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세계대전 말, 1918년 3월부터 7월까지 행해진 독일의 미카엘 작전(루덴도르프 공세).
그 공세에서 독일은 세계 최초의 기관단총 MP18까지 선보이며, 1914년 9월 당시, 독일군이 파리에 가장
근접했을 시기만큼이나 진격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1차 세계대전 독일 제국군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가장 많이 진격했었던 시점이라고도 하지요~
그러나 미카엘 작전에 대한 평가는 굉장히 엇갈리는데요?
혹자는 미카엘 작전은 결과적으로는 실패했지만, 진행 과정으로 보면 꽤나 성공적인 공세였으며
독일이 동부전선에서 승리를 거둔 후에 충분히 병력과 물자, 식량이 남아 돌고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시행했다고
합니다. 미카엘 작전 때가 바로 독일군이 서방 연합군보다 병력이 더 많았었던 유일한 시기이며, 충분히
독일이 전쟁에서 승리를 거둘 가능성이 농후했고, 미카엘 작전에 의한 계속된 후퇴로 연합군도 크게 흔들렸다는군요?
프랑스는 이미 1918년 4월 초부터 자신들이 전쟁에서 패배했다고 생각해서 조용히 베르사유 궁전에서 빌헬름 2세를
맞을 준비나 하자고 하면서 통곡했으며, 영국도 전쟁에서 패배할 줄 알고 대영제국의 시대도 이제 끝이구나 하면서
그 수많은 식민지들을 죄다 독일에게 넘겨줄 생각 하면서 통곡했고, 미국 역시 괜히 남의 전쟁에 끼어들어서 본전도
못찾는구나 하면서 집에나 갈 준비나 하였다는군요?
우드로 윌슨도 100% 다음 번에는 낙선이구나 혹은 탄핵이나 안 당하면 다행이겠구나 생각할 정도였다는군요?
그런데 갑자기 7월부터 독일군이 공세를 멈추고 뭉그적거리는 것에 대해 온 연합군이 전부 '오잉? 이게 뭔 시츄에이션?'
이러면서 어리둥절했고, 혹시나 하고 반격을 해본 게 바로 백일 공세이며 맹렬했던 독일군이 갑자기 오합지졸이 되어
너도 나도 항복해오고 무너지자 모든 연합군들이 승리의 기쁨보다 '허허....어이 없네' 하면서 헛웃음이 앞섰고,
11월 11일이 되어서도 어이없어서 한동안 멍해 있다가 나중 가서 '우와! 이겼다!!' 라고 했을 정도라는군요?
반면 독일에서는 당연히 자기네들이 전쟁에서 이길줄 알았는데 갑자기 패배했다니까 연합군들보다 백 배는 더 황당해
했고, 배후중상설이 안 나올래야 안 나올 수가 없었다는군요?
그리고 이 미카엘 작전을 굳이 2차 세계대전의 전투에 비유하자면, 청색작전 정도라고 할 수 있다고 하구요?
즉, 진행 과정은 매우 성공적이지만 결과는 패배인 경우.
하지만 또 다른 혹자들은 미카엘 작전은 청색작전이 아니라 아르덴 공세에 비유해야 마땅한 최후의 발악일
뿐이라더군요? 독일이 아무리 동부전선에서 제정러시아를 항복(실질적으로는 소련이 항복문서에 도장찍은 거지만)
시켰다고 해도, 이미 독일은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서 회생이 불가능할 정도에 이른지 오래였으며 단지 2차대전 때의
제 3제국보다 조금이나마 한숨 돌릴 여유는 있었다는 거지, 정말로 여유가 있었던 상황은 아니라고 하더군요?
제 2제국 역시 자신들이 전쟁에서 패배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앞뒤 안 보고 막무가내로 대공세부터 펼쳤는데 그게
바로 미카엘 작전이며 물론 초반에는 어느 정도 승리를 거뒀을지 몰라도 금방 한계가 드러났고, 미카엘 작전 초반의
독일 제국군의 진격 능력은 그냥 신화에 불과하다는 것이 바로 백일 공세에서 여지없이 드러는 거라 하더군요?
그리고 상식있는 독일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조국이 전쟁에서 패배할 것을 알고 있었으며, 11월 11일 이후 조국이
전쟁에서 패배한 것 역시 대부분의 독일인들이 인정했는데, 다만 베르사유 조약에서의 터무니없는 조건(특히 배상금)에
대한 반발심, 그리고 그것을 교묘하게 꼬드긴 나치스 놈들 때문에 배후중상설을 갑자기 믿은 것 뿐이라는 군요?
즉, 미카엘 작전은 아르덴 공세나 다를 바 없는 최후의 발악에 불과하다는 주장입니다.
여러분들께서는 어떤 것이 더 정답에 가깝다고 보시나요?
첫댓글 후자
병력에는 그나마 여유, 자원은 부족, 미국참전임박, 결국 마지막 도박이였죠...
그냥 최후의 도박이죠.
장기전을 예상한 국가가 전혀 없었기에 물자부족은 대부분의 참전국에서 나타난 문제였는데, 영프가 식민지에서 뽑아내서 어떻게 할 수 있었던 반면 독일은 국내와 유럽의 동맹국들의 자원에 의존하는 수 밖에 없었다는 것.
동부전선이 정리되었다고 해도 독일의 세력권으로 들어온 지역이 안정화된 것도 아니고(오히려 개판이었죠), 거기서 물자를 뽑아서 서부전선과 독일국내로 보내기도 힘든 상태.
결국 바다 건너에서 애들이 오기 전에 총공세를 시도해봤는데, 전략적 목표달성도 실패했고 정예병력만 소진시킨 삽질로 끝난거죠.
"프랑스는 이미 1918년 4월 초부터 자신들이 전쟁에서 패배했다고 생각해서 조용히 베르사유 궁전에서 빌헬름 2세를
맞을 준비나 하자고 하면서 통곡했으며, 영국도 전쟁에서 패배할 줄 알고 대영제국의 시대도 이제 끝이구나 하면서
그 수많은 식민지들을 죄다 독일에게 넘겨줄 생각 하면서 통곡했고, 미국 역시 괜히 남의 전쟁에 끼어들어서 본전도
못찾는구나 하면서 집에나 갈 준비나 하였다는군요?"
이거 대체 출처가 어떻게 되나요?
1918년 3/4월에 포슈는 돌렝스 회의와 브부아 회의에서 연합군 총사령관으로써 각 권한을 부여받고 독일군이 파리에 근접했던 시점에서조차 경질되지 않았는데 대체 어떻게 프랑스가 이미 패전을 예견하고 독일군을 맞이할 준비마저 했을지 이해가 안가네요.
소설의 질이 상당히 안좋아서 딱히 언급할 가치도 못 느끼고 넘어간 1인이 여기 있습니다..
@선비욜롱 아.. 제 말이 두분께 큰 오해를 불러일으켰군요?... 실제 영프미 정부가 독일에 항복의식을 할 준비를 했었다는게 아니라 당시 연합군 병사들의 생각과 심정이 그랬다는 것을 비유적 표현으로 언급한 겁니다. 당시 연합군 진영에선 갑작스런 대공세로 암울한 패배의식이 앞섰고 독일군 진영에서는 오랜만의 진격으로 사기가 하늘을 찌를듯 했다서요..
@인생의별빛 아, 그리고 출처는 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에서 방영했었던 1차세계대전 6부작이라는 다큐에서 제 6편 내용입니다
@티거6호 저건 어떻게 읽어보더라도 당시 정부들이 저러한 조치를 취했다는 식의 서술로 인식됩니다. 애초에 그게 의도였다면 심정이 그러한 비유라는 점은 확실히 해야지 "프랑스는 어떻게 영국은 어떻게 했다더군요"식으로 서술하면 누군가가 그렇게 서술했고 님이 이를 참고했다는 식의 일종의 신뢰성을 부여하는게 아닙니까.
@티거6호 그리고 역사글은 최대한 간결하고 사실을 기반해서 적어야지 당시 심정이 그랬다는 이유로 일종의 소설을 작성해서 출처마저 "그랬다더군요"식으로 넘기면 결과적으로 날조 이상 이하밖에 안됩니다.
그리고 몇가지 오류를 더 꼽아내자면:
1) 연합군은 그 시점에서 독일군에게 최대한의 출혈을 강요하기 위해서 분투하고 있었으며 포슈의 경우에는 최대한 많은 예비대를 쟁여놓아서 반격의 틈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결국에는 공세한계점을 직면 독일군은 공세가 더딜 수 밖에 없었으며 그 과정에서 지나치게 늘어진 독일군의 전선에 허를 찔러서 성공적인 반격을 치뤄낸게 2차 마른 전투이며 이는 백일 공세의 전초라 할 수 있는 전투입니다.
2) 그리고 백일 공세는 단순히 붕괴한 독일군을 추격하는 그러한 허무한 전투가 아니라 전선을 추스리려는 독일군을 상대로 지난 4년간 개발해낸 전술을 통해 참호전을 분쇄하고 기동전을 부활시키되 끝판급 소모전으로 독일군을 갈아버려서 최종적으로 힌덴부르크 선은 물론이고 독일군이 그간 점령했던 영토란 영토는 죄다 재점령한 전투입니다.
그리고 춘계공세에 대한 견해는 매우 일관적입니다. "전략적 열세를 전술적 우위로 해결하려는 독일식 방식의 또 하나의 일례." 실제로 춘계공세는 일관된 전략적 목표없이 계속해서 목표를 바꿈으로 인해 제대로 전략적으로 이룬 것없이 전술적 승리만으로 전세를 엎으려다가 실패했습니다. 딱히 재평가고 뭐고 없음.
전략의 실패라고 보는게 타당하지 않을까요? 춘계공세는 미카엘 작전만 실행한건 아니니까요...전술적으로야 화려하게 성공했는데 결국 끝끝내 프랑스가 버티니 영국도 건드려봤는데 영국도 버티고 다시 프랑스를 건드리니 미국이 와있었던 흐름 아닌가요 ㅋ 독일군 최고사령부의 조급함이 전략의 실패를 불러왔다 봅니다. 만약 초장에 프랑스만 일관되게 밀었으면 프랑스는 진짜 울었을지도 모를듯...
이건 후자이죠. 이미 전선은 고착화되어가면서 장기전 상태로 지속되었는데... 너무 무리했죠.
요?가 너무 많당...
근성이 넘쳐 그런 것 같아요....
그렇다던가요?
최근에 존 키건의 1차대전사를 읽고 있는데도 후자쪽인것 같습니다. 당시 독일군의 증원병력은 사실상 바닥을 드러낸 상태였고 그 상태에서 동부전선에서 최대한 긁어모은 병력을 다 투입했는데도 실패한것에서....게다가 독일의 이 대공세를 결심하게 된 이유도 미국의 수백만 증원병력이 다 도착하기전에 승세를 잡아보자는 의미에서 시작한것이기에 최후의 발악인 셈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