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산제 이후 두번째 소원을 빈 날이다 어제는.
관음사에 올랐더니 부처님들이 무더기로 앉아서 우릴 맞아주셨다.
때는 이때다 싶어 얼른 소원 하나를 빌었는데,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뭔가가 있겠거니~
괜히 혼자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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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막힌 야간산행이었다.
호걸님의 처음 의도는 초저녁 산행이 포함되었었지만,
(나는 어스름이 깔리는 산길을 따라 산사를 향하는 낭만을 얼마나 기대했던가!)
CIA와 산바람, 호걸, 수안(?)님까지를 기다리는데만 1시간 이상이 소요되었던 것 같다.
늦게 올거면 먹을 거라도 푸짐하게 가져오던지,
먹을 걸 안 가져올거면 일찍이라도 오던지,
배낭조차없는 빈손으로 너털너털 오는 머털님까지를 기다리느라 지쳐 썰렁하게 시작한 산행은 경철(?하하 용서^^;)이와 인애의 삽겹살 제안에 금방 호들갑스러워졌다.
그 옛날 동아리에서 지리산을 갈 때나 했던 장보기가 시작되었다.
삽겹살과 상추, 쌈장에 매운 고추까지, 아, 소주를 빼면 안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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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터 밤샘 하기로 합의했기에 우린 밤의 정취를 한껏 맛보며 아주 천천히 산을 올랐다.
마당바위에서의 야경은 정말 멋있었다. 뿌옇게 안개인지 매연인지로 덮힌 서울의 불빛들은 누구말대로 마치 서울이 불타고 있는 것같은 착각에 빠지게 했다.
하늘의 별도 초롱초롱 빛났고 늘 소쩍새 울음 소리가 우릴 따라다녔다. 거북바위 아래에서의 작은 삼겹살 파티는 또 얼마나 유쾌했는지 모른다.
하산을 하고도 2시간 넘게 숙소를 잡지못해 여러 여관을 전전하며 의정부시내를 누비다 결국은 5천원짜리 찜질방으로 돌아가며,
조금만 가면 여관이 많다고 뻥?을 치신 통닭집 아줌마를 얼마나 원망했던가. 그 아줌마 덕에 하룻저녁에 서울과 경기도를 넘나드는 엄청난 기록을 남기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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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로 화장실 앞에서 먹는 떡이 죽여줘요 라며 냄새나는 피바위 앞에서 우리 모두에게 어디서 젤 유명하다는 떡을 먹이시던 호걸님이,
손바닥으로 거침없이 벌레를 죽여가며 바위를 타던 CIA의 괴력이,
쉼없이 재잘거려 에코가 되어버린 안개가,
고슬고슬 아주 멋들어진 밥을 선사해주신 산바람님이,
반바지의 늘씬한 다리가 인상적이었던 수안님이,
닭살이 돋아있는 팔뚝을 드러내 놓고도 기어이 자켓을 입지않고 사나이의 기상을 과시하려던 머털님의 안간힘이,
있어 더욱 즐거운 산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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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얘긴 너무 많지만 이쯤에서 줄여야겠다.
(그렇다고 여기서 머털님의 구구단 실력을 공개할 순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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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산자락 어디에서 자연이 되고 있을 호걸, 산바람, 머털님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CIA도 잘 들어 갔는지, 수안(닉 맞죠?)언니도 잘 들어갔는지,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왔네요.
지송해요.