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만 해도 피싱은 말 그대로 'Fishing', 즉 낚시라는 뜻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 생각했다.
흔히 우리가 자기도 모르게 어떤 일을 행하게 되었을 때, '낚였다'라고 얘기하는 것처럼 영어에서도 똑같이 사용되는 줄 알고만 있었다.
그러다가 최근 보이스피싱, 몸캠 피싱 등의 보도를 보고 나서야 피싱이 'Private data(개인 정보)'와 'Fishing'의 합성어로 'Phishing'이며 "개인 정보를 빼내기 위해 인터넷에 벌이는 사기 행각"을 의미한다 것을 깨달았다.
이러한 피싱의 의미를 지난 번 소개했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행동경제학자 로버트 실러 (Robert Shiller)는 조지 애커로프와 함께 쓴 'Phishing for Phools'에서 진짜 '낚시'로 해석해 "사람들이 피싱맨에게는 이익이 되지만 본인에게는 득이 되지 않는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보다 폭넓게 정의한다.
실러의 책에서 소개하는 재미있는 사례가 있다.
바로 경제학자 키스첸의 꼬리감는 원숭이 실험이다. 실제로 원숭이들에게 화폐를 가르치니 가격과 기대보상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실러는 이 원숭이에게 온갖 상품이 공급되게 된다면 유혹에 약한 그들이 선택하는 것은 그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보다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캔디를 지속적으로 섭취하게 될 것이고, 결국 캔디에 중독되면서 영양실조에 걸릴 것이라 예상한다.
그러면서 인간 역시 어깨 위에 꼬리감는 원숭이가 앉아 있다고 하며, 우리에게 유익한 기호(tastes)를 항상 기준으로 삼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우리의 선택 또한 우리에게 유익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한다.
인류 역사상 교환거래가 시작된 이래 피싱맨은 많고 많으며, 미끼 또한 굉장히 다양하기 때문에 언젠가는 우리 또한 미끼를 물 수 밖에 없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는 피싱에 걸려드는 바보에 불과할 뿐이다.
실러 교수에 따르면 바보에는 두 가지 바보가 있는데 하나는 심리 바보 (Psychological Phool)로 감정이 상식을 덮는 행동을 하는 것이며, 또 다른 하나는 정보 바보 (Informational Phool)로 인지 편향에 휩싸여 현실을 잘못 해석하고 그러한 잘못된 해석을 믿고 행동한다.
둘 모두 경제학에서 말하는 '이콘'이 아니다.
결국 자기만의 피싱 방법을 활용해서 바보인 우리들을 낚고자 하는 많은 피싱맨들이 우리 주변에서 경쟁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염두에 두어야 한다.
우리가 실러 교수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했을 때, 즉 심리 바보이면서 동시에 정보 바보인 우리가 유익한 행동을 선택하지 못할 수 있다는 주장을 가장 강력하게 증명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중독을 제공하는 피싱이다.
담배, 술, 마약, 도박 분야에서 피싱은 너무나도 강력해서 자신의 진짜 기호가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에 이르게 되며, 어깨위에 원숭이가 올라탄 인간은 결국 소비를 계속해서 이어나갈 수 밖에 없다.
특히, 술과 담배는 원칙적으로 규제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언제든지 소비할 수 있다.
이러한 술과 담배의 판매자인 피싱맨들이 가장 강력하게 제공하는 피싱의 두 가지 무기는 건강에 크게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점과 가격이 싸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덜하지만 몇 차례 과학실험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흡연이 암을 유발한다는 주장에 과학적으로도 결코 동의할 수 없다"는 얘기들을 담배 쪽 피싱맨들은 지속적으로 주장해왔다.
또 주변을 돌아보면 "술은 적당히 마시면 건강에 도움이 된다"라는 얘기 또한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술이 얼마나 과학적으로 사람을 피폐하게 만드는지에 대한 과학적 연구 결과는 담배에 비해 상대적으로 드물게 취급되고 있다.
제대로 된 조사가 많지 않을 뿐더러 그럴 듯한 자리에서 술이 곁들여지는 것이 매우 멋지게 묘사되는 광고를 시도때도 없이 볼 때 우리는 피싱 당할 수밖에 없다.
그뿐 아니다. 아직도 세금이 적게 붙어 누구나 쉽게 싼 값에 살수 있다는 점 또한 강력한 피싱 무기이다.
서민을 위로해 주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으므로 이에 세금을 높게 붙이는 것은 서민들의 표를 뺏길 수 있다는 것과 동일하게 생각되고 있는 상황에서 증세는 더더욱 힘든 결정이다.
마지막으로 정리하자.
피싱을 가장 강력하게 사용하는 분야는 술, 담배, 마약, 도박 등 4대 분야이고 이 가운데 불법으로 지정되지 않은 술과 담배에 있어서는 피싱맨들의 피싱이 마음껏 허용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민을 위한 기호식품이라는 인식 때문에 보다 더 강력한 규제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적어도 행동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답이 나와 있다. 부드러운 개입을 통한 실천, 넛지를 활용할 수 있는 정책을 고민하고 만들어 내야 한다.
정태성 행동경제학연구소 대표 입력 2020.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