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삶을 위하여
정의륙
약국에 처음 근무하는 직원에게, 내 나름대로 만든 매뉴얼을 주고 브리핑을 간단하게 한다. 여러 가지 수칙중에서도 강조하는 첫째는 친절이다. 어서오세요 안녕히 가세요는 기본이고, 소아과 처방을 가지고 우리 약국으로 오는 손님의 애기들 이름을 잘 외웠다가 다정하게 불러주는것이 친절이라고 일러준다. 어떻게 생각하면 장사 수완이라고 할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하는게 기본 예의이고, 자녀가 아파서 속상해하는 엄마에 대한 최소한의 위로가 될것 같아서이다.
내가 병원이나 마트에 볼 일이 있어 가보면 가끔은 무안하고 불쾌할 때가 있다. 이럴때 역지사지로 남들에게 비쳐지는 우리 약국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약국에서의 친절은 공산품을 파는 마트의 친절과는 좀 달라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입에 발린 립서비스가 아니라 환자나 손님의 편에 서서 그 고통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해결해 주는것이 최상의 서비스일 것이다. 그러나 지내다보면 피곤하거나 정신없이 바쁠때는 한순간 초심을 잊는 수가 있다.
한달쯤 전의 일이었다. 가끔 약국을 찾는 어르신인데, 오면 보통은 수면제를 달라하여 처방없이 팔수 있는 일반약인, 불면증의 보조치료및 진정작용이 있는 약을 주곤 하였다. 처방이 필요한 최면 진정제는 향정신성 의약품이라하여 취급이 아주 까다롭다. 습관성이 있고 나쁜 목적에도 쓸수 있는 약이라 처방전에 의하여 조제해야 하며 수납대장을 철저히 비치, 작성하여야 하고, 실제 잔량과 수납대장상 잔량이 법에 정한 오차 범위를 넘을때는 그 벌칙이 아주 무겁다. 약을 짓다보면 약을 바닥에 흘리는 수가 가끔 있는데 그게 향정신성 약일때는 진땀이 난다, 그래서 우리약국엔 조제실 바닥에 떨어진 향정약이 빈 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고자, 조제대 근처 알약이 들어갈수 있는 구멍엔 빈틈없이 테이프로 붙여 막아 놓았다.
이 어르신의 딸이 정신신경과 환자인데 단번에 알수있게 행동이 불안하다. 이 어르신 역시 귀가 좀 멀고 의심이 많아서 물은 이야기를 여러번 확인해야 마음을 놓는다. 딸한테 하는 행동을 보면 딸의 병이 아버지의 탓도 있다 싶을 정도로 꼼꼼하게 따지고 위압적이다. 그날은 전에 사 간 수면 보조용 약 케이스에 볼펜으로 어르신이 메모한걸 우연히 보게 됐는데, 취침전 우유에 먹고 따뜻하게 데워 먹으라는 메모였다. 잘못 메모되었다고, 약은 보통 우유와 같이 먹는게 좋지 않다고 얘기하니 펄쩍 뛰었다. 내가 우유와 같이 먹으라고 했다는것이다, 기가 막혔다. 난 여태 누구한테도 우유와 같이 약을 먹으라고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다른데서 그 약을 샀거나 다른 사람한테 주워들은 이야기를 적은게 분명한데 내가 그렇게 말한걸로 오해하고 있는 것이었다.
우유와 탄산음료는 약과 같이 먹지 말라고 보통은 복약지도를 해오고 있다. 우유를 테트라사이클린계의 항생제나 항균제 골다공증치료제 철분제등과 같이 먹을때는 우유의 한 성분인 칼슘과 약성분이 달라붙어 그냥 배설되므로 약 흡수가 잘 안되어 효과가 떨어지고, 지용성비타민은 또 흡수를 지나치게 촉진하고, 대장에서 녹아야 되는 변비약이 위에서 녹게 만들어 효과를 저하시키며, 오렌지주스나 자몽같은 산성 음료는 혈압약을 먹을때 혈압을 너무 떨어뜨릴수 있다. 이런 예는 수도 없이 많아서 일일이 열거할수 없어서, 약을 먹을때는 우유나 탄산음료는 같이 먹지 말라고 단순하게 이야기를 하곤 한다.
고성이 오가고 그날 약국 광경이 좀 우스웠다. 억울했던지 가다가 돌아와서는 또 고성을 질러대고 갔다가는 한참 있다 또 오고, 그날 서너번을 집에 가다가는 돌아왔다. 그 약과 우유를 같이 먹어서 생명에 지장이 있으면 약사인 내가 책임지라는 것이다. 생명에 지장이 있는것이 아니라, 약효가 떨어질수도 있다하니 조금은 안심이 돼서 돌아가는 눈치였다, 자기 몸에 이상이 있으면 내가 책임지라는 다짐과 함께.
그 어르신이 가고 나서 가만히 생각을 해봤다, 그르게 말한것은 없지만 지혜롭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용하게 상대방이 기분이 상하지 않게 내 생각을 전달 할수도 있었는데, 말이 오가며 언성이 높아지고 감정이 격해졌다. 친절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 하루였다. 좀 신경이 예민하고 까다로운 환자였지만 내가 그의 마음속을 헤아리거나, 그의 처지를 고려하지 못하고 그냥 피상적으로 단순하게 내 진실만을 얘기하려 했던 것이 후회 스러웠다.
비가 온 후에 땅이 더욱 굳는다고 그 일 이후로는 더욱 환자의 편에서 자세히 듣고 이해하려 하며 해결책을 궁리한다. 이렇게 마음을 갖게 되니 내 표정이 확실히 밝아지는 기분이며 피로가 없어진다.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하게 되고, 손님을 친절하게 이끌어 설득력이 훨씬 좋아졌다. 그러나 마음 씀씀이의 폭이 원래 작은 내가 한순간에 달라질수는 없다.
친절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고 그 사람의 처지를 이해하는 양보이며, 약사에게 친절은 환자에게 정성껏 약을 조제해 줌으로써 병이 낫게 도와 주거나 보살펴 주는 배려이다. 이는 일방적인것만은 아니며 친절하고 양보하는 마음은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 올것이다. 그것이 베품이라는 정신적 소득이든 성공이라는 물질적 보상이던지간에. 이런 생각과 믿음으로 노력할 뿐이다.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 난 요즈음, 오늘 하루가 내 생의 끝이라 생각을 하며 산다, 그러니 모든 사람이 이해되고 모든 불합리에 미소가 인다. 친절을 베풀면 모든 것이 사랑스럽고 행복함을 요즈음 새삼 깨우쳤다. 인생의 아름다운 삶이란 바로 이런것임을 이제사 알게 되었다.
첫댓글 친절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고 그 사람의 처지를 이해하는 양보이며, 약사에게 친절은 환자에게 정성껏 약을 조제해 줌으로써 병이 낫게 도와 주거나 보살펴 주는 배려이다. 이는 일방적인것만은 아니며 친절하고 양보하는 마음은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 올것이다. 그것이 베품이라는 정신적 소득이든 성공이라는 물질적 보상이던지간에. 이런 생각과 믿음으로 노력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