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춥다. 어제가 봄이 선다는 입춘지절이지만 여전히 동장군의 심술적인 기세가 등등한 것을
우린 피부 끝으로 알 수가 있다.
따뜻한 봄의 기운이 머지 않아 우리 곁으로 오리라는 희망적인 기대를 갖게 한다.달력을 보면 어제가 입춘이니까. 이런 계절적인 변화와는 전혀 무관한 게 바로 하루에 세 끼를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생명을 지닌 존재은 어쩔 수 없이 그 생명체를 부지하거나 연장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영양분을 몸속으로 넣어야 한다는 거 바로 살아 있는 생명체들이 거부할 수 없는 자연적인 행위라고 하겠다.
홀로 삶이라는 거 하다가 보니 제일로 하기 싫은 게 바로 먹고 난 후에 생기는 이른바 음식물 쓰레기 처리하는 거이다.본격적인 가사 활동에 들어가기 전에는 나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 여겼는데,사정이 달라져 집안을 하고 보니 마주쳐야 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쓰레기와의 전쟁(?)이 아닐까 싶다.
그 중에서도 음식물 쓰레기를 발생 즉시 처리해야 한다는 거 상식적인 일이지만 사람이라는 존재가 너무나도 특이한 탓에 제때에 처리하는 이들도 있지만 또는 그러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겠다.
어쩌면 내가 후자에 속하는 거 아닌가 한다. 남자라서 그러한가는 몰라도 음식물 쓰레기가 생기면 즉시 봉투에 넣어 공공 장소에 설치된 함에 넣어야 하는 게 마땅한 것이다.
문제는 이렇듯이 세상사가 물 흐르는 듯이 순탄하게 흐르는 게 아니다는 것이다.살다가 보면 때론 기분상으로도 좀 미룰 때도 있고 어떤 때에는 아예 생겨도 못 체 만 체 하는 경우도 있는 법!
어찌 인생사의 모든 것을 어떤 균일된 잣대로만 규정할 수가 있나? 따라서 적절한 범위안에서 융통성이라는 게 필요한 게 아닐까 한다. 나도 홀로 된 인생이 되고 보니 참으로 걱정스럽고 귀찮은 거 가운데가 바로 먹는 행위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돈이라도 많으면 남들이 만든 음식을 사 먹으면 되지만 사정상 그럴 여지는 못되고 하니 억지라도 인간의 생명 부지적인 차원에서 나는 스스로가 밥을 해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한창 추운 겨울철이 아닌가? 일어나 밥 준비하는 거 생각만큼 용이한 거 아니다. 전에는 이런 거 전혀 몰랐다. 하지만 사정이 사정이고 보니 내 스스로가 하지 않으면 뉘가 와 밥상을 차린다는 말인가?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목구멍에 밥알이라는 거 넣을 수 없는 이 냉랭한 현실을 어찌 거부하겠는가?
좋든 싫든 상관없이 끼니 때가 되면 만사를 제쳐 두고서 일어나 밥 예비하는 행동에 돌입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런 거 해 보니 여자들의 수고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게 되더라!
내 혼자서 살아야 한다는 숙명적인 현실 앞에서 오로지 할 수 있는 거 내가 행하여야 한다는 거 말고는 달리 생각하고 행동할 게 없더라는 말씀이지.
매번 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여건이라는 거 마음을 울적하게 하고 어떤 때는 하기 싫다는 내부적인 욕구가 솟구치기도 하지만 끼니를 건너 뛸 수가 없는 나의 상황 때문에 억지라도 움직이기도 한다.
어찌보면 내가 남자라서 이런 거 한다는 게 소위 남성적인 것에 부합되는 거인지 알 수 없는 상념의 모호성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것 아닌가 한다.
이 나이에 이런 거 생각한다는 그 자체가 아직도 냉철한 현실에 대한 인지가 결핍되어 있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나이 운운하는 거 진정으로 인간적인 성숙이 아직도 한참 모자람을 스스로 인정하는 게 아니고 그 무엇이라는 말인가?
하기 싫으면 그저 하기 싫다고 말 하는 게 더 남자스러운 거 아니여? 어찌보면 이런 투정을 피울 때가 아님에도 이런 흰소리를 하고 있다는 자체가 스스로가 인간적인 성숙미가 결핍되어 있다는 거 반증하는 게 아닐까 한다.
매일 식사하고 나면 또는 식사를 예비하게 되면 생기는 음식물 잔존물이라는 쓰레기가 생긴다. 이들을 봉투에 넣어 다용도실이나 베란다에 두고 임시적으로 보관한다. 식구들이 있으면 끼니가 끝나면 남는 것들을 봉투에 넣어 꽉 차면 곧바로 공공 장소에 있는 함에 넣으면 끝!
그러나,나는 나 홀로 삶이다 보니 그렇게 할 수가 없다.쓰레기가 생기면 생기는 대로 봉투에 넣는다.
아직은 더운 일기가 차가운 겨울철이기에 실내에 보관이 가능하다. 오늘 아침에도 남은 것들을 봉투에 넣었다. 내 입에 들어가기 위해 만들어야 하는 음식물의 잔존물이 물끼가 빠져 약간 수분 증발 상태로 굳어진 형태로 나는 봉투에 구겨 넣는다. 이때 나는 무엇을 하고 있나? 하는 상념이 머리를 스친다.
베란다의 공기는 냉랭하다. 햇살이 창문을 관통하고서 움직이는 나의 몸을 의식하는 모양이다.이 기묘한(?) 현실이 내가 원해서 만든 게 아니라,어쩔 수 없는 생존적인 현실이라는 공간이 제공하는 이 상황이라는 게 문득 이를 글로 형상화하고픈 욕구에 의해 이 글을 작성한다.
한 주간을 출발하는 이 월요일 아침에 나는 음식물 쓰레기를 봉투에 넣고 있다는 거 이 정황이 전혀 낯설게 느끼지 않으면서도 나는 무엇 하고 있나는 이중적인 상념의 교차에 약간 어리둥절하면서 쓰레기 처리하고 있다. 봉투안으로 가득 채우고는 단단히 묶어 흘러 내리지 않도록 했다.
어찌보면 나는 음식물 봉투를 버리는 남자가 될 수 있겠다. 요새 흔한 일상의 단면이 아닌가 한다. 여자들의 가내 활동을 감안하면 남자들이 출퇴근시에 집안 쓰레기 봉투 들고 나와 함에 넣는 거 낯설은 풍경이 아니다. 어찌보면 일상화된 남자들의 쓰레기 봉투를 대하는 태도라고 하겠네.
늘 하면서도 하기 싫은 게 바로 끼니마다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는 쓰레기를 모아 봉투에 넣고는 이를 다시 함에 버려야 한다는 거 어려운 거 아니고 보통적으로 행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내는 게을러서 그러한가? 즉각적인 처리는 아니한다. 모우고 또 모아서 봉지에 가득 차 어찌할 수 없는 지경이 되면 그때서야 일어나 장소를 향해 집밖을 나선다.
음식물 봉투란 남자에게는 무엇일까? 생각하면 할수록 참으로 묘한 인생의 문제를 푸는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한다.
아직은 차가운 계절이라서 잔존물을 보관할 수 있는 시일이 되지만 곧 바로 봄바람이 불고 동장군이 물러가게 되면 실내에서 오래 보존할 수 없는 게 음식물 쓰레기가 아닌가?
즉각적인 처리라는 움직임이 있어야 실내에서 청결한 공기로 살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움직여야 산다는 삶의 일반적인 공식대로 많이 움직여 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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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찮다고 해도 어쨌든 스스로가 세끼는 찾아 먹으려고
하고 있지요! 허허허!!?
에나가님, 저는 무어라 말씀을 드려야 하는지요.
시장을 가고, 가족들의 먹을꺼리를 장만하고,
식단을 만들어서 밥상에 오르기 까지
수많은 과정을 거치면서 밥상이 차려지기까지를
예사롭게 생각했지요.
그것도 사십년이 훨씬 넘는 기간을요.
님의 글을 보니, 그렇게 복잡한 과정을
맨날 하고 살아왔으니, 참 기특한 일입니다.
그 속에는,
가족을 위한 사랑이 일상이었음을...
가족을 위한 사랑이었기에 힘듦없이 지나왔는가 봅니다.
님의 글로써
좀 더 나은 위로가 되는 글을 올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감사함이로구나를 생각하게 됩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작은 글이 님에게 무언가가 되었나니
저도 고맙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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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도 해도 끝없는 주방의 일이....
아직은 그 수준이 아니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