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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주민들의 삶과 미래를 강탈했다.” 3일 오후 1시 서울 동교동 가톨릭청년회관에서 밀양 송전탑 인권침해 조사 결과 발표회가 열렸다. 천주교인권위원회,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다산 인권센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등 인권 · 법조 · 의료계 9개 시민단체는 지난 5월 29일부터 한 달간, 송전탑 공사가 진행됐던 밀양 지역 4개 면 주민 132명을 대상으로 현장조사를, 6월 6일부터 9일까지 주민 79명을 대상으로 건강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이들은 정부, 한국전력공사, 경찰에 의한 주민 인권침해와 건강권 침해 상황을 6개 항목으로 정리하고, 정부와 국회, 한전에 ▲ 밀양 송전탑 건설사업 추진 여부 재검토 ▲ 마을 공동체 회복 지원 ▲ 대규모 국책사업 갈등 예방책 마련 ▲ 주민과 이해관계자 기본권 실질적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 입법화 등을 권고했다. 이들은 “이번 조사 결과 밀양의 인권침해는 공사 저지 과정의 모욕이나 폭행만이 아니라, 송전탑 사업 진행 전 과정에 있었다”면서 “법적으로 하자가 없으면 문제없다”는 정부와 한전의 태도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가장 심각한 피해는 공동체 파괴 인권침해는 협의 과정의 인권침해, 재산권 침해, 마을 공동체 파괴, 공사 과정의 한전 · 시공사와 용역의 인권침해, 경찰의 인권침해, 건강권 침해 등 전반적 영역에서 이뤄졌다. 우선 밀양 송전탑 건설 사업 계획이 확정된 2000년 이후 줄곧 결정과정에서 주민들을 배제한 것, 토지 가치 폭락과 영농활동 제한에 따른 소득 피해와 같은 재산권 침해, 단일 국책사업 사상 최악의 고소고발 기록, 한전과 시공사, 용역, 경찰에 의한 모욕과 괴롭힘은 주민들의 삶을 총체적으로 방해하고 있다. “가장 힘든 점은 우리 마을 주민하고 싸우는 것이다. 한전과 싸우는 것보다 더 싫다. 마산에는 철탑을 빼내고 나니 찬성했던 사람들이 못 견디고 이사를 가더란다.” (부북면 주민) 재산권 침해로 인한 지속적 삶의 유지가 불가능해지거나, 시공사와 경찰에 의한 인권유린보다 주민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마을공동체의 파괴’였다. 주민들은 경찰, 한전, 용역과 싸우는 것보다 가족 같던 마을 주민들과의 갈등이 가장 힘들다고 호소했다.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는 지역 특성상, 협업과 유대관계가 공고했던 마을은 찬성과 반대 입장, 한전의 회유와 보상 등으로 심지어 부모 자식 간에도 갈등을 겪는 상태다.
한전 요청으로 투입된 경찰의 인권침해 이 가운데 주목할 것은 경찰을 비롯한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다. 경찰이 본격적으로 투입된 것은 지난 5월 20일 공사 재개 이후다. 경찰은 한전이 ‘공사 재개 예정 통보 및 공익사업 시행을 위한 질서유지 협조 요청’에 따라 경남지방경찰청 소속 기동대 500여 명을 공사현장에 투입했다. 그러나 경찰은 한전 측의 요청 사실을 부인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주민들의 통행 제한, 검거를 통해 주민 보호보다는 공사 진행 지원에 나섰다는 것이 조사 결과 드러났다. 조사에 따르면 경찰의 인권침해는 현행범 요건을 갖추지 못한 주민 체포와 편파 수사, 주민 부상을 유발할 수 있는 과잉 대응, 주민들의 기본적인 안전 조치 방해, 주민들에 대한 언어폭력 행사, 이동권 제한과 주민 신변보호 요청 무시 등으로 나타났다. 건강권 침해 상태 심각, 주민 70%가 당장 치료를 요하는 상태 무엇보다 중요한 결과는 지역 주민들의 건강권 침해 실태다.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오랜 기간 갈등상황과 인권침해를 겪은 주민들에게 다양한 신체적 · 정신적 건강 피해가 존재할 것이라는 전제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증상과 우울, 불안, 공포 증상에 대해 조사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전쟁, 자연재해, 폭행, 심한 사고 등을 목격하거나 겪은 후 다양한 증상들이 발생하는 증후군으로, 특히 불안으로 인한 공황상태에 빠지는 불안장애의 일종이며, 결과적으로 삶의 질을 저하시킨다. 보건의료단체연합 이상윤 정책위원은 “조사 결과로 볼 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 유병률은 고위험군에 속하는 이들이 69.9%에 달했다”면서, 이는 송전탑 건설 과정의 갈등이 사고, 전쟁, 해고 등의 심리적 외상과 비슷한 심리적 충격을 주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이상윤 정책위원은 일반인의 유병률은 1~3%, 진단받을 정도는 아니더라도 증상을 경험하는 사람은 5~15%에 이른다면서 “그러나 밀양의 경우, 당장 치료를 요하는 중증 이상 유병률 34.2%, 매우 심한 정도 유병률은 35.4%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이는 밀양 주민들이 9.11 사태 경험자들의 4.1배, 내전을 겪은 레바논 시민에 비해 2.4배 높은 유병률을 보이고 있음을 나타낸다. 보다 정확하게 가장 극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단계를 보이는 주민 비율 35.4%로 비교해 볼 때도, 걸프전 참전 미군(32%)보다 높은 유병률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고위험군에 속한 이들의 답변을 통해 원인을 살펴보면, 이들은 한전 행태에 대한 배신감과 자괴감, 재산상 피해보다는 고향땅을 잃을 것 같다는 안타까움과 마을 공동체 파괴 두 항목이 유의미하게 나타났다. 두 번째로 유의미한 항목은 한전, 시공사, 용역의 위협적이고 무례한 행동에 대한 불안감이다.
주민들, 신념으로 버틴다 … 확신이 어긋날 경우, 파국적 감정상태 이를 수 있어 이상윤 정책실장은 “주민들은 현재 투쟁 중에 있기 때문에 강한 신념체계로 자신을 무장하고, 부정적 상황을 강하게 부인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이러한 경우, 상황이 자신의 기대나 확신과 어긋날 때, 급격히 파국적 감정 상태로 전화할 수 있다”고 우려하며, 적절한 대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조사단은 “밀양 송전탑 사업은 우리 사회 전력수급체계에 대한 근본적 고민을 던져주고 있으며, 소비 주체인 도시의 편리를 위해 농촌 주민들의 삶과 운명을 박탈하는 전력수급체계 문제에 주목해야 한다”고 일침을 놓았다. 이들은 “송전탑 사업으로 주민들은 한전과 시공사의 조롱과 모욕, 정부의 무책임, 님비현상으로 매도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싸워야 했다”면서 “정부와 국회는 밀양 송전탑 사업의 해결을 위해 나서야 하며, 이후 다른 국책사업 현장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제도와 입법을 통해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날 발표회에 주민 증언자로 참석한 김영자 · 안영수 · 서홍교 씨는 하나같이 “우리가 바라는 것은 결코 보상금이 아니다. 보상금 때문에 목숨을 걸 사람은 없다”며 “우리가 가장 바라는 것은 우리 후손들에게 지금의 마을 그대로 남겨주는 것이며, 예전처럼 농사짓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