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깨우리로다 2 (시 57:7-11)
7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8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9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10 무릇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 11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오늘도 “새벽을 깨우리로다”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립니다. 말씀드린 대로 시편 57편은 다윗이 사울을 피해 아둘람 굴에 숨어 있을 때 기록한 찬송시입니다. 환경도 어려웠지만, 믿음이 내려갈 대로 내려간 때로 이때가 다윗 생애에 가장 어려웠던 순간입니다. 그러므로 환경도 어둠이지만 진짜 어둠은 곧 자신의 믿음이었습니다. 믿음만 깨어난다면 환경은 얼마든지 돌릴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새벽을 깨워 그 어둠을 물리칠 수 있을까요?
3. 진리의 말씀으로 깨웁니다.
7-9절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히브리어로 "확정되었다"는 말은 ‘굳게 서다, 흔들리지 않다, 견고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1절과 같이 본 절에서도 두 번이나 반복합니다.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히브리어에서 반복은 강조도 뜻합니다. 그만큼 결심했다는 뜻도 되고, 그만큼 방황했었다는 의미도 됩니다. 그러나 시편 57편 곳곳에 말씀에 선 다윗의 모습을 봅니다. 이처럼 말씀에 굳게 서 흔들리지 않는 믿음에 서야 합니다. 천지는 변해도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처음 믿을 때 열심은 있었으나 말씀을 모를 때 얼마나 갈등하며 방황했는지 모릅니다. 내가 구원을 받았을까에서부터 시작하여, 율법 아래서의 방황 등 사도 바울이 예수를 알기 전에 겪었던 그 고통을 저도 겪었습니다. 말씀을 모른 그 때처럼 어둠고 암담한 시기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구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전15:1-2에서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했습니다.
행 28장을 보면 바울이 로마로 가다가 유라굴로 광풍을 만나 죽을 위기 가운데 있었으나 밤에 하나님의 사자가 곁에 와서 해준 말씀이얼마나귀합니까? 그래서 바울은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25절) 했습니다.
그러므로 돕지 않으신다면 왜 하나님께서 도우시지 않으실까? 말씀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인다던데, 이 땅에서 매인 것이 없을까? 그래서 죄를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해서 기도하고, 서로 화목하면서 형통하기를 기도하고, 의무와 약속을 순종하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행26:14에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사울에게 이 사건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겠습니까? 깨닫지 못하고 박해만 하다가 지옥 중의 지옥에서 고생하고 있겠지요.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어둠을 진단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모른다면 예언의 은사가 있습니다. 예언이란 길흉화복이 아닌 영적 상담의 의미가 큽니다. 전도자 빌립의 딸들이라든지 온 가족이 그런 은사로 충만했습니다. 성령께서 힌트만 주셔도 10년 20년 방황할 것 즉시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시험 당할 때 지혜를 구하라고 했습니다. 그때 우리는 어둠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4. 찬송으로 새벽을 깨웁니다.
7-9절에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감사하며 찬송하는 걸 볼 때 좋으신 하나님과 복음의 진리를 붙잡고 찬송함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아둘람 굴에서 적막강산 같이 보내지 않았습니다. 기도하고 감사하고 찬송했습니다. 그런데 찬송이 쉽게 나옵니까? 감당하기 어려은 일을 당하면 마음이 얼어붙어서 기도도 찬송도 나오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그랬는데, 무슨 뜻입니까?
이 문장을 문법으로 보면 평행법이라 하는데 히브리 시에서는 앞 문장과 뒷 문장이 대칭을 이루며 의미를 서로 설명하고 보완합니다. 즉 비파와 수금이 나오는 걸 참고하면 앞의 내 영광이 찬양의 은사를 말함인지 추측할 수 있습니다. 다윗을 영광스럽게 한 것이 찬양이었습니다.
찬양으로 악신을 물리치고 전쟁에서 승리하고, 그리고 비파와 수금은 악기로서 성령의 감동과 넘치는 찬양을 상징합니다. 즉 이것이 다윗의 신령한 무기였습니다. 그런데 그걸 그동안 놔놓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신령한 무기인 찬송과 기도와 말씀과 감사 등이 자고 있다면 안 됩니다. 입이 열려야 심령도 살고 육체도 삽니다.
환자가 입을 열어 말하고 찬양하고 울고 웃으며 정상적인 활동을 추구하면 인체가 질병의 모드에서 치유의 모드로 바뀐다고 합니다. 즉 부교감신경이 켜지고 치유의 호르몬이 분비되고, 혈액순환이 원활해지고 조직의 재생과 회복이 시작되고, 면역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폐활량과 용존산소량의 증가하고 음성의 음파로 인해 몸과 뇌까지 청소가 됩니다.
시50:23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하셨습니다. 빌립보 지하 옥에 갇혔던 바울과 실라가 찬양했던 것처럼 찬송은 위대한 역사를 이룹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도 흑암의 교황권과 대결할 때 힘찬 찬송을 많이 불렀습니다. 새뮤얼 테일러 코울리지는 마틴 루터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루터는 성경 번역만큼이나 찬송가 작곡으로도 공헌했다. 독일에서는 모든 농부가 찬송가를 암송하고 있다. 그들은 찬송가를 근거로 조언하며 논쟁하고, 교회의 모든 영혼은 하나님을 찬양한다.” 종교개혁의 여명은 찬송으로 깨운 것이었습니다.
200여 년이 지난 후, 미국의 뉴잉글랜드주에서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부흥과 영적 대각성을 일으킨 조지 휫필드와 조나단 에드워즈의 부흥운동도 찬송을 통해서 일어났습니다. 그때 필라델피아에는 한밤중에도 도시의 거리마다 가정집마다 찬양 소리가 끊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와 때를 같이 해 일어난 모라비아 신앙 운동, 그리고 웨슬리의 운동 역시 강한 찬양 운동과 함께 일어났습니다. 찰스 웨슬리를 통해서만 거의 6,500여 곡의 찬송가가 생겨났습니다. 20세기 후반부에 일어난 다양한 부흥 운동도 찬송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윌로우크릭 커뮤니티 교회 빌 하이벨스 목사는 "기도를 찬미 혹은 경배로 시작하는 것이야말로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찬미 없이는 기도생활을 잘 해 나갈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 즉 복음의 선취적 진리에 서서 찬송을 부르면 새벽이 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정한 새벽은 나를 깨울 때 옵니다. 믿음을 깨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진리에 서서, 우리의 찬송이 더욱 은혜롭고 힘차야 합니다. 우리의 신령한 무기를 내려놓아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우리 믿음을 깨워 어둠이 다 물러가고 광명한 새 아침이 오는 가장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