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212장 (찬송가 347장)
●성경/ 막 9:30-37
예수님은 갈릴리를 지나 예루살렘으로 가는 동안 누구에게도 알리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30). 점점 십자가 고난이 가까울수록 예수님은 열두 제자들을 가르치는 일에만 전념하셨습니다(31상).
예수님은 또 다시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에 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얼마 전 빌립보 가이사랴에 있을 때 예수님이 누구신가의 신앙고백을 받으신 후에 예수님의 고난 받고 죽으시고 부활하실 것을 처음으로 알리셨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흥분하여 예수님께 항의하가가 크게 혼난 일이 있엇습니다. 그리고 오늘 읽은 본문에서 두 번째로 예수님의 고난을 예언하신 것인데, 제자들은 이때도 여전히 깨닫지 못했고 그것에 대해 묻기조차 두려워했습니다(32). 처음에 말대꾸했다가 크게 혼난 이후로 감히 예수님께 이 문제를 가지고 이의를 대기할 엄두를 못낸 것입니다.
그러면서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채 도리어 누가 더 높은 자리에 올라야 할지에 대해 논쟁을 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모두 예루살렘을 향해 같은 길을 걷고 있었지만, 서로 관심사가 달랐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십자가인 반면, 제자들의 관심은 예루살렘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불러 진정으로 큰 자가 되는 길을 가르쳐주십니다.
예수님은 가버나움에 도착하여 집에 계실 때 제자들에게 오는 도중에 서로 논쟁한 것이 무엇인지를 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실 뭣 대문에 그들이 다투었는지를 알고 계셨습니다. 다만 그들에게 다시 확인시켜 주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길에서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대판 싸웠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서로 누가 높은지를 놓고 다투는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사람을 섬기는 가장 낮은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35). 이것이 하나님나라의 계급 법칙입니다. 세상에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섬김을 받는 사람이 높은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사람들 사이에는 이 자리에 오르기 위한 끊임없는 경쟁과 폭력이 존재합니다. 반면 하나님나라는 가장 낮은 자리가 가장 높은 자리이며, 가장 많은 자를 섬기는 사람이 가장 높은 사람이 되는 나라라고 하십니다. 공동체 속에서 나는 섬기는 자입니까? 혹시 직분을 서열로 생각하여 대접받으려고 하지 않습니까?
이어서 예수님은 어린아이 하나를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어린아이를 영접하는 것이 예수님과 하나님을 모시는 길이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37).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라고 하십니다. 곧 세상에서는 권세 있고 유명한 사람을 영접하는 것이 자신을 높이는 방법이지만, 하나님나라에서는 남들이 알아주지 않고 도와주어도 보상해줄 수 없는 자를 영접하는 것이 가장 높으신 하나님 곁에 서게 되는 방법입니다. 하나님나라에 대한 믿음은 낮은 자에 대한 섬김으로 표출되어야 합니다.
기도
높아져 있는 제 마음을 주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작은 자를 섬길 줄 알며, 작은 일에도 충성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높아지려 하기보다 주님과 같은 관심을 가지고 작은 자를 섬기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