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드라마에서 얼굴은 한 컷도 볼 수 없지만, 한 작품에 자신의 몸을 모두 불사르는 ‘스턴트우먼’.
김혜숙 씨는 지금 스턴트우먼에서 한발 앞서나가 당당히 ‘배우’로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분입니다.
스크린에서 얼굴을 볼 수 없는 스턴트우먼과 달리, 배우는 표정으로도 말을 할 줄 알아야 하는데요,
그런 점에서 저는 김혜숙 씨가 지금 자신의 ‘얼굴’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문득, 제가 인터뷰를 하는 카페의 이름이 ‘Egon’이라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과감한 붓 터치와 섬세한 묘사로 유명한 화가 ‘에곤’(Egon)처럼,
거친 액션과 부드러운 연기를 모두 갖추려는 김혜숙 씨가 여러모로 공통점이 있어 보였던 것이죠.
‘스턴트우먼’에서 이제 당당히 ‘액션배우’로 불리고 싶다는 그녀의 솔직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는 2탄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완벽한 ‘스턴트우먼’에게 없는 세 가지?
Q. 요즘 스턴트우먼을 많이 찾는 게 느껴지는지?
A. 요새 연출하는 감독님들이 디테일에 욕심이 많으세요. 예를 들면, 채시라 씨가 있다.
그러면 돈이 들어가도 남자 대역, 여자 대역 둘을 섭외하세요. 위험한 건 남자가 하고, 디테일한 건 여자가 하는 식으로.
감독님들이 보기에 요새 카메라도 좋아졌고, 텔레비전도 좋아져서 다 보인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여자 역에 남자 쓰는 건 안 된다. 여자 데려와라” 하시는 거죠.
Q. 스턴트우먼으로서 가장 잘하는 것과 부족한 것을 꼽는다면?
A. 저는 일단 뜨는 건 잘 못해요. 처음에는 못 떴어요. 겁이 나고. 스피드만 빨라요. 전 오히려 남자 액션 쪽에 가깝다고 할까요?
오빠들과 같은 스피드에요. 하지만 아직도 공중에 뜨는 건 잘 못해요. 저는 뜨는 몸은 아니더라고요.
하지만 발차기는 예뻐요. 발차기는 누구보다 잘할 자신 있어요. 발차기가 원하는 대로 나오기 어렵거든요.
기수생들 들어와도 기본 발차기 제가 가르쳐요. 안 되는 건 체조에요. 체조가 젬병이죠.
체조를 1년 동안 배웠는데 목 나가고, 어깨 나가고... 안되더라고요. 하체는 좋은데, 상체를 안 쓰니까.
체조는 상체를 쓰잖아요. 팔 꺾이고 난리가 났어요. 핏줄 다 터지고. 그래서 포기했어요. 정두홍 감독님도 되게 아쉬워하셨어요.
정 감독님이 저 액션스쿨 처음 왔을 때, 최초 여자 무술감독을 시키려고 하셨거든요. 근데 저는 연기가 하고 싶었죠.
그리고 부족하다고 느끼는 게, 누구 짓밟고 가는 거. 태권도는 누군가를 짓밟고 가야 하는데,
저는 그런 점에서 남을 짓밟고 올라가야 하는 걸 못했어요. 나쁘게 표현하면 밟고 가야 하는 거잖아요? 치열하죠.
근데 저는 그게 부족했죠. 그래서 국가대표도 한 번밖에 못했어요. 하고도 울었어요. 결승을 고등학교 선배랑 뛰었거든요.
저의 롤모델이었던 좋아했던 선배랑 뛰었는데, 그 선배를 밟고 대표를 해야 한다는 게 마음이 아팠던 거에요.
그 정도로 저는 뻔뻔함이 부족했죠.
노력한 것과 안 한 것의 차이
Q. 연기할 때 캐릭터 분석을 어떻게 하시는지?
A. 예전에는 안 했어요. ‘뒷모습만 나오니까 안 해도 돼.’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뒷모습도 연기라는 것을 연기 수업하면서 느꼈어요.
무술감독님은 모르시는데 연출감독님은 느끼잖아요. 연출감독님이 예전에는 “이 정도면 됐어. 뭐~”이러셨다면,
요즘 제 연기에 완전 만족을 하세요. 감정을 갖고 할 때랑 안 갖고 할 때랑은 연기가 완전히 달라요.
예전에는 그냥 ‘나 여기서 넘어지면 돼, 발차기 몇 번 하면 돼.’ 이랬었는데. 요즘에는 감독님께 상황의 전후를 물어봐요.
그렇게 해서 연기가 뛰어나게 잘 나오는 건 아니지만, 노력한 것과 안 한 것은 분명 달라요.
Q. 자신이 했던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면?
A. ‘돌아온 일지매’. 액션스쿨 들어간 지 3개월쯤 되었을 때 뛴 드라마거든요. 일본까지 가서요.
스텝들과의 추억도 좋았지만, 처음 메인 대역을 한 작품이라 기억에 남아요. 그리고 해보고 싶은 액션들도 다 해봤어요.
칼싸움도 하고, 발차기도 하고. 감독님이 제가 잘할 수 있는 동작들로 합을 짜주셔서 좋았어요.
Q. 기억에 남는 트레이닝이 있다면?
A. ‘천추태후’는 정말 힘들었어요. 사극이 액션 씬이 많아요. 게다가 밤샘 촬영도 많아서 체력적으로도 힘들죠.
모든 배우가 모여서 트레이닝을 같이 했어요. 오전에는 말 타고, 오후에는 칼싸움 연습하고.
배우들이 기본적으로 말타기, 칼싸움 다 배워야 해요. 대역이 있더라도 배우들 얼굴을 따야 하잖아요.
칼싸움 장면에서 배우들이 기본적으로 10합 정도는 해야 해요. 그래서 배우들도 15일 정도 트레이닝을 했어요.
Q. 연기하다가 크게 다친 적이 있는지?
A. <김종욱 찾기>. 무대가 꺼지는 장면이 있어요. 전수경 씨가 등장하는 장면이었죠. 그 장면에서 제가 어깨뼈가 나갔어요.
무대가 꺼지는 효과를 내기 위해서 무대 아래에 문을 두 개를 설치했는데, 그게 동시에 두 개가 열려야 하는데 하나만 열린 거에요.
그래서 한쪽으로 떨어져서 어깨뼈가 나가고, 다 쓸리고 그래서 병원에 실려 간 적이 있죠.
Q. 여배우와 스턴트우먼과의 동작의 합이 잘 맞춰져야 할 것 같은데?
A. 처음에는 못 맞췄지만, 지금은 잘 맞추죠. “에~ 감독님 그냥 하세요.” 하는 여유도 생겼고.
현장에서 많이 굴러봐야 늘어요. 많이 현장 부딪치고, 앵글도 많이 보고.
감독님이 원하는 것을 빨리빨리 캐치해야 해요.
그런 센스가 없어서 현장에서 욕먹고 이 바닥을 떠나는 스턴트우먼도 많아요.
몸으로 익혀야 하는 거죠. 겁 많아도 안 되고.
Q. 가장 위험한 액션 연기는?
A. 와이어요.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없어요. 매달리면 끝이에요.
제 목숨은 이 줄 하나에, 와이어를 당겨주는 사람들한테 맡겨야 해요.
손발이 안 맞고, 신호가 안 맞으면 착지가 안 좋을 때도 있고. 와이어가 기계로도 있지만 거의 사람이 당겨요.
그건 운에 맡겨야죠. 갑자기 줄이 터질 수도 있고.
위험하기도 하지만 어렵기도 해요. 일단 줄에 쓸릴 수가 있거든요.
쓸리면 상처가 장난 아니에요. 불에 탄 것처럼 타요. 균형 잡기도 정말 어려워요.
와이어 한번 타고나면 온몸에 알이 배겨요. 온몸이 뻐근하죠.
그래서 체조했던 분들이 와이어를 잘 타요. 온몸을 쓸 줄 아니까. 근데 전 좀 잘 안 맞아요.
아무래도 하체에 비해 상체는 많이 안쓰는 운동을 했잖아요? 그래도 스릴있고 재미있긴 해요. (웃음)
스턴트우먼이 바라본, ‘여배우들’
Q. 인상에 남는 여배우가 있다면?
A. 먼저 칭찬할만한 배우는 채시라 씨. 완벽주의자시잖아요. 배우적인 욕심이 많으세요.
‘천추태후’ 하실 때, 액션을 다 외워서 하셨어요. 승마를 배우실 때는 액션스쿨 문 열기 전부터 기다리셔서
7시부터 배우시고 12시 전까지 빨리 끝내 달래요. 12시에 아기 이유식 준비해야 한다고. ‘모든 일에 철저하시구나.’
저는 그동안 여배우 이미지가 좀 깍쟁이고, 깐깐하고, 손 하나 깜짝 안 하고 그럴 줄 알았거든요. 아니었죠.
그리고 액션은 하지원 씨가 제일 잘해요. 하지원씨는 욕심도 많고, 성실하고, 힘들다는 소리 입 밖으로 안내는 배우에요.
여배우들이 ‘이거 꼭 해야 해요?’. ‘대역 쓰면 안 돼요?’ 하는데,
하지원 씨는 ‘제가 해볼게요. 하겠습니다.’ 이런 성향이 몸에 뱄어요.
물론 하다가 안되면 대역 쓰죠. 그래도 ‘해 본다는 게’ 다르잖아요. 앵글을 생각한다는 거죠.
앵글에 따라 대역 티가 많이 나는 게 있잖아요. 대역 쓰면 롱샷 풀샷으로 가야 하는데,
배우가 하면 다양한 앵글도 나오고, 감독님이 만족하는 앵글을 하지원 씨는 한다는 거죠.
그게 다른 배우들과 다른 것 같아요.
또 저는 최근에 영화 <도둑들>을 찍고 왔는데, 거기서 전지현 씨 대역을 했거든요?
근데 정말 전지현씨 박수 쳐 드리고 싶었어요. 보통 여배우들은 땅에서 발이 조금만 뜨면 죽는다고 난리가 나요.
근데 전지현 씨가 4층 높이에서 떨어지는 걸 한 거에요. 자유낙하.
그건 밑에서 잡아주는 게 아니라 ‘디셀레나’라는 기계로 길이를 재 놓고 당겨놨다가, 그걸 놔주면 알아서 뚝 떨어지는 거에요.
몸에 무리는 좀 가서 대역 써도 되는데 전지현 씨는 자기가 해요. 헐리우드 배우답지 않나요? 정말 멋있었어요.
Q. 멋있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배우가 다 해버리면 본인의 역할이 없지 않나?
A. 좋아요. ‘배우도 한번 해 봐라. 현장에서 나도 무서워 죽겠는데. 배우도 경험해 봐야 한다.’
이런 생각 하거든요. 직접 설득할 때도 있어요. “언니, 뛸 수 있어요~ 뛰어 보세요~”
배우도 한 번 뛰어 봐야죠. 그래야 서로 연기할 때도 도움이 되고...
돈 적게 벌어도 되니까, 배우들이 많이 해봤으면 좋겠어요.
스턴트우먼, ‘액션배우’를 꿈꾸다!
Q. 하기 싫은 액션과 하고 싶은 액션을 나눈다면?
A. 먼저 어디 처박히고 굴러떨어지는 건 하기 싫어요. 저도 겁 진짜 많거든요. 감독님은 잘 모르시지만.
창피해지기 싫으니까 하는 거죠. “액션!” 하면 구르고, “액션!” 하면 뛰어요.
집에 가면 진짜 짜증 나요. 내가 하고 싶은 게 이게 아니니까.
칼싸움을 하고 싶고, 말 타고 싶고, 화려한 발차기 액션 하고 싶어요.
굳이 ‘스턴트’와 ‘액션’을 나눈다면, ‘스턴트’가 아니라 ‘액션’이 좋아요. 우리나라는 그렇게 액션을 잘하는 배우가 많지 않아요.
Q. 액션배우로 하고 싶은 장르가 있다면?
A. 안젤리나 졸리가 한 액션은 다 해보고 싶어요. <툼 레이더>에 나오는 총격 액션 같은.
최근에 OCN ‘히어로’에 한채영 씨 대역하러 갔거든요? 그때 화약 총을 처음 쏴봤어요. 소리도 정말 크고 죽겠더라고요.
그래도 쏴볼수록 재미있었어요.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쏴볼수록 몸에 자신감이 붙더라고요.
Q. 목표로 삼고 있는 일이 있다면?
A. 우리나라는 태권도 종주국이라서 발차기가 아주 예술이거든요? 외국에서 정말 많이 좋아해요.
미국에서는 더 좋아하죠. 액션스쿨 나오자마자 미국에서 태권도 사범으로 많이 초청이 왔었어요.
영화 <스페어> 제작사에서는 ‘스타킹’에 나온 저를 보고 미국에 제휴해줄 수 있는 회사가 있는데, 소개해 주겠다고도 하셨죠.
근데 꼭 헐리우드에 가야 꿈을 이룬거고, 성공한 거다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훗날 그 무대가 어디가 됐든 일단 한국에서라도 최고가 돼 봐야 하지 않겠어요?
제 꿈은 우리나라에서 최고 ‘액션배우’가 되는 거에요. 무술감독, 스턴트우먼 보다는 ‘액션배우’가 되고 싶어요.
스턴트우먼에서 이제는 ‘액션배우’를 꿈꾸는 김혜숙 씨는 무척이나 화끈하고 솔직한 분이었습니다.
거리낌 없이 자신의 생각을 펼쳐나가는 시원시원한 모습을 보면서 어찌나 통쾌하던지요.
인터뷰를 보신 분들도 저처럼 개운한 기분을 느끼셨으리라 생각됩니다.
특히 누구에게든 강인해 보여야 ‘스턴트우먼’임에도 불구하고, 솔직하게 하기 싫은 액션에 대한 고백이나
여배우들에 대해 생각을 말 할 때면 제가 다 깜짝깜짝 놀랄 정도였지요.
모든 인터뷰를 마치고 그녀가 말한 것처럼 모든 일을 할 때, ‘노력한 것과 안 한 것의 차이’는 무척 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적당히 하다가 쉽게 포기하면서 자신이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고 착각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적이 있지 않나요?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한계를 쿨하게 인정하고,
어떤 일이든 될 때까지 시도하고 보는 멋진 사람이었습니다. 언제나 끝까지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김혜숙 씨.
스턴트우먼을 거쳐 진정한 ‘액션배우’로 활약할 그녀의 다음 인생이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