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은 2024년 광복절에 ‘눈물의 값’을 매기다.
다산 정약용과 그의 친구들이 모여 만든 <죽란시사>라는 모임에서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값비싼 눈물을 흘린 사람이 누구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떤 사람은 하서 김인후金麟厚가 유배지에서 읊은 시를 들었다.
“푸른 강물 위의 부르지 못할 혼이여, 백일이 어느 때에 이 원통함을 비춰 주랴. 석양에 물든 눈물 아까워서 못 떨어뜨리겠네.” 그 못 떨어뜨린 눈물 값을 만금萬金이라고 했다.
어떤 사람은 고려 말의 문장가인 목은 이색李穡의 눈물을 들었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들어서자 이색은 숨어 살기 시작했고, 그의 아들은 무고誣告로 형을 받고 죽었다. 목은 이색은 방랑의 길을 떠났다. 68세가 되던 5월 그는 그의 고향인 여강(지금의 여주)으로 갔다. 그 때 그의 문생門生이 그를 찾아오자 산놀이를 가자고 했다. 그는 그 제자를 붙잡고 “내가 여기 온 것은 실컷 울고 싶었기 때문이네.” 한 뒤 지나간 서럽던 날들을 얘기하며 하루 종일 통곡을 했다고 한다. 그 때 그가 앉아 있던 둘레가 마치 비를 뿌린 땅과 같았다고 한다. 이색이 그 산을 내려오며 지은 시는 다음과 같다.
“소리를 안 내려니 가슴이 답답하고
소리를 내려하니 남의 귀 무섭구나.
이래도 아니 되고 저래도 아니 되니
에라 산속깊이 들어가
종일토록 울어나 볼까?“
일행 중에 한 사람은 목은 이색의 눈물을 만금 값이라고 했다.
그 중 어떤 사람은 고려 때 시인 김황원(金黃元)을의 눈물을 들었다. 그가 평양의 대동강 연광정에 올라 종일토록 깊이 생각하였으나 다만 연구(聯句) 하나를 지었을 뿐이었다.
긴 성 한쪽에는 넘실넘실 강물이요.
큰 들녘 동쪽에는 띄엄띄엄 산이로다
長城一面浴浴水, 大野東頭點點山
그 뒤 시상이 막혀서 잇달아 짓지 못하고 통곡하며 내려갔다고 하는데, 그 미완의 눈물을 만금 값이라고 했다.
연암 박지원은 김황원의 시를 별것 아닌 시라고 했는데, 동인시화(東人詩話)에는 그 내용이 이렇게 실려 있다.
“김황원이 부벽루에 올라 고금(古今)의 제영(題詠)들을 보니 모두 제 뜻에 하지 않는지라. 그 현판들을 하나하나 불사르고 나서 온종일 난간에 의지하여 시를 지으려 애쓰다가 오직 이 한 시를 짓고 시상이 말라 통곡하고 갔네.”
나에게 물으면 연암 박지원 선생이 누나의 상여를 지켜보며 흘렸던 눈물을 들고 싶다.
아아! 슬프다. 누님이 시집가기 위해 새벽에 화장하던 모습이 마치 어제 일만 같구나.
내 나이 그 때 여덟살이었다. 내가 장난치며 누워 발을 동동 구르면서 새 신랑의 말투를 흉내 내어 말을 더듬거리며 점잔을 빼자, 누님은 수줍어서 빗을 떨어뜨려 내 이마에 맞추었다. 나는 그만 성이 나 울면서 먹물을 분가루에 뒤섞고, 침으로 거울을 더럽혔다. 누님은 옥압玉鴨과 금봉金蜂 따위의 패물을 꺼내어 내게 주면서 울음을 그치도록 달랬었다. 그 때로부터 벌써 스물여덟가 지났구나.
강가에 말을 세우고 강 위쪽을 바라다보니, 상여의 명정은 바람에 휘날리고, 뱃전의 돛 그림자가 물위에 꿈틀거렸다. 기슭을 돌아가 나무에 가려 다시는 볼 수가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때 강가의 먼 산들이 검푸른 것이 마치 누님의 쪽진 머리 같았고, 강물 빛은 누님의 화장 거울과 같았으며, 서쪽으로 지는 새벽달은 우리 누님의 고운 눈썹 같았다.
눈물을 흘리며 누님의 빗을 떨어뜨렸던 일이 떠올랐다. 유독 어렸을 적 일만 역력하게 떠올랐다. 생각해보면 즐거웠던 기억은 많았는데, 세월은 덧없이 길고 그 사이에는 대부분 이별의 근심을 괴로워하고 가난을 걱정하고, 괴로워하면서 보냈으니, 인생이 덧없는 것이 마치 꿈결과 같구나. 남매로 지낸 날들이 어찌 그리도 빨리 지나갔더란 말인가?
떠나는 사람 정녕코 다시 온다 약속을 남기고 가지만
보내는 사람 눈물로 여전히 옷깃을 적시게 하네.
조각배 이제 떠나가면 어느 때 돌아올까.
보내는 사람만 헛되이 강가에서 외롭게 돌아가네.
그리고 또 하나를 들라고 하면 담헌 홍대용이 친구의 제문을 지으며 흘렸던 눈물을 들고 싶다.
어디 그뿐인가, 나라를 잃고, 머나먼 이국땅으로 떠나야했던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흘린 눈물, 해방이 되어 벅찬 감동으로 흘렸을 그 눈물도 천금 만금 값으로 매길 수 없는 슬픔에 눈물이었으리라.
어디선가 담헌 홍대용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릴 것 같다.
“글자마다 눈물방울 그대 와서 보는가?”
오늘 광복절, 광복절이네, 건국절이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이 시대에 이 땅을 떠나 먼 이역에서 눈물 흘리며 독립운동에 몸 바쳐 싸우다가 생전에 돌아오시지 못한 단재 신채호 선생님을 비롯한 수많은 분들에게 이 ‘눈물의 글’을 바친다.
2024년 8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