袁凱(원개)-경사득가서(京師得家書)(서울에서 집에서 온 편지를 받고)(집에서 온 편지)
江水三千里(강수삼천리) 강수 삼천리 거쳐
家書十五行(가서십오행) 집에서 온 편지는 열다섯 줄
行行無別語(행행무별어) 줄마다 별다른 말은 없고
只道早還鄕(지도조환향) 다만 일찍 고향으로 돌아오라 하네
*위 시는 “생각이 맑아지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한시 김용택의 한시산책1(김용택 엮음)(화니북스)과 문학비평가이신 김희보님 편저 ‘중국의 명시’”에 실려 있는 것을 옮겨 본 것입니다.
*김용택님은 “삼천 리 흐르는 강물은 먼 거리를 상징하겠지요. 세상에 그 얼마나 할 말이 많았으면, 세상에 그 얼마나 보고 싶었으면, 그냥 일찍 돌아오라고만 했을까요”라고 감상평을 하셨습니다.
*원개[袁凱, 1316년 ~ 미상, 자는 경문(景文)이고, 호는 해수(海叟)]-원말명초 때 송강부(松江府) 화정(華亭) 사람. 성격이 해학적이고 박학한데다 구변이 좋았다. 홍무(洪武) 초에 거인(擧人)이 되어 감찰어사(監察御史)에 임명되었다. 당시 무신들이 공을 믿고 교만하고 방자해져 죄를 짓는 자들이 점차 늘어났다. 이에 명사들을 초청해 장수들에게 강학하여 공신(功臣)들을 보호하자고 건의했는데, 황제가 수용했다. 나중에 태조(太祖)가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것에 화를 내자 거짓으로 미친 것처럼 꾸며 병을 핑계 삼아 귀향하여 귀양살이를 면했다. 성격이 익살스러워 검은 수건을 뒤집어쓰기도 하고 검은 소를 거꾸로 타기도 하며 구봉(九峰) 사이에서 놀았다. 시에 뛰어나 일찍이 「백연(白燕)」 시를 지어 명성을 날렸는데, 사람들이 ‘원백연(袁白燕)’이라 불렀다. 저서에 『해수집(海叟集)』 4권과 『집외시(集外詩)』 1권이 있다.
첫댓글 향수...
보고 싶은 마음에 그리움만 가득하네요....
회장님의 멋진 댓글에 감사드리고,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