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두蒙頭
―소파에서 엉덩물계곡*까지
김륭
소나기를 줄게
소파에 누워있다 보면 자주 듣는 말입니다.
마음에 잡힌 물집이 보입니다. 소나기는, 소나기는 말입니다. 소나기는
눈을 감으면 은은해집니다. 그동안 지은 죄가 가만히 목덜미를
어루만져주는 시간을 살피다보면 안심이 됩니다. 살아있다는 걸 아직
들키지 않은 것 같아서
도포소매 끊어서 몽두(蒙頭)로 쓰고, 달의 목소리를 기억하는 물고기 두어 마리 데리고 묵을 방을 예약하다 보면 또 보고 싶습니다.
밤
그리고 차마 못 다한 누군가의 울음을 베어 삼킨 듯
붉어지는, 숨
며칠 만에 돌아온 구름이 잔뜩 화가 난 소파의 기분이 풀렸으면……, 폭폭 소파에서 꺼져가는 나를 구하겠다는 생각으로 창문을 두드리는지 모르고요.
물을 찾는 짐승들의 마음을 만져본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서둘러 뼈를 꺼냅니다.
소나기, 볼일도 다 못보고 돌아간 어느 하르방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라고 읽으면
나는 나와 가장 먼 곳에 사는 사람이어서
용소가 시작되는 곳
그게 누군들 한번쯤은 스스로 유배당하지 않을 자 어디 있겠느냐고
낡은 소파 타고 여기까지
소나기는 말입니다. 홍가시나무처럼 소나기는 와서 별 말없이 서있다 가고
나에겐 아직 끝장을 보고 싶은 마음이 남아
흔들어대는, 몸, 저 혼자 돌멩이
다시 줄게, 소나기
*엉덩물계곡 ; 서귀포시 색달동(3384-4)에 자리한 계곡. 큰 바위가 많고 지형이 험준하여 물을 찾는 짐승들조차 접근은 못하고 엉덩이를 들이밀고 볼일만 보고 돌아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웹진 『시인광장』 2024년 7월호 발표
김륭 시인
2007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가 당선, 2007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당선.되어 등단. 시집 『살구나무에 살구비누 열리고』, 『나의 머랭 선생님』 등과 함께 청소년시집 『사랑이 으르렁』, 동시집 『프라이팬을 타고 가는 도둑고양이』, 『햇볕 11페이지』 등과 시평론집 『고양이 수염에 붙은 시는 먹지마세요』를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