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을 넘긴 아버지를 지게에 태워 금강산 유람을 다녀온 아들이 있습니다. 아버지 나이는 92세, 아들 나이는 42세. 50세의 차이가 나고, 아들 이름은 이군익. 초등학교 다니는 두 아이들 둔 평범한 가장입니다. 한해 전 어머니가 세상 떠나서 쓸쓸한 아버지 모시고 독립기념관엘 갔다오는데 아버지가 불쑥 한마디를 던졌습니다. "금강산 가문, 1만 2천봉이 있다던디..." 사람들은 이 말을 귀로 들었지만 아들은 가슴으로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은 이 말을 듣고 아버님 모시고 금강산 가기로 결심합니다. 사실 그는 충청남도 서산 빈농에서 7남매의 막내로 자랐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버지는 7남매 막내까지 대학 보내느라 평생 허리한번 못 펴고 사신 아버지를 생각하니 콧등이 뭉클해져서, 그 말을 듣자마자 속으로 혼자 다짐하였습니다. '네, 아버지! 금강산 아니라 금강산 할아버지라도 모시고 가겠습니다.' 그래서 형제들은 아버님 생신 날 모여서 의견을 모았습니다.
그러나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하신 아버지가 산에 오르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산악을 타야하는 산행이니 휠체어도 무용지물이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할까? 며칠 밤 고민하였습니다. 만일 업고 간다면? 그런데 그것도 문제였습니다. 왜냐하면 아들은 아버지를 업을 수 있지만, 아버지가 아들을 꼭 붙잡아야 하는데 아버지가 아들을 꼭 붙들 수 있을까?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 또 무슨 방법이 있을까? 궁리하던 끝에 지게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 지게 위에 아버지 의자를 만들면 되겠구나!' 그러나 아이디어는 좋지만 그것을 실행에 옮기려니 문제가 심각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지게 자체도 무거운데 의자까지, 거기다 아버지를 업으면? 아이쿠... 그래서 또 연구를 시작하여 최고로 가벼운 지게를 만들기로 생각합니다. 가볍고도 강한. 그래서 낸 결론은 알루미늄 지게를 만들기로 하고 설계자를 찾아 나섰지만 모두들 못 만든다며 손사래를 치거나 터무니없는 공임을 요구했습니다. 더구나 지게에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지게를 만들어주겠다는 기술자는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의 도움으로 간신히 등산용 지게에 특수용접한 지게가 탄생하게 되어, 이름을 이렇게 붙이게 됩니다. '금강산 유람을 위한 아버님 전용 지게'. 이렇게 하여 만든 지게를 휴전선을 통과할 때 북측 안내원이 보고는 정색하며 뭐냐 물었고, 그래서 아버님 모실 지게라고 대답했더니 아버님 연세를 다시 물었습니다. 그래서 아흔 둘에 아들 등에 업혀 금강산 가신다 했더니 북측 안내원이 호탕하게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하하 통과하시라요."
이렇게 해서 금강산 여행은 시작되었고, 아버지을 모신 덕분에 여행 내내 스타가 되었습니다. 계절은 초여름, 혼자 걷기도 험한 산길을 아버지와 한 몸 되어 여행하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실 아버지도 처음에는 아들이 고생한다며 한사코 말리고 그 지게에 타고 갈 것을 거부했지만 점점 여행에 익숙해지면서 말문이 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저기가면 뭐가 있다냐? 아이고, 저게 그림이여 경치여!" 이러면서 좋아 하셨습니다. 하지만 지게 무게가 줄잡아 15kg. 아버지가 올라 앉으시면 60kg이 넘었기에, 산행을 하면 할수록 어깨와 팔은 뻗뻗하게 굳고 허리는 끊어질듯 아팠지만 여행을 하면 할수록 어린애처럼 좋아하시는 아버지를 보면서 잘 견디었습니다. 마지막에 금강산 온천엘 갔는데 몸을 보니 상반신의 온 몸에 피멍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좋았습니다(2006년 중앙일보에 실렸던 기사).
첫댓글 다 나같은줄 알았더니
그런 자식도 있었군요
그사람 이야말로 사랑이
무엇인지 깨달았고 실천한
사람 이었습니다 예수님만
영접했 더라면 천국에 큰
자가되어 들어갈수 있었을
것을요 아멘 입니다 🙏
살아계실때에 마음을 편안하게 해드리는 것이 효도라 생각 했는데 그분은 그이상의 행동을 실천 하셨네요. 나는 부모님이 살아 계실때에 함께 여행한번 못한 나자신의 마음이 무겁고 아프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