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Europa Universalis
 
 
 
카페 게시글
역사게시판 유럽 미카엘 작전(1918.03~07)은 충분한 여유가 있어서 벌인 대공세일까요? 최후의 발악일까요?
티거6호 추천 0 조회 608 16.04.27 12:33 댓글 20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댓글
  • 16.04.27 13:59

    첫댓글 후자

  • 16.04.27 14:03

    병력에는 그나마 여유, 자원은 부족, 미국참전임박, 결국 마지막 도박이였죠...

  • 16.04.27 14:45

    그냥 최후의 도박이죠.
    장기전을 예상한 국가가 전혀 없었기에 물자부족은 대부분의 참전국에서 나타난 문제였는데, 영프가 식민지에서 뽑아내서 어떻게 할 수 있었던 반면 독일은 국내와 유럽의 동맹국들의 자원에 의존하는 수 밖에 없었다는 것.
    동부전선이 정리되었다고 해도 독일의 세력권으로 들어온 지역이 안정화된 것도 아니고(오히려 개판이었죠), 거기서 물자를 뽑아서 서부전선과 독일국내로 보내기도 힘든 상태.
    결국 바다 건너에서 애들이 오기 전에 총공세를 시도해봤는데, 전략적 목표달성도 실패했고 정예병력만 소진시킨 삽질로 끝난거죠.

  • 16.04.27 15:36

    "프랑스는 이미 1918년 4월 초부터 자신들이 전쟁에서 패배했다고 생각해서 조용히 베르사유 궁전에서 빌헬름 2세를
    맞을 준비나 하자고 하면서 통곡했으며, 영국도 전쟁에서 패배할 줄 알고 대영제국의 시대도 이제 끝이구나 하면서
    그 수많은 식민지들을 죄다 독일에게 넘겨줄 생각 하면서 통곡했고, 미국 역시 괜히 남의 전쟁에 끼어들어서 본전도
    못찾는구나 하면서 집에나 갈 준비나 하였다는군요?"

  • 16.04.27 15:41

    이거 대체 출처가 어떻게 되나요?

  • 16.04.27 15:41

    1918년 3/4월에 포슈는 돌렝스 회의와 브부아 회의에서 연합군 총사령관으로써 각 권한을 부여받고 독일군이 파리에 근접했던 시점에서조차 경질되지 않았는데 대체 어떻게 프랑스가 이미 패전을 예견하고 독일군을 맞이할 준비마저 했을지 이해가 안가네요.

  • 16.04.27 16:39

    소설의 질이 상당히 안좋아서 딱히 언급할 가치도 못 느끼고 넘어간 1인이 여기 있습니다..

  • 작성자 16.04.27 18:00

    @선비욜롱 아.. 제 말이 두분께 큰 오해를 불러일으켰군요?... 실제 영프미 정부가 독일에 항복의식을 할 준비를 했었다는게 아니라 당시 연합군 병사들의 생각과 심정이 그랬다는 것을 비유적 표현으로 언급한 겁니다. 당시 연합군 진영에선 갑작스런 대공세로 암울한 패배의식이 앞섰고 독일군 진영에서는 오랜만의 진격으로 사기가 하늘을 찌를듯 했다서요..

  • 작성자 16.04.27 18:01

    @인생의별빛 아, 그리고 출처는 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에서 방영했었던 1차세계대전 6부작이라는 다큐에서 제 6편 내용입니다

  • 16.04.28 02:11

    @티거6호 저건 어떻게 읽어보더라도 당시 정부들이 저러한 조치를 취했다는 식의 서술로 인식됩니다. 애초에 그게 의도였다면 심정이 그러한 비유라는 점은 확실히 해야지 "프랑스는 어떻게 영국은 어떻게 했다더군요"식으로 서술하면 누군가가 그렇게 서술했고 님이 이를 참고했다는 식의 일종의 신뢰성을 부여하는게 아닙니까.

  • 16.04.28 02:13

    @티거6호 그리고 역사글은 최대한 간결하고 사실을 기반해서 적어야지 당시 심정이 그랬다는 이유로 일종의 소설을 작성해서 출처마저 "그랬다더군요"식으로 넘기면 결과적으로 날조 이상 이하밖에 안됩니다.

  • 16.04.27 15:46

    그리고 몇가지 오류를 더 꼽아내자면:

    1) 연합군은 그 시점에서 독일군에게 최대한의 출혈을 강요하기 위해서 분투하고 있었으며 포슈의 경우에는 최대한 많은 예비대를 쟁여놓아서 반격의 틈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결국에는 공세한계점을 직면 독일군은 공세가 더딜 수 밖에 없었으며 그 과정에서 지나치게 늘어진 독일군의 전선에 허를 찔러서 성공적인 반격을 치뤄낸게 2차 마른 전투이며 이는 백일 공세의 전초라 할 수 있는 전투입니다.

  • 16.04.27 15:49

    2) 그리고 백일 공세는 단순히 붕괴한 독일군을 추격하는 그러한 허무한 전투가 아니라 전선을 추스리려는 독일군을 상대로 지난 4년간 개발해낸 전술을 통해 참호전을 분쇄하고 기동전을 부활시키되 끝판급 소모전으로 독일군을 갈아버려서 최종적으로 힌덴부르크 선은 물론이고 독일군이 그간 점령했던 영토란 영토는 죄다 재점령한 전투입니다.

  • 16.04.27 16:04

    그리고 춘계공세에 대한 견해는 매우 일관적입니다. "전략적 열세를 전술적 우위로 해결하려는 독일식 방식의 또 하나의 일례." 실제로 춘계공세는 일관된 전략적 목표없이 계속해서 목표를 바꿈으로 인해 제대로 전략적으로 이룬 것없이 전술적 승리만으로 전세를 엎으려다가 실패했습니다. 딱히 재평가고 뭐고 없음.

  • 16.04.27 18:17

    전략의 실패라고 보는게 타당하지 않을까요? 춘계공세는 미카엘 작전만 실행한건 아니니까요...전술적으로야 화려하게 성공했는데 결국 끝끝내 프랑스가 버티니 영국도 건드려봤는데 영국도 버티고 다시 프랑스를 건드리니 미국이 와있었던 흐름 아닌가요 ㅋ 독일군 최고사령부의 조급함이 전략의 실패를 불러왔다 봅니다. 만약 초장에 프랑스만 일관되게 밀었으면 프랑스는 진짜 울었을지도 모를듯...

  • 16.04.27 18:43

    이건 후자이죠. 이미 전선은 고착화되어가면서 장기전 상태로 지속되었는데... 너무 무리했죠.

  • 16.04.28 01:41

    요?가 너무 많당...

  • 16.04.29 04:28

    근성이 넘쳐 그런 것 같아요....

  • 16.04.29 00:56

    그렇다던가요?

  • 16.04.29 16:49

    최근에 존 키건의 1차대전사를 읽고 있는데도 후자쪽인것 같습니다. 당시 독일군의 증원병력은 사실상 바닥을 드러낸 상태였고 그 상태에서 동부전선에서 최대한 긁어모은 병력을 다 투입했는데도 실패한것에서....게다가 독일의 이 대공세를 결심하게 된 이유도 미국의 수백만 증원병력이 다 도착하기전에 승세를 잡아보자는 의미에서 시작한것이기에 최후의 발악인 셈이죠.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