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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놈 4
지난 12월 12일 경향신문 1면에 눈에 확 들어오는 기사가 있었는데
'유신 언급했다고 소설 연재 거부' 라는 제목하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기사가 실렸었다
-원로 작가 이제하(76세)씨가 월간 '현대문학'에서 정치적인 이유로 연재 거부를 당했다
내년 1월호부터 한국으로 귀화한 어느 선교사의 이야기를 다룬 장편소설 <일어나라, 삼손>을
연재하기로 했으나 1회분 배경으로
'박정희 유신'과 '87년 6월 항쟁' 등을 언급한 게 문제가 돼 연재 거부를 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중략
현대문학은 1955년 주간 조연현, 편집장 오영수 체제로 창간되었으며 신인추천제와
현대문학상을 통해 많은 작가를 배출하면서 순수문학 진영을 대표하는 잡지로 자리매김 됐다
1988년 대한교과서가 인수한 뒤 사주일가인 양숙진씨가 주간을 맡아왔다
현대문학은 지난 9월호에 박근혜 대통령의 수필을 찬양한 이태동 서강대 명예교수의 글
'바른 것이 지혜다'를 게재해 '그의 에세이 대부분은 우리들의 삶에 등불이 되는 아포리즘들이 가득한,
어둠 속에서 은은히 빛나는 진주와도 같다'라는 내용으로 객관성 부족과 정치적 편파 등의 질타를 받았다
이제하씨는 11일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박대통령 수필 게재 여파로 착종상태에 빠져 있다는
짐작은 갔으나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정권에 잘 보여 뒤탈이 없게 하려다 보니 생기는 일'이라며
'흔히 자유라는 테제가 중심이 되지 못한다면 문학도 문예지도 한낱 남루한 패션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동일자 경향신문 2면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다
-소설가 정찬씨가 현대문학으로부터 연재요청을 받은 장편소설도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양숙진 주간으로부터 문제가 되어 연재하지 않는다는 이메일을 받았고
박근혜 대통령의 수필집을 찬양한 이태동 교수의 글을 비판한 양경현 시인의 시도
그 내용 중 문제 되는 부분만 빠진 채 11월호에 수록되었다는 것이다
....중략
현대문학의 정치적 편향성이 잇따르면서 젊은 작가들은 현대문학 기고를 거부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12월 13일자 경향신문 1면의 기사 내용을 보면
서정인 소설은 연재 중 중단되었다 라는 제목의 기사에 '바간의 꿈'이라는장편을 현대문학의 7,8월호에 두 차례
연재했는데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판적으로 언급한 부분이 문제가 되어 양숙진 주간이 수정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그 내용은 3회에서 등장 인물들이 이승만부터 노무현까지 역대 대통령을 비판하는 대화가 나오는데
'박정희가 계집을 끼고 술 마시다가 총 맞아 죽었다' 는 표현으로
그 수정지시를 받아들이지 않자 현대문학에서 연재를 중단했다는 것이다
내 기억으로는
독재권력의 정보기관들과 앞잡이들이 문인들을 그 체제를 비판한다고 처벌한 적이 있는데
유신시대의 김지하 시인의 오적 시 사건과 이호철의 문인 간첩단 사건 등
그리고 전두환 시절의 한수산 필화 사건 같은 것이다
<1981년 5월 28일 중앙일보에 소설 ‘욕망의 거리’를 연재하던 한수산이 영문도 모른 채 보안사령부로 연행돼
숱한 고문과 신문을 당하고 풀려났다.
같은 날 중앙 일보의 편집국장대리 겸 문화부장 손기상, 중앙경제신문 문화부장 정규웅, 출판국 부장 권영소,
기자 이근성 그리고 한수산과 친분이 있던 시인 박정만 등도 불려가 모진 고문을 당했다.
소설이 정부 고위관리와 군을 모독했다는 혐의였다. (중앙일보 1996. 7. 20) >
한수산 박정만 시인
그 당시 한수산 소설가는 고문에 못이겨
그 사건과 아무 관련도 없는 박정만 시인을 그 표현의 공모자로 지목하였고
우리 전주고 선배님이신 그 시인은 혹독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1988년 42세를 일기로 억울하게 이승을 떠났다
그러나 현대문학 같이
소설가와 시인의 청탁원고를 자체 검열하여 현 권력과 마찰이 생길 표현이라고 판단되면
게재를 하지 않거나 게재를 중단하는 사례는 본 기억이 없는 것 같다
물론
스스로 앞장서서 친일 노릇을 하고 독재자를 찬양한 문인들도 있었다
그 중의 대표 주자는 아마도 미당 서정주가 아닐까 싶다
미당이 쓴 전두환 56회 생일을 축하하는 '처음으로'라는 시를 보자
처음으로
한강을 넓고 깊고 또 맑게 만드신 이여
이나라 역사의 흐름도 그렇게만 하신 이여
이 겨레의 영원한 찬양을 두고두고 받으소서.
새맑은 나라의 새로운 햇빛처럼
님은 온갖 불의와 혼란의 어둠을 씻고
참된 자유와 평화의 번영을 마련하셨나니
잘 사는 이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모든 물가부터 바로 잡으시어
1986년을 흑자원년으로 만드셨나니
안으로는 한결 더 국방을 튼튼히 하시고
밖으로는 외교와 교역의 순치를 온 세계에 넓히어
이 나라의 국위를 모든 나라에 드날리셨나니
이 나라 젊은이들의 체력을 길러서는
86아세안 게임을 열어 일본도 이기게 하고
또 88서울올림픽을 향해 늘 꾸준히 달리게 하시고
우리 좋은 문화능력은 옛것이건 새것이건
이 나라와 세계에 떨치게 하시어
이 겨레와 인류의 박수를 받고 있나니
이렇게 두루두루 나타나는 힘이여
이 힘으로 남북대결에서 우리는 주도권을 가지고
자유 민주 통일의 앞날을 믿게 되었고
1986년 가을 남북을 두루 살리기 위한
평화의 댐 건설을 발의하시어서는
통일을 염원하는 남북 육천만 동포의 지지를 받고 있나니
이 나라가 통일하여 홍기할 발판을 이루시고
쉬임없이 진취하여 세계에 웅비하는
이 민족기상의 모범이 되신 분이여!
이 겨레의 모든 선현들의 찬양과
시간과 공간의 영원한 찬양과
하늘의 찬양이 두루 님께로 오시나이다
(1987년. 1월 미당 서정주가 바침)
이 구역질 나는 詩 같지 않은 詩야말로
문학이 독재권력을 위한 도구로 쓰인 대표적인 경우일 것이고
나로 하여금 문학은 우리 삶의 무엇이며
詩 精神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물음에 당도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 詩 중의 하나다
작금의 사태를 보면
현대문학의 연재소설 게재 중단 사건은
문학을 정치적으로 오염시켰을 뿐만 아니라
모든 문인들로 하여금 분노와 함께 자괴감을 불러일으킨 사건이며
문인들의 영혼과 문학의 창작, 표현의 자유를 앗아가 버린 사건이다
문학의 발전에 기여해야 할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현대문학'이
오히려 문학을 폄하하고 문학에 깃들인 정신의 가치를 훼손해 버렸다
문학이 정서와 사상의 표현이고
美 意識이 정서와 관련된 심리적인 작용이며
윤리성이나 이념 등 그 가치 문제는 문학의 내용을 이루는 사상과 관련이 있다고 보면
'현대문학'이 얼마나 큰 愚를 범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양숙진
대한교과서 사주일가로 '현대문학'의 주간이며
소설의 연재와 詩 게재 여부를 손아귀에 틀어주고 있던 자로
권력 앞에 미리 납작 엎드려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칼질하고
문학에 대하여 굴종을 강요하며 연재 거부와 중단이라는 재갈을 채운 미친놈이다
친일과 독재권력이 던져준 달콤한 꿀에 맛들인 미친놈들이 이제 겨우 다 죽었는데
또 다시 미친놈이 나타난 것이다
그나마 다행히도 설 미쳤는지
<'현대문학'은 17일자 보도자료를 통해 이일과 직접 관련된 문인들이 받았을 고통에 대해서는
깊은 사과의 말슴을 드린다며 최근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양숙진 주간과 김화영, 이남호, 이재룡, 최승호 편집자문 위원들이 사퇴하겠다고 밝혔다-(12월18일.경향신문13면)>
이후 권혁웅 시인 등 74명의 문인들이 현대문학을 거부한다고 결의하고
이 사태의 추이를 끝까지 지켜보겠단다
문학을 타락시키는 정치적인 수작들을 제거하고 문학을 진정한 문학으로 살려내기 위해서일 것이다
또한
'현대문학'의 연재 중단 사태의 遠因으로 지목되는 글이 있다
'현대문학'의 지난 9월호에 박근혜 대통령의 수필을 찬양한 이태동 서강대 명예교수의 글이다
'바른 것이 지혜다-박근혜 수필세계'를 게재해
'그의 에세이 대부분은 우리들의 삶에 등불이 되는 아포리즘들이 가득한,
어둠 속에서 은은히 빛나는 진주와도 같다'고 하며
또한 '수신(修身)에 관한 에세이로서 모럴리스트인 몽테뉴와 베이컨 수필의 전통을 잇는다고 할 수 있다." 라는 내용의 글로
객관성 부족과 정치적 편파 등의 질타를 받았는데
그 글이 '현대문학'의 연재 중단 사태에 영향을 미친 먼 원인이 되었다는 평가다
박근혜 大痛令이 썼다는 수필에 대한 이태동 교수의 평은 이렇다
<--이하 인터넷 다음, 푸른 시의 방 까페의 손님방 게시판에서 가져왔음-->
《현대문학》9월호에는 「꽃구경을 가는 이유」등 박근혜의 수필 4편이 함께 실렸다. 수록된 작품은
1998년 발간된 박 대통령의 수필집 『결국 한 줌, 결국 한 점』에서 발췌한 것이다.
이태동 서강대 명예교수는 비평에 단 각주에서
박 대통령이 6월 중국 국빈방문 중 칭화대 연설에서 수필집에 대해 언급하는 걸 보고 작품을 모두 찾아 읽은 뒤
글을 썼다고 설명했다. 원고 게재는 투고로 이뤄졌다.
이 교수가 쓴 비평의 몇몇 구절을 인용해보자.
--박 대통령의 에세이가 "출간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도 크게 조명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한국 수필계가 세계문학 수준에서 에세이 문학 장르가 무엇인가를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며,
"박근혜의 수필은 우리 수필 문단에서 홍수처럼 범람하고 있는 일상적인 생활 수필과는 전혀 다른
수신(修身)에 관한 에세이로서 모럴리스트인 몽테뉴와 베이컨 수필의 전통을 잇는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수필은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부조리한 삶의 현실과 죽음에 관한 인간의 궁극적인 문제의 코드를 탐색해서 읽어내는
인문학적인 지적 작업에 깊이 천착하고 있기 때문에 문학성이 있는 울림으로 다가오고 있고,
그러므로 "우리 문단과 독자들이 그의 수필을 멀리한다면 너무나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박 대통령이 한국문인협회 회원이기는 하지만
박 대통령이 10여 년 전 발표한 수필에 대해 본격적인 비평이 이뤄진 것은 이례적이다.
이 명예교수는 “박 대통령의 에세이가 정치인이라는 무의식적인 편견과 함께 피상적으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지적으로 풍요함은 물론 높은 수준에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며
“이런 사실을 정직하게 알리는 것이 우리 수필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 생각했다”--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은 두 권의 수필집 즉 자전적 수필집 『평범한 가정에 태어났더라면』 (1993년)과
『결국 한 줌, 결국 한 점』 (1998)을 출간하고 한국문인협회 회원이 되었다 한다.
<현대문학> '편집후기에서는
*에세이 비평 <바른 것이 지혜다-박근혜 수필세계> 이태동
삶과 사물을 통한 냉철한 사유, 지적체험등이 수반되어야 할 에세이 문학에 대한 인식부족을
필자는 '情의 문학에 그치고 있는 한국 수필 문학의 한게로 지적한다.
그런 의미에서 궁극적인 자기인식에서 출발한 修身에 관한 내면의 울림을 주는
박근혜의 수필 '꽃구경 가는 이유'외 세 편을 특별히 여기에 소개한다.
그의 비극적 체험에서 비롯했을 부조리한 인간의 삶과 죽음, 그리고 실존에 관한 성찰,
그 극복에의 의지들은 철학적 사유와 치열한 독서체험을 통한
삶의 한 방식으로서의 글쓰기에 주력되었음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절제된 언어로 사유하는 아름다움의 깊이를 보여주는 문인 한 개인을 넘어,
한 나라의 대통령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더할 나위 없는 큰 기쁨이다.
에세이 문학에 대한 남다른 사랑을 가지고 쓴 이 비평이
한국 에세이 문학의 재발견과 더불어 문학을 보는 진정한 시선 확장에 기여될 것임을 기대한다.
<현대문학>통권 705호 2013년 9월호
발행인, 편집인 양숙진
기획자문위원 김화영 최승호 이남호 이재룡
수필-꽃구경을 가는 이유
박근혜
‘오늘은 내 생의 마지막 날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것은 일평생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견지하고자 하는 그의 방편인 셈이다.
어쨌든, 어느 날엔가는 그 가정이 실제와 맞아떨어지는 날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나는 아직 젊으니까 앞으로 오래 살 수 있다고 장담할 수도 있겠지만,
꽃다운 나이에 꽃처럼 지는 애처로운 사연도 듣고 보아 온 우리들이 무엇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지
그 누구도 정확히 보장받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넋두리 같은 쓸데없는 소리일까? 그러나 이같이 확실한 진리는 없다.
이 세상에 온 우리 모두는 반드시 언젠가는 이승을 떠나야만 하며
그 때가 언제인지는 그 누구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 아무도 반박할 수 없는 이 분명한 진리가
인간의 마음에 큰 경종을 울리면서
과연 우리는 인생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길을 제시해준다.
그런데, 삶을 애기하기도 바쁜 세상에 지금 왜 죽음을 말하고 있는가.
꽃피는 계절을 기다리고, 피는 꽃을 반가워하며,
꽃구경하러 지방 나들이까지 가게 되는 이유는 그 꽃들이 이제 곧 지기 때문이다.
계속 영원히 피어 있는 꽃이라면 소중히 감상할 맛도, 아쉬움도 없을 것이다.
우리의 삶도 반드시 끝이 있는 것이기에, 그리고 그 종점은 하루가 지나면 그만큼 가까이,
그러다가 문득 다가오는 것이기에. 낭비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함부로 빈둥빈둥 살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생의 끝이 있음을 잊지 않음으로 인해,
적어도 때때로 생각해 봄으로써 허무감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허무하지 않게 삶을 영위하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다.
‘영원한 것과 순간적인 것을 가려 낼 수 있는 분별력’이야말로 허무하지 않은 삶으로 이끌어주는 등불이 되며,
생의 종착점에서 울려오는 종소리야말로
이 분별력을 일깨워 주고 그 깨달은 바대로 실천해 나갈 수 있는 의지력을 키워주기 때문이다.
‘끝이 좋으면 모든 게 다 좋다’는 속담이 있다.
다시 말해서 끝이 만일 나쁘다면 그 전에 좋았던 것이 다 소용없다는 얘기도 된다.
죽음을 맞는 순간은 살아온 일생에 비하면 극히 짧은 시간이다.
그러나 이 마감의 순간에 스스로 돌아보는 일평생이 어떠했는가에 따라
그 인생은 값어치 있는 것이 되기도 하고, 완전 실패요 허무한 것이 되기도 할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긴 역사의 흐름과 비교해 볼 때,
‘이 세상에 잠시 머물다 가는 나그네’ - 이것이 우리들의 공통된, 예외 없는 모습이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이렇게 머물다 가는 나그네가
그 마지막 순간에 가장 평화스럽고 행복하고 후회 없는 마음으로 생의 여정을 돌아보며 마감할 수 있도록,
바로 그 심정으로 우리가 인생을 바라보고 그리 되도록 걸어갈 때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가장 값있는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수필집 『결국 한 줌, 결국 한 점』(1998)<인터넷 펌>
이태동
이만하면
이태동도 그 권력 바라보기가 양숙진 못지 않은 미친놈이다
아니 뛰어난 수필이라기보다는 일기 같은 위의 글에
修身에 관한 에세이로서 몽테스큐나 베이컨의 수필의 전통을 잇는다고 어쩌고저쩌고 하는
이태동이야말로 진짜 영문학 교수인지 의문이 일고
그의 문학에 대한 철저한 자기인식과 문학적 체험이 있는지도 의심이 간다
그를 보면
참 세상을 이해할 수 없는 것 중의 하나가
그 많은 지식과 올바른 시대양심을 가르치는 교수라는 자들이 왜 그렇게 권력편향이 심한가라는 점이다
또 그런 놈들 중 미친놈들이 많은 것도 불가사의하고...
문학을
지 몸보신의 가림막으로 생각하는 미친놈들
문학을 위한다고 하면서 문학의 숨통을 죄는 미친놈들
문학을 고귀한 정신의 산물로 보지 않고 권력에 대한 아부의 미끼로 사용하는 미친놈들
저 靑蛙隊 앞뒤에서 손 비비고 웃음 짓는 정치판의 일부 미친놈들과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
문학을 삶으로 하는 사람들은
그의 정신과 가치관에 있어서는
적어도 정치 개판에 뛰어든 사람들과는 뭔가는 달라야 하지 않겠는가
깊은 밤 차가운 컴퓨터 앞에 앉아
이렇게 혼자 목청 높혀 떠들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문학을 기웃거리는 나도 언젠가는
내가 욕하는 그 미친놈보다 더 미친놈이 되는 것은 아닌지 두렵기도 하다
이상원이레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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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유구무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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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