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소금산 가을소풍
유년기를 보낸 초등학교가 폐교된 지 오래다. 그러함에도 그곳을 함께 다녔던 친구들은 흩어져 생업에 바삐 보내도 사십대부터 한 해 두 차례 얼굴을 본다. 봄에는 고향에서 모이고 가을에는 전세버스로 소풍을 다녀옴이 20여 년째다. 58년 개띠, 숫자가 많아 한때 왈왈 짓던 개떼처럼 왕성한 기세도 수그러든다. 우리나라 현대사 중심축을 이룬 세대가 시대의 뒤안길로 밀려난다.
코로나 펜데믹이 풀리자마자 우리는 달랏과 장가계로도 다녀왔다. 재작년 가을은 내장산 단풍을 구경했고 작년은 무안 천사대교와 목포 유달산을 찾으면서 길 위 차내에서 많은 시간이어도 즐겁게 보낸 하루였다. 올해 시월 하순 일요일은 고향 친구들과 원주 소금산 출렁다리로 소풍 가는 날이다. 예년보다 다소 늦어도 홍엽이 물드는 단풍은 밤에도 쉬지 않고 남으로 내려올 테다.
일요일 이른 아침 집에서부터 걸어 용지호수를 지나 창원시청 앞으로 갔다. 날이 밝아오는 호숫가는 보안등이 켜진 채 수면으로 새벽 풍경이 거꾸로 비쳤다. 낙엽이 거의 진 벚나무는 일찍 나목이 되어 운치를 더했다. 시청 광장에 닿아 창원 도심 사는 친구 네댓이 모여 부산을 기점 삼은 전세버스가 오길 기다렸다. 정한 시각에 거기 친구들을 먼저 태운 버스가 와 차에 올랐다.
원이대로를 달려 창원역과 마산역을 거치며 같은 생활권 남녀 친구들이 보태져 남해고속도로를 달려 의령읍에 닿았다. 고향 친구들은 하루 여정에 먹고 마실 음식과 술을 버스 짐칸에 가득 실었다. 전날 집행부가 수고하고 동기생이 운영하는 식당의 온기와 정성이 담긴 음식이었다. 짐을 실은 차량은 인근 생활체육 공원으로 이동시켜 간이 식탁을 차려 시락국으로 아침을 먹었다.
버스 기사는 접이식 식탁을 펼치고 여학생은 접시를 채우고 남학생이 옮겨 날라 순식간 성찬이 차려졌다. 온기가 남은 국과 찬으로 아침밥을 든든히 먹었다. 돼지고기 수육과 부산 부전시장에서 한평생 콩나물을 키워 파는 친구가 매번 협찬한 상어 내장과 껍데기를 삶은 두치가 인기 있었다. 친구들은 발길을 가볍게 해줄 맑은 술도 몇 잔 권커니 받거니 곁들이는 여유도 보였다.
식후 서둘러 버스에 올라 국도에서 합천을 지나 고령에서 중부 내륙 고속도로를 달렸다. 전날 집행부에서 준비한 다양한 간식이 나눠지고 맑은 술을 잔에 채워 권해 비웠다. 차내에서 당일 경비가 자발적으로 추렴 되고 모니터 화면으로 나온 가락에 음주와 가무가 빠질 리 없었다. 도중 서울에서 내려오는 몇 친구들이 우리가 목표한 원주 소금산 주차장에 닿았다는 기별이 왔다.
케이블카가 공중을 오가는 소금산 주차장 식당가에서 서울 친구들과 합류해 점심상을 받았다. 그 고장 옥수수로 빚은 곡차 출렁주가 반주로 나왔다. 점심 식후 아득한 바위 벼랑으로 잔도와 출렁다리가 보이는 골짜기로 들어 표를 끊어 비탈을 올라 소나무가 배경이 된 포토존에서 기념사진을 남겼다. 난 고소 공포로 출렁다리 앞에서 되돌아오고 친구들은 울렁다리까지 둘러왔다.
전날 고향을 찾아 고된 농사일을 돕고 와 산행이 무리였던 한 친구와 식당가에서 파전을 놓고 치악산 곡차를 비우며 젊은 날을 떠올렸다. 친구는 1군단 소속으로 그곳 소금산 일대 원주에서 3년을 보냈더랬다. 둘이 잔을 채워 정담을 나누는 사이 트레킹 마친 친구들이 나와 서울 친구들을 전송하고 남으로 내려오다 충주 휴게소에서 아침과 같은 저녁을 차려 먹고 여흥을 이었다.
전세버스 통로에서 날렵한 디스코 동작을 선보이거나 모니터 뜨는 가사 따라 수준급 가창력을 뽐낸 친구도 있었는데 나는 ‘둘둘 가을소풍’을 남겼다. “육친을 보낸 뒤에 사무침 밀려오듯 / 나이가 들고 보니 더더욱 그리운 정 / 신중년 초등 야유회 기다려진 날이다 // 시락국 아침 요기 맑은 술 수육 안주 / 소금산 출렁다리 잔도를 디뎌 건너 / 귀로에 손을 맞잡고 가는 세월 붙든다” 25.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