니라.
(1) 즉, 하나님의 뜻은 계명, 율법을 통해서,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고 율법을 주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율법을 주신 목적은 율법을 통해서 숨어 있는 죄의 정체를 밝히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2) 그러므로, 약삭빠른 척했던 죄란 놈은 계명, 율법을 이용하여, 나를 죽이려고 했지만, 도리어 결과는 죄의 정체가 밝히 드러남으로써, 죄란 놈은 자기가 자기 꾀에 빠지고 만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탄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함으로써, 승리의 손뼉을 쳤지만, 하나님께서는 도리어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인류를 속죄하시고,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서 영생의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3) 사탄은 낚시꾼처럼 숨어서 미끼(계명, 율법)를 가지고, 물고기를 낚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도리어, 율법, 계명으로 인하여, 죄의 정체를 분명하게 드러내버리십니다.
(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율법과 계명으로 인하여, 죄의 정체가 더욱 드러나는 현상이 어디에서 일어나고 있습니까?
네. 그것은 우리 마음속입니다.
율법과 계명이 비춰오기 전에는, 죄가 우리 마음 밑바닥에 죽은 척 엎드려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과 계명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성령의 빛을 조명하면, 우리 마음속의 죄가 강력한 힘을 가지고, 탐욕을 부리기 시작합니다.
(5) 이 죄의 세력은 너무 강력해서, 아무리 의지력으로 억누르려고 해도, 억누르면 억누를수록 더욱 강하게 나를 압도해버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의 힘을 이길 수 없어서, 탄식하며 절규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4절)
(6) 바로 이처럼, 누군가 구원해줄 사람을 찾게 만드는 것이 율법의 소극적 목적입니다.
물론 율법이 죄의 소욕을 억제하는 적극적 역할도 합니다.
이처럼 율법의 소극적 기능을 <몽학선생>(초등교사)이라고 합니다. (갈 3장)
(7) 율법을 통해서는 하나님과의 교제와 섬김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율법은 내가 죄임임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는 겸손한 마음, 애통하는 마음, 상한 마음을 갖게 합니다.
(8) 이처럼, 상한 마음으로 예배하며,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성령의 은혜를 간구하면, 성령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성령님을 통해서 예배와 친교와 봉사가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6절에,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 할지니라>
(9) 7장에서는 <율법, 계명, 죄, 사망>이라는 단어가 죽 나열되었습니다.
그러나, 8장에서는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성령님, 생명, 이김>이란 단어가 죽 나열됩니다.
7장 24절에서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탄식했습니다.
그러나, 25절과 8장 1절에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10) 이제, 우리 대신 정죄를 다 받아버리신 예수님 안에 머물러서, 믿음의 방패로 마귀의 정죄를 다 물리치시기를 바랍니다!
에베소서 6:16.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라.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죄를 깊이 깨닫지 못하면, 은혜도 깊이 깨닫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말씀을 통해서, 죄를 깊이 인식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더욱 의지하시므로, 큰 은혜를 누리시며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