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꽃은 산 넘어 어디에선가 불어오는 따스한 봄바람을 완연히 느낄 때 즈음에 피기 시작한다. 동네 앞산은 물론 높은 산꼭대기까지 온 산을 물들이는 꽃이다. 진분홍 꽃이 잎보다 먼저 가지마다 무리 지어 피는 모습은 고향을 잊고 사는 우리에게 잠시 유년의 추억으로 되돌아가게 해준다.
아동문학가 이원수 선생은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울긋불긋 꽃 대궐 차린 동네/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라고 노래했다. 꽃 대궐의 울타리는 산 능선을 이어 달리듯 펼쳐진 자그마한 키의 아기 진달래 꽃밭으로 만들어진다. 더 예쁘게 만들기 위하여 육종이란 이름의 성형수술을 받지 않아도 충분히 예쁜 자연 미인이다.
진달래는 비옥하고 아늑한 좋은 땅은 우악스런 경쟁자들에게 모두 빼앗기고 생존의 극한 상황인 산꼭대기로 쫓겨난 나무나라의 가난한 백성이다. 바위가 부스러져 갓 흙이 된 척박하고 건조한 땅, 소나무마저 이사 가고 내버린 땅을 찾아 산꼭대기로 올라왔다. 잎파랑이란 공장을 돌리는 데 꼭 필요한 수분이 부족하고 대부분의 식물들이 싫어하는 산성토양에 적응하는 강인한 생명력으로 가난하지만 이웃과 사이좋게 오순도순 모여 그들만의 왕국을 만들었다.
이런 땅에는 경쟁자가 많지 않다. 형제간인 철쭉이나 산철쭉이 경쟁자이나 서로 뒤엉켜 이전투구를 벌이지는 않는다. 적당히 영역을 나누어 살아간다. 다만 진달래 꽃밭이 엉뚱한 이유로 차츰 없어지고 있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산림보호 정책의 성공으로 숲이 우거지면서 진달래가 터전을 마련할 양지바른 땅이 자꾸 줄어들기 때문이다.
남부지방에서는 진달래보다 참꽃나무란 이름에 더 친숙하다. 가난하던 시절에는 진달래가 필 즈음이면 대체로 먹을 양식이 떨어져 배고픔이 일상일 때이다. 굶주린 아이들은 진달래꽃을 따먹으며 허기를 달랬으므로 진짜 꽃이란 의미로 참꽃이란 이름을 자연스럽게 붙였다. 식물도감에 보면 제주도에 참꽃나무가 있다고 나와 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참꽃’은 진달래를 두고 하는 말이다.
진달래란 말의 어원은 달래에 접두어 진(眞)이 붙은 형태로 짐작하고 있다. 달래는 우리가 알고 있는 봄나물뿐만 아니라, 달래란 이름이 흔하듯이 꽃을 나타내는 다른 뜻도 있었던 것 같다.
같은 진달래도 토양산도와 유전형질에 따라 빛깔이 조금씩 달라진다. 빛깔에 따라 꽃잎 색이 연한 연(軟)달래, 표준색깔의 진(眞)달래, 아주 진한 난(蘭)달래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는 어린 소녀 시절부터 나이가 들어가면서 변하는 젖꼭지 빛깔을 비유한 말이기도 하다.
우리의 옛 문헌에 나오는 진달래는 모두 두견화(杜鵑花)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중국의 전설에서 유래한다. 중국의 촉나라 망제(望帝) 두우는 손수 위기에서 구해준 벌령이란 신하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국외로 추방당한다. 억울하고 원통함을 참을 수 없었던 그는 죽어서 두견이가 되어 촉나라 땅을 돌아다니며 목구멍에서 피가 나도록 울어댔는데, 그 피가 떨어져 진달래꽃이 되었다는 것이다. 두견이의 울음소리가 중국 사람들에게는 그네들 발음으로 돌아감만 못하다는 뜻의 ‘부루구이(不如歸)’라고 들리는 듯하여 이런 전설이 생겼다는 것이다.
서울 수유리에 있는 4월 학생혁명 기념탑에는 “해마다 4월이 오면 접동새 울음 속에 그들의 피 묻은 혼의/하소연이 들릴 것이요 해마다 4월이 오면 봄을 선구하는/진달래처럼 민족의 꽃들은 사람들의 가슴마다 되살아/피어나리라”라는 신동엽 시인의 시가 새겨져 있다. 진달래는 이렇게 안타까운 비극의 현장에 있었던 꽃인가 보다.
진달래는 전국 어디에서나 자라며 키가 3미터 정도이고 밑에서부터 여러 개의 줄기가 올라와 자란다. 우리나라 산의 큰 나무로 소나무와 참나무가 대표라면 작은 나무의 대표는 진달래다. 이처럼 진달래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꽃으로 모두가 좋아하는 대표 꽃이다. 선비들의 시가 속에 수없이 등장하며 꽃잎을 따다 두견주를 담아 마시고 꽃전을 부쳐서 나누어 먹으며 봄날의 하루를 즐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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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 미스테리) ‘천지화(天指花)’는 진달래, 무궁화가 아니다.
"참꽃-진달래"
대조선/SBS/역사
2013.06.12. 13:54
http://blog.naver.com/nada5582/10170201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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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에 대한 질의를 하신분이 있어 기존에 글을 올렸지만 다시한번 문답형식으로 답변한 내용을 정리하여 올려드립니다.
무궁화 꽃과 우리나라의 진정한 꽃에 대한 새로운 접근시각이 필요하답니다. 감사합니다.
----------------------------------------------------------------- (무궁화 미스테리) ‘천지화(天指花)’는 진달래, 무궁화가 아니다. "참꽃-진달래" -----------------------------------------------------------------
(질문) 무궁화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꽃이 아니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근거를 알고싶습니다.
(답변) 네, 그러한 주장이 등장한 사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젓번째 무궁화는 추운지방에서는 잘살지 못하는 북위 38도 이하에서 자생하는 남방계통 꽂입니다. 북한쪽에는 해안가 따뜻한 곳에 일부 야생 무궁화가 자라기는 하지만 일부입니다. → 아래 표1 참조
두번째 무궁화 야생 주산지는 중국 양자강 이남 지역입니다. → 아래 표2 참조
세번째 국내 무궁화 수령은 100년을 넘는것이 손을 꼽을 정도입니다. → 아래 표3 참조
네번째 근대에 들어와 무궁화 개량종을 다수 생산 보급중이나 여전히 추위에는 약합니다.
이상과 같은 사유로 우리나라를 대표하기에는 부족한 꽃이라는 주장이 등장한 것입니다.
(질문) 그러면 애국가에 등장하는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가사는 무엇이지요.
(답변) 네, 그것은
1893년에 남궁억이 윤치호과 의논해 무궁화를 나라꽃으로 정하고, 애국가 후렴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란 가사를 넣으면서 알려지게 되었는데 → 1905년 남감리교회 윤치호의 '찬미가'에 삽입
현재의 상식으로 보면 남북한이 아니라 남한만의 화려강산을 대표하는 꽃으로 보는게 맞겠지요.
이가사가 삽입되게 된 연유는 추후에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무궁화는 60여년전 서양선교사들이 이땅에 들어오면서 많은 각강을 받게 되었지요.
샤론의 장미...(?) 왜일까요?(^.*) 지금 보급하는 주체들도 그들....
(질문) 그러면 사서에 등장하는 우리나라 꽃은 다른게 있다는 말씀인지요
(답변) 네, 바로 우리사서에 등장합니다.
- 한국본기에는 한화(桓花) - 단군세기에는 한화(桓花), 천지화(天指花) - 산해경 해외동경편에는 훈화(薰華)
라고 표기가 되고 있지요
아래 한단고기 내용중 단군세기 내용을 일부 소개합니다.
* 한단고기 단군세기 13세 단군 흘달(屹達), 재위 61年(BC 1782 ~ BC 1772)
戊戌二十年 多設蘇塗 植天指花 使未婚子弟 讀書習射 號爲國子郞 國子郞出行 頭揷天指花 故時人 稱爲天指花郞 무술이십년 다설소도 식천지화 사미혼자제 독서습사 호위국자랑 국자랑출행 두삽천지화 고시인 칭위천지화랑
무술 20년(BC 1763) 소도(蘇塗)를 많이 설치하고 천지화(天指花)를 심었다.
거기에서 아직 결혼하지 않은 젊은이들에게 독서와 활쏘기를 익히게 하였다. 이들을 국자랑(國子郞)이라 하였다.
국자랑(國子郞)은 길을 다닐 때 머리에 천지화(天指花)를 꽂고 다녀서 사람들은 이들을 ‘천지화랑(天指花郞)’이라고도 불렀다.
- 천지화 : 동북삼성에서는 진달래를 지금도 천지화라고 한다. - 천지화랑 : 고조선의 천지화랑이 신라의 ‘화랑(花郞)’으로 전수되었다. 머리 모자에 장식한것은 바로 진달래 꽃이다. 그 큰 무궁화를 머리에 장식으로 달고 다닐수는 없지 않은가?
* 한단고기 단군세기 16세 단군 위나(尉那), 재위 58年 (BC 1610 ~ BC 1553)
辛未元年 戌二十八年 會九桓諸汗 于寧古塔 祭三神上帝 配桓因.桓雄.蚩尤 及檀君王儉而享之 五日大宴 與衆明燈守夜 唱經踏庭 一邊列炬 一邊環舞 濟唱愛桓歌 신미원년 술이십팔년 회구환제한 우영고탑 제삼신상제 배환인.환웅.치우 급단군왕검이향지 오일대연 여중명등수야 창경답정 일변열거 일변환무 제창애환가
신미 원년(BC 1610)
무술 28년 구한(九桓)의 여러 한(汗)들을 영고탑(寧古塔)에 모이게 하여 삼신(三神) 하느님께 제(祭)를 지냈는데 한인(桓因).한웅(桓雄).치우(蚩尤) 및 단군(檀君)왕검(王儉)을 같이 모시고 제를 지냈다.
닷새 동안 크게 잔치를 베풀어 백성과 더불어 불을 밝혀 밤을 지새며 경(經)을 외우고 마당밟기(踏庭)를 하셨다.
한 쪽에서는 횃불을 나란히 피우고 또 한 쪽은 환무(環舞)를 추며 애한가(愛桓歌)를 부르도록 하셨다.
愛桓卽古神歌之類也 先人指桓花 而不名直曰花 愛桓之歌 有云 山有花 山有花 去年種萬樹 今年種萬樹 春來不咸花萬紅 有事天神樂太平 애환즉고신가지류야 선인지환화 이부명직왈화 애환지가 유운 산유화 산유화 거년종만수 금년종만수 춘래부함화만홍 유사천신락태평
애한(愛桓)이란 곧 옛날 신가(神歌)의 한 종류이다. 선인(先人)들은 한화(桓花)를 가리켜 이름을 붙이지 않고 다만 꽃이라고만 하였다.
애한가(愛桓歌)는 다음과 같다.
“산에는 꽃이 있네 산에는 꽃이 있네,
지난해 만 그루 심고 올해 또 만 그루 심었네,
봄이 불함산(不咸山)에 오면 꽃은 만발하여 붉고, 하느님(天神)을 섬겨 태평을 즐기리“
윗 애한가에 나오는 꽃은 바로 진달래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질문) 동북삼성 조선족들이 진달래를 천지화라 지칭한다는 근거는 있나요.
(답변) 네, 본 홈페이지를 자주 방문하시는 조선족 분이 직접 저에게 쪽지를 주셨습니다.
* 직접 보내주신 글 소개 (성함은 사정상 생략)
우리 중국에 사는 조선족들은 진달래가 표준어라 하지만 대부분 진달래라 부르지 않고 천지꽃이라 부른답니다.
왜 진달래를 놔두고 굳이 천지꽃이라 부르는지 의아했었는데 여기서 많은것을 배우네요.
어른을 조선족들은 굳이 어른이라 부르지 않고 자랑이라고 부르는것도 그렇고 모두 단군님과 조선에서 유래한것이였군요.
그리고 어른을 상대해서 얘기할땐 말끝마다 꾸마를 붙이는 습관도 있는데
이 꾸마가 예전엔 곰이였다니 비록 민족의식은 많이 사라져가고 있지만 저도 모르게 우리 조선족의 언어속엔 정말 무시할수 없는 많은것이 남아있군요.
감사합니다. 이 사이트를 통해 정말 많은것을 배웁니다.
이상이 보내주신 쪽지내용입니다.
(질문) 그렇다면 우리민족을 대표하는 꽃이 진달래 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인가요.
(답변) 더 연구를 해봐야 알겠지만
단군세기에 나오는 한화(桓花)나 천지화(天指花)는 무궁화가 아니라 진달래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답니다.
진달래는 일명 '참꽃'이라고도 하지요. 꽃중의 '진짜 꽃' 그래서 우리민족과 이토록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닐까요.
옛날에 참꽃귀신은 사람을 웃겨서 죽인다는 설화가 있었지요. 참으로 정겨운 전래 설화 아닌지요.
더 연구하여 좋은 결과가 나오면 또 알려드리지요.
해방이후 대한민국 최고훈장이 금척대훈장에서 무궁화대훈장으로 바뀐 사연도 기가막히답니다. '금척'이 무엇인지 아시지요
모르시면 다음에 다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질문) 네 기대하겠습니다.
* 고려산 진달래
* 추가 보충 설명자료
[표1] 자료 : 세명서관 2004년 출판 '무궁화'에서 발췌
세계의 무궁화 재배 현황
[표2]
무궁화가 가장 많이 자생하는 지역은 양자강 이남 지역이다. → 한반도에는 38선 이남에 자생하며 수령도 100년을 넘지 못한다.
[표3]
국내 무궁화 노거수 현황 → 100년 이상 수령이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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