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에이징 문화 강좌
시월 하순 토요일이다. 그렇게 바삐 사는 이도 아닌데 일이 셋 겹치는 날이다. 올봄부터 한 달 한 번 토요일 독서동아리 회원들이 시내 영화관에서 영화를 한 편 보기로 한 날인데 빠졌다. 지난달은 선산 벌초와 겹쳐 숙제하듯 사전 독후감을 써 돌려 읽으십사 하고 고향을 다녀왔다. 현직 시절 동료 자제가 예식을 치르는 청첩이 와도 마음만 전하고 축의는 문자로 갈음하고 말았다.
아침나절 교육단지 창원도서관에서 은퇴자 대상 월에이징 강연회가 열려 참석하기로 마음먹었다. 10시부터 시작된 연수라 그 이전 새벽 시간 활용은 적절히 찾아냈다. 날이 덜 밝은 여명에 첫차로 운행되는 버스로 도계동 의창구청으로 나가 북면으로 가는 13번 버스를 탔다. 천주암에서 굴현고개를 넘으니 희뿌옇게 날이 밝아오면서 낮은 산자락으로 복사 안개가 감싸고 돌았다.
신동리 텃밭에 닿아 이슬이 가득 내린 가을 푸성귀에서 할 일은 달팽이를 찾는 일인데 녀석은 쉽게 눈에 띄었다. 그물망처럼 잎맥만 남겨 갉아먹는 잎사귀에 달팽이 성체가 보여 즉결 처분했다. 배춧잎뿐만 아니라 늦게 심은 유채에도 붙어 야금야금 먹어 치워 그냥 둘 수 없었다. 쪽파와 시금치 이랑 잡초가 기승이라 호미로 김을 매었다. 텃밭 일을 마치고 서둘러 시내로 들어왔다.
종합운동장에서 내려 도서관으로 가던 길인 폴리텍대학 근처 운동기구에 매달려 잠시 몸을 단련했다. 도서관 업무가 시작될 9시에 맞춰 책담에 들어 대출 도서 2권은 반납해 배낭 부피를 줄이고 남은 한 권 ‘제인 구달 창문 너머’는 자투리 시간이라도 몇 쪽 더 읽다가 연수회가 열리는 꿈담 1층으로 갔다. 우아하게 나이 든 강사가 프레젠테이션을 띄워 놓고 수강자를 맞아주었다.
정한 시각이 되자 은퇴자 대상 웰에이징 강연이 시작되었다. 일전 다른 장소에서 동문 선배 강사로부터 웰다잉 수업을 두 차례 받고 다섯 번이 남았다. 은퇴자 신중년에게 웰에이징이나 웰다잉은 오십보백보다. 사람들이 모여드는 자리에 잘 나가질 않은 내가 어느새 제 발로 스스로 이런 강의를 듣는다는 게 어쩌면 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적응해 가는 한 방법일 수 있다.
충청도 억양 여강사는 나이가 내보다 십 년 더 들어 뵈도 무척 젊게 사는 분이었다. 여태 부산에서 오래 살다가 은퇴한 부군과 근교 양산 숲 근처 아파트로 옮겨 산다고 했다. 남편도 충청도 양반인데 남쪽에서 직장 생활을 보냈고, 강사는 문화 교실 강사로 초빙될 만큼 다양한 이력을 갖췄다. 사범 계열 대학을 나오지 않은 평범한 전업주부로서 방통대를 거쳐 학위를 쌓아 왔다.
백세 앞둔 거동 못하는 모친을 집에서 돌보고 있으며, 연전까지 요양원이 아닌 댁에서 간호했던 시모는 사 년 전 천수를 다했다고 했다. 학령이 중2 친손과 초4 외손은 할머니가 홈스쿨로 조손간 스마트 폰과 영어로 수업을 진행한다고 했다. 주말이면 결혼 후 오십 년을 반려로 사는 남편과 함께 손주들은 사적지나 현충 시설을 찾아 역사를 알게 하고 국가관을 심어준다고 했다.
앞에 선 강사는 비록 오래전이기는 하나 고졸로 상경해 사회생활과 결혼 후 부산에 터 잡아 웅숭깊게 살아온 한 개인사만으로도 후진에게 귀감이 되는 강연 자료였다. 강의 중간중간에 수강생들에 ‘나, 참 잘 살아왔습니다!’고 부추겨주고 환하게 얼굴을 펴도록 웃음을 유도했다. 긍정적 사고로 생각이 바뀌어 행동이 되고, 행동은 습관으로 몸에 배도록 실천할 과제를 부여받았다.
오전은 웰에지징 수강으로 2시간 보내고 강사와 수강자는 떠나도 휴게실로 옮겨 간편식을 때웠다. 맞은편 취학 연령대 못 미친 자녀를 대동한 젊은 엄마들 모습에서 나라 미래가 듬직해 마음 놓였다. 오후는 도서관 열람실에서 날이 저물도록 아침에 잠시 폈던 책을 다시 펼쳐 아프리카 초원에서 침팬지를 연구한 동물 행동학 대가 구달의 생애를 엿봤다. 그녀는 올가을 생을 마쳤다. 25.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