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문(彰義門)은 조선 시대 한양도성의 북쪽에 자리한 소문(小門)으로, 작지만 역사적으로는 큰 사건을 겪은 문이다. 사람들은 이 문을 ‘자하문(紫霞門)’이라는 이름으로도 많이 불러왔다.
창의문이라는 이름은 ‘바른 뜻이 드러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반면 ‘자하문’은 창의문 아래 흐르던 자하동 계곡에서 유래된 별칭이다. 이름은 두 개지만, 각각 공식 명칭과 풍경에서 비롯된 별칭일 뿐이다.
자하문 고개에 올라서면 한양(서울)의 옛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왼쪽엔 백악산, 오른쪽엔 인왕산, 멀리에는 남산과 숭례문, 가까이에는 경복궁의 경회루가 우뚝 솟아 있다. 그래서 이 고개를 넘던 사람들은 잠시 멈춰 서서 풍경을 즐기곤 했다.
창의문은 1623년 인조반정과 깊은 관련이 있다. 광해군 시절, 정권을 바꾸기 위해 일어난 반정군이 바로 이 창의문을 통해 한양에 입성해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를 왕위에 올렸다. 세검정을 지나 창의문을 넘어 조선의 왕이 바뀐 역사적인 문이 바로 이곳이다.
창의문의 문루(누각)는 영조 17년(1741년)에 다시 지어진 것으로, 네 개의 소문 중 유일하게 원형을 간직한 문화재다. 당시 훈련대장이던 구성임의 건의로 개수되어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창의문 천장에는 특별한 그림이 있다. 닭처럼 보이는 봉황 그림인데, 이는 옛사람들의 지혜에서 비롯됐다. 창의문이 있는 인왕산은 예로부터 산 능선이 지네를 닮았다고 전해졌고, 지네의 천적이 닭이라는 믿음에서 닭을 상징하는 봉황을 천장에 그려 악귀를 막고자 했다. 작은 문 하나에도 이런 세심한 배려가 담겨 있다.
창의문은 크지 않지만, 조선의 권력이 바뀌었던 역사적 장소이자, 아름다운 산세와 도성의 경관이 어우러진 특별한 공간이다.
창의문 길 건너편에는 윤동주 문학관이 있어 윤동주의 삶과 문학을 조명해 볼 수 있고 윤동주 시인의 육필원고와 시집 초판본, 당대 사진을 볼 수 있다.
이 가을 창의문 성곽길을 걷고 윤동주 문학관에서 시인의 삶과 시 세계에 잠시 머물어 보고 자연 속을 걸으면서 역사와 문학을 만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창의문에 가려면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에서 나와 7020번 또는 7022 버스를 타고 윤동주 문학관 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
2025. 10. 8
윤 홍 섭 시니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